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는 독립정신을 간직하고 있다
독립운동가 문일평이「사상(史上)에 나타난 꽃 이야기」에서
"무궁화와 군자인(君子人)"으로 시작한다.
“무궁화(無窮花)가 선창(嬋娼)한 애교(愛嬌)로는 장미화(薔薇花)에 미치지 못하고
결백(潔白)한 자태(姿態)로는 백합화(百合花)에 미치지 못하고
풍염(豊艶)한용색(容色)으로는모란(牡丹)에 미치지 못하나
우미청아(優美淸雅)한 기품(氣品)으로는 장미백합(薔薇百合) 모란(牡丹)이
이 무궁화(無窮花)에게 또한 일주(一籌)를 양(讓)하지 안홀 수 업다"
무궁화(無窮花)와 군자인(君子人) 사상(史上)에 나타난 꽃이야기.
“조선민족을 대표하는 무궁화(木槿, 목근)로 말하면 꼿으로는 개화기가 무궁(無窮)하다
안이할 수 업슬만치 참으로 장구(長久)하며 그 꼿의 형상(形狀)의 엄연(儼然)하고
미려(美麗)하고 정조(情操)잇고 결백(潔白)함은 실로 조선민족성(朝鮮民族性)을 그리여 내엿다.
하국(何國)을 물론하고 각 자민족(自民族)을 대표하는 꼿이 잇지만은
우리를 대표하는 무궁화(無窮花)가티 형(形)으로나 질(質)로나 적합(適合)한 것은 볼 수 업다
문일평은 1939년 호암 전집(湖岩全集)에 수록된 화하만필(花下慢筆)에서
“근세조선이 이 꽃으로서 국화를 삼은 것이 이러한 사적(史的)인 유구한 관계가 있었던 때문이다.”
무궁화를 조선의 국화로 규정하고 있다.
중국 문헌인 산해경(山海經)에서부터 무궁화가 우리 민족을 상징하였으며,
조선을 근역「權域, 이는 무궁화가 많은 땅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를 이르는 말이다.
문일평의 단어 선택에 묻어 있는 조선심(朝鮮心)을 읽을 수 있다.」
또는 근화향(槿花鄕)이라 하여 우리나라를 지칭하고 있음이 이미 오래전부터였음을 설명하고 있다.
또 그는 무궁화는 목근화(木槿花)라고도 하는 것으로 동방을 대표한 이상적 명화(名花)이다.
이 꽃이 아침에 피어 저녁에 지는데 이런 특성 때문에 조개모락(朝開暮落)이라고 하나
그 실은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시들어지는 것이니 조개 모위(朝開暮萎)라 함이 차라리 가할 것이며,
따라서 낙화 없는 것이 이 꽃의 특징의 하나로 볼 수 있거니와,
어쨌든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어지는 것은 영고무상(榮枯無常)한 인생의 원리를 보여주고
에 피기 시작하여 가을까지 계속해서 피는 자강불식(自强不息) 하는 군자의 이상을 보여 주는 바다.
그 화기(花期)의 장구한 것은 화품(花品)의 청아한 것과 아울러 이 꽃의 특징이라 할 것인바,
조선인의 최고 예찬을 받는 이유도 주로 여기 있다.
독립운동가,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 언론인, 대한 서화협회를 창립하여
예술운동에 앞장선 위창 오세창도 무궁화와 인연이 깊다.
그의 편저에 모두 무궁화 근(槿) 자를 쓴 것에는 나라를 잃은 아픔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의 저서에 사용하는 근역(槿域)은 무궁화 꽃이 피는 지역, 무궁화 동산 즉 한국을 말한다.
그는 1910년에는 근역서휘(槿域書彙) 발문을 썼다.
이 책의 발문에 "강물이 흘러 한번 기울면 오늘을 쉽게 잃을 것"이라고 적어
우리 문화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 발간 취지라고 밝혔다.
1928년에 한국 미술사 연구의 경전(經典) 격인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을 출간했고,
근역화휘(槿域畵彙) 편집, 1937년 근역인수(槿域印藪), 1943년 근묵(槿墨) 제자를 썼다
「대한민국의 나라꽃 무궁화(無窮花), 무한화서(無限花序)
무궁화를 민족의 꽃으로, 조국에 대한 영원한 사랑의 상징으로 민족의 가슴에 심어준 사람은 안창호였다.
