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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히브리어 사본에서 일반적으로 욥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사용되는데, 욥이 주인공이거나 저자는 아니더라도 그렇다. 불가타 라틴어 판본에서는 "욥기"라고 불리고; 시리아어 판본에서는 욥기라고 불리며; 아랍어판에서는 정의로운 욥기로 쓰인다. 일부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잠언과 솔로몬의 노래 사이에 위치하지만; 탈무드 학자들(a)에 따르면 다윗 시편과 솔로몬 잠언 사이에 위치해야 한다고 한다. 일부는 욥 같은 인물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이 책이 실제 역사가 아니거나 사실을 담은 것이 아니라 허구의 이름으로 쓰여졌고 포물선적이며, 고난 속에서 인내의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고안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일부 유대인 작가들은 (b) 욥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 책이 비유, 변론, 우화라고 주장한다; 마이모니데스 자신도 이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 의견은 아벤 에즈라, 페리솔 등에 의해 정당하게 거부된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노아와 다니엘 같은 인물들이 있었다는 것만큼 확실하다. 예언자 에스겔 14:14와 사도 야고보는 그를 잘 알려진 인물로 말하며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가 편지를 쓴 유대인들은 그와 그의 친구들이 살았던 나라들의 이름, 가족에 대한 기록, 고난 전후의 실질적 이야기를 통해 그와 그의 인내심을 많이 들었다. 학자들은 그의 이름의 의미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예롬(D)에 따르면, 그것은 마법사를 의미하며 'ob'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일부 유대인 저자들은 그를 발람과 예드로와 함께 바라오의 이스라엘 백성에 맞서 고통받았던 조언자로 본다: 같은 고대 교부들은 '슬픔'과 '울부짖음'이라는 단어를 번역한다; 다른 이들, 예를 들어 스판하임(f)은 '사랑' 또는 '욕망'에서 유래하여 욕망이나 기쁨을 의미하며, 데시데리우스나 에라스무스와도 동일하다; 따라서 욥은 수이다스(g)에 의해 '바람직함을 초과하다'라고 불리지만, 힐레러스(h)는 같은 어근에서 유래하여 정반대인 '욕망 없는'을 의미한다; 또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이를 '욕망'과 '비'의 합성어로 간주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작가들은 이를 '원한을 맺는다'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인간의 증오와 적대에 노출된 자, 또는 악인을 증오하고 적대하는 자를 의미한다; 또는 슈미트(i)가 해석하듯, 하나님을 위해 열성적이며, 악인과 악한 자에 대한 증오를 보이는 사람을 의미한다. 욥이 누구였는지는 말하기 쉽지 않다; 요밥은 여기서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창세기 36:33). 아리스테아스(k)는 그가 에 사우 자신과 그의 아내 베사레의 아들이며, 처음에는 요밤이라 불렸다고 말한다; 또한 욥이 이사갈의 아들이라고 하기도 다르며, 그는 가투라를 통해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었다; 오히려 욥기 54장에서 나호르의 장남 우즈에게서 태어났으며, 욥기 54장이 지어진 땅의 이름을 부즈가 엘리후가 속한 땅에 붙인 것처럼, 우즈의 또 다른 형제인 케셋이 욥과 가까웠던 칼데아인들에게 이름을 붙인 것처럼, 같은 명칭으로 유즈에서 나왔다. 욥기 54장이 언제 편집되었는지도 합의되지 않았다; 마이모니데스(l)는 그들의 저자들에 대해 어떤 이들은 그를 족장들의 시대, 어떤 이들은 모세 시대, 또 다른 이들은 다윗 시대로 보고, 또 다른 이들은그가 바빌론의 동방박사들 중 하나였다고 덧붙였다; 또 어떤 이들은 그가 그곳의 포로에서 나와 티베리아스에 학교를 가졌다고 덧붙였는데, 탈무드 학자들은 그에 대해 매우 다른 기록을 전한다: 어떤 이들은 그가 사사기 시대에 있었다고 말하고; 다른 이들은 시바 여왕 시대에 있었다고 하며; 또 다른 이들은 아하수엘 시대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더 일반적인 견해는, 그리고 실제로 더 그럴듯한 견해는, 그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로 내려갔을 때 태어났고, 그들이 그곳에서 내려왔을 때는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n): 요컨대, 그들은 그를 아브라함부터 바빌론 포로 시절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거의 모든 시대에 그를 포함시킨다; 그리고 루터(o)조차도 그가 솔로몬 시대에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나머지와 다를 바 없는 이유가 있다: 이 책에는 율법이 주어지기 전, 적어도 모세(p) 이전에 살았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 책에는 율법에 대한 언급이나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더 오래된 것들, 예를 들어 일반 홍수, 소돔의 불태움, 그리고 제사장만이 바쳐야 하는 제물에 관한 율법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욥은 가족의 우두머리로서 제물을 바쳤고, 그의 세 친구도 마찬가지였다(욥기 1:5). 그의 수명은 모세 이전의 시대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데, 그의 시대에는 인간의 나이가 70세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욥은 복귀 후 140년을 살았으므로 200년 이상 살아야 한다. 여기에 이 책은 우상 숭배가 세상에 존재하기 전, 즉 해와 달 숭배가 있기 전, 욥기 31장 25절과 신성한 영감이 담긴 저작이 있기 전부터 쓰인 것으로 보인다. 욥과 그의 친구들 사이의 논쟁 전체에는 어떤 저작에도 호소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호소는 나이와 지혜를 가진 사람들, 그리고 옛 시대의 전통, 욥기 5장 1절에 의존한다. 오쥬 박사(q)에 따르면 욥기 54장은 바벨 산해 후 350년경, 약 2100년경이다. 이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매우 논란이 있다; 어떤 이들은 이 책을 예언자 이사야의 작품으로 돌리고; 또 다른 이들은 솔로몬의 작품으로, 루터(r)로서의 것으로; 또 다른 이두마이안인이었던 예언자 중 한 명에게서 쓴 것으로 보고; 그러나 대부분의 것은 모세에게서 온 것으로, 유대인들은 그가 자신의 책인 발람과 욥기 부분을 썼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그가 미디안에 있을 때 이 책을 썼으며, 당시 이집트에서 고통받던 히브리인들의 위로와 격려를 위해, 그리고 이 선한 사람이 구원받은 것처럼 고난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희망을 위해 썼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이 작품에 많은 아랍어 단어가 사용된 이유라고 추정된다; 미디안어는 아라비아에 있었고, 모세가 몇 년간 거주하면서 그들의 언어를 자신의 언어와 섞었다. 일부는 그가 이 책을 아랍어 또는 시리아어로 발견한 그 부분에서 접했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히브리어(t)로 번역했다고 본다; 또 다른 이들은 욥의 친구들, 특히 욥기 32:15에서 결론 내린 엘리호가 썼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가능성 높은 것은 욥기 자신이 쓴 것이거나 적어도 그가 쓴 일기나 '적대자', 혹은 친구들의 기록, 혹은 둘 다에서 편집되었으며, 현재 쓰인 언어로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누구가 썼든 간에 신성한 권위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는 욥기 5장 13절의 높은 문체, 주제, 성서의 다른 부분과의 일치, 특히 욥기 5장 13절의 구절 인용에서 드러난다;그는 사도 바울, 고린도전서 3장 19절, 욥기 5장 17절, 히브리서 12장 5절과 비교하라. 이 계획의 목적은 마이모니데스가 관찰한 것처럼 섭리의 교리를 일반적으로 주장하고 설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특히 선한 사람들이 고통받더라도 조만간 고난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인내하며 견디고 속삭이지 않으며; 그들 때문에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고, 그의 길과 행위가 탐구할 수 없으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문제를 설명하지 않으면서 모든 행위에 대해 주권적이고 지혜롭고 정의로운 하나님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자신의 백성과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사건이 보여주듯이 그에게 이익이 된다. 이 책은 욥의 삶에 관한 역사로서, 그의 번영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으며; 그의 고난과 그것이 어떻게 그에게 닥쳤는지에 대해; 친구들이 그를 방문한 내용과 그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 그리고 이전보다 더 큰 부를 되찾은 이야기; 또는 여러 부분으로 구성된 극이나 대화로, 하나님, 사탄, 욥, 그의 아내, 그리고 친구들로 여러 화자들이 소개되는 이야기; 또는 욥의 세 친구가 상대방으로서 자신이 응답자, 엘리후가 중재자, 하나님이 심판자로서 쟁점을 결론짓고 결정하는 논쟁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에는 신성한 존재와 그의 본성, 지혜, 능력, 정의, 선함, 주권의 완전함에 관한 많은 유용한 내용이 담겨 있다; 창조와 섭리의 행위에 관한; 원죄와 인류의 부패에 관해;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과 인간이 행해야 할 선한 행위에 관한; 그리고 죽은 자의 부활과 영생에 관한 내용이다. 어떤 이들은 욥이 고난과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들 아래에서 인내하고 구원한 점에서; 행복과 번영의 높은 높이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그리고 친구들을 위한 중재 면에서. 그는 많은 면에서 본받을 만하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비난받아야 하고 따르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큰 기쁨과 유익함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장에서는 책 전체의 주인공인 욥이 그의 고향, 이름, 종교적 성격, 가족과 본질로 묘사됩니다. 욥기 1:1에서는 자녀들이 함께 잔치를 먹는 모습과 그 기간 동안 욥의 행동에 관한 특별한 관계가 제시되는데, 욥기 1:4는 하나님과 사바로 그에 관한 담론을 나누었는데, 그 문제는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욥을 외적 일에 대해 괴롭혔다는 점입니다. 욥기 1:6은 그의 여러 상실, 즉 사베인, 칼데아인, 하늘에서 내려온 불, 그리고 격풍에 휩싸여 집이 무너진 아들딸들의 상실을 기록합니다. 욥기 1:13, 그리고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욥이 온화한 행동을 보이며 장을 마무리합니다. 욥기 1:20.
우즈 땅에 욥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완전하고 올곧았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하셨다.
