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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naver.com/godnjf12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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Å日月眞人 明 선생님Ω
♧마지막 구세주(救世主) 황발(黃髮: 明 선생님)♧
【인천(仁川) 중앙동(中央洞) 자유공원 작은 정자 옆에 있는 큰 정자(大亭:석정루石汀樓) 黃宮】
【鄭道令(明 선생님)은 1946년 병술년(丙戌年)(음력 12월 대한민국 수도 서울 용산(龍山)에서)
해월(海月) 황 여일(黃 汝一) 선생 후손(後孫)으로 재림(再臨)하셨다】
Ω 삼도정덕가[三道正德歌]
천문지리 인사도가 알고 보면 일덕이라
덕문안에 들어가서 삼재도를 살핀후에 유불선을 깨쳐보면 유불선도 한 이치라
도통하면 일반일세 인도로는 유도세고 지도로는 불도세고 천도로는 선도세워 그 영광을 깨쳐보면 일월성(日月星(北斗)의 삼광기라
유불선덕 분명하다
덕당위에 올라서서 사방풍경 구경하고 덕신안에 들어가면 일대덕주 정좌하사 사해팔방 사시절을 이십사방 벌려내어 만물생성
하게하니 그 덕주를 못 만나면 옥황상제(玉皇上帝) 어찌 알며 기심주를 깨칠손가 ―
기심주는 성품이니 일양천성 상제령을 사람마다 타고 나서 도덕 중에 살건마는 천도지덕 몰랐으니 물중최령 무엇인고 이치리자 그런고로 하날님이 성현내고 성현들이 도를 밝혀 덕을 전제 하였으니 일용행사 그 도덕을 다시 배워 깨쳤어라 ―
나도 또한 이 세상에 천지음양 받아내어 음양귀신 그 조화로 십성수화 타고나서 진애지기 호흡키로 음폐기양 암암하야 무극야중 지나다가 천지운수 자연화로 육도삼합 일천하에 삼남삼녀 건곤덕(乾坤德)을 영부일장 갱성하니 삼하삼낙 삼재사가 건곤합덕 영부로다.
아미선대 심성령이 음양 양노 분할하여 동서(東西) 일월(日月) 정해 놓고 선신귀신 분배하여 풍운이정 태화기로 삼도수에 왕래하니 생전유와 사후불은 구변구복(九變九復) 조화로다 ―
일거일래 무유극이 선도 중극 달렸기로 황극 선도 다시 나서 유 불 일야 발명하니 동해(東海) 청룡(靑龍) 일출궁(日出宮)은 유도 양명 천당이라.
사람마다 동동이요 서산 백호 야월궁은 불도 음암 지옥이라
귀신 덕이 정정일세 유불도가 여차하니 인과 불을 자세 살펴 불형 유형 깨쳐보소
도는 분명 삼절이나 덕은 분명 일부오니 동방 춘 목 삼팔절을 서방 추 금 사구부를 절부상통 하여 내어 이십사방 그 가운데 인의예지 그 성품을 동서남북 벌려 놓고 삼십육궁 그 가운데 원형이정 그 마음을 춘 하 추 동 바로 세워 정도 정덕 행코보면 양명천도 천덕되어 도리 당당 여차하니 허황중에 가지 말고 사사욕심 두지마소 ―
허사심에 정신가면 음마귀가 점점커져 악도용심 빠지나니 실정심에 정신세워 선도 양궁 가고 보면 양성신이 차차커져 태양일과 명명하여 정기본심 찾는 고로 원형이정 천도상과 인의예지 인성강을 삼강오상 밝혀내어 남녀사람 일깨워서 인사당당 가르치니 천문지리 이아닌가 천문사는 하도있고 지리사는 낙서있어 천문성신 그 조화로 지리 강산 만물나서 인사지업 있는 바니 삼도정덕 좋은 예법 중천 영부 팔괘도라 천지인운 삼합시를 오운육기 못 깨닫고 순수천명 하단말가?
『천명(天命)이라 하는 바는 양성 두고 이름이니 갑을(甲乙)자비 건곤(乾坤)성을』 ―【※】
일원이정 깨달아서 주양 양도 살폈어라
남녀 복중 심성수화 일원좇아 성쇠로다
심성일월 그러하나 삼만육천 제대혈맥 성신분열 조화로서 일신 천지 통각하고 천지 천지 살펴보면 남녀 천지 분명해서 선후천이 내외로다 상궁하궁 깨친후에 중궁인간 다시 살펴 천지양궁 그 분부를 이기운수 하락도로 좌우순력 산질하여 좌선우선 궁을제로 십이분야 깨쳐보세 삼사십이 그 조화라 칠정기가 칠행해서 일 월 수 화 목 금 토로 구궁출입 정령하여 팔괘외성 만만사를 연월일시 사상으로 절절부부 마련하니 만물 사용 이 아닌가 도지변리 여차하니 정정대도 잃지 마소 ―
이어서 ―
해월유록(海月遺錄) 제14장 아리랑
“옛날부터 내려오는 노랫말 중에, 흥(興)에 겨울 때나 기분(氣分)이 좋을 때 어깨를 들썩이며 부르는 「얼시구 절시구 기화자 좋을시구」 가 들어있는 구절이 예언서(豫言書)에 나오는데, 『世謠流行 心覺 乙矢口何理 節矢口何意 氣和者 肇乙矢口』 그렇다면 이 「얼시구 절시구 기화자 좋을시구」 라는 노래에 무슨 뜻이 담겨 있는 겁니까?“ 라고 오른쪽에 있는 한 사람이 물었다.
명산 선생님(明 선생님)께서 “우리 나라에 옛부터 내려오던 「얼시구 절시구 기화자 좋을시구」 라는 노랫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에 앞서, 먼저 흰비둘기와 토끼가 무엇인지 알아야만 「얼시구 절시구 기화자 좋을시구」 란 말의 의미(意味)를 정확(正確)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여 주셨다.
【※】
격암유록(格菴遺錄)의 정각가(精覺歌) Ⓟ67에,
『庚辛金鳩四九理 甲乙木兎三八里 一勝一敗縱橫矣 四九之間十勝處 欲知金鳩木兎理 世謠流行心覺也
경신금구사구리 갑을목토삼팔리 일승일패종횡의 사구지간십승처 욕지금구목토리 세요유행심각야
乙矢口何理 節矢口何意 氣和者肇乙矢口 日中有鳥 月中玉獸 何獸 鳩兎相合眞人 世人苦待鄭道令
을시구하리 절시구하의 기화자조을시구 일중유조 월중옥수 하수 구토상합진인 세인고대정도령
何意事永不覺』
하의사영불각
이 글의 의미를 보면, 경신사구(庚辛四九)은 금비둘기(金鳩)를 의미하고, 갑을삼팔(甲乙三八)은 목토끼(木兎)를 의미한다.
그 의미인즉 일자(一字)를 종횡(縱橫)으로 한 십자(十字) 즉 음양태극(陰陽太極)으로 십승처(十勝處)라는 의미인데, 금구(金鳩)와 목토(木兎)의 의미를 알려면, 세상(世上)에서 유행(流行)하는 노래를 마음 속에 깊이 깨달으라고 한 것이다.
