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선 열차가 들어가지 않는 호남선의 첫번째 역.
가도가도 끝없이 평지만 보일뿐, 산은 결코 보이지 않는 호남평야의 중앙.
우리나라 최초의 저수지가 만들어진 그 곳.
한 때 25만명의 인구를 자랑했던 대표적인 번성 농촌지였던 김제.
요새는 하도 새만금간척지 이야기가 많이 나와 김제하면 으레 "새만금"을 떠오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곳은 전형적인 호남평야의 중앙으로서 수많은 쌀이 생산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평야지대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사방에 산이라는 것이 보이질 않는 곳으로,
이 곳에 오면 사람 마음까지 한순간에 "확" 뚫려버릴 정도로 시원한 풍경을 자아낸다.
무려 KTX까지 서는 대규모의 김제역이지만,
역 내부나 역 바깥이나 의외로 사람들과 건물들로 북적이지 않는 꽤나 한산한 풍경이다.
바쁘고, 지치고, 피로한 일상을 벗어나 이렇게 탁 트인 공간으로 오니,
내 마음까지도 덩달아 탁 트이면서 한결 여유로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목포로 가는 무궁화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짐과 함께 내린다. 그리고는 각기 갈 길을 향하여 역을 떠난다.
끝도 없이 길고 넓은 승강장, 초호화 신식 LED까지 갖추고 있는 김제역이다.
하지만 아직 김제역은 KTX보다는 일반열차(새마을, 무궁화)의 이용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역이다.
하루 이용객 1,500명 중 KTX 이용객 수는 고작 전체의 1/5인 300여명 정도에 그친다.
한 편성당 수용량이 다른 어느 열차보다도 뛰어나고 속도도 빠른 KTX가 일반열차에게 이리저리 채이고 있다.
그러므로 실제로 여객취급에만 매달리는 김제역을 먹여살리는 열차는 무궁화호다.
서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가장 대중적인 열차, 무궁화호.
'김제역의 보배' 무궁화호가 호남선의 종착역, 바닷가 목포역으로 제 갈길을 간다.
열차가 올 때만 북적이고, 열차가 떠나고 나니 순식간에 김제역은 휑헤진다.
홀로 남은 파란색 역명판, 빛을 밝혀주는 전등, 웅장하게 늘어져 있는 전차선만이 김제역을 지킨다.
우리나라 철도 노선 중에 호남선만큼 역이 몽땅 줄어버린 주요 간선도 거의 없을 것이다.
시골 사람들이 모두 도시로 떠난 만큼 거의 모든 노선에서는 간이역의 폐역이 결코 낮선 일이 아니지만,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인구 유출이 심했던 전라도 지역에서는 더욱더 그런 현상이 심하다.
큰 역들만 살아남고 작은 간이역은 모조리 죽어버리는 양극화 현상이 어떤 노선보다도 심한 것이다.
익산역과 김제역 사이에는 부용, 와룡역이, 김제역과 신태인역 사이에는 감곡역이 남아있음에도,
안내판에서는 모조리 사라져버린 채 호남선의 간이역들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간다.
그래도 김제역은 명색이 지역을 대표하는 큰 역인만큼,
오히려 규모가 전보다 훨씬 커졌고 계속해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역이다.
비록 익산역과 정읍역 사이에서 맥을 못 추고 기우뚱거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예전보다 훨씬 커져 KTX까지 서는 "대형역"에 속하는 곳이다.
정말로 호남선의 "대형역"들은 별다른 특징 없이 모두가 비슷비슷한 것 같다.
아무리 KTX 때문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었다지만, 이건 해도해도 너무하다.
어떤 역을 가도 분위기가 전부 똑같고 딱히 내세울 만한 특징이 없다.
굳이 호남선 뿐 아니라 현재 보수하고 있는 대부분의 철도역들이 다들 안고 있는 커다란 숙제인 것 같다.
지역적 특색을 살려 뭔가 참신한 디자인의 역이 한 번 쯤은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KTX가 정차하는 역 답게 18호차까지 정차할 수 있는 초대형 길이의 승강장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썰렁하고 휑하기만 한 분위기일까...
고속열차 하루 이용객이 고작 300명인 김제역에 이런 것은 오히려 사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를 화물열차가 끝도 없이 길게 김제역 한 구석에 유치되어 있다.
호남선은 화물취급을 잘 안 하는 노선일텐데, 이런 화물열차가 무슨 이유 때문에 있는 것일까.
아무리 봐도봐도 주변에 높은 산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한적하고 드넓은 풍경.