우즈 땅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욥이었다,.... 그의 이름의 의미에 대해서는 책 서문을 참조하라. 그가 거한 곳은 창세기 10:23에 나오는 셈의 후손 우즈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형제인 나호르의 아들 우즈에서 유래했다. 창세기 22:21, 단, 에돔 땅의 세이르 자손 우즈에서 유래했다고 생각할 수 없다면; 우리가 우즈 땅과 에돔, 혹은 우즈 땅, 혹은 그 경계에 있는 에돔을 읽었기 때문에, 애가서 타르굼은 그곳을 아르메니아 땅이라고 부르며, 오히려 아라비아라고 부른다; 아마도 아랍 욥 54편 중 하나였으며, 페트라이아 또는 데세르타 중 하나였으며,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칠십인역과 불가타 라틴어 번역본이 읽은 대로 우즈 또는 아우스티스가 그 일부였으며; 프톨레마이오스의 『에시타에』(u)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가나안 땅 근처에 있다고 전해지는데, 아라비아에는 사베스 족 펠릭스가 살았기 때문이다; 이 땅이 사베스와 칼데아인, 그리고 데마니 엘리바스가 왔던 에돔 땅과 가까웠음이 확실하다. 이곳은 아마도 악하고 우상 숭배의 장소였으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신 사례였다. 이는 우즈 땅에서 욥을 부르는 것이, 칼데아인의 아브라함을 부르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선한 사람에게는 로트가 소돔에서 사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그에게는 영광이었고,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으로 여기며 이곳에서 신앙심을 지키고 계속 그렇게 지냈다. 요한계시록 2장 13절을 참고하면, 사도 베드로가 관찰한 "하나님은 사람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모든 민족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를 행하는 자는 그와 함께 받아들여진다"는 말을 초기 증거로 보여준다; 즉, 그리스도를 통해, 사도행전 10장 34절. 욥은 이름과 나라, 그리고 성별으로 묘사된 대로 "사람"이다; 이것은 그의 성별을 구별하거나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표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위대함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그는 매우 대단하고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는 부와 부를 가진 사람일 뿐만 아니라 큰 권력과 권력을 지녔으며, 이사야 2:9에서 빈곤한 사람과 위대한 사람이 구분된다. 욥기 29:7에서 그가 자신에 대해 설명한 것을 보면, 그는 모든 계급과 계급의 사람들로부터 큰 존경과 존경을 받았으며, 은혜도 큰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사람은 완전하셨다; 노아, 아브라함, 야곱과 같은 의미에서; 거룩함에 관해서는 아니며, 그리스도 안에서 고려하면, 그분이 백성에게 거룩하게 되셨을 때가 아니라; 그 진리성, 진실성, 진정성에 관해서도 그렇다; 또는 비교적 의미에서, 한때 그가 어떤 존재였는지와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 그러나 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며, 이 생에서 명확하지 않은 죄의 존재도, 생각과 말, 행동으로서의 행위로부터도 아니며, 욥기 9장 20절 정도를 보면 은혜 안에서 완전하다; 모든 은혜는 재생 중에 즉시 본질적으로 심어지지만, 그것은 점차 열리고 증가한다; 부분에는 완전함이 있지만 정도는 아니며; 완전한 새로운 인간이 있으나, 그것은 그리스도의 충만함의 위상에 도달하지 못했다; 모든 은혜는 있으나, 한 가지 완전한 것도 없으며, 지식도, 믿음도, 희망도, 사랑도, 인내도,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칭의에 관해서는 모든 선한 사람이 완전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모든 죄에서 완전히 구속하셨고; 그들의 방과 대신에서 율법을 완전히 완성하셨으며; 모든 죄를 완전히 속죄하시고, 그들에게 완전한 사면을 주시며, 그들을 모두로부터 의롭게 하는 의를 가져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죄의 죄와 그로 인한 정죄에서 자유로워지고, 하나님 앞에서 비난받지 않고, 비난할 수 없으며, 결백 없이, 모두 아름답고 완벽하게 아름답습니다; 이것이 욥의 사례였습니다:
그리고 곧은;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드러나고, 그에게 주어졌으며, 믿음으로 걸어갔다(욥기 33:23을 참조), 더 나아가 욥기는 마음이 올곧았고, 그 안에 올바른 영이 새로워졌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 출신은 아니었지만, 영적으로는 진정 이스라엘 사람이었으며, 그 안에는 교활함이 없었고, 은혜의 진리와 문제의 근원이 그에게 있었다. 욥기 19:28, 그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걷고 대화할 때 올곧았다; 그들과 모든 관계에서, 그가 서 있는 모든 관계에서, 모든 직책과 성품에서 그들과의 모든 관계와 관심사에서 올곧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믿고 떨리는 악마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 땅에 있을 때 육체적인 사람으로서 그를 두려워하며 숨지 않았다; 또한 두려움이나 헌신이 겉으로만 드러나고 인간의 교훈에 의해 배워지는 위선자로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들이 부모를 애정 어린 마음으로 경외하듯이: 욥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된 효심과 경건한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하나님의 선함과 그 감각을 통해 격려되고 증폭되었다; 그것은 그에 대한 믿음과 관심, 거룩한 대담함과 영적 기쁨, 그리고 진정한 겸손으로 따라다녔으며; 공개적이든 사적이든 내적이든 종교적 예배 전체를 이해하였다:
악을 멀리하거나 '그것에서 떠났다'(x);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그것을 증오하고 혐오하며 분노하는 마음으로 삼았다(잠언 8:13)는 모든 선한 사람처럼 그것을 하나님의 본성과 뜻에 반하며, 그 자체로 혐오스럽고, 그 결과와 결과가 나쁘다고 미워했다; 그는 그 행위의 더 끔찍한 행위뿐 아니라 모든 외관에서 벗어났으며, 그것에 이르는 모든 것을 철저히 피하고 피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경외와 양립하지 않는 죄된 삶과 대화에 빠지지 않았다.
욥기의 주제는 인간이 하느님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전부는 이해할 수 없고, 네가 선하더라도 고통을 받을 수 있지만, 분명 거기에는 하느님의 선한 뜻이 있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하느님의 구원을 기다리라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서, 욥이 겪었던 인간의 생각으로 보기에는 불합리한 상황도 어떤 선한 뜻이 숨어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시작해 믿음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dhleepaul
그러면 나의 옳았음을 아시게 될 것이고, 나는 나대로 승소할 수 있을 것일세. 그런데 앞으로 가보아도 계시지 않고, 뒤를 돌아보아도 보이지 않는구나. 왼쪽으로 가서 찾아도 눈에 뜨이지 아니하고, 오른쪽으로 눈을 돌려도 보이지 않는구나. 그런데도 그는 나의 걸음을 낱낱이 아시다니. 털고 또 털어도 나는 순금처럼 깨끗하리라.욥기 23장 7~10절
1. 서론
구약성서에서 ‘지혜서’라 통칭되는 책들은 지혜문학의 관점에서 서술된 책들을 말하며, 보통 욥기, 잠언, 전도서를 포함한다. 이들 책의 핵심 키워드는 ‘지혜’이다. 지혜에 대해 잠언 1장 7절은 “여호와를 경 외하는 것이 지혜(hm'k.x' , h .okhmāh, 호크마)의 근본”이라 말하며, 2장 3절 은 “지식을 불러 구하는 명철(hn"yBi , bīnāh, 비나후)”을, 3장 19절은 “여호 와께서 지혜(hn"Wbt. , tĕbûnāh, 테부나)로 땅을 세우시고, 명철로 하늘을 견 고히 하셨으며”라고 한다. 전도서는 인생이 허무하다고 선언하면서도, 그 결론에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 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하고 말한 다. 욥기 또한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욥 28:28)라고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인간의 본 분이며 곧 지혜라는 점을 강조한다. 욥기 28장 12절에서도 “지혜는 어 89 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고”(욥 28:12)라는 구절에서 지혜 (hn"yBi)가 등장한다. ‘지혜’는 ‘호크마, 비나후, 테부나’ 등 다양한 어휘로 표현되며,1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 t[;D' tyviare hw"hy> ta;r>yI”(잠 1:7)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지혜 문학은 그 근원과 찬양 대상이 여호와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다시 말해, 지혜문학에서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며, 아 울러 ‘여호와 경외’에 대한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의 응답이 따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잠 10:27; 14:27, 전 8:12-13; 12:13-14). 그러므로 지혜 문학의 결론은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지혜롭고 선한 자에게는 성공 과 보상이, 악하고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죄와 벌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욥기는 이러한 전통적 지혜에 대한 공식을 적용하기 어렵 다. 욥기는 “과연 하나님은 공의로운가? 하나님은 자연의 모든 일에 공 의의 원칙으로 다스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전통적 지혜문 학과는 다르다. 이는 욥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 서 떠난 자”(욥 1:1)임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통적인 지혜공식과 충돌하며, 신학적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지점에 이르게 된다. 특히 욥은 정직하고 의로운 자로서 하나님을 경외했음에 도 고난을 겪는 상황은 성서를 읽는 독자(신자)들은 이 상황을 쉽게 이 해할 수 없다. 욥 자신도 고통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확신 속에서, 하나 님과 재판을 원하며 그 이유를 묻는다(욥 9:32-33). 이러한 서술 구조는 욥기 연구에 있어 교리적 해석의 한계를 가지게 되는 어려운 구조이다. 1 90 참조. 호크마(hokhmah, hm'k.x') ─ ‘지혜’로 나오는 구절들: 욥기 4:21, 6:13, 11:6, 12:2, 12:12, 12:13, 13:5,15:8, 26:3, 28:12, 28:18, 28:20, 32:7, 32:9, 33:33, 34:34, 38:36. 비나후(binah, hn"yBi) ─ ‘분별, 명철’로 나오는 구절들: 욥기 12:24, 17:4, 20:3, 26:12, 28:12, 28:20, 32:8, 34:10, 34:16, 36:5, 38:36. 테부나(tevunah, hn"Wbt.) ─ ‘지각, 이해력’으로 나오는 구절들: 욥기 12:13, 26:12, 32:11. 「구약논단」 제31권 3호(통권 97집) 본 연구는 그동안의 지혜문학 연구가 문학 비평이나 히브리 전통 안에서만 해석하려는 한계를 지적한다. 히브리 전통식 접근 방법은 그 신학적 해석을 히브리 전통이라는 단순한 틀(frame)에 가두어 놓았기 때 문이라 본다. 구약성서의 지혜문학이 서술되던 시기인 기원전 4세기에 서 1세기 사이에 헬레니즘 문화는 유대 사회에 깊이 혼합된 시기였음 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정확하게 표현을 하면 당시 팔레스타인 유대 지역 유대인은 헬레니즘 문화의 수용 속에서 그들의 신앙, 예배, 율법을 지킨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적 상황을 무시한 채 히브리 전통만으로 욥 기를 해석하려는 시도는 텍스트 전체 흐름에 대한 이해를 오히려 방해 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텍스트 자체를 자세히 분석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혜의 전통에 있는 전통적 신정론(theodicy)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 역사적 정 황(Historical contexts)을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욥과 세 친구의 대화가 소 크라테스의 문답법(질문과 응답, 반론과 재반론)과 같은 그리스식 사유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혼란(Aporia, ἀπορία, 아포리아)의 해결 방식을 찾아볼 수 있었다. 즉,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 은 저자가 자신이 처한 시대의 급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사유의 반응을 욥기에 담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욥기의 문학 양식은 헬레니즘 문학 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시대적 현실에 대한 인식이 반영된 서사로 읽을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편향된 해석에서 벗어나 보다 포괄적이고 상 호관계성을 찾을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헬레니즘 문학 작품으로서 욥기의 주인공 욥과 세 친구, 그리고 엘리후라는 인물 설정의 의도, 나아가 욥기의 저자가 누구인지 도 파악하는 데에도 주목한다. 욥은 단순히 문학적으로 설정된 인물이 아니며 ‘상징적이며 환유적(metonymic) 관계로서 규명하려고 한다. 본 연구는 욥기의 난해함을 ‘이데올로기 해체비평’을 통해 본문의 91 욥기는 왜 쓰였는가? _ 김영호 ‘시대적 상황’을 유추하고, 기존의 헤브라이즘적 사유를 해체하고 내재 한 특정 이데올로기적 관계, 그 상관관계를 찾아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의 시대적, 역사적, 문학적 배경에 대한 선(線)이 해 위에서 해석할 수 있다., 욥이라는 인물을 통해 전하고자 한 저자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가에 중점을 두고, 욥기의 전체 문장과 서사 구조 를 시대적 상황, 거시적 환경 문화, 특정 사건의 관계 속에서 살펴본다. 저자가 드러내고자 했던 의도(이데올로기)를 명확하게 파악하면 기존의 욥기 해석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해석의 길이 열릴 수 있다.