「을시구(乙矢口), 절시구(節矢口), 기화자조을시구(氣和者肇乙矢口)」 라는 의미는 무엇인고 하니, 해(日) 가운데는 새(鳥)가 있고, 달(月) 가운데는 짐승(獸)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비둘기(鳩)와 토끼(兎)이며, 이 비둘기(鳩)와 토끼(兎)를 합한 진인(眞人)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고대(苦待)하던 정도령인데도,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통 깨닫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격암유록(格菴遺錄) 은비가(隱秘歌) Ⓟ59에,
『欲知 生命處 心覺 金鳩木兎 邊』 ***
말세(末世)에 목숨을 보존할려면, 금비둘기(金鳩)와 목토끼(木兎)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한 것이다.
또 격암유록(格菴遺錄) 정각가(精覺歌) Ⓟ67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는 것이다.
『欲知 弓弓乙乙處 只在 金鳩木兎 邊』 ***
궁궁을을처(弓弓乙乙處)를 알려면, 즉 궁궁을을(弓弓乙乙)인 정도령이 있는 곳을 알려면, 다만 금비둘기(金鳩)와 목토끼(木兎)가 있는 곳이라고 한 것이다.
즉 달(月), 태양(日)이 뜻하는 것은, 정도령(鄭道令)을 의미하는 말인 것이다.
나누면 태양(日)과 달(月)이지만, 한 글자로 하면 명(明)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도령을 일월진인(日月眞人 )또는 명(明)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궁을(弓乙)이 다름 아닌 금구(金鳩) 목토(木兎)를 합한 진인(眞人)이신 정도령이라는 것을, 거듭 밝히고 있는 것이다.
궁을(弓乙) 자체가 격암유록(格菴遺錄) 초장(初章)에 나오다시피, 천궁지을(天弓地乙)로서 태극(太極)을 달리 말한 것이다.
우리의 민요(民謠) 속에 있는 「얼시구 절시구 기화자 좋을시구」 라는 말을 좀더 깊이 알아보면, 얼시구란 을시구(乙矢口), 또는 얼리시구(孼離矢口)로 표현하는데, 이 얼(孼)자는 요물 얼(孼)자로 마귀(魔鬼)를 의미하는 것이고, 리(離)자는 떠날 리(離)자이며, 시구(矢口)는 합하여 알지(知)자가 된다.
곧 마귀(魔鬼)는 떠나간다 라고 해석이 되는 것이다.
또한 절시구(節矢口)라는 말의 절(節)자는 때를 알라는 말인데, 무슨 의미인가 하면,
증산(甑山) 상제께서 《천지개벽경(天地開闢經)》 4권 갑진(甲辰: 1904년)편 4절에서,
「을시구(乙矢口) 절시구(節矢口)」 라는 말에 대하여 설명하시기를, 때(節)를 알라(矢口)는 의미의 절시구(節矢口)라는 말에서
절(節)자의 뜻이 숨겨 놓은 의미로 부처(佛)을 뜻한다고 하였다.
즉 부처님을 알라는 말이다.
격암유록(格菴遺錄) 말운론(末運論) Ⓟ32를 보면,
『肇乙矢口 氣和慈慈』
격암유록(格菴遺錄) 농궁가(弄弓歌) Ⓟ61에는,
『陰陽相親 하고보니 十五眞主 鳥乙矢口 亞亞倧佛 十數之人 萬人苦待 眞人이라』 ***
기화자 조을시구는 「氣和者 肇乙矢口」 또는 「氣和慈 鳥乙矢口」 로 표현을 하였으니, 그 의미는 기화자(氣和者) 즉 천지음양(天地陰陽)의 기(氣)를 하나로 화하게 하는 것이 조을(肇乙) 또는 조을(鳥乙)임을 알라고 한 것이다.
즉 좋은 세상(世上)으로 화(和)하게 하는 것이 십오진주(十五眞主)인 조을(鳥乙)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곧 경신사구(庚辛四九)는 새(鳥)인 비둘기(鳩)이고, 갑을삼팔(甲乙三八)은 짐승(獸)인 토끼(兎)인데, 다시 말하면 새(鳥)는 비둘기를 말한 것이고, 을(乙)은 음목(陰木) 즉 묘목(卯木)을 말한 것으로 묘(卯)가 짐승으로는 토끼가 되는 것이다.
이 비둘기와 토끼를 합한 분이 천지음양(天地陰陽)의 기(氣)를 하나로 화(和)하게 하는 진인(眞人) 정도령이라고 한 것이다.
즉 조을(鳥乙)이라는 말은, 금목(金木)을 짐승으로 표현(表現)을 한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인데, 금목(金木)이란 다름 아닌 태극(太極)을 표현(表現)한 말이다.
그래서 「氣和者」 또는 「氣和慈」 라고도 하는데,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미륵불(彌勒佛)을 자씨보살(慈氏菩薩)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전통민요(傳統民謠) 속에, 구세주(救世主)이신 진인(眞人) 정도령이 인간 세상에 오셔서, 마귀(魔鬼)를 박멸(撲滅)하시고 천지(天地)의 기(氣)를 화(和)하게 하여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을, 노랫말 속에 숨겨 전(傳)해 준 슬기를 엿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숨겨진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은 의미(意味)를 조금도 알지 못하면서, 단순(單純)한 의미(意味)로만 노래를 불러 왔던 것이다.
계속해서 삼역대경(三易大經)의 경대가인가(鏡坮佳人歌) Ⓟ352를 보면,
『好時節을 알려거든 子女合德 太陽中에 용龍자가 丁寧하니 春三月을 찾아와서 좋을好자 다시배워 ......
昇降습도 往來間에 天氣地氣 合德되니 좋을好자 無窮造化 좋을좋을 좋을時라 乙木柳尺 손에들고 三神山을 찾아보세』
이 말은 우리가 평소(平素)에 좋은 일이 있을 때 「기분이 좋다」, 「기화자 좋구나」 하는데 그 말이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되었는지 이제 쉽게 알 수가 있는 것이다.
한자(漢字)의 좋을 호(好)자는 음(女)과 양(子)이 서로 합하여진 글자인데, 이는 곧 천지음양(天地陰陽)이 잘 조화(造化)가 되면, 태양(日)이고 용(龍)인 정도령이 나타나서 무궁(無窮)한 조화(造化)를 일으키니 세상은 좋은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좋다고 하는 호(好)자의 의미를 다시 알고 배우라고 하는 말이다.“
“앞에서 말씀하신 천지(天地)의 기(氣)가 불균형(不均衡)을 이루고 있다고 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천지(天地)가 불균형(不均衡)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까?”
【※】
“격암유록(格菴遺錄) 도부신인(桃符神人) Ⓟ103에,
『天地相爭 混沌時에 天神負이 地鬼勝을 此然由로 因하여서 勝利者의 노름으로 天地反覆 할일업서 地上權을 일엇다네』
천지(天地)의 혼돈(混沌)시에, 천신(天神)이 지귀(地鬼)인 마귀(魔鬼)와의 싸움에서 지상권(地上權)을 잃으셨기 때문에, 천지(天地)의 균형이 깨져서 문왕팔괘(文王八卦)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오행(五行)이 상극(相剋)의 원리로 짜여지게 된 것이다.
