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와 조정래
어수웅 주말뉴스부장
입력 2020.10.17.
이번 주 ‘노정태의 시사哲’의 주인공 철학자는 소크라테스입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죠. 나훈아의
‘테스 형’이 벌써 추석 때 얘기니까요. 정권만 바라보는 ‘개념 연예인’이 아니라 대중을 왕으로 모
시는 ‘대중 연예인’. 어록이라 할 만큼 인상적인 말이 많았지만, 훈장을 사양했다는 대목이 제게는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세월도, 가수라는 직업의 무게도 무거운데 훈장을 달면 그 무게를 어떻게
견딥니까. 노래하려면 영혼이 자유로워야 하는데, 훈장 달면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습니다.”
정부 훈장에 손을 내저었다는 대목에서 떠오른 예술가가 한 명 더 있습니다. 3년 전 일본 나가노
에서 인터뷰했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77). 아쿠타가와상으로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문학은 일
대일 예술이라며 50년째 고향 산골에서 자신의 글만 쓰는 외골수. 그는 예술가를 ‘음지 식물’로
비유하더군요. 비료를 너무 많이 줘도, 빛을 너무 많이 쪼여도 죽는다는 것. 비료는 돈, 빛은 명예.
너무 적어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둘만 추구하면 몹쓸 예술가가 된다더군요.
하나 더. 겐지는 예술가가 국가와 권력에 꼬리를 흔들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돈과 명예 추구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죠. 그래서 물었습니다. 정의로운 국가, 정의로운 권력이라면 지지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겐지는 코웃음을 치더군요. “정의로운 국가 권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독립된 존재, 자유
로운 영혼이어야 예술가다. 국가가 채찍을 내리치면 저항해야 하고, 사탕을 주면 거부해야 한다.
예술가는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감동을 줄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된다.”
원로 작가 조정래(77)의 ‘토착 왜구’ ‘일본유학’ ‘무조건 친일파’ 발언으로 뜨거운 한 주였습니다. 감
정적 소비 말고도 민족주의 등 생각할 거리가 많은 논란이었는데, 더 제 관심을 끈 건 진영 논리가
첨예화되기 전인 첫날 가장 많은 공유를 기록한 트윗이었습니다. ①안철수 후원회장에 조정래(20
12년) ②조정래 “박근혜 대통령 깜짝 놀랄 만큼 잘하고 있어”(2013년) ③이재명 후원회장에 조정래
(2014년) ④조정래 작가 껴안는 문 대통령(2020)까지 네 뉴스를 갈무리한 화면이었죠. 물론 이 역시
의도가 있는 편집이고 나중에 작가가 입장을 바꾼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가의 정치와 권력에
대한 태도, 그리고 대중이 그 태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