2. 연구사
구약성서의 지혜서와 관련하여 안근조는 지혜서를 시기별로 구분 한다. 히브리 지혜 전승을 초기 헬레니즘 시대, 셀류코스 왕조의 지혜, 하스몬 왕조의 지혜, 초기 로마 시대의 지혜로 설명을 하였다. 그는 각 시대의 대표하는 지혜 문서로 전도서, 벤 시라-다니엘, 솔로몬의 지혜 서, 사해문서를 설명하였으나, 욥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의인화된 지혜 관념의 예로 잠언 8장, 욥기 28장, 시락서 24장이 서로 맥을 같이 한다고만 언급하였다.2 안근조가 욥기를 시대 구분 안에 포 함하지 않은 것은 아마 그 시기에 관한 판단을 유보한 것으로 보인다. 신약학자 김학철은 잠언, 욥기, 전도서와 신약의 야고보서에 흐르 는 지혜문학의 전통적 특징을 설명하면서도, 욥기에 대해서는 단순히 2 92 안근조, 「히브리 지혜 전승의 변천과 기독교의 기원」 (서울: 동연, 2016), 163. 잠언 8장은 “지혜는 창조 이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존재”한다고 말하며, 욥기 28장 “지혜 는 하나님만 아시며, 그분께 속한 것”이라 한다. 시락서 24장은 “지혜는 하나님의 명령으 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활동한다.”라고 진술한다. 이들 본문은 지혜의 의인 화 부분이 강하게 나타나는 대표적 구절이지만, 욥기는 상대적으로 그 의인화가 약하다. 「구약논단」 제31권 3호(통권 97집) 산문 구조(1~2장, 42장 7-17절)와 운문 구조(3-42장 6절)로 편집 형식을 나누는 수준에 그친다. 그의 주된 관심은 편집의 흐름보다도, 최종 형태 로서 욥기에 드러나는 신앙적 지혜, 곧 욥이 인식한 하나님의 지혜로움 에 있다.3 하경택은 욥기의 해석이 어렵다는 전제 아래, 다양한 비평 방법에 따른 해석들을 소개한다. 본문 비평, 문헌 비평을 통해 욥기와 수메르, 바벨론 문헌과 유사성을 제시하고, 편집 비평을 통해 욥기의 편집 층이 단일한지에 대한 논의를 다룬다. 문학 양식 측면에서 욥기를 교훈적, 시 편적, 사법적 범주로 분류하며, 일반적인 신학 문제를 조망한다. 공시적 문학 비평과 통시적 역사 비평을 통해 “욥-문제”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소개하지만, 결국 기존의 해석 논쟁을 설명하고 있다.4 그의 다 른 논문에서는 욥기를 ‘패러다임 충동’의 시각에서 해석하며, 욥의 고난 속에서 ‘창조 질서’와 ‘공의’가 드러나지 않음을 지적한다. 욥의 친구들 이 말하는 “하나님에게는 공의가 있다”라는 주장을 하나의 패러다임으 로 간주하고,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는 변증법 적 패러다임으로 결론짓는다. 그러나 이 역시 저자의 의도보다는 독자 의 신앙적 시각에서 바라본 문학 비평의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한 것이 다.5 김재구는 욥기 1-3장이 욥기 전체를 해석하는 열쇠로 보고, 1장은 창세기 아브라함 이야기에서 3장은 예레미야의 탄식(렘 20:14-18)과 연 관시키며, 나머지 4-42장을 이끈다고 주장한다. 그는 욥기를 ‘성서의 다른 부분’과의 대화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장은 창세기 3 4 5 김학철, 「허무감에 압도될 때, 지혜문학 」 (파주: 21세기북스, 2024), 163-167. 하경택, “욥과 욥기의 문제: 욥기의 연구사에 관한 소고”, 「한국기독교신학논총」 31(2003), 47-73. 하경택, “패러다임 충돌 현상으로서 욥기의 논쟁 연구”, 「종교연구」 74 (2014), 343-366. 93 욥기는 왜 쓰였는가? _ 김영호 와 연결하여, 3장은 예레미야서와 연관해야 욥기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6 이는 욥기가 난해하므로 텍스트 자체만으로는 해 석이 어렵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임의적이며 욥 기의 자율성과 독자성을 간과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트로이 W. 마틴(Troy W. Martin)은 욥기 42장 2-6절에 대해 새롭게 해석한다. 2-4절에서 “내가 묻겠사오니 주께서 내게 알게 하소서”라는 욥의 발언은, 욥이 검사(prosecutor)의 입장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상응 한 6절의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노라”라는 표현은, 오히려 하나님 이 욥에 대해 부당하게 대우했음을 인정하는 피고의 입장이라고 해석 한다. 이를 통해, 신의 전능함에도 책임이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다.7 이 논문 역시 문학적 비평을 통해 새로운 독자 비평 시각의 해석임 을 보여주나 역사적 욥기 저자의 의도나 배경을 도외시하고 있다. 이처럼 욥기 연구는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문학 비평적 접근을 통 해 신앙적 의도를 찾으려는 도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입장들 은 텍스트 자체가 주는 신학적 함의에만 집중하며, 저자의 의도나 저작 연대는 비본질적인 부분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 근은 오히려 시대적 상황, 저작 동기가 되는 특수한 상황의 변화를 고려 하지 않음으로 일차적으로 저자의 집필 의도는 배제되는 문제점을 가 지게 되는 것이다. 욥기가 전통적인 구약 내러티브(예: 하나님 경외, 권선 징악, 인과응보)와 연결하여 복잡하고 다양하게 해석을 하지만 결국, 욥 기에 대한 주관적 문학 비평이며 욥기의 내용이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지혜’에 대한 도식에 쉽게 들어맞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극복한 것은 아 니다. 6 7 94 김재구, “욥기 전체를 푸는 열쇠”, 「구약논단」 24 (2007/6), 92-105. Troy W. Martin, “Concluding the Book of Job and YHWH: Reading Job from the End to the Beginning”,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37 (2018), 299-318. 「구약논단」 제31권 3호(통권 97집) 본 연구는 이러한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 신학이 신앙의 도구로만 욥기를 해석하려는 시각을 넘어서고자 한다. 저자의 집필 의도를 일차 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욥기 해석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거시적이고 입체적 관점에서 그 의미를 찾으려 한다. 3. 욥기의 배경-성전의 비극 욥기를 해석하는 다양한 신학적 시도(문학 비평)는 욥기의 복합 문 체 구성(산문+대화체+시문)과 체계적인 편집 구조에 주목하며, 바빌론 포로기 이후의 후기 편집자에 의해 구성된 결과물로 보는 시각이 대부 분이다.8 일부의 학자들은 이런 근거를 바탕으로 욥기를 기원전 6-5세 기로 보고 있다.9 그러나 그 시기는 성전의 건설(기원전 515년) 이후 성전 을 둘러싼 특별한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 전환’의 작품을 만들 이유를 없다고 본다. 본 연구는 기원전 3세기로 추정되는 최초 칠십인 역10에서도 욥기 는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데이비스(Philip R. Davies)는 성문 서(케투빔), 시편, 욥기, 전도서 등이 기원후 1세기까지 점진적으로 정경 8 9 10 James L. Crenshaw, Old Testament Wisdom: An Introduction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10), 97-127. Crenshaw는 기원전 5세기경에 저작되었음을 구체적으 로 명시하지 않지만, 포로기 이후 헬레니즘 철학과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 John E. Hartley, The Book of Job (Grand Rapids: Eerdmans, 1988), 21-23; Norman C. Habel, The Book of Job: A Commentary (Philadelphia: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85), 25–28; Samuel E. Balentine, Job (Macon, GA: Smyth & Helwys, 2006), 10-14. 참조. 기원전 3세기 중반, 이집트 프톨레미 2세 필라델포스(Ptolemy II Philadelphus, 재 위 기원전 285-246)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위해 율법(토라)의 번역을 요청했고, 이 에 예루살렘에서 72명의 학자가 파견되어 히브리어 토라를 헬라어로 번역했다는 내용 이 유대 전통 문헌인 「아리스테아스의 편지」(Letter of Aristeas)에 기록. 95 욥기는 왜 쓰였는가? _ 김영호 화 되었다고 주장에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11 또한, 욥기 본문에 나타나 는 헬레니즘 문학의 표현 양식의 특징과 저자의 성찰적 인식 전환의 계 기로써 ‘성전 모욕 사건’(기원전 167년)을 논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면, 욥기의 저작 시점을 ‘성전 모욕 사건’ 이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욥기의 전체 구성 형식을 보면, 시가 부분(3-41장)은 산문이 아닌 시 형태의 구성된 대화로서 욥과 친구 간의 문답식 구조(dialectical structure) 이다. 이는 플라톤의 대화편(dialogues)을 연상시킨다. 욥기의 질문은 존 재론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담고 있어, 소크라테스 이후 그리스 철학의 영향이 반영되었음을 시사한다. 엘리후의 연설(32-37)에서도 헬 레니즘 철학 사유의 요소가 종합적으로 인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 히 그 저작 시기를 추론할 수 있다. 1) 욥기 저작(편집) 시기와 의도 욥기의 저자가 처음으로 이 작품을 저작(편집)했을 시기를 추정하 기 위해서는, 본문의 내용을 통해 저자가 살던 시대의 정치, 경제 혹은 종교적 이변과의 관련성을 세밀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욥기에 나타 나는 특정한 문체와 사유는 히브리 전통 문학 양식이 아닌 헬레니즘 철 학과 문학의 영향을 반영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욥이라는 인물 에 갑작스럽게 가해진 고통 역시 역사적 정황 속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 11 96 Philip R. Davies, “The Jewish Scriptural Canon in Cultural Perspective”, in The Canon Debate: On the Origins and Formation of the Bible, eds. Lee Martin McDonald and James A. Sanders (Peabody, MA: Hendrickson Publishers, 2002), 50. 정경 목록 확정(Canon closure)이 하스몬 왕조(기원전 140-40년경) 시기에 이루어졌다 고 주장. Jack P. Lewis, “What Do We Mean by Jabneh?”, Journal of Bible and Religion, 32, no. 2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64), 125-132. 루이스는 “얍네 회의”(Jebneh/Yavneh, 기원후 90년경)가 성문서의 정경화를 결정했다는 전통적인 견해를 비판하며, 성문서의 정경화는 그 이후까지도 계속되었다고 주장. 「구약논단」 제31권 3호(통권 97집) 다. 팔레스타인 유대 지역의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에 놓이기 시작한 것 은 기원전 330년, 알렉산더 대왕이 다리우스 3세(Darius III)를 패배시키 고 수도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한 후, 그의 사후 디아도코이(Diadochoi, 알 렉산더의 후계자들)전쟁 이후이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기반을 둔 프톨레미 왕조와 시리아 안디옥 기반의 셀류코스 왕조가 나누어지면 그리스 왕조인 두 왕조 간에 다섯 차례 시리아 전쟁(기원전 274-195)이 있었다. 마침내 셀류코스 왕조의 안 티오코스 3세가 최종 승리를 하면서 유대 지역은 셀류코스 왕조의 통치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기원전 515년 건축)의 위상 은 변함이 없었다. 