이런 우주(宇宙) 상극(相剋)의 형태를 물형(物形)으로 나타낸 것이, 바로 문왕팔괘(文王八卦)인 것이다.
이러한 천지간(天地間)의 불균형이, 인간 세상에서 온갖 부조리(不條理)가 판을 치는 죽음의 문명(文明)으로 화(化)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너무 오랜 세월에 걸쳐 계속되니, 장차 앞으로 신선세계(神仙世界)가 도래(到來)한다고 해도, 아무도 믿지를 않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때가 되면 구세주(救世主)인 미륵(彌勒) 정도령이 나타나서, 이 세상을 한순간에 바꾸는데 그렇게 되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사고(思考)에 젖어있던 중생(衆生)들의 사고(思考)도 하루 아침에 바뀐다는 것이다.
【※】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4권 8장 16편을 보면,
선생하대인(先生何代人) 초옥창해시(草屋滄海是) ***
람각만고심(攬却萬古心) 잠위창생기(暫爲蒼生起)
광음불가시(光陰不可恃) 진퇴아당의(進退我當義) *
문여호수랑(問汝晧首郞) 상화유하미(霜靴有何味)
어초야외반(漁樵野外伴) 구로강변희(鷗鷺江邊戱)
지락자유지(至樂自由地) 조우언천귀(趙盂焉賤貴)
오당시불훤(吾當矢不諼) 설여송운기(說與松雲記) ***
선생이시여! 대를 잇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초옥(草屋)의 창해(滄海)로다.
사람들의 오랜 세월 동안 변치 않는 고정관념(萬古心)을 마침내 잡아서 한 순간에 바꿔 놓으니,
창생(蒼生)들은 새로운 사고로 계발(啓發)되는구나.
도시 세월(歲月)이란, 믿을 것이 못 되나니,
사람을 버리거나 쓰는 일(進退)을, 나의 임금은 마땅히 의(義)로써 한다네,
흰 머리를 한 그대에게 묻노니,
깨끗한 신발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야외에서 땔나무와 고기잡이를 하는데
갈매기와 해오라기는 강변에서 서로 희롱하는구나.
지극한 즐거움이 또한 있는데,
조그만 밥그릇에 어찌 귀천이 있겠는가?
나는 맹세코 거짓을 말하지 않노니
이렇게 송운기(松雲記)에 기록하여 밝히는 바이다.
이 글은 해월(海月) 선생께서 하인인 노인의 의지할 곳을 꾸미며 이름을 지었는데, 그 이름을 이백(李白)의 시(詩)에서 나오는
「백수와송운(白首臥松雲)」 이라는 글귀에서, 송운(松雲)이라는 글귀를 따서 이름을 짓고, 그에 대한 글을 남긴 것이 이 송운기(松雲記)이다.
이 글 내용에서, 선생이시여 누가 대(代)를 잇는 사람입니까? 라고 하니, 초라한 집에 사는 푸른 바다(滄海)라고 한 것이다.
이 바다(海)란 불사약(不死藥) 불로초(不老草)인 정도령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이미 앞에서 밝힌 바가 있는 것이다.
이 바다가 되는 정도령이, 한없는 오랜 세월 동안 굳어진 사고방식을 한 순간에 바꾸어서, 창생(蒼生)들을 계발(啓發)시킨다고 한 것이다.
그러니 오랜 세월이란 별로 의미가 없다고 하였으며, 사람을 쓰고 버리는 일에도 정도(正道)를 따를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전(傳)하는 말은 남을 속이는 거짓말이 아니니, 그대로 믿어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해월(海月) 선생이 밝힌, 그와 같은 초라한 집에 사는 정도령이 나타나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그 때가 바로 지금(只今)으로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과학(科學)을 실질적인 최고(最高)의 가치가 있는 학문(學文)으로 여기지만, 현재의 과학(科學)이란 철학(哲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의 과학(科學)이 현재보다 훨씬 더 발전하여서, 철학(哲學)의 원리(原理)를 증명하고 규정한다면, 철학(哲學)도 또한 과학(科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격암유록(格菴遺錄) 갑을가(甲乙歌) Ⓟ116을 보면,
『哲學科學 硏究者 一朝一夕 退去日 疑問解決 落心思』
과학(科學)이나 철학(哲學)을 연구(硏究)하는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물러가게 된다고 하였다.
의문(疑問)이 해결(解決)되니 소망(所望)이 없어져 낙심(落心)하게 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토록 힘들여서 일생(一生)을 과학(科學), 철학(哲學)을 연구하고 공부해 왔지만, 정도령의 신선세계(神仙世界)가 오게 되면 하루 아침에 쓸모가 없는 학문(學文)으로 전락(轉落)하여 낙심(落心)하게 된다는 말이다.
또한 사람을 쓰는 일에도 학연(學緣), 지연(地緣), 혈연(血緣) 등이 통(通)하지 않고, 오직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높이 들여 쓰여지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모든 자연(自然)의 질서(秩序)가 새로이 바뀌게 되는 해인시대(海印時代)에는 만사지(萬事知)가 되어, 지금의 자연질서(自然秩序)를 바탕으로 한 학문(學文)인 과학(科學), 철학(哲學)은 하루 아침에 쓸모가 없어지게 된다고 하였으니, 깊이깊이 생각하여 깨달으라고 전(傳)하는 말인 것이다.
오늘의 세태(世態)를 본다면 우리가 현실(現實) 속에서 피부로 느끼다시피, 선(善)한 사람이 오히려 손해(損害)를 보고, 악(惡)한 자가 이득(利得)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불의(不義)가 더욱 극성(極盛)을 부리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自身)의 행복(幸福)을 위해서는, 타인(他人)이 불행(不幸)하게 되는 것 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태까지 이른 것이다.
이제까지 인간(人間)의 힘으로, 정치(政治)의 힘으로, 부조리(不條理)를 바로잡아 보려고 많은 노력을 해 왔고, 또한 수많은 수도자(修道者)들이 산(山)속에 들어가서, 일생(一生) 동안 인간(人間)의 근본(根本) 문제(問題)를 해결(解決)해 보려고 무진 애를 써 보았지만, 확실(確實)한 방법(方法)은 제시(提示)하지 못한 채, 결국(結局) 자신(自身)들의 문제(問題)도 해결(解決)하지 못하고 다만 죽어간 것이다.
자신(自身)의 문제조차도 해결(解決)하지 못하는 그들에게는, 기대(期待)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구세주(救世主)가 필요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스스로 문제(問題)를 풀 수가 없다 보니 결국(結局)은 타력적(他力的)인 구세주(救世主)가 이 세상엔 절실(切實)하게 필요(必要)한 것이다.
