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원 현상공모
2023년 제2회 이충이문학상
제2회 이충이문학상 심사과정
• 원고마감 : 2023년 9월 30일
• 총 응모자
- 시부문: 34명 응모(작품집 34권)
[ 『시와산문』 이충이문학상 예심 ]
•예심일자 : 2023년 11월 1(수) PM 6시
• 예심 심사위원
- 시부문: 이승하 나희덕
< 예심 통과작 >
- 강 순 『크로노그래프』 외 6명
『크로노그래프』 강 순 시집
『사람은 사랑의 기준』 김박은경 시집
『고래 겹의 사생활』 김양숙 시집
『천 권의 책을 귀에 걸고』 배종영 시집
『내일 헤어진 사람』 신형주 시집
『울음의 기원』 강태승 시집
『새의 식사』 김옥숙 시집
[ 『시와산문』 이충이문학상 본심 ]
• 본심일자 : 2023년 11월 1일 PM 8시
•본심 심사위원
- 시부문: 이승하 나희덕 장병환
< 본심 통과작 >
- 강 순 『크로노그래프』 외 1명
『크로노그래프』 강 순 시집
『사람은 사랑의 기준』 김박은경 시집
< 본심 수상작 >
- 강 순 『크로노 그래프』
<이충이문학상 심사평>
시 쓰기란 결국 세파와 싸워 나가는 것
문예지 『시와산문』을 일으켜 세웠던 이충이 시인을 기려 만든 이충이문학상 제2회의 심사를 맡게 되었다. 총 34권의 시집 가운데 7권의 시집을 우선 추렸다. 투고된 시집이 갖고 있는 작품성과 그간 이룩한 문학적 성과, 근년의 활동 사항 등이 다각도로 검토되었다. 그래서 1차 걸러진 것이 강태승·강순·김박은경·김양숙·김옥숙·배종영·신형주의 시집이었다. 심사위원 나희덕과 이승하는 시인 각자가 갖고 있는 시에 대한 치열함이랄까, 자신의 개성을 확보하려는 열망을 기대하면서 시집을 읽어나갔다. 3시간이 흐른 뒤, 강순· 김박은경· 김양숙· 배종영의 4권 시집으로 압축되었다. 각 시집의 특징을 살펴본다.
강순 시인의 시집 『크로노그래프』는 삶이라는 것이 험난한 세파와 싸워 나가는 것임을 터득한 뱃사람의 항해일지 같다고 생각하게 했다. 시들이 한 편으로는 스스로 이름 붙인 ‘마녀 일기’다. 그 어떤 폭풍우와 태풍이 오더라도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강인한 정신력 같은 것이 느껴진다. 시적 대상과의 싸움에서 지는 법이 없어서 편 편의 완성도가 높다. 최근에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대학 강단에 선 것으로 아는데, 학문적 깊이가 더해져서인지 앞서 낸 2권의 시집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박은경 시인의 제4시집 『사람은 사랑의 기준』은 이제는 거의 시적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여겨질 만큼 세련미를 갖추고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그런데 지난번 시집을 넘어서는 진일보된 지점으로 나아갔는지에 대해서는 일말의 회의를 갖게 한다. 시인이 말이 많아진다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하는 회의.
김양숙 시인의 제4시집 『고래, 겹의 사생활』은 시의 진폭이 무척 넓다.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 과거와 현재, 일상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 문명 세계와 산천초목……. 종합에의 의지만 조금 더 가미되면 아주 독특한 신화적 상상력을 펼 수 있는 시단의 큰 재목이다. 이런 시인을 내가 왜 모르고 있었지? 하는 생각을 계속하며 시집을 읽었다. 선택과 집중은 결국 시 세계의 심화로 이어질 것이다.
배종영 시인의 『천 권의 책을 귀에 걸고』는 첫 시집답지 않게 깊이가 있다. 등단 9년 만에 내는 시집이어서 그럴까, 삶의 내공이 느껴지는 묵직한 시집이다. 생로병사의 비의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표면의 뜻과 이면의 뜻이 차이가 나는 시작의 오묘한 방법론을 조금만 더 터득하길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 작품 간의 편차도 좀 보인다. 다음 시집에 큰 기대를 건다.