제2 성전은 페르시아 제국의 속지 통치 시절부터 금 융 기능을 수행했고, 헬레니즘 시대, 하스몬 왕조, 로마 제국 시기까지 재정 유통의 중심지였으며, 성전의 대제사장은 성전세를 거둘 수 있는 권한을 지속적으로 갖고 있었다.12 그러나 이 시기 사이에 성전에 대한 급격한 정치적, 경제적 위상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난 상황이 있었다. 셀류코스 왕조의 셀류코스 4세 (Seleucus IV Philopator, 재위 기원전 187-175년)가 헬리오도로스(‛Нλιόδωρος, Hēliódōros)를 예루살렘에 파견하여 성전 재정을 몰수하려 한 시점부터 이다.13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Onias III)는 뇌물 사건으로 기원전 173 년 구금되며, 동생 야손(Jason)과 메넬라우스(Menelaus)가 뇌물로 대제사 장직을 차지했다(마카베오 하 4:33-35). 이후 셀류코스 4세의 아들 안티 오코스 4세(Antiochus IV Epiphanes, 재위 기원전 175-164년)는 유대인 내부 의 권력 투쟁을 유도하며 대제사장직을 매도하게 만들고, 마침내 성전 12 13 라이너 캐슬러, 「고대 이스라엘 사회사」(민경구 옮김), (서울: CLC, 2020), 87. Gilles Gorre and Sylvie Honigman, “King, Taxes and High Priests: Comparing the Ptolemaic and Seleukid Policies”, in Egitto: Dai faraoni agli arabi ed. Solvio Curto (Pisa; FAbrizio Serra Editore, 2013), 107. ; 마카베오 하 3장 24-27절. 97 욥기는 왜 쓰였는가? _ 김영호 모욕 사건(기원전 167년)을 일으켰다. 그의 유대 반란의 조짐에 대해 강하게 탄압하였으며, 구체적 조치 는 다음과 같다. •유대 성전에서 부정한 동물인 돼지를 희생 제물로 바침 •유대 율법의 핵심 조항인 할례, 안식일, 음식법 금지 •율법서의 소각과 유포 금지 •성전 내부에 올림포스 신상을 설치하여 신성 모독 행위 자행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단순한 정치적 문제가 아닌, 유대 종교의 핵 심인 ‘야훼 경외’와 ‘인과응보’ 도식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행위였다.14 율법의 권위가 무너짐에 따라 성전을 지키는 경외감을 가진 순수 사제 집단이 이러한 현실에 대한 신학적 질문과 대답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 음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다.15 이후 마카베오 항쟁에 하시딤(~ydIysix; , h .asidim, 경건한 자들)16이 참여 한 것 역시 이러한 신학적 성찰에 의한 것이며, 이것은 욥기 저작 의도 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기원전 142년, 유대는 셀루코스 왕조를 무너뜨리고 ‘하스몬 왕조’(Hasmonean dynasty)가 세운다.17 14 15 16 17 Josephus, Antiquities of the Jews, Book XII.138-146, trans. William Whiston(Peabody, MA: Hendrickson, 1987): Martin Hengel, Judaism and Hellenism: Studies in Their Encounter in Palestine during the Early Hellenistic Period, Vol. 1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4), 266-270. 김영호, 「구약성서와 이데올로기」(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16-25. Shaye J. D. Cohen, From the Maccabees to the Mishnah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88), 45-50. 코헨은 하시딤이 정치적 목표를 가진 집단이 아니라 종교 중심의 열정을 가진 그룹으로 보고 있다. Lester L. Grabbe, A History of the Jews and Judaism in the Second Temple Period, Vol. 2: The Coming of the Greeks: The Early Hellenistic Period (335-175 BCE) (London: T&T Clark, 2008), 285-290. Grabbe는 하시딤을 율법 중심의 민족주의 운동에 가까운 조직으로 보 며, 마카베오 반란의 종교적 정당성을 뒷받침했다고 주장. 98 「구약논단」 제31권 3호(통권 97집) 2) 성전 위기에 대한 신학적 대응 알렉산더 대왕 사후 등장한 헬레니즘 왕조들은 팔레스타인 유대 지역의 유대 성전과 유대인에 게 자신들의 전통 신앙 활동에 관용적, 포 용적 태도를 유지하였다. 그 이유로는 헤브라이즘(Hebraism)의 핵심인 율법 중심의 유일신 사상이 그리스 문화 전파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았으며, 유대인들 역시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와 편의성을 일정 부분 수용함으로써 두 문화 간의 충돌이 아닌 융화의 과정으로 인식했기 때 문이다.18 그러나 기원전 167년의 성전 모욕 사건은 모든 상황은 급변시켰 다. 유대 성전의 대제사장직은 매관매직을 통해 부패하였고, 성전의 권 력은 셀류코스 왕조에 예속된 상태가 되었다. 이것은 유대 전통의 성전 중심, 율법 중심의 신앙관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지켜본 유대 사회의 경건한 계층, 특히 성전 의 순수한 성직자 엘리트들은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들 집단 은 성전의 순수한 성직자와 경건한 집단으로 다음과 같은 신학적 질문 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19 •왜 성전이라는 거룩한 장소에 고통이 찾아왔는가? •하나님의 성전이 이처럼 모욕당하는데도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이 고통은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기존의 신정론 물음에서 벗어나, 전통적인 율법 18 19 안근조, 『히브리 지혜 전승의 변천과 기독교의 기원』, 95-97. Joseph lenkinsopp, “XIV. Jewish Sectarianism from Ezra to the Hasidim”, in Essays on Judaism in the Pre-Hellenistic Period (Berlin/Boston: De Gruyter, 2017), 207220. 블레킨소프는 하시딤을 하나의 초기 종파적 경건 집단으로 보며, 이들이 에스라-느헤미 야 종교 재정립 운동의 계보 안에 위치한다고 설명. 99 욥기는 왜 쓰였는가? _ 김영호 의 신학 체계 자체에 대한 신학적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성전의 위기) 속에서 저작된 새로운 신학적 해답을 제시한 문학 작 품이 욥기였다. 3) 욥기와 성전 수난의 상관관계 욥기의 전체 구성은 ‘욥의 경건과 고난의 탄식(1-3장), 욥과 친구들 의 대화(4-28장), 욥의 마무리(29-31장), 엘리후의 연설(32-37장), 하나님 의 대답(38-42장)’으로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28장의 지혜 찬가는 본래 의 대화 흐름에서 삽입된 노래로 보이며, 엘리후가 갑자기 등장한 32장 부터는 ‘성전 모욕 사건’과 관련이 없는 창조주 인식론에 대한 명쾌한 추가 보충 설명이다.20 욥기 본문은 저작 목적은 전통적인 지혜문학의 주제인 ‘하나님 경외’와 ‘인과응보’의 틀을 넘어, 이유 없는 고통, 곧 “까 닭 없이(~N"xI , h .innām)”(욥 1:9, 2:3, 9:17)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관점을 제 시하려는 의도이다.21 욥기의 저자는 경건한 욥이 하나님에게 무결한데도 하나님께 이 유 없는 고난을 받는 상황을 서술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나님은 욥 의 고통에 대한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않으며, 이에 욥은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고, 고통을 절규한다(욥 3:20-26). 욥을 위로하러 온 친구 들을 전통적 신앙관에 따라, 욥의 고통이 그가 하나님에게 무엇인가 죄 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욥에게 스스로 죄를 자백하라고 권한 다. 그러나 욥은 자신이 무죄하며, 재판을 통해서라도 하나님과 대면해 20 21 100 David J. A. Clines, “Putting Elihu in his Place: A Proposal for the Relocation of Job 32 37”,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29(2004), 243-253. 엘리후의 연설이 후대 삽입이나 위치를 변경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문체적 특이성, 욥기 전체 구조에서의 위 치, 신학적 메시지 차이를 보여준다고 주장. 김영호, 「구약성서와 이데올로기」, 16-25. 「구약논단」 제31권 3호(통권 97집)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고자 한다. 이 점은 전통 지혜문학이 가르쳐 온 신 정론, 즉 ‘하나님 경외 → 복’, ‘불손, 죄 → 징벌’이라는 단순한 인과응보 구조와 충돌한다. 욥기는 하나님의 섭리와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의 지 연과 침묵하는 현실에 대해 새로운 신학적 성찰을 시도한다. 이는 즉각 적인 권선징악 도식에 대한 신학의 지평 확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욥기의 신학적 흐름은, 저자가 성전이 이유 없이 모욕당하 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품게 된 질문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왜 이런 일 이 일어나는가?”, “왜 하나님은 무도한 왕조에 징벌을 내리지 않는가?”, “이 고통은 하나님의 어떤 다른 깊은 뜻이 있는가?”와 같은 물음이다. 욥기는 이처럼 성전의 수난과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신학적 성찰의 시 도에 대한 결과물이며, 단순한 개인의 고난 서사가 아니라 공동체적 신 학 위기의 대응 텍스트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본문 분석을 통해 자 세히 분석하고자 한다. 4. 본문의 특징 1) 욥은 ‘성전’ 욥은 단순히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욥 1:1)이며 자식과 재산이 많은 개인적 인물이지만, 유대인은 아니 다. 욥은 알려지지 않은 이방 지역 ‘우스’22 출신으로서 이야기를 시작 한다. 이는 저자의 의도가 담겨있다. 이러한 설정은, 이미 야훼 종교가 유 22 예레미야 25장 20절, “우스 땅의 모든 왕과 블레셋 사람의 땅 모든 땅”과 예레미야 애가 4장 21절, “우스 땅에 사는 에돔아”에서 유추할 수 있다. 101 욥기는 왜 쓰였는가? _ 김영호 대인만을 위한 종교가 아님을23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팔레스타 인 유대 지역은 이미 그리스 문화의 영향 아래 놓여있음을 나타내는 것 이다. 그렇기에 세 친구 역시 설명 없이 야훼를 믿는 이방인으로 설정된 이유이다. 다시 말해, 욥과 세 친구 모두 이방인이며 야훼를 경외하는 자로 등장시키는 것은, 저자 자신이 이미 헬레니즘 문화 속에서 살아가 는 인물이기에 굳이 유대인 정체성을 가진 인물을 따로 설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야훼 신앙이 유대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헬레니즘 문화 권 전반에 영향을 미친 보편 종교로 이해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예루살렘(유대왕국)은 기원전 586년부터 외세의 통치를 받았으며, 기원전 300년 이후에는 그리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 문화에 깊이 동화된 상태였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기원전 2세기에는 제2 성전 사제들은 이미 헬레니즘 문화 속에서 성장한 엘리트였기에, 민족의 주체성 문제가 아닌 성전의 상황 인식에 대한 문제였다. 