지금의 세상에 악(惡)이 극성(極盛)하는 것은, 하나님과 마귀(魔鬼)와의 싸움에서 지상권(地上權)을 마귀(魔鬼)에게 잃어버렸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서 천지(天地)가 불균형을 이루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천지(天地)의 위(位)가 바로잡히기 위해서는, 먼저 마귀(魔鬼)한테 잃어버린 지상권(地上權)을 회복(回復)하기 위하여 광복(독립)운동을 하시는데,
마귀(魔鬼)가 가만히 보고만 있겠는가?
삼역대경(三易大經)의 삼극궁을영부장(三極弓乙靈符章) Ⓟ257을 찾아보면,
『愚夫愚民은 視而不見하며 聽而不聞하야 但知無爲而化하니 可歎可笑也로다 不勞自得은 古今一無也니 勤勤孜孜하야 不失天時 하라』
대부분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보여 주어도 깨닫지 못하고, 들려 주어도 모르면서, 다만 때가 되면 다 저절로 되는 것으로 알고들 있는데, 어찌 가소롭지 않은가 라고 했다.
또한 세상에는 공부(工夫)하지 않고 아는 방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없는 것이며, 노력(勞力)하지 않고 저절로 되는 것은 없으니, 부지런히 노력하여 천시(天時)를 잃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처절한 신(神)의 싸움을 알지 못하고, 안 보이고 안 들린다고 하여 단지 무위이화(無爲而化)라고 하며, 모든 것이 때가 되면 저절로 된다고 알지만, 이와 같이 좋은 세상이 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모르는 동안, 숨어서 힘들이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어서 온다는 것이다.
온 세상이 다 그들의 은혜를 입어 좋은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사정을 깊이 깨달으라는 것이다.
세상에 힘 안들이고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상권(地上權)을 잃어버리셨기 때문에, 이 땅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는 세상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사회정의(社會正義)가 바로 설 리가 없는 것인데, 모든 것은 정의(正義)의 신(神)이 주권(主權)을 회복(回復)할 때에,
완전한 정의사회(正義社會)가 구현(具現)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정도(正道)의 신(神)이신 정도령(正道靈)께서, 잃어버린 지상권(地上權)을 회복할 때에, 건곤(乾坤)이 정위(正位)하고, 산택(山澤)이 통기(通氣)하고, 목화(木火)가 통명(通明)하며, 수화(水火)가 기제(旣濟)하고, 곤상건하(坤上乾下)인 지천태(地天泰)의 천정역(天正易) 시대, 즉 천지만물(天地萬物)이 정도(正道)를 되찾을 때가 되면, 지기순환(至氣順還)하여 만사지(萬事知)가 된다고 한 것이다.
정북창(鄭北窓) 선생의 궁을가(弓乙歌)를 보면,
『天地定位 分野時에 弓弓乙乙 뉘가알꼬 ...... 終變始復 開闢數는 道下地에 있는 배라』
이 글의 내용을 보면, 천지(天地)가 개벽(開闢)하는, 즉 천지(天地)의 위(位)가 바로잡히는 지천태괘(地天泰卦)가 되는 수(數)가 도하지(道下地)에 있다고 한 것이다.
즉 도하지(道下地)의 궁궁을을(弓弓乙乙)이신 정도령이 한다는 것이다.
이 때부터가 바로 무위이화(無爲而化)가 되는 지상천국(地上天國)인 것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마귀(魔鬼)와 하나님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승리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삼태극(三太極),
즉 황극(皇極)시대인 지상천국(地上天國), 미륵(彌勒)의 용화세계(龍華世界)인 지상불국정토(地上佛國淨土)라 한 것이다.
이렇게 좋은 세상이 올 것을 깨우치기 위하여, 민요(民謠) 속에 그 뜻을 숨겨서 후손(後孫)들에게 알려 주신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마치자 뒤쪽에 있는 키가 큰 한 사람이 말하였다.
“격암유록(格菴遺錄) 갑을가(甲乙歌) Ⓟ114를 보면,
『孼離矢口 節矢口 孼蛇登登 迺思嶺』 이라는 말이 있는데 같은 의미입니까?“ 라고 질문하였다.
명산 선생님(明 선생님)께서 또 다시 쉬지 않으시고 설명을 하여 주셨다.
“이 말은 민요가사(民謠歌詞) 중에 「얼시구 절시구 얼사등등 내사랑아」 라는 말인데, 이 얼사등등(孼蛇登登)을 살펴보면, 얼(孼)자는 요물 얼(孼)자요, 사(蛇)자는 뱀 사(蛇)자이고, 등등(登登)은 오른다 떠나간다 라는 뜻인즉, 뱀인 요물 마귀(魔鬼)는 떠나간다는 뜻이다.
또한 내사령(迺思嶺)이란 말에서 내(迺)자는, 가다(往), 이르다(至), 당신(汝), 어조사의 뜻이 있고, 사령(思嶺)에서 사(思)는 생각하다 이고, 령(嶺)은 고개 령(嶺)자이므로, 이것을 해석(解釋)해 보면 고개가 무슨 고개인지 잘 생각해보고 찾아가라는 뜻이다
왜 고개를 잘 생각해보고 찾아가라 했는가?
그것은 그 고개에 내 사랑, 나의 사랑하는 님이 계시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면 그 아리랑이란 무슨 의미인가?
먼저 지금까지의 아리랑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학설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첫재, 신라(新羅)의 옛 서울 경주 석굴암 근방에 어영정(於英井)이란 우물이 있고, 또 불국사(佛國寺) 근방에는 어영천(於英川)이란 냇물이 있는데, 이 어영천(於英川)과 어영정(於英井) 사이에, 즉 불국사(佛國寺)로부터 석굴암까지 가는 고개 사이에 몹시 험악한 고개가 놓여 있다.
이 고개 이름이 아리랑 고개라 하면, 신라(新羅) 사람들이 한 번 넘나들려면 가진 애를 썼다고 한다.
그런데 석굴암의 어영정에서 물을 긷던 어떤 처자가, 불국사의 어영천 강변에 앉아 칼을 가는 무사(武士)를 몹시 사모하나, 화조월석(花朝月夕)에 만날 길이 없어서, 혼자 한숨 쉬며 님을 사모하던 나머지 부르게 된 노래가 아리랑이란 말이다.
(三千里, 1970. 2, 편집자)
둘째 여리 아리랑(阿利那) 또는 아리(阿利)라는 말은 삼국사기를 위시하여 고사(古史)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우리 고어(古語)에 아리(阿利)는 길다는 말이고, 또 나(那)는 물을 뜻하는 것으로서, 아리라는 긴 하천(河川)을 이르는 말이다. (姜舜鶴 저, 아리랑의 역사고찰, 野實社, 81. 7. 20)
셋째 아리랑→알리랑, 알리라 (언젠가는 반드시 알게 될 것이다)
아라리오→알알리오 (앎, 알음, 알게 된다)
알라리오→알리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아리랑→알리라
고개를 넘어간다→지금이 바로 고개 마루턱에 와 있는 것이다. (天符經, 민족의 뿌리, 崔載忠 저, 한민국사)
넷째 아리랑이 근래에 불려진 노래라는 설(任東權 著, 한국민요사)은, 대원군 때에 경복궁 고사에서 설명하고 있다.