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정도의 야산 몇 개가 눈에 잘 안 띌 정도로 먼 곳에 흩어져 있을 뿐이다.
군산, 익산, 김제, 전주, 부안, 정읍, 그리고 충청남도의 논산까지...
이 지역들을 찾아올 때마다 우리나라 최고의 한적한 풍경에 저절로 눈이 편안해진다.
익산으로 향한 철길은 곡선 하나 없이 쭉쭉 뻗어있다.
주변에 산이라고는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곡선이 오히려 철도의 속도만 늦추는 불필요한 요소일 것이다.
적어도 논산역을 지나서부터 천원역에 이르기까지는 호남선에게 곡선이란 "적"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신태인, 정읍방면으로는 약간의 곡선이 펼쳐진다.
시가지 때문에 일부러 방향을 틀은 거라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호남선이 김제시내의 동쪽 끄트머리를 지나가는 이상은 시가지 때문이라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수많은 선로들, 쭉쭉 늘어진 전차선, 끝없이 펼쳐진 평야...
호남선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풍경들이다.
호남선 대부분의 역들이 그렇듯 김제역도 지하도가 놓여져 있다.
깔끔하게 새단장을 한 것 처럼 보이는 승강장과는 달리,
뭔가 상당히 낡아보이고 오래되 보이는 듯하다.
그도 그럴것이 KTX 보수공사 이전부터 꿋꿋이 자리를 지키던 지하도이기 때문이다.
KTX가 개통하기 훨씬 이전부터 있던 지하도지만, 내부는 고속열차의 개통에 맞추어 꽤 고급스럽게 변했다.
사방에 붙어져 있는 빨간 벽돌과 그 위의 김제 사진들.
한쪽엔 용산, 서대전, 익산방면이, 또 한쪽엔 정읍, 광주, 목포방면의 행선판.
그 입구에 나란히 붙어있는 거울과 휠체어리프트.
어딜 봐도 별다를게 없는 전형적인 "호남선식 지하도" 이다.
그리고 그 지하도의 끝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 승강장처럼 생긴 역사 통로가 마주하고 있다.
김제역에서 열차를 타는 사람들에게 "즐거운 여행"을 선사해줄 통로인 것이다.
김제역 입구도 다른 호남선의 역들처럼 개찰구가 마련되어 있다.
좁은 역사를 최대한 활용하느라고 좁아터진 입구에 개찰구가 죽 늘어져 있으니,
왠지 답답해보일 뿐더러 좁은 입구가 한결 더 좁아보이기만 한다.
장애인용 개찰구가 하나 있긴 해도 휠체어 하나 지나가기 버거울 만한 너비이다.
역 바깥을 빠져나오면 오른쪽엔 표사는 매표소 공간이 유리벽으로 가로막혀 있다.
굳이 막지 않아도 될 곳을 굳이 막아놓아 답답해 보이기는 하지만 냉난방 하나는 끝내주게 잘 될 것이다.
표사는곳에서 승차권 뿐만 아니라 입장권, 스탬프, 종합안내소 역할까지 전부다 해준다.
나름대로 다양하고 유용하게 활용되는 셈이다.
그 맞은편에는 편하게 앉아서 TV를 볼 수 있는 맞이방과 매점이 함께 위치한다.
김제역이 상대적으로 좁은 역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공간 효율은 뛰어난 것 같다.
영등포역, 대구역처럼 역사 크기만 으리으리하고 정작 활용공간은 얼마 되지 않는 구조보다야 훨씬 나아 보인다.
김제역 광장에는 열차에서 내린 손님들을 태우고 김제의 각 지역으로 향하게 도와주는 택시들이 대기하고 있다.
나름대로 KTX가 서는 역이라고 택시승강장까지 광장 한구석에 깔끔하게 정비해 놓은 것 같다.
하지만, 승객을 기다리는 택시 수는 겁나게 많은데 비하여 정작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딱딱하고 밋밋한 사각역사의 김제역.
넓은 광장에 깔끔한 택시승강장까지 갖추고 있는 "KTX 정차역"이지만,
정작 역사는 주변의 화려한 인프라에 비하면 조금은 작은 편이다.
하긴, 역 주변에 사람들도 별로 없는데도 화려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
KTX정차, 역내외 편의시설에 있어서는 더없이 화려한 김제역이지만,
정작 역 앞의 모습은 사람 한 명, 차 한 대 지나가는 것 구경조차 하기 힘든 썰렁한 모습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김제역의 위치가 김제 시가지 동쪽 끝 지점에 있고, 이 것이 김제시내의 현재 모습이라는 것.