저자는 욥의 친구들의 동쪽, 북쪽, 남쪽으로 온 이유는 이들이 이미 야훼 신앙 에 대한 유대 종교가 아닌 보편적 종교로서 드러내기 위한 설정이다.24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욥기를 유대인의 관점(히브리 전통)으로 해석하 는 것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이다. 야훼 종교는 이미 헬레니즘 문 화 속에서 세계화되어 있음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설정 속에서, 주인공 욥이 ‘누구’인지에 대해 기존의 연구가 부족하다. 그가 누구인지에 대한 열쇠는 본문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첫째, 구체적으로 서술된 막대한 재산이다. 욥기에서 서술한 재산 내용은 단순히 고난의 극적 배경으로서의 장치가 될 수 없다. 욥이라는 인물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한 환유적 서술로 접근해야 한다. 만약 고통 23 24 102 스가랴 14장 16-19절에 모든 민족에게 예루살렘에 올라와 경배를 하라고 하고, 초막절 을 지키라고 한다. 참조. 예루살렘 기준 먼 서쪽은 바다이기에 이쪽에서 온 사람은 생략한 듯하다. 「구약논단」 제31권 3호(통권 97집) 받은 한 개인의 이야기라면, 자세한 재산 서술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 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의도를 가지고 욥의 재산 규모를 구체적으로 서술함으로써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나타내고 있다. 욥기 1장 2-3절 에 나타난 가축의 수는 고대 근동에서 단순한 식량자원이 아닌, 신분과 사회적 관계망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점이다. 욥의 재산과 관리하는 데 필요한 인력을 추정한 표이다. 25 욥의 재산 가축 양 낙타 소(쌍) 암나귀 마릿수 7,000 3,000 500쌍/1,000마리 인력 비율(보수적) 1인당 300마리 관리 1인당 30-50마리 필요 인력 약 23명 약 60-100명 쟁기질 및 먹이 고려 쌍당 1-2명 500 총합 1인당 20-30마리 약 500-1,000명 약 15-25명 약 600-1,000명 위 가축의 숫자를 관리하는 인력으로 최소 약 600~1,000명가량이 다. 여기에 사환 및 노예(욥 1:15, 1:17), 곡물 생산 및 저장 인력, 물 공급 담당자와 가축 치료사, 조리사 관리인과 인력의 가족까지 계산한다면 수천 명 규모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욥이 고난 속에서 모든 재산을 상실하였다는 사실과 그 구체적인 내용은 본문 해석에 있어 중요한 함 의를 지닌다. 다시 말해, 저자가 욥의 재산 규모를 강조하는 것은 단순 25 Max Price/Cheryl A. Makarewicz, Wealth in Livestock, Wealth in People, and the Pre-Pottery Neolithic of Jordan, Cambridge Archaeological Journal, 34(1), 65-82. 이 논문에서 가축은 단순한 식량자원(사용 가치)이 아닌 사회적. 상징적 가치를 지닌 사회적 관계망(wealth in people)을 구축하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주장. 103 욥기는 왜 쓰였는가? _ 김영호 히 한 개인의 재산 상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역사적 정황에서 욥이 지닌 정도의 재산 규모는 성전 재산 규모와 거의 일치하며, 이것은 성전의 상 실, 결핍, 부재의 감정과 관계된 설명인 것이다. 두 번째, 욥이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단서는 욥이 직접 말한 “내 가 의를 옷으로 삼아 입었으며, 나의 정의는 겉옷과 관 같았느니라.”(욥 29:14)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겉옷(ly[im. , məʿîl)”은 제사장의 옷(출 28:31)이며 “관(@ynIc' , s .ānîp)” 역시 제사장이 두르는 머리 장식이다. 이것 은 욥의 신분을 나타낸다. ‘귀족이나 제사장이 쓰는 겉옷과 관(터번)’은 단순 부자가 아닌,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로 거룩함과 구별됨을 가진 명예로운 제사장의 의복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욥 자신 스 스로 ‘성전의 제사장’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은 욥을 “내 종 욥”(1:8; 2:3; 42:7, 8)이라고 부른 다.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욥 1:1; 2:3)이다. 선한 사람의 의미 “이쉬 탐 (~T')”(욥 1:1)은 구약성서에 욥과 야곱(창 25:27) 오직 두 인물에게만 사 용된 표현이다. 야곱은 이사야 44장 1절,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 라엘아, 이제 들으라”에서 서술하는 바와 같이 야곱이 이스라엘이다. 이사야서의 ‘종의 노래’에서 “나의 종 이스라엘”(사 41:8-9; 44:1-2, 44:21; 45:4) 서술은 이스라엘 전체를 종으로 상징한다. 그러므로 “나의 종 욥”은 단순 개인에 대한 호명이 아니라 ‘야곱 → 이스라엘 → 욥’의 상관관계 속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욥은 이 스라엘 전체를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26 그러므로 욥의 고난은 저 자의 의도에 의해 위의 2가지 서술과 함께 판단을 하면, 욥의 개인 고난 이 아닌 ‘이스라엘의 고난’이며, ‘야곱→이스라엘→욥→성전’의 상관관 26 104 엘런 F.데이비스, 「히브리 성서를 열다」 (노종문 옮김), (서울: 복있는사람들, 2025), 546. 이사야 44장 1절과 49장 3절, 6절에는 “나의 종 이스라엘”로 언급한다. 「구약논단」 제31권 3호(통권 97집) 계를 통해 ‘성전의 고난’을 나타내는 것이다. 2) 헬레니즘적 철학과 문학 욥의 고난과 고통을 성전, 이스라엘이라는 환유적 표현으로 나타 내려고 한 욥기의 저자는 헬레니즘 교육과 환경 속에 성장한 성직 엘리 트로 봐야 한다. 그는 ‘성전 모욕 사건’을 접하면서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을 기다렸으나, 하나님은 침묵하셨다.27 이 깊은 침묵 속에서 욥기의 저자는 새로운 신학적 대안을 모색하 게 되었다.28 욥기의 저자는 율법 중심의 신앙과 율법적 사고를 넘어서, 자신이 지닌 ‘헬레니즘적 사유’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 시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 변화의 관계는 욥기의 이야기 구조 속에서 살 펴볼 필요가 있으며, 욥기에 나타난 헬레니즘적 서술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세 친구의 대화 형식: 그리스 문학의 문답법, 아포리아(Aporia, ἀπορία, 혼란)29 욥기에서 세 친구와의 대화는 그리스 문학의 문답식 논법과 철학 적 혼란 상태를 나타내는 아포리아의 개념을 반영한 구조를 지닌다. 욥기에서 세 친구와 욥의 대화는 단순한 이야기 전달이 아니라 질 문과 응답, 반론과 재반론으로 구성된 논쟁 구조를 가진다. 이는 소크라 테스 문답법 ─ 질문과 응답을 통해 더 근본적인 혼란(aporia)으로 들어 27 28 29 참고. 이 배경에는 헤겔의 ‘미네르바의 올빼미’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워진다. 즉, 세상이 어둠에 휩싸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지혜’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김영호, “구약성서 두루마리를 쓴 사람들”, 「구약논단」 83(2023), 8. 참조, “아포리아”는 ‘어떤 문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점, 즉 사유의 교착 상태를 말한다. 욥기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왜 고난을 받는가’라는 질문이 바 로 논리적 난관에 해당한다. 105 욥기는 왜 쓰였는가? _ 김영호 가는 구조 ─ 을 반영한 것이다. 이 대화에 세 친구가 각각 다른 지역 출 신으로 설정된 것은 단순한 지리적 다양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 라, ‘하나님’에 대한 세상의 보편적 인식을 상징하기 위함이다. 이들은 세상을 대표하는 인물들로서, 인류 전체의 시선을 담아 욥과 논쟁하게 되는 것이다. 세 친구의 출신 인물 엘리바스 빌닷 소발 출신(현재 추정 위치) 데만 (요르단 남부) 수아 (시리아와 이라크 접경) 비고 에서의 후손, 엘리바스의 아들 (창 36:11) 아브라함의 방계 후손 나아마 (가나안 남부) 유다 지파 성읍 중 하나 (수 15:41) 그러므로 이 친구들이 어떻게 동시에 욥을 찾아오게 되었는지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엘리후가 32장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것도 저 자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욥기의 중심 주제는 ‘야훼에 대한 인 식론’이며, 중요한 것은 이를 변증하는 구조적 장치이다. 욥과 친구들 사이의 대화는 다른 구약성서에서 보기 어려운 변증법적 질문 ─ 질문 → 반론 → 아포리아(혼란) → 새로운 자각 ─ 을 따르며, 이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오는 소크라테스가 사용하는 문답법과 유사한 방식이다.30 30 106 플라톤/배병상, 황만기 옮김, 『플라톤 전집 5: 메논. 파이드로스 』(파주: 웅진지식하우스, 2018), 88-90. 질문: 덕(ἀρετή)이란 무엇인가? → 정의: 덕은 통치하는 능력이다. → 반례: 아이도 덕이 있다면 통치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 → 혼란: 결국 메논은 “나는 더 이상 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 소크라테스: “우리는 함께 진리를 찾아 나가야 한다.” 「구약논단」 제31권 3호(통권 97집) 욥기는 왜 쓰였는가? _ 김영호107 (2) 욥과 친구들의 대화 내용: 철학적 인식론 세 친구의 주장과 신학적 논리에 대해 욥은 반론을 제기하며, 각기 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응답을 한다. 욥과 친구의 대화 친구질문/주장(구절)신학적 논리욥의 답변(구절)욥의 반론 엘리 바스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4:7).고난=죄의 결과“나는 의롭지만 고난을 받는다”(6:24-30). 정죄 말고 내 말을 들어라. “사람이 어찌 깨끗하겠느냐?”(15:14) 인간은 본질적으로 부정함 “벌하신 분께 호소한다” (16:17-21) 너의 말은 어떤 도움도 안 된다. 나는 아무 희망이 없다. 빌닷 “하나님은 정의를 굽게 하시겠는가”(8:3) 하나님은 공정과 보응의 하나님 “내가 정직하다 해도 입이 나를 정죄” 현실의 고난은 정의롭지 않다. “악인의 빛은 꺼진다” (8:3)악인은 결국 멸망“악인도 잘 산다”보응은 즉각적이지 않다. 소발 “네가 하나님을 측량할 수 있나” (11:7).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음 “나를 지으신 분이 멸하시는가?” (10:8-9). 설명 없이 고통을 주신다. “악인의 기쁨은 잠깐이다”(20:5). 악인은 결국 망한다 “악인은 죽을 때까지 평안하다” (21:23-26).악인도 형통하다. 이러한 논쟁은 다음 세 가지 질문(존재론적 질문)으로 정리된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가? •하나님은 우주를 엄격한 공의의 원칙에 따라 다스리시는가? •욥의 고난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욥과 세 친구의 논쟁은 전통적인 ‘보응신학’, 곧 인과응보에 기초한 하나님 이해를 배경으로 한다. 세 친구는 각각 동, 남, 북(즉, 세상 전역)에 서 온 자들로 묘사되며, 모두 야훼를 경외하는 인물들로 설정된다. 그들 은 “의인은 고난받지 않고, 죄인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라는 신념을 전 제하고 있으며, 이는 성전 신앙 전통 속에서 형성된 야훼 이해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욥은 이 전통적 신앙 인식을 거부한다.31 그는 자신이 무 죄하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고난이 정당하지 않다고 호소한다. 