“안창호 등이 맹렬히 민족주의를 고취할 때 연단에 설 때마다,
가두에서 부르짖을 때마다 주먹으로 책상을 치고 발을 구르면서 무궁화동산을 절규함에,
여기에 자극을 받은 민중은 귀에 젖고 입에 익어서 무궁화를 인식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말은 우리 한민족의 가슴속에 조국에 대한 영원한 사랑의 뜻으로 남게 되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 주독립운동과 함께 한 나라꽃 무궁화, 영원히 피고 또 피는꽃 무궁화
스스로 힘써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쉬지 아니하다는 자강불식(自強不息)
무궁화는 한국 국민의 국화일 뿐만 아니라 역경 속에서도 장수와 인내의 상징이다.
무궁화는 한반도 전역에서 자라며 오염된 공기, 열, 습도, 열악한 토양, 가뭄, 서리를 견딜 수 있는
튼튼한 관목으로 알려져 있다.
무궁화는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으며 한국인이 겪고 살아남은 승리와 투쟁을 상징한다.
민족과 함께 영광과 수난을 같이해 온 나라꽃 무궁화를 더욱 사랑하고 잘 가꾸어
고귀한 정신을 널리 떨치게 함에 함께 하면 어떨까
근신, 겸손, 절제 등을 의미한다.
3.1 독립운동가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1864~1953)과 근묵(槿墨)
애국계몽운동가 민족혼과 얼을 심는 서예와 전각 작품의 제작 및 고서화 자료의 편저 작업에 몰두하였다.
1945년 남한에 진주한 미군정이 조선왕조의 옥새를 대한민국에 인계할 때 국민을 대표해 인수 받았다.
해방 이후 이승만, 김구, 여운형 등이 미군정을 자문하기 위해 결성한 '민주의원 28인' 중 한 사람이다.
근묵槿墨이란 간단히 말해 한국의 묵적(墨跡)을 의미다.
구한말 이래 무궁화라는 말은 곧 조선 혹은 한국을 상징하는 말이 되는데
그 무궁화를 의미하는 槿을 제목에 붙였다.
간송미술관에 보관된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의 미술품 컬렉션 대부분이
위창 오세창(葦滄 吳世昌) 선생의 감식안으로 이루어졌다.
오세창은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 한 명이기도 하지만
서화 감식 및 수집, 전각, 서예 등에서 탁월한 발자취를 남겼다.
선생은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역대 서화가들의 글씨와 그림을 모아
‘근묵(槿墨)’ ‘근역서휘(槿域書彙)’ ‘근역화휘(槿域畵彙)’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을 편찬했다.
‘근역’은 ‘무궁화동산’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를 말한다.
근묵(槿墨)은 한국의 묵적(墨跡)을 의미하여 무궁화 槿은 무궁화 나라, 무궁화동산 우리나라를 말한다.
매우 치밀함, 신중함, 집중력, 정밀한 사고, 현실감각, 냉정한 억제, 주의력과 경계심이 있음,
근신, 겸손, 절제 등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의 국화(國花) 무궁화(無窮花)가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꽃의 강건함과 순수한 아름다움 때문이다.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근역은 우리나라의 별칭으로, 槿(무궁화 근)域은 무궁화의 나라
징(徵)은 무궁화 동산을 말한다
근역화휘(槿域畵彙) 무궁화 槿. 지경 域, 그림 畵. 무리 彙.
근역(槿域)은 무궁화의 나라, 무궁화 동산, 우리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붓을 물들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무궁화가 선택되었다.
국기봉이 무궁화의 꽃봉오리 형상으로 만들어졌고,
정부와 국회 포장이 무궁화 꽃 도안으로 채택되어 오늘에 이른다.
1963년부터는 무궁화를 감싸고 있는 한 쌍의 봉황새 무늬를 대통령 휘장으로 쓰고 있다.
그러나 한국동란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56년에 화훼연구가
조동화 씨와 식물학자 이민재 씨가 나라꽃으로서 무궁화의 부적격성을 당시 일간지에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애국 충절의 상징으로 우리민족 가슴에 국화로 인정하고 있다
애국심
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무궁
무궁
무궁화 꽃을 바라보노라면
파도가 밀려오듯이 가슴이 뛴다
무궁화
우리나라 대한민국 민족의 꽃
널리 널리 향기를 퍼뜨리는 꽃
은근과 끈기로
조상들의 얼이 담겨 있는 꽃
피고 지고 피면서 대한민국 지키는 꽃
인내의 꽃으로 피어서
모진 풍파에도 굴하지 않았어라
극복하고, 이겨낸 조상들의 삶을 함께 했어라
국민들의
가슴에 향기를 심어주는 꽃
일편단심 꽃처럼 우리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네
무궁화
평화의 태극기 휘날리듯이
영원한 세계 속의 대한민국 애국가를 부르네
늘 곁에 두고 보던 꽃이나 귀한 줄 몰랐던 꽃,
무궁화의 날을 맞아 이제라도 그 소중함을 되새기고 아끼려는 노력을 펼쳐야 할 때다.(무궁화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