경복궁을 짓는 큰 역사를 하기 위하여 나라에서 팔도의 많은 백성들을 부역에 나서게 하였으며, 공사의 비용이 모자라자 원납전(願納錢)이라 해서 강제의 기부금도 거두어 갔다.
그래서 반가운 말은 없고 괴로운 말만 들려오므로, 차라리 귀가 먹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아이롱(我耳聾)이란 말이 있었고, 여기에서 아리랑이 나왔다기도 하며, 또 그렇게 쇄국정책(鎖國政策)만을 썼지만 러시아, 미, 일, 영국의 외교기관이 들어왔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정신(情神) 차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밀양 영남루의 아랑전설에서 나왔다느니, 신라(新羅) 박혁거세의 아내 알령부인의 알령(閼英)에서 아리랑으로 변했다느니, 혹은 고대(古代) 민족이동(民族移動)의 시기에 알고개에서 유래(由來)하였다는 설 등이 있어 여러 설이 구구한 것이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하나의 민요(民謠) 형성은 돌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을 두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하다가, 그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명되어 불려지는 것이 남아서 전승되는 것으로 미루어 아리랑은 근래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가 있는 것으로서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불리워지고 있다 라고 하였다.
이상이 아리랑에 대한 세간의 일반적인 학설(學說)인 것이다.“
격암유록(格菴遺錄) 갑을가(甲乙歌) Ⓟ115에,
『亞裡嶺 有停車長 苦待苦待 多情任』
버금 아(亞), 속 리(裡), 고개 령(嶺)자로, 아(亞)자 속에 있는 고개라 한 것이다.
여기에 정거장(停車場)이 있는데, 그 정거장(停車場)에는 우리가 고대(苦待)하고 고대(苦待)하던 다정(多情)한 님이 계신다 한 것이다.
버금 아(亞)자란 무엇인가?
궁궁(弓弓)이 서로 등을 지면(背弓) 아(亞)자가 되는데, 아(亞)자인 궁궁(弓弓) 사이에 십(十)자가 나오니 바로 십승인(十勝人)인 것이다.
또한 아(亞)자는 메 산(山)자가 좌우로 등을 진 모습이기 때문에 양산(兩山), 또는 양백(兩白), 양궁(兩弓), 궁궁(弓弓)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양산(兩山) 사이에, 즉 고개 마루에 정거장(停車場)이 있는데, 그 정거장(停車場)에 우리의 다정한 님(多情任)이 계신다는 것이다.
정감록집성(鄭鑑錄集成) 서계이선생가장결(西溪李先生家藏訣) Ⓟ591~592에,
『山仙之間 飢饉不入 小山小溪 藏踪何如 若入其地 俠字村尋 八物長生 扶人救命』
신선(神仙)이 계신 곳은 기아(飢餓)가 들어 오지 않는데, 조그마한 산 계곡 사이에 숨어 있으니 어쩌겠는가?
그 신선(神仙)을 찾아가려면 끼인 촌(집)이라고 하여 협자촌(俠字村)이라고도 한다.
그 곳에는 장생(長生)시키는 팔물(八物)이 있어 사람을 살린다 하는 것이다.
격암유록(格菴遺錄) 궁을론(弓乙論) Ⓟ50에,
『弓弓不和 向面東西 背弓之間 出於十勝 人覺從之 所願成就』
또한 양궁(兩弓) 양산(兩山) 사이에 십승인(十勝人)이신 진인(眞人) 정도령이 계시는데, 사람들이 깨달아서 따르면 소원성취(所願成就)한다 한 것이다.
십승인(十勝人)이란 무엇인가?
즉 자신과 마귀(魔鬼)를 이기었다는 말이다.
마귀(魔鬼)는 사망(死亡)의 신(神)인데, 그 사망(死亡)의 신(神)인 마귀를 이기었다 하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그 말은 곧 죽음을 이긴 바 되는 것이며, 바로 선각(先覺) 성현(聖賢)들이 그렇게 바라고 꿈꿔왔던 것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실현(實現)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고 하였다.
이론(理論)만이 아닌 참다운 진짜 해탈(解脫)을 이루는 때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성현(聖賢)들은, 스스로 해탈(解脫)했다고 말만 하고는 다 죽어 갔다. 하나 이제 하나님의 아들인 이긴 자이며, 승리자이신, 십승인(十勝人) 정도령으로 말미암아, 많은 수가 해탈(解脫)할 수 있는 길, 즉 사망(死亡)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다.
격암유록(格菴遺錄) 도부신인(桃符神人) Ⓟ104를 보면,
『三百修道 通理說로 克己死亡 傳했으니 逆天逆理 脫劫重生 永生論을 傳했으나 上古先知 預言論을 어느누가 信任했노』
전에 박태선(朴泰善) 하나님께서, 과거(過去) 전생(前生)에 300년 동안 수도통리(修道通理)하여, 인간의 몸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장생법(長生法)을 실험을 통하여 성공하셨다고 이미 밝힌 바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영생론(永生論)을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전(傳)했으나, 상고시대(上古時代)에 먼저 알고 예언(預言)한 선각자(先覺者)의 말을 어느 누가 믿었는가 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일을 맡아서 끝내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의 몫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모든 준비를 한 다음, 그 마무리를 하나님의 아들에게 맡긴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만이 진정한 해탈(解脫)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진인(眞人) 정도령이, 진실로 만인(萬人)이 고대(苦待)해 온 바로 구세주(救世主)인 것이다.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3권 26장 117편을 보면,
산림일로숙쟁선(山林一路孰箏先) 자소오생미료연(自笑吾生未了緣)
수간명천조고슬(水間鳴泉調古瑟) 월단창회열구선(月壇蒼檜列癯仙)
막언필가방유악(莫言畢嫁方遊嶽) 영학휴량영탁선(寧學休粮永托禪)
회수진환진일해(回首塵寰眞一海) 이명갱참기인전(利名坑塹幾人顚) ***
숲속의 길에서, 누가 잡아 끌기에 보니 웃으면서 나는 아직 세상의 인연을 끝내지 못했다 하네.
산골물과 떨어지는 물소리가 하늘의 거문고를 타는 듯 한데, 높다란 언덕 위 푸른 노송나무에 파리한 신선(仙)이 있어
조용히 말을 마치자 또한 산속으로 자적(遊)하는구나.
무사히 신선되는 법(休糧)을 가르치고는, 영원히 선위(禪位)를 맡기는구나(托禪).
머리를 돌려 티끌 세상을 바라보니, 경기고을(寰) 진인(眞人)이신 일(一: 太乙)이 바다(海: 불로초,불사약 )인데, 명예와 이익(利名)을 구덩이 속에 묻은 그 사람이, 도(道)의 근원(顚)이구나.
이 시(詩)를 보면 해월(海月) 선생이 신선(仙)을 만나서, 미래에 대한 말을 듣고 전(傳)하는 말인 것이다.
해월(海月) 선생이 숲속의 길을 지나가다가 누군가가 잡아당기기에 보니, 신선(神仙)이라 하였다.