김제시청, 김제터미널, 김제역, 김제교육청 등 주요 시설물들이 죄다 각지에 흩어져 있는데다,
최근에 인구 10만명 선마저 무너질 정도로 인구 감소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김제에서 번화가란 없다.
도시 기반시설이 너무나도 취약해서 왠만한 생필품을 사려면 익산이나 전주까지 나가야 한단다.
명색이 "시(市)"라는 간판까지 걸고 있는 엄연한 도시인데,
그런 시(市)를 대표하는 역 앞의 모습은 왜 이리도 시골 읍내만 못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지...
김제역이 시내와 완전히 떨어져 있는 외곽에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주요 산업인 "쌀농사"에만 의지해 발전과 동떨어져 급격한 인구감소와 지독한 경기침체를 겪어야만 했던 김제.
그리고 그에 따라 덩달아 이용객 수와 역의 입지가 동시에 감소했던 김제역.
KTX의 개통으로 김제역이 다시 부활할 수 있는 엄청난 계기를 마련해 희망에 부풀어 있었지만,
KTX의 약발도 날이 갈 수록 점점 떨어져가는 추세인데다
설상가상으로 호남고속철도마저 완공되면 더 이상 고속열차는 서지 않게 될 것이다.
그 때 이후가 되면, 급격한 인구감소를 겪고 있는 김제가 하게 될 역할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김제를 대표하는 김제역이 하게 될 역할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첫댓글 쩝..마지막 멘트를 보니 김제역이 초라해보이기만 하군요..;;
김제는 익산이나 전주보다 더 작죠..군산도 작지만 김제는 더 작죠..금호산업 센트럴-김제 노선 호남선서 적자나는 노선이라 금호산업이 한때 고속터미널을 폐지할려다 김제시의 반대로 무산되었죠..
김제가 시로 승격된 때가 1989년이니 전라북도에서는 가장 늦게 시로 승격된 곳입니다. 그 이전에는 정읍과 남원이 1981년에 시로 승격되었죠. 그만큼 지역의 세가 약했다는 뜻이겠지요. 전라북도의 인구가 180만 명이 안되고 전주, 익산, 군산 인구를 합치면 약 120만 명 가량되니 다른 지역의 세는 참... 지역 발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호남지역의 맹주인 금호고속도 김제에서는 그다지 힘을 못 쓰고 있지요.
김제시 승격이, 전두환 정권 때 정치적 목적으로 이루어져서인지, 도시같은 느낌이 안 듭니다.
엄밀히 말하면 노태우 정권 때입니다. 1980년 9월 1일부터 1988년 2월 24일까지가 전두환 정권의 공식 기간이었죠.
현재 김제경찰서의 모 경찰초소에서 군복무중인 전경이에요~ 맨날 휴가 외박때마다 보는 역이라서 별 느낌이 없었는데.. 이렇게 인터넷상으로 다시 보게 되니 반갑네요..마지막 사진에서 시내방향으로 좀 올라가다 보면 유명(??)한 김제동초등학교와 조금 더 올라가면 제가 복무하는 김제경찰서가 나온답니다.. 김제시 작지만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많이들 놀러오세요. (자칭 김제홍보대사??ㅋㅋ)
옛날 KTX 개통 전에 김제 여행 왔었는데... 그 때에도 조그마한 마을이더군요 ^^;;
어릴 때는 새마을호 서는 것 보고 우와 그랬는데 지금 보니까 영 ㅡ..ㅡ;;
인구는 줄었지만, 20년에 비해 시가지는 조금 확장됐습니다. 제법 규모있는 아파트단지도 생기고요. 문제는 일자리가 다양하지 못하다는 점, 그리고 교육문제, 더 큰 문제는 김제보다 문화혜택을 누릴 수 있는 도시가 너무 근접해 있다는 것이죠. 시가지가 특별히 매력적인 면도 없고,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ㅡㅡ'
결정적으로, 교통이 너무 편리합니다. 김제와 규모가 비슷한 정읍, 남원에는 시가지가 어느 정도 있습니다만. 김제는 전주와 가까운 데다, 도로가 지나치게 넓어서 너무 휑해 보이죠(특히 외곽도로, 김제시 입장에서는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억지로라도 교통량을 시내로 몰아줘야 하는데, 도로가 너무 많아 이리저리로 흩어지죠.) 여담으로 통영같은 경우 마산과 거리가 꽤 되서, 시가지가 잘 발달되어있더군요. 결국 주변 대도시와의 거리와 소도시의 시가 발달은 반비례하는 겁니다.(지방도시의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