이상 4명 시인의 시집 중 흠결이 가장 적은 강순 시인의 시집에 수상의 영광이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 차이는 미세하고, 운이 따라주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모든 분의 정진을 바라면서 강순 시인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심사위원: 이승하 나희덕 장병환
크로노그래프Chronograph
강 순
밤은 그러니까 동사다
깨다 일어나다 가다 보다 앉다 서다 눕다 울다 들이
뭉치고 엉키는 자리에
꿈틀대다 치대다 우물거리다 씹다 내뱉다 걷다 삼키다 들이
해변 위 파도처럼 넘나든다
운명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시간 장치 속에 들어가 있으면
밤은 죽은 듯 활개치는 동사다
초침보다 더 빨리 어제 한 말을 후회하고
오늘 못다 한 말을 반성할 때
동사들이 쓸려오고 쓸려간다
가만히 있어도 밤이 우리를 움직인다
동사는 과거와 현재의 우리를 합한 말
숨을 내쉬면 네가 썰물처럼 쓸려가고
숨을 들이쉬면 내가 너를 해변에 심어 놓는다
우리는 밀려갔다 밀려왔다 밀었다 당겼다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는 지구와 달처럼
우리 인력과 원심력을 밤에 슬피 쓰고 있다
쓴다, 라는 말은 내가 가장 아끼는 동사
너의 발자국과 나의 속눈썹도 모두 쓴다, 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지
우리는 파도의 심장을 달고
시간 속에서 서로를 철썩이다가
우리를 다 쓰기도 전에
파고를 서둘러 떠나는 심해 잠수정 같아
우리를 떠나 더 깊고 캄캄한 우리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밤의 동사들 그것이 우리인 거지
오월의 레퀴엠
오월 속에서 죽은 사람들이 쏟아져요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을 묻힌 휘장 속에서, 전단을 뿌리듯 손을 내밀어요
저 손들을 덥석 잡고 싶어요 무슨 사연인지 받아들고 싶어요 아이스크림 같은 잠일지 몰라요 계절 지난 꽃잎을 일기장 갈피에서 꺼내듯 메마르게 바스러지는 목숨들 우크라이나에서 미얀마에서 예멘에서 광주에서 제주에서 사월에서 오월에서 아무렇게나 쏟아져요
어떤 장면은 TV 뉴스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표정으로 쓰러지며 말을 잃고 어떤 장면은 영화 속 사람들이 신음을 흘리다 눈을 감아요 또 다른 장면, 바닥에 버려지는 사람들의 연속, 그들은 폭풍 같은 악몽 속에서 몸부림치다 서서히 잠잠해져요
나는 저 손들을 보관할 병이 없는데 오월은 한 겹 두 겹 계속 쌓여가요 어떤 화해도 없이 태양의 흑점처럼 검어지는 계절, 죽은 자들이 퇴장 없이 계속 반복되는 무대, 신들은 이미 버려졌고 죽은 사람들도 계속 버려지는 무대
언제 얼굴을 들어야 할지 몰라 젖은 벌레처럼 구석에 웅크리다 나는 물어요 언제 깨어날까요 당신들은 새인가요 날아갈 곳이 없어 내게 국경을 묻는 건가요 박쥐의 동굴은 사나흘 더 가야 찾을 수 있는 아주 깊은 곳
오월이 나를 가두고 있는지 내가 오월을 가두고 있는지 욕조는 아이스크림 같아요 검은 잠이 계속 쏟아져요
집의 방향
- 마녀일기 11
눈을 감으면
죽은 이들이 모래사막을 끌고 왔다
발을 내딛으면 발목이 사라져 사막에 갇혔다
손을 흔들자 검은 새들이 어디선가 솟아나
난민들이 모여드는 국경 쪽으로 사라져갔다
사막이 바람 앞에 엎드려 목숨들을 묻을 때
사람들은 신의 목소리를 잊는 법을 배워
인공지능 제품에 스마트한 예의를 갖췄다
나에게 남은 건 지팡이 하나뿐
아직도 심장 속에는 펄떡이는 귀가 있는가
죽은 이들의 말 조각들이 얼굴에 부딪혔다
모래 속에서 그것들을 주워 올려 어루만졌다
집은 어디로 가나요
바람이 방향을 바꾸면 우리는 모두 묻히나요
질문에서 붉은 눈물이 솟아나 울음 기둥이 되었다
이름 없는 무덤들을 사생아로 낳은 바람아
나는 꿈인 듯 바보인 듯 마법 지팡이를 든 사람
무심한 구름은 사막 위에서 언제 비가 되는가
숨은 별은 암흑 속에서 언제 나침반이 되는가
속수무책과 오래 손잡은 회전초처럼
묵묵부답에 잡혀 기울어진 자세로
앞이 보이지 않는 모래폭풍 속
거친 숨소리 쪽으로 지팡이를 계속 휘둘렀다
집은 어느 방향인가요
거기에는 만년 전에 사라진 또 다른 신이 있나요