이 신선(神仙)이 하시는 말씀이, 나는 아직 딱하게도 세상(世上)의 인연(因緣)을 끝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신선(神仙)이 무사히 휴량(休糧)을 가르치고, 또한 자리를 양위(讓位)하고는 산속 깊이 들어가신다는 것이다.
휴량(休糧)이란 신선(神仙)이 되기 위하여 곡식을 끊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또한 선가(仙家)에서 벽곡(辟穀)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곡식을 피한다는 말은, 신선(神仙)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인데, 무사히 신선(神仙)이 되는 방법을 가르치고는, 그 자리를 선위(禪位)하고 깊은 산속에 들어간다 하는 것이다.
산속에 들어간다 함은, 사실은 화천(化天)하신다는 말이다.
이미 해월(海月) 선생은, 하나님께서 산속으로 몸을 피한다는 말이 돌아가신다는 말이라고, 다른 시(詩)에서 풀어 밝힌 바가 있다. 확실하게 신선(神仙)이 되는 법을 무사히 가르치고 떠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恨)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일생(一生)동안 해야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하고 떠난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 나머지 일은 그 아들에게 맡기고 돌아가시면서 머리를 돌려 돌아보는데, 경기 고을에 사는 진인(眞人)이신 일(一) 즉 태을(太乙)을 바다(海)라고 했던 것이다.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1권 22장 111편에,
가소진황구해고(可笑秦皇求海苦) 봉래지시재인환(蓬萊只是在人寰) ***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진시황(秦皇)이 그렇게도 찾던 그 불사약(不死藥) 불로초(不老草), 바다(海), 또는 봉래(蓬萊)라고 한 것이다. 또 그 불사약(不死藥) 불로초(不老草)가, 바로 경기고을의 한 사람(一: 太乙)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밝힌 바가 있는 것이다.
그 불사약(不死藥) 불로초(不老草)인 경기고을에 사는 그가, 세상(世上)의 명예(名譽)와 이익(利益)을 모두 땅에 묻어 둔 채 초연(超然)하게 지내는 사람인데, 바로 그 사람을 전(顚)이라고 하였다.
이 전(顚)이라고 하는 글자의 뜻을 보면, 근본, 근원, 꼭대기, 목, 고개, 뒤집다, 무너뜨리다, 이러한 뜻인 것이다.
그가 바로 도(道)의 근본이요,
만물(萬物)의 원(元)이요,
모든 것을 뒤집어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이며, 대두목(大頭目)이라는 말이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말이며,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고 하나님은 몸을 피하셨다고 하는 것이다.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2권 14장 60편 2수에,
둔산원합둔옹거(遯山元合遯翁居) 원학운림락유여(猿鶴雲林樂有餘)
천의인심난가만(天意人心難可挽) 잔춘함구문하여(殘春含口問何如)
산속으로 숨는다는 것(遯山), 근본적으로 은퇴한 아버지가 거(居: 무덤)하는 곳을 말하는데,
원학(猿鶴: 돌아가신 군자, 즉 하나님)이 운림(雲林) 속에서 또한 즐거워하는데,
하늘의 뜻(天意)과 인정(人心)사이에 어찌할 수 없으니,
남아 있는 봄(春: 하나님의 아들)이 눈물을 글썽이니, 무슨 말로 위로 하겠는가?
이 글에서 산속으로 몸을 피한다고 하는 말은,
근본적으로 자리를 물러나 은퇴(隱退)하여 거(居)하는 집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였다.
즉 무덤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원학(猿鶴)이라는 말은 원숭이와 학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군자(君子)로서, 돌아가신 분을 일컫는 말인 것으로, 화천(化天)하신 하나님이 운무(雲霧)가 끼어 있는 숲속에서, 한가로이 즐거웁게 지내신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하나님이 뜻이 있어서 화천(化天)하셨지만, 사람의 인정(人情)으로 본다면 크게 슬픈 일인 것이다.
그러니 하늘의 뜻(天意)과 인정(人情) 사이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다.
말릴 수도 없고 말리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셨지만, 남아 있는 춘(春) 즉 하나님의 아들은 슬픔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데, 무엇을 어떻게 위로하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 글 속을 잘 들여다 보면, 하나님은 뜻이 있어, 먼저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신다 하신 것이다.
그러니 만류(挽留)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와 같이 먼저 화천(化天)하셔서 즐거웁게 편안히 계신다고, 해월(海月) 선생은 밝히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무 말씀도 없이 화천(化天)하시니 그 슬픔이 얼마나 큰지 또한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당황하게 되며,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인 춘(春)이 눈물을 글썽이는데, 차마 무엇이라고 위로의 말을 전하겠는가 하였다.
해월(海月) 선생은 이미 미래(未來)에 되어질 일을 내다보고 전(傳)하는 시(詩)인 것이다.
하나님이 몸을 피하신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한다면은, 하나님이 화천(化天)한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무사히 아들에게 끝맺음을 할 수 있는 좋은 조건(好條件)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하며, 따르는 사람들을 염려하여 위로(慰勞)하는 말인 것이다.“
그 때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몸을 피한다는 둔(遯)이란 말을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둔(遯)이란, 숨다, 피하다, 물러나다, 사라지는 것, 은둔하다는 의미의 글자인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주역(周易)의 둔괘(遯卦)를 보면, 아랫괘(下卦)는 산(山)이고, 윗괘(上卦)는 천(天)이 있어 천산둔괘(天山遯卦)라 하는 것이다.
산(山)이 높기는 하지만, 하늘(天)은 산(山) 위에 무한히 높이 있는 것이다.
군자(天)는 하늘로 높이 올라 은둔(隱遁)하여, 소인(山)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象)인데, 이 괘(卦)를 보면 두 음(陰)이 아래에서 발생(發生)하여, 그 세력이 점점 왕성(旺盛)해지니 동시에 위의 사양(四陽)은 그 세력이 쇠약(衰弱)해지는 모습이다.
이는 소인(小人)은 왕성해지고, 군자(君子)는 물러나 피하는 상(象)이다.
즉 소인(小人)의 세력이 점점 왕성해지므로, 군자(君子)는 은둔(隱遁)해야 할 때인 것이다.
은둔(隱遁)하면 그 몸이 물러나 사라지더라도, 그 지키는 바 바른 도(正道)는 완수할 수가 있다.
이와 같이 소인(小人)의 기세가 점점 왕성해지는 때에는, 본디 군자(君子)의 바른 도(道)는 행해지지가 않는 것이다.
만약에 은둔(隱遁)하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간다면, 궁(窮) 즉 막히게 되고, 물러나야만 통(通)한다는 것이다.
둔괘(遯卦)의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遯亨 遯而亨也』
둔(遯)은 통(通)한다 함은, 은퇴(隱退)함으로 자신의 바른 도(正道)는 충분히 완수(頑守)된다는 것이다.
군자(君子)의 도(道)가 행하여지지 않을 때에 물러나는 것을 모르면, 자신의 바른 도(正道)는 굽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시세(時勢)의 흐름에 따라, 물러나 소인(小人)과 대적하지 않는 것이 화(禍)를 면(免)하는 것이며, 동시에 자신의 바른 도(正道)를 충분히 펼 수 있는 길이다.