심지어 자신의 억울함을 하나님 앞에서 직접 변론하고자 한다(욥 13:3; 23:3). 그 결과 논리적 딜레마, 곧 아포리아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욥의 대답을 통해 새로운 신학적 시각을 제시 하며,32 전통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한다. 욥기 서사 전반은 이미 존재론 적 질문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욥은 “왜 태어났는가”(욥 3:11)라고 말 하며 유한성과 창조 질서를 성찰한다. 나아가 욥기 28장에서는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존재와 인식의 근원이 인간 너머에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통찰은 서사 내에서 충분히 체계화되지는 않으 며, 그 보완적 설명이 엘리후의 연설을 통해 전개된다. 엘리후는 ‘만물 을 섭정하는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새로운 우주론적 관점을 중심으로, 주제를 형이상학적·존재론적으로 확장하고 전환한다. 그는 다음과 같 은 근본적 질문들을 제기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31 32 108 J 제럴드 잔센, 「현대성서주석-욥기」(한진희 옮김),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20), 221. 참조. 욥기에서 엘리후가 등장하기 전에 새로운 존재론(ontology)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나타내는 표현, “왜 태어났는가”(욥 3:11)로 존재 이유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으며, “인 간은 흙으로 지어졌고 한계가 있다”(욥 10:8-9, 14:1-2)라고 하여 창조와 유한성에 대 해, ”존재와 인식의 근원은 인간 너머에 있다“(욥 28장)는 존재와 인식은 근원은 인간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으나, 자세하게 나타내지 못해서 엘리후 편집을 통해 ‘새로운 우주의 만물을 섭정하는 창조주 하나님’을 자세하게 나타낸 것이다. 「구약논단」 제31권 3호(통권 97집) •신은 인간의 삶에 어떻게 개입하는가? •인간 존재의 한계란 무엇인가? 욥기는 창조주로서의 야훼를 조명하며, 전통 신학에서 철학적 사 유로 나아가는 ‘존재론적 전환’을 시도한 작품이다. 이는 저자가 경험한 ‘성전 모욕 사건’에 대한 신학적 성찰로 볼 수 있으며, 히브리 전통의 응 보 신학이 지닌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하나의 응답으로서, 헬레니즘적 사유에 기반한 하나님의 존재 재정립을 추구하는 서사이다. (3) 고대 그리스 문학: 천둥과 파도 그리고 괴물들 욥기에 등장하는 ‘바다’와 ‘파도’의 이미지는, 팔레스타인 유대 지 역의 전통적인 문학 정서에서는 핵심적인 표현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지리적으로 해양 문명권에 직접 노출되어 있지 않 으며, 해상 교역이나 해양 중심 세계관과도 밀접한 연관이 없다. 따라서 ‘바다’와 ‘파도’는 해당 지역 문학의 주된 상징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욥 기의 저자는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해양 문명과 헬레니즘 왕조 문화의 영향을 받아, ‘바다’, ‘파도’, ‘바람’에 대한 서술을 빈번히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 이미지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세상은 혼돈과 위 험,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은유하는 동시에 신적 현현의 상징으로도 기능한다. 특히 욥기의 결론부인 38장과 40장에서 반복되 는 장면 ─ “그때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 되”(욥 38:1; 40:6) ─ 는 전통적인 구약의 야훼 현현 형식보다는, 헬레니 즘 문학에서 나타나는 신의 강력한 현현 방식에 더 가까운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엘리후가 말하는 하나님의 모습 ─ “그 소리를 천하에 펼치 시며 번갯불을 땅끝까지 이르게 하시고, 그 후에 음성을 발하시며 그의 109 욥기는 왜 쓰였는가? _ 김영호 위엄찬 소리로 천둥을 치시며, 그 음성이 들릴 때는 번개를 멈추게 하 시느니라”(욥 37:2-4) ─ 는 올림포스산의 제우스가 천둥과 번개를 통해 신적 권위를 드러내는 모습과 유사한 이미지이다. 이와 더불어, 욥기의 결론 부분에 등장하는 상상 속 동물은, “베헤 못”(tAmheb. , bəhēmōt_, 욥 40:15)과 “리워야단”(!t'y"w>l, liwyāt_ān, 욥 41:1),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들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모두 질 서에 도전하는 혼돈과 자연의 힘을 상징하며, 신적 통치 질서의 대척점 에 서 있는 존재들이다. 제우스가 티폰(Typhon)을 제압하고, 포세이돈이 킬케(Circe)나 사이렌(Siren)을 통제하며, 헤라클레스가 히드라(Hydra), 페르세우스가 메두사(Medusa)를 처치하는 서사들이 그러한 상징체계에 해당한다. 이러한 문학적 장치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도 반복 적으로 등장하며, 이 괴물들은 모두 신의 통치와 질서에 저항한다. 그러 나 최종적으로 신에 의해 제압되고 통제된다는 점에서 욥기의 상상 동 물과 유사한 상징 구조를 가졌다. 이는 신의 질서 확립과 존재론적 권위를 헬레니즘 문학의 구현하 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4) 플라톤 이분법: 하나님과 사탄 욥기 1장 6절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아들들’(~yhil{a/h' ynEB. , bənê hāʾĕlōhîm)이 모여 있는 천상회의 장면은, 전통적인 구약성서의 유일신 사상과 일정한 긴장 관계에 놓여있다. 신명기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명 령인 “쉐마”([m]v, shema) ─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 6:4-5) ─ 는 여호와의 단일성과 유일성 을 강조한다. 그러나 욥기의 서술은 이러한 유일신 개념을 전제하지 않 고, 오히려 복수의 신적 존재들이 등장하는 헬레니즘 문학의 신적 세계 관과 유사한 구조로 표현하고 있다. 110 「구약논단」 제31권 3호(통권 97집) ‘하나님의 아들들’은 올림포스 신들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이 회의 에 함께 등장하는 ‘사탄’(!j'F, śāt.ān) 은 원래 ‘고발자’, ‘반대자’, ‘검사’를 뜻하는 일반 명사로, 여기에 정관사 ‘하’(h;)가 붙어 ‘그 고발자’(ha-Satan) 로 사용된다. 이 표현은 단순한 악마적 존재가 아니라, 신적 질서를 시 험하고 도전하는 법정 내 반대자의 역할을 암시하는 신적 존재이다. 이 는 그리스 신화에서 지하 세계를 통치하는 하데스(Hades)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신적 다원성과 대비 구조는 욥기의 서사 전반에 플라톤적 이분법(dichotomy)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 아래 표는 욥기 내 주요 상 징과 인물들 사이의 이분법적 관계를 요약한 것이다: 이분법 관계 신적 대립 등장인물의 대립 상징적 대립 윤리적 대립 하나님(승자) 욥 이스라엘, 성전 사탄(패자) 친구들 셀류코스 왕조, 안티코오스 4세 선 신정론적 대립 인과응보 악 고난의 의미에 대한 재해석 이와 같은 구조는 하나님과 사탄 대립을 중심축으로 인간 세계에 서는 욥과 그의 친구들 간의 갈등 구조를 이분화시키고 있다. 욥은 의로 운 자로서 고난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반면 친구들은 하나님을 변호하 면서도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한다. 따라서 욥기는 단순히 인간의 고난 문제를 다루는 책이 아니라, 하 나님의 정의와 성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둘러싼 이분법적 논쟁의 장 (場)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욥기의 결론은 단순히 ‘양비론’ ─ 즉 욥도 틀렸고 친구들도 틀렸다는 판단 ─ 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111 욥기는 왜 쓰였는가? _ 김영호 이분법적 구도를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도 이른 넘어서는 신학적 전환 을 모색한다. (5) 점성술(Astrology): 항해에 필요한 별자리와 천체 욥기에서는 별자리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북두성과 삼성과 묘 성과 남방의 밀실을 만드셨으며”(욥 9:9), “네가 묘성을 매어 묶을 수 있 으며 삼성의 띠를 풀 수 있겠느냐?”(욥 38:31) 등의 구절은, 그리스 해양 국가에서 항해 중 바라본 하늘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33 이러한 별자 리 언급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34 그리스 점성술과 천문학에서 오리온은 신화 속 존재이며 신적 질 서의 일부로 여겨지며, 욥기에서도 이러한 별자리는 하나님의 창조 질 서와 우주의 주권을 상징한다. 욥은 별자리를 통해 창조 질서와 헬레니 즘적 코스모스(cosmos) 개념, 곧 질서 있는 세계관을 드러낸다. 이는 신 적 통치의 우주론을 표현한 것이다. 특히 욥기 9장 9절에서, 이방인인 ‘빌닷’이 하나님의 능력을 설명 하며 이러한 별자리를 언급하는 점은,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인식이 특 정 민족에 한정되지 않고 보편성을 지닌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헬레 니즘 문화권 내 누구든 하늘을 바라보며 느낄 수 있었던 ‘우주의 질서’ 33 34 112 참조, 1. 북두성(v[', ‘아쉬’): 북두칠성 또는 큰곰자리(Ursa Major). 2. 오리온(lyIs.K, ‘케실’): 별자리 오리온(Orion)은 고대 근동에서 오리온은 겨울철 하늘 에 뚜렷한 별자리로, 폭풍이나 위험을 암시한다. 성서에서는 ‘삼성’이라 번역함. 3. 묘성(hm'yKi, ‘키마’): 플레이아데스 성단(Pleiades)으로 여겨지는 별자리. 작은 별들이 밀집한 군성(群星)으로, 봄철 하늘의 상징. 4. 남방의 밀실(!m'yte yEr>d:x): 문자적으로는 “남쪽의 방들”이라는 뜻.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우주 영역, 신의 통치가 미치는 범위를 상징. 호메로스, 「오디세이아」(천병희 옮김), (고양: 숲, 2015), 269-277. 호메로스는 “그는 별 들을 살펴보았다. 칼립소 여신이 말해준 대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별자리들을 눈여겨보 며, 특히 늦게 져서 바다 위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북두성을 눈에 담았다.”라고 묘사하며 오디세우스가 항해 중 주목한 별자리들을 서술한다. 「구약논단」 제31권 3호(통권 97집) 와 ‘신의 손길’이 예루살렘 성전의 신학과 연결됨을 암시한다. 욥은 “그 누구도 하나님처럼 이 우주를 다스릴 수 없다”라는 신앙고백을 별자리 를 통해 표현하고 있으며, 이는 헬레니즘 문학의 형식을 효과적으로 사 용한 예라 할 수 있다. 5. 새로운 창조론 인식 1) 전통 지혜의 부정- 신에 대한 항변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욥은 성전을 나타내는 환유적 인물로 자리하 고 있으며, 욥의 고난은 당시 성전의 고난(즉, 성전 모욕 사건)을 상징하고 있다. 즉 저자는 욥을 통해 자신의 질문과 신학적 성찰을 하는 것이다. 구약성서에 나타난 인간이 하나님께 질문하는 장면들은 대부분 개 인의 고난이나 억울함이 아닌, 집단적 상황 혹은 타인의 처지에 대한 중 재 요청이었다. 아브라함은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 이까?”(창 18:24)라며, 소돔을 멸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가를 묻는다. 그러나 이 경우 아 브라함은 소돔 멸망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중재자 역할이었다. 