지친 눈동자의 사람들이 나를 향해 걸어올 때
지팡이를 더 크게 휘두르자
폭풍이 잦아들고 하얀 새 몇 마리 날아올라
마지막 아껴 두었던 말은 발목뼈로 만든 것
조각조각 모래와 섞여
새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하얗게 튀어올라
눈을 뜨면
기적처럼
방황하던 발목이 돌아오고
단단한 눈물 기둥이 홀연
푸른빛 강줄기가 되어 우리 모두
검은 손을 씻으며 강가에 짐을 부릴 것 같았다
언어의 권능으로
2023년 올해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7년째,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3년째 되는 해이다. 두 분이 돌아가신 후, 내게 작은 성취와 결실이 생길 때마다 늘 먼저 떠오르는 것이 부모님 얼굴이었다. 내가 먼저 부모님께 자랑이나 보고하듯이 “아버지, 어머니, 막내가 이렇게 했어요”라고 나직이 중얼거리면, 두 분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우리 막내, 참 자랑스럽다” 하곤 하셨다. 언젠가부터 부모님은 “돈도 안 되는 시는 써서 뭐 하냐”라고 타박하지 않으셨다. 더욱이 “늦은 나이에 대학원은 가서 뭐 하냐”라고 나무라지 않으셨다. 외려, “그래, 네가 문학을 그리 좋아하니 하늘도 정말로 돕겠지”라고 응원하셨다.
부모님은 꿈속에서까지도 온몸에 총총 박혀 여러 방식의 언어로 변주되었다. 그러나, 시는 내가 내 안의 여러 질문에 쉽게 대답을 내놓지 못할 때마다 몸 여기저기를 헤집으며 아프게 했다. 때로 시 쓰기는 나라는 주체와 언어라는 객체가 극단적으로 한판 붙는 모양새로 갈등의 연속이었다. 언어는 나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고 싶어 했다. 나는 언어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언어에게 주체의 자리를 쉽게 내어주지 못해 힘들어했다. 그러나 벅찬 격랑과 참혹 끝에 나는 그 이분법적 사고의 벽장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 수 있었다. 언어에게 권능을 돌려주는 것, 그것이 내가 살아있는 거였고, 창조의 세계에서 숨 쉬는 이유와 목적이 되었다.
모리스 블랑쇼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시적 언어는 사물을 정확하게 재현하지 못한 한계에서 비롯되지만, 어떤 완벽한 하나의 시구를 찾아내어 뚫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 쓰기는 단순히 정합적인 언어를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절대적인 세계의 창조에 이르는 작업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언어가 나를 형성하는 절대적인 세계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된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언어가 나라는 정체를 주체와 객체 자리에 유연하게 위치시키면서 적당한 힘 조절을 통해 나를 밀고 당겨주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언어는 그 권능으로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의 온갖 사물들과 생명들, 지구상의 여러 목소리, 가족과 사회 공동체를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었다.
시는 생명의 원천인 부모님처럼 심신에 온통 박혀 나를 믿고 지지해 준다는 것. 그것이 시 쓰기의 고되고 환한 매력이라는 것. 내 안의 언어가 나를 버리지 않은 덕분으로 나의 오늘이 존재한다는 것. 그러므로 시 쓰기를 십수 년 오래 떠나 있었던 일을 더 이상 후회하고 반성하지 말자는 것. 내 안의 언어가 나에게 그런 아량과 포용을 가르쳐 주었다는 것. 이런 생각들이 내게 와 줘서 행복하다. 무엇보다도 문학상이라는 이름으로 시 쓰는 작업을 공식적으로 응원해 주신 문학 전문지 『시와산문』과 <이충이문학상> 심사위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