송(宋)나라 대학자(大學者) 주희(朱熹)가 천자(天子)의 국사(國師)로 있을 때, 권력(權力)을 쥔 한차주(韓侘冑)의 횡포(橫暴)를 규탄(糾彈)하는 상소(上疏)를 제출했던 일이 있었는데, 이를 안 제자들이 스승의 안위(安危)를 걱정하여 말렸으나, 듣지 않음으로 점을 쳐서 결정하기로 하였는데, 그 때 나온 괘가 둔(遯)괘였기에, 주희(朱熹)는 묵묵히 물러나 상소문(上疏文)을 태워 없애고 은퇴(隱退)하였다고 한다.
둔(遯)이란 피해서 물러난다는 의미인 것이다.
또한 돼지(遯)와도 통한다.
해월(海月) 선생은 그의 시(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뜻과 인정(人情)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이 세상을 피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도(道)를 이루는 것이라고 해월(海月) 선생은 그의 시(詩) 속에서 밝힌 것이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께서 물러나셔서 무엇을 하시는 것인가?
【※】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2권 35장 144편 2수에,
석아선군자(昔我先君子) 구원칠십년(丘園七十年)
기지추불식(豈知推不食) 금견경무전(今見慶無前)
진퇴수지분(進退須知分) 행장역청천(行藏亦聽天)
오당노견묘(吾當老畎畝) 저이호주선(竚爾好周旋)
옛날에 나의 선군자(先君子)가
화원언덕(丘園)에 70년 동안 있었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일(不食)을, 어찌 헤아리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전에 없었던 일을, 기쁘게도 보게 될 것이네.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은, 필히 잘 판단해서 해야 하고,
세상에 나아가 도(道)를 행하고 하지 않은 것은, 오로지 천명(天命)을 따라야 한다.
스스로(하나님)는 당연히 밭둑길에 물러나 숨어서,
그대를 기다리며, 즐겁게 일이 잘 되도록 보살펴 주겠노라.
이 글에서 선군자(先君子)란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를 의미하는 말로, 이 시(詩)에서는 이미 오셨다가 화천(化天)하신 하나님을 이르는 말이다.
선군자(先君子)라 하면, 즉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세 차례에 걸쳐 오셨던 것이다.
첫 번째로 삼역대경(三易大經)의 육도삼략(六鞱三畧) 제3도인 54궁 도수의 수운(水運)으로, 최수운(崔水雲) 선생께서 오셨고,
두 번째는 제4도인 63궁 도수의 화운(火運)으로, 강증산(姜甑山) 상제께서 오셨고,
세 번째는 제5도인 72궁 도수의 목운(木運)으로, 박태선(朴泰善) 하나님께서 오셨던 것이다.
또한 최수운(崔水雲) 선생은 41세로, 강증산(姜甑山) 상제는 39세로 이 세상에서 화천(化天)하신 것이며, 이 세상에서 70년 이상 계셨던 분은 오직 72궁 도수로 오신, 목운(木運)인 박태선(朴泰善) 하나님밖에 없는 것이다.“
“먹지 않는 일(不食)이란 무슨 의미입니까?” 라고 묻자
“인간의 활동하는 에너지원은 음식물을 소화해서 얻기 때문에, 음식물을 먹지 않고 살 수가 없다.
하지만 앞으로 오는 세상은 음식물을 먹지 않고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월(海月) 선생은 전에 없던 경사(慶事)스러움을 보게 되는 이유가, 먹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인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신(神)으로 화하신 하나님인 선군자(先君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인 정도령으로 하여금 하게 하고, 당신은 물러나서 아들이 하는 일을 잘 되도록 준비만 해 놓고 뒤에서 보살펴 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격암유록(格菴遺錄) 성운론(聖運論) Ⓟ106에,
『無勿不食 過去事요 食不食의 來運事라』 ***
어떤 물질(物質)이 없으면 먹지 못하는 것은 과거(過去)의 일이고, 먹는다고 하면서도 먹지 않는다는 것은, 앞으로 오는 일(來運事)이다.
즉 앞으로는 어떤 식품(食品)을 먹는 것이 아니라, 성신(聖神)을 먹고 사는 세상이 된다는 말이다.
즉 먹지 않고 사는 세상이란 말이다.
격암유록(格菴遺錄) 은비가(隱秘歌) Ⓟ56에,
『萬物苦待 新天運 不老不死 人永春 不耕田而食之 不織麻而衣之 不埋地而葬之 不拜祀而祭之 不乘馬而行之 不食穀而飽之
不流淚而生之 不飮藥而壽之 不交媾而産之 不四時而農之 不花發而實之 死末生初末運 雲王眞人 降島 逆天者亡 順天者興
三人日而 春字定』 ***
이 글의 내용을 보면 만물(萬物)이 고대(苦待)하던 새로 맞이하는 천운(天運)인데, 이 때에는 사람이 늙지도 죽지도 않고, 영원한 봄만이 있으며, 밭을 갈지 않아도 먹을 수 있고, 옷을 짜지 않아도 옷을 입을 수 있고, 매장(埋)하지 않아도 장사(葬)지낼 수 있고, 절(拜)하며 제사 지내지 않아도 제(祭)를 지낼 수 있고, 말을 타지 않아도 갈 수 있고, 곡식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며,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며, 약(藥)을 먹지 않고도 장수(壽)할 수 있으며, 교구(交媾)함이 없어도 자식을 낳을 수 있으며, 사시(四時)가 아니라도 농사를 지을 수 있으며, 꽃이 피지 않아도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사말생초(死末生初)인 이 말운(末運)에, 하늘의 왕(雲王)이신 정도령이 동반도(島)에 강림(降)하는데, 천명(天命)을 받고 강림(降臨)한 정도령을 춘(春)이란 글자(字)로 정(定)했으니, 천명(天命)을 어기는 자는 망(亡)할 것이고,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또한 이와 같이 새로 맞이하는 천운(天運)에는 먹지 않고도 사는 세상이라고 격암(格菴) 선생이 밝혔고, 덧붙여 해월(海月) 선생은 누가 이 의미를 깨달아서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하였던 것이다.“
라고 하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전생(前生)에 최수운(崔水雲) 선생으로, 강증산(姜甑山) 상제로, 박태선(朴泰善) 하나님으로 세 번이나 오셨다고 하였는데, 그것을 어떻게 증명(證明)할 수가 있습니까?
세 분 중에 어느 한 분이라도 최수운(崔水雲), 강증산(姜甑山), 박태선(朴泰善) 하나님으로 올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까?” 라고 질문하였다.
명산 선생님(明 선생님)께서 잠시 침묵하셨다가 이윽고 다시 설명을 시작하셨다.
“박태선(朴泰善) 하나님께서 재세시(在世時)에, 주위의 측근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전(前)에 강(姜氏)씨와 최(崔氏)씨로 왔었다고 말하니, 주위 사람들은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한 한 번은 여러 측근 인사들과 함께 경주(慶州)에 들린 적이 있는데, 박태선(朴泰善) 하나님께서는 전(前)에도 이 곳에 있은 적이 있었다면서 감회(感懷)에 젖었다고 전하는 것이다.