출애굽기에서도, ‘금송아지 사건’으로 인해 진노하신 하나님께 모 세는 “여호와여, 어찌하여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출 32:11)라 며,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중재를 요청한다. 이 또한 모세 개인이 아닌 공동체 문제였다. 예레미야에게 주어진 환시(렘 1:11-14) 역시 예레미야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경고 였다. 그러나 ‘욥’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구약성서에 언급되었던 인물이 아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온전하고 정직한 자였다(욥 1:1). 그런 113 욥기는 왜 쓰였는가? _ 김영호 데도 그는 이유 없이 고통을 당하고, 하나님은 이에 침묵하였다. 욥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에 대해 단순히 참고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억울함을 항변하며 죽기를 간구하기까지 한다(욥 7:15). 또한, 그는 하 나님의 불의함에 대해 직접 질문을 던진다(욥 10:3; 13:23-24). 이는 전통적인 지혜문학과 충돌한다. 잠언 1장 7절은 “여호와를 경 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 니라”, 잠언 12장 2절은 “선인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으려니와, 악을 꾀 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으리라”라는 인식에 대해 정반대의 사건이 일 어난 것이다. 욥은 죄를 짓지 않고 오직 경외하는 자임에도 고난을 겪기 에 잠언의 보응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서술이다. 욥 자신이 바로 이러한 오이디푸스와 프로메테우스의 중간 인물이 다. 오이디푸스와 같은 숙명론에 놓였고, 프로메테우스같이 인간을 위 해 최선을 다하다 신으로부터 벌을 받는다. 욥은 자신의 죄를 인정할 수 없다. 신의 침묵 속에 이유 없는 고난을 겪고, 인간의 인식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전통 지혜문학이 전제한 ‘보응의 논리’(retributive justice)를 벗어나, 고난에 대해 신과 인간 인식 사이의 새로운 문제 제기 이다. 이런 인식은 바로 야훼를 모시는 성전이 왜 고통 속에 있어야 하 는지를 간접적으로 묻는 문학이다. 그 해답은 존재론적 창조주가 누구인가 하는 새로운 인식이 전환 되는 순간이다. 욥기 9장 4-10절과 28장 23-28절에서 드러난다. 이 구 절들에서 욥은 하나님을 지혜의 궁극적 근원으로 고백하며, 단순한 윤 리적 존재가 아닌,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하나님을 인식하기에 이른다. 욥기 42장 2-6절은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 이 없는 줄 아오니 114 「구약논단」 제31권 3호(통권 97집)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깨닫지도 못 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 내가 주에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 나이다.” 이 고백은 욥이 단순한 윤리적 항변을 넘어서, 창조주 하나님에 대 한 존재론적 인식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신앙고백에 이르렀음을 보여 준다. 2) 하나님 경외에 대한 인식 전환 - 헬레니즘적 존재론 – 엘리후를 통한 재강조 (1) 헬레니즘적 존재론 이스라엘과 성전의 더럽힘(성전 모욕 행위, 기원전 167년)이 욥기 저작 배경이라는 것과 욥이 누구인가로 설명하였다. 욥은 성전에 대한 환유 적 표현이었다. 성전 모욕 행위로 고통받는 성전에 대해 저자는 이스라 엘(성전,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 다. 성전 모욕 사건을 목격한 경건하고 순수한 사제집단의 일원인 저자 는, 자신이 경건했으며 하나님에 대해 흠결 없이 경외했음에도 불구하 고, 성전이 고난을 겪는 것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응답을 위해 기 도했으나 하나님은 한없이 침묵하는 것에 대한 이유를 찾아야 했다. 하 나님의 침묵은 자신에게 끝없이 고통이었으나 그 고통도 이유를 있음 을 찾았다. 115 욥기는 왜 쓰였는가? _ 김영호 욥기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전통적 인식론으로는 무응답의 하나님 이 해법이 아니었다. 그러나 저자의 새로운 인식 전환, 즉 우주를 섭리 하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인식 전환이 있었다. 이것은 엘리후의 추가 편집 연설35을 통해 더욱 명확하게 그 전환 내용을 나타내고 있다. 욥과 세 친구의 대화 이후, 엘리후(aWhylia/ , ʼĚlih .ū; 욥기 32-37장)는 갑자기 등장하지만(욥기 32:1-2), 세 친구가 처음 욥을 찾아올 때(욥기 2:11-13)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엘리후는 욥과 친구들의 논쟁을 다 듣고 그들의 태도에 대해 욥과 세 친구 모두 양비론적 입장 으로 네 차례에 걸쳐 연설한다. 기존의 세 친구에 대해 욥은 당당하게 반박을 하였으나, 엘리후의 연설에 대해 욥은 이전과 달리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여 침묵한다. 그 이유는 엘리후의 논리가 타당하기 때문임을 나타낸다. 아울러 엘리후 연설의 추가 편집은 최종 종결 부분 38장으로 이어지면서 이 편집 부분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론적 의미를 더욱 부각 시키고 자연스럽게 결론 부분과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한다. (2) 엘리후의 확고한 존재론 인식 엘리후는 욥과 세 친구와 다르게 어디서 왔는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이름에서 그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그는 유대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엘리후(aWhylia/ , Elihu)는 la/(El, 하나님)과 aWh(hu, 그분) 의 합성어로 “나의 하나님은 그분이시다”라는 뜻이다.36 히브리 이름인 엘리후는 이미 욥과 이방인 세 친구와 이름과 다른 35 36 116 J. G. Whybray. Job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8), 18, 22. Whybraysms는 부 분이 문체적, 신학적, 구조적 통일성이 없음을 지적한다 벧엘: “하나님의 집” →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곳/사무엘: “하나님께 구하였다” → 하나 님께 구해 얻은 아들/예수(예슈아):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 구세주의 역할을 암시하 는 것 같이 구약성서는 이름이나 지명을 통해 그 인물이나 장소의 정체성과 사명을 미리 드러내는 이 기법 “의미 있는 이름(significant naming)”으로 자주 사용한다. 「구약논단」 제31권 3호(통권 97집) 유대 공동체의 정체성(혹은 성전의 정체성)을 확연하게 드러낸다. 자신이 하나님에 대한 정통성을 가진 인물임을 이미 이름에서부터 암시하고 있다. 엘리후의 연설 내용은 저자(편집자)의 신학적 관점을 더욱 선명하 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인간의 유한성 사이의 틈새에 대해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모두 이해할 수 없으며(욥 36:26),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교훈을 주신다는 점이다. 엘리후는 이러 한 신비적 통찰과 인간 현실 사이의 틈새를 신학적으로 풀어주는 신과 인간 사이의 가교역할을 확실히 나타내기 위해 등장한 것이다. 엘리후의 신학적 성찰 주제 자신에 대해 욥에 대해 본문 32:6-10 33:8-12 하나님의 징계 목적 33:14-30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 주권 하나님의 위엄 34:10-12 신학적 성찰 하나님 영이 지혜를 자신에게 주었다고 주장.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지만 하나님을 불의하게 여긴 것 비판. 고난은 악에 대한 형벌이 아님, 사람을 겸손하 게 하는 교육적 수단. 불공정이나 침묵하지 않으시며, 의로우시고 완전 공의를 행한다고 말함. 34:13-15 36:26-37:24 자연에 대해 계시 37장 전체 모든 생명의 주권자임 인간의 하나님 이해 불가, 하나님 위대함에 겸 손해야 한다. 천둥, 번개, 폭풍은 하나님의 위대함과 주권을 나타내는 것 엘리후의 연설은 기존의 전통 지혜,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대 한 사유는 ‘율법=성전’ 중심의 전통적 사유(思惟)에 새로운 창조주 하 117 욥기는 왜 쓰였는가? _ 김영호 나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신학적 성찰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신명 기 10장 12-13절에서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 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 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며, 내가 오늘 내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 냐?”라는 선언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하는 자는 좋은 지각 을 가진 자이니’(시 111:10)라는, ‘경외 → 복’의 도식을 바탕으로 하나님 을 인식해 온 전통적인 틀을 넘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성전을 통해 율법을 준수하고 야훼를 경외하며 경건을 실천해 오 던 사제집단은 ‘성전 모욕 사건’을 계기로 큰 충격과 혼란에 빠지게 되 었고,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신학적 인식 의 전환을 모색하게 되었다. 엘리후의 발언은 ‘하나님 경외’조차도 하나 님의 주권적 의지에 따라 배제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전능자를 우리 가 찾을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 히지 아니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자를 무시하시느니라”(욥 37:23-24)라는 설명이 이를 잘 보여준다. 결국, 이 선언이 욥기의 실질적인 결론이며, 이어지는 하나님 의 직접적인 말씀(38-42장)은 원작의 구조상 ‘해피엔딩’으로 구성된 결 말이라 할 수 있다. 6. 결론 본 연구는 기존 욥기 연구들이 주로 신학적·신앙적 관점에서 전통 적인 인과응보의 지혜에 대한 비판적 관점으로 검토했다. 히브리 전통 118 「구약논단」 제31권 3호(통권 97집) 안에서 욥기를 해석하려는 시도는 본문이 제시하는 일차적 자료(헬레니 즘 문학)를 외면해 왔으며, 본문 자체에 내재한 환유적 표현을 찾아내어 그 관계가 시대적 상황과 연결되어 있음을 밝혔다. 그 결과, 본문에서 드러나지 않는 시대적 배경으로 ‘성전 모욕 사건’이 놓여있으며, 이것이 욥기 전체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모티브였음을 제시했다.37 욥기는 서술 양식이 통해 히브리 전통(율법 중심)을 강조하기 위해 서술한 것이 아닌 헬레니즘 문화에 속한 것을 명백하게 제시했다. 저자 는 분명 유대인 공동체 소속의 일원이지만 헬레니즘 문화 속에서 성장 한 세대이다.38 이런 배경을 찾는 것은 욥기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선이 해로서 중요하다.39 이 배경을 가지고 욥기의 저자 의도를 파악할 수 있 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 해체비평을 통해, 욥의 재산 규모, 자신에 대해 평가, 하나님이 욥에 대한 호칭을 통해 그는 ‘이스라엘=성전’으로 해체적 상관관계를 찾아 욥의 고난이 성전의 고난을 나타내는 환유적 표현임을 알 수 있었다. 