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가 - 문병란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 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긴 고행 길 멈추지 말라
인생 항로
파도는 높고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 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문병란 시집, 『법성포 여자』,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감상과 해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계곡에서 조난당했다가 구조된 산악인, 끔찍한 병마를 이겨낸 사람, 불황의 늪을 빠져나온 사람, 그리고 격렬했던 전투의 현장으로부터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군인에게서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듣습니다.
“나는 한 순간도 희망을 저버린 적이 없다.”
희망은 가느다란 실오라기처럼 연약해 보일지 몰라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효력을 발하여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늘 밝은 곳으로 인도해줍니다. 희망은 일광(日光)과 같고, 절망은 암흑과도 같습니다. “태양이 비치면 먼지도 빛난다”고 독일의 문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말했습니다. 먼지는 하찮은 존재이지만 햇빛을 받으면 찬란하게 빛이 납니다. 희망을 품을 때 우리의 얼굴은 환해지고, 눈에는 광체가 돌며, 걸음걸이는 경쾌해지고, 태도에는 자신감이 넘칩니다.
영국 시인 셸리(Percy Bysshe Shelley)는 「서풍에 부쳐(Ode to the West Wind)」에서, “겨울이 오면 봄이 어이 멀겠는가?”라고 했으며,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는 “비록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습니다.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은 한겨울에도 봄을 기다리며, 비록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차분하게 사과나무를 심습니다. 그러나 절망하는 사람은 포기하고, 슬퍼하며, 모든 것을 저주합니다. 그에게 세상은 온통 암흑뿐입니다.
희망은 언제나 우리에게 힘차게 전진하라고 속삭입니다. 희망은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생명줄입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희망은 강한 용기이며, 새로운 의지이다”라고 했습니다. 강한 용기와 새로운 의지를 가지고 고난을 뚫고 나아가는 힘이 바로 희망입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요, 희망은 생명에 이르는 약입니다. 희망은 인생의 유모(乳母)입니다. 희망은 늘 우리에게 생명의 활력소를 제공합니다. 희망의 빛깔은 언제나 푸르며, 우리에게 즐겁고 청신(淸新)한 기쁨을 선사합니다. 그래서 희망은 우리가 인생에서 공짜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입니다. ㅡ 한일동 교수의 '세계의 명시 산책' (한일동, 도서출판 동인, 2014)
/ 2020.12.29 편집 택..
[출처] 희망가 - 문병란|작성자 파랑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