또한 증산(甑山) 상제께서는 대순전경(大巡典經) 제3장 제자(弟子)의 입도(入道)와 교훈(敎訓) 22절에,
『上帝 京石과 公又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通精神이 나오리라. 나의 일은 비록 父母 兄弟 妻子라도 모르는 일이니라.
나는 西天西域大法國 天階塔에 내려 天下를 大巡하는 몸이라.
東學呪에 侍天主造化定이라 하였으니 내 일을 이름이라. 내가 天地를 開闢하고 造化政府를 열어 人間과 天地의 混亂을 바로 잡으려 하여 四界를 두루 살피다가 너희 東土에 그쳐 殘暴에 빠진 民衆을 먼저 건지려 함이니, 나를 믿는 者는 無窮한 幸福을 얻어 仙境의 樂을 누리리니 이것이 참 東學이라.
弓乙歌에 朝鮮江山이 名山이라. 道通君子 다시 난다 하였으니 또한 나의 일을 이름이라.
東學信者間에 大先生이 更生하리라고 傳하나 이는 代先生이 다시 나리라는 말이니, 내가 곧 代先生이니라.’
또 가라사대 ‘예로부터 鷄龍山의 鄭氏王國과 伽耶山의 趙氏王國과 七山의 范氏王國을 일러오나 이 뒤로는 모든 말이 헛된 所聞에 그치리라. 그러므로 鄭氏를 찾아 運數를 求하려 하지 말지니라’ 하시고 本名 車輪洪을 京石으로 改名하여 부르게 하시니라』
동학신자간(東學信者間)에 대선생(大先生)이 갱생(更生)하리라고 전(傳)하여 왔는데, 그 말인즉 최수운(崔水雲) 선생이 다시 오리라는 말인데, 죽은 사람이 생전의 모습으로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뜻으로, 그 최수운(崔水雲) 선생을 대신(代身)하여 증산(甑山) 상제께서 오게 되었다고 밝히신 것이다.
그 시대 상황(狀況)에서는 그렇게 밖에는 밝힐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순전경(大巡典經) 제6장 법언(法言) 136절을 보면,
『수운가사(水雲歌詞)에 새 기운이 갈머 있으니, 말은 소진(蘇秦) 장의(張儀)의 구변(口辯)이 있고 글은 이백(李白) 두보(杜甫)의 문장이 있고, 알음은 소강절(邵康節)의 지식(知識)이 들어 있으니 다 나의 비결(秘訣)이니라』
라고 하여 최수운(崔水雲) 선생의 동학가사(東學歌詞)는, 모두 다 증산(甑山) 상제의 비결(秘訣)이라고 하신 것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숨겨 놓은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그만하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니 충분히 납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수운(崔水雲) 선생과 증산(甑山) 상제와 박태선(朴泰善) 하나님보다
몇 백년 앞서 태어나신 해월(海月) 선생은 어떤 말씀을 남기셨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무슨 말씀을 남기신 것이 있습니까?” 라고 질문하자
【※】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2권 1장 2절의 시를 보면,
영회시 김달원(詠懷示 金達遠)
천침미괄복맹우(千針未刮伏盲憂) 백련난위요지유(百鍊難爲繞指柔)
출해안지종고락(出海安知鍾鼓樂) 함로오입망라수(啣蘆誤入網羅收)
참무직도공삼출(慚無直道空三黜) 행유여생가사휴(幸有餘生可四休)
가슴에 품은 것을 김달원에게 보이면서
깊이 잠복하여 있는 그 몽매(盲)함을 근심하여, 천 개의 침(千針)을 놓아도 도려낼 수가 없고,
백 번을 단련(鍛鍊)해도, 굽어진 마음을 부드럽게(指柔) 하기가 어렵구나.
술잔(鍾)이 바다에서 나오니, 기쁘게도 술잔이 진동(鍾鼓)하는 것을 알게 되고
(오리가) 갈대잎을 물고 (화살을 피하려고 한 것처럼) 잘못 들어감을 깨닫고, 모두 거두어 들이게 되는구나.
부끄럽게도 하늘이 세(三)번 보냈으니, 도(道)를 바르게 펼 수가 없었지만,
다행히도 가히 네(四) 번째는, 기쁘게 여생(餘生)을 쉴 수가 있구나.
이 시(詩)를 보면,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잠복하여 있는 무지(無知)함과 몽매(夢寐)함을 걱정하여 천(千) 개의 침을 놓아도 그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는 어리석음을 긁어 도려내어 치유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또한 백(百) 번을 불 속에 넣어 단련(鍛鍊)해도, 그 굽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순하게 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바다에서 술잔이 나오고 이제 곧 술잔이 진동하니 즐겁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오리가 갈대잎을 물고 화살을 피하려고 하는 것처럼(회남자에 나오는 이야기), 잘못 들어가서 일을 벌려 놓았지만, 때가 아닌 것을 알고는 모든 것을 정리(整理)하여 거두어 들인다고 하였다.
부끄럽게도 하늘이 세 번씩이나 내어 보내어서 사도(邪道)를 바로잡아 정도(正道)를 펴게 하려고 하였지만, 결국은 바로잡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네 번째는 바다에서 술잔 즉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서 사도(邪道)를 물리치고 바로잡아 정도(正道)를 세우니, 여생(餘生)은 가히 기쁘게 쉬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 시(詩)는 해월(海月) 선생이, 하나님의 깊은 사정을 알고 글로써 밝힌 것이다.
하나님이 세 번씩이나 세상에 오셔서 바른 도(道)를 펴려고 애썼지만, 세상 사람들의 몽매(夢寐)한 마음을 치유할 수가 없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네 번째는 하나님의 아들인 술잔이 바다에서 나오니, 이제는 마음속으로 즐거웁게 하나님은 편히 쉴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글 내용으로 보아서 하나님께서 모든 어려운 상황을 홀로 떠 맡아 준비를 끝내시고는, 그 마지막 끝맺음을 술잔인 아들에게 맡기신 것이다.
또한 종(鍾)자는 술잔, 쇠북인 종, 거문고를 뜻한다.
이 종(鍾)자는 쇠 금(金)자와 무거울 중(重)자의 합자(合字)로 그 뜻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이 중(重)자는 또한 아이 동(童)자로도 읽는 것이다.
즉 금신(金神)인 아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종(鍾, 鐘)자 또한 금신(金神)인 아이를 뜻하는 글자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해월유록p657~684말씀】
【上帝之子斗牛星 西洋結寃離去后 登高望遠察世間 二十世後今時當 東方出現結寃解】
【만사이황발(萬事已黃髮) 잔생수백구(殘生隨白鷗)】
♧청림도사(靑林道士) 甲乙人 明(黃) 선생님♧
해월종택(海月軒): 봉황이 알을 품는 형국으로 풍수학상 강릉 이남 최고의 명당(明堂)
경북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 433 (해월헌길70번지)
경기민요 - 노랫가락,청춘가,태평가[박정미,유현지,성슬기,박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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