성전의 고통에 대해 하나님의 해답을 구하고자 했던 욥기의 저자 는, 율법을 지키며 성전의 전통을 따르던 경건한 인물로서, 초기 하시딤 (~ydIysix;)의 원형에 가까운 인물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하시딤 계열의 사제집단이 엘리후 부분을 후대에 추가 편집함으로써, 야훼에 대한 인식을 전통적인 경외의 차원을 넘어 존재론적 창조주로 전환하 는 신학적 설명을 더욱 분명히 한 것이다. 37 38 39 참조. 시편 74편에는 더럽혀진 성소에 관한 서술(3-7절), 그리고 헬레니즘 문학의 영향 으로 등장하는 리워야단(14절) 표현은 욥기의 저작 시대를 추정할 수 있다. 참조. 남 유대가 멸망(기원전 538년) 이후 율법을 통한 유대인의 정체성과 당시의 지배 문화(약 400년 이후)와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참조. 국민교육헌장의 의도를 파악하려면 본문 해석 이전에 이 글이 쓰인 배경인 ‘유신 독재체제’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선(先)이해를 가지고 봐야 그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119 욥기는 왜 쓰였는가? _ 김영호 결론 부분에서 서술되는 상상 속 동물인 “베헤못”(tAmheb. , bəhēmōt_, 욥 40:15)과 “리워야단”(!t'y"w>l, liwyāt_ān, 욥 41:1)은 헬레니즘 문화에 익숙 한 저자의 표현이다. 인간의 지혜와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혼돈과 위 험의 상징으로 세상이 항상 혼돈과 위험이 병존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베헤못과 리워야단의 상징성: 혼돈과 위험의 상징 구분 영역 상징 괴물의 역할 베헤못(40장) 육지 땅의 거대한 힘 리워야단(41장) 바다 바다의 혼돈, 악을 상징하는 힘 창조주의 신비와 질서의 일부 인간과의 관계 인간이 통제 불가능 창조주의 통제를 벗어날 수 없음. 인간이 상대할 수 없는 존재 아울러 상상의 동물 인용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존재론적 신 비 그리고 형이상학적 질서(초월적 창조주)를 강조하는 것이며 역으로 전 통 히브리 문학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40 이 동물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통제되는 것은 엘리후 추가 편집 에 나타난 하나님은 ‘비, 천둥, 번개, 구름, 바람, 폭풍, 추위 등’ 자연 현 상을 다스린다고 추가로 보충 설명하는 보완적 구조를 하고 있다. 천둥 과 번개 속에서 육지와 바다의 무서운 괴물들도 창조주의 통제에서 벗 어날 수 없으며 그런 하나님은 인간이 상상 영역 밖에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본 연구는 욥기에 대한 문학적 비평이나 지혜 문학적 틀에 갇힌 독 40 120 참조. 위 동물은 욥기 외에 리워야단이 시편에서 두 번(시 74:14; 104:26), 이사야에서 한 번(사 27:1) 언급되고 있다. 「구약논단」 제31권 3호(통권 97집) 자 중심 비평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욥기의 저작 시기를 추정하고 그 모 티브가 무엇인지를 추적하였다. 만약 욥기를 단순히 문학 작품으로 간 주하고 본문 자체에 대한 독자 비평에만 의존한다면, 시대적 맥락은 철 저히 외면될 수 있으며, 신학은 고립된 해석의 섬으로 남게 될 위험이 크다. 그동안 욥기에 대해 헬레니즘 시대의 사유를 외면하고, 구약과 신 약 사이의 ‘중간기’라는 이유만으로 그 시대의 역사적, 사상적 특징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단절되지 않으며, 헬레니즘 문 화는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유대 사회 전반에 걸쳐 강하 게 작용하였다. 예수와 바울의 활동 역시 이러한 헬레니즘적 사유의 영 향권 아래 있었으며, 이를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바울이 선교한 고린도 교회는 유대인 회당에서의 활동으로 출발하였으나, 이 후 이방인을 중심으로 한 독립적인 교회 공동체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한 배경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오랜 시간 공유 되어 온 헬레니즘 사유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본 연구는 나아가 ‘성전 모욕 사건’ 이후 활동한 유다 마카베오 (Judas Maccabeus)와 함께 셀류코스 왕조에 저항했던 ‘경건한 자’들 가운 데 한 인물이 욥기의 저자였을 가능성도 제시했다. 초기 하시딤 전통은 예수의 시대인 1세기까지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후 바리새파, 에세네파와 같은 종파주의로 분화되는 흐름 속에서 성전 중심주의자들 과 경건주의자들 사이의 신학적 긴장이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41 쿰 란 공동체의 ‘의로운 스승’과 이로부터 파생된 분파들 또한 이러한 경건 주의 전통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향후 연구 과제로 남겨 41 E. P. Sanders, Judaism: Practice and Belief, 63 BCE – 66 CE (London: SCM Press, 1992), 19-44. 121 욥기는 왜 쓰였는가? _ 김영호 둔다.42 결론적으로, 욥기는 헬레니즘적 사유를 가진 경건한 자가 ‘성전 모 욕 사건’ 이후 유대 공동체 내에서 형성된 신관의 변화를 반영하며, 존 재론적, 창조주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우주를 주관하고 섭리하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전 환을 요구하며, 이는 단지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고 오늘 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적용되는 신학적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하나님의 절대적 통치와 초월적 지혜에 대한 고백은, 욥기에서 처음으로 깊이 있는 철학적인 사유 속에서 표현 되었으며, 이는 인간의 지혜를 넘어서는 신학적 담론이 담긴 신앙고백 이라 할 수 있다. 욥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분명하게 선언한다.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움직이시 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욥 9:11). 참고문헌 김학철, 「허무감에 압도될 때 지혜문학」 (파주: 세기북스, 2024). 김영호, 「구약성서와 이데올로기」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______, “구약성서 두루마리를 쓴 사람들”, 「구약논단」 83 (2023), 8-26. 김재구, “욥기 전체를 푸는 열쇠”, 「구약논단」 24 (2007/6), 92-105. 라이너 캐슬러, 「고대 이스라엘 사회사」 (민경구 옮김), (서울: CLC, 2020). 안근조, 「히브리 지혜 전승의 변천과 기독교의 기원」 (서울: 동연, 2016). 하경택, “욥과 욥기의 문제: 욥기의 연구사에 관한 소고”, 「한국기독교신학논총」 31 (2003), 47-73. 42 John MacLaren Evans, Elihu and the Interpretation of the Book of Job (Glasgow: University of Glasgow, 1990), 150-200; Michael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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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Ho Kim Endowed-Chair Professor, Old Testament Studies Graduate School, Department of Theology Sungkonghoe University This study seeks to reinterpret the Book of Job not merely as a traditional work of Israelite wisdom literature, but as a theological response that emerged within the intellectual and cultural milieu of the Hellenistic period. While Job addresses the classic theodic question of “suffering without cause,” its literary structure and conceptual depth suggest a context shaped by philosophical reflection and historical crisis. T his paper argues that Job was written in the aftermath of the desecration of the Jerusalem Temple by Antiochus IV Epiphanes in the late second century BCE — a traumatic event that profoundly destabilized the religious identity of the Jewish community. The text is thus read as a reaction to the collapse of the temple-based theological framework and an attempt to reconstruct divine justice from a cosmological and ontological perspective. During this period, Jewish society underwent significant upheaval due to the rise of the Hasmonean dynasty, the politicization of the priesthood, and the penetration of Greco-Roman culture. Against this backdrop, the Book of Job confronts a theological crisis: Where is God in the midst of suffering? Why does God remain silent in the face of injustice? By engaging these questions, the author of Job deconstructs the 125
욥기는 왜 쓰였는가? _ 김영호 traditional doctrine of retributive justice and instead presents a vision of God as the transcendent Creator who governs the cosmos beyond human understanding. Job’s deep philosophical reflection resonates with Hellenistic thought, especially in its concern with cosmic order, divine silence, and the limits of human knowledge. The book does not merely seek to justify God but invites a radical shift in the way divine sovereignty is conceived — no longer confined to the temple or covenantal frameworks, but expanded into an ontological and universal domain. Thus, Job emerges as one of the earliest theological texts to articulate divine justice and sovereignty through a synthesis of Jewish faith and Hellenistic cosmology. T his study analyzes the structure and thought of the Book of Job to interpret it as a product of the intersection between the crisis of Jewish theology and a creative response during the Hellenistic period, presenting it as an enduring archetype of theological reflection that remains relevant today. key words Hellenism, Metonymy, Ideological Deconstruction Criticism
출전: https://doi.org/10.24333/jkots.2025.31.3.89
투고일: 2025년 07월 15일 심사일: 2025년 08월 07일 게재 확정일: 2025년 08월 1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