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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의암공원에서 제3회 춘천퀴어문화축제 '소양강퀴어운동회'가 열렸습니다. 우려하던 비와 더위 대신 등장해준 선선한 날씨와 조직위의 철저한 준비, 연대 단체들의 협조, 경찰분들의 보호 덕에 재미있고 즐겁게, 무탈하게 잘 진행되었습니다. 반대 민원을 이유로 장소 사용을 불허한 춘천시는 혐오세력들이 주장하는 볼썽사나운 모습 전혀 없이 즐겁고 평화롭게 진행된 올해 소양강퀴어를 보셨다면 부디 내년에는 장소 사용 허가를 꼭 내려주시기를 기대합니다. 개회사와 폐회사를 공유합니다.
[제3회 춘천퀴어문화축제 소양강퀴어운동회 개회사]
사랑하는 퀴어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입니다. 바쁜 와중에도 제3회 춘천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이 있지요. 또 가족을 대상으로 한 행사가 많이 열립니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5월에 열리는 많은 축제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자녀로 구성된 소위 ‘정상가족’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비성소수자이자 성역할에 충실한 부모, 그리고 피로 연결된 자녀들로 구성된 공동체만을 정상적인 가정으로 생각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동성커플이 결혼할 수 있는 권리,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결혼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손가락질당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소수자 어린이, 성소수자 청소년이 가정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과 존중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가 나서야 합니다. 결혼관계로, 혈연으로 묶이진 않았지만, 성소수자의 인권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한마음으로 함께 모여있는 우리 모두를 그래서 오늘만은 감히 퀴어가족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퀴어가족 여러분, 이번 축제는 운동회로 치릅니다. 운동회이지만 경쟁보다는 화합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땀을 흘리고 싶은 분들은 줄다리기, 경보계주 같은 단체전으로, 소소한 즐거움을 원하시면 제기차기, 고리던지기 같은 개인전으로, 쉼이 필요하시면 쉼터 부스를 통해 축제를 즐겨주세요.
오는 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입니다. 퀴어 공동체, 퀴어 가족을 위한 날이 아닐까 싶네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해온 기존 가정의 달 행사와는 다르게, 누구도 소외 받지 않도록, 누구나 존중과 연대를 느낄 수 있도록 오늘의 축제를 만들어갑시다. 따뜻함이라는 가정의 순기능을 가져와서 우리 퀴어 가족도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기로 합시다.
춘천의 ‘춘’은 한자로 봄춘(春) 자입니다. ‘봄이 빨리오는 고을’이라는 뜻인데요, 우리 고장 춘천에 찾아오는 봄처럼 성소수자 인권이 실현되는 따뜻한 봄날도 하루속히 오면 좋겠습니다. 봄날에 열리는 퀴어가족의 흥겨운 잔치, 제3회 춘천퀴어문화축제 소양강퀴어 운동회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퀴어가 힘이 넘치네!
[제3회 춘천퀴어문화축제 소양강퀴어운동회 폐회사]
제 3회 춘천퀴어문화축제 소양강퀴어운동회로 여러 프로그램과 행진에 함께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껏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이라 서툰 모습도 있었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연대한 우리 모두가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2년 전, 첫 춘천퀴어문화축제에서 우리는 팬데믹 시기라는 어려움 속에서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소양강처녀라는 상징에서 느낄 수 있는 성별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정면으로 대항하며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에 우리의 곁을 떠나간 어쩌면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했습니다. 작년 두 번째 축제에서는 소양강 물길이 연결되어 흐르듯이 우리도 연결되어 우리의 존재가 막힘없이 넘쳐흐르는 세상을 바랐습니다. 그리고 오늘 진행된 소양강퀴어운동회에서는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 존재인지를 다시금 확인하며 우리가 차별과 혐오에 얼마나 힘있게 저항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가정의 달이라는 상징을 가진 5월에 퀴어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자리에 함께 한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깊습니다. 모든 존재가 평등하고 존엄함을 외치며, 공고히 자리를 잡은 한국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을 이분법으로 규정하며 이성애만을 허락하는 사회에서 누군가는 성소수자가 어떻게 가정을 이루냐며 코웃음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런 가정이 편협하며 폭력적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퀴어가족이라는 말 자체에서 해방감과 안온함을 느낍니다.
오늘 우리는 성소수자를 포함한 여러 약자들에게 프레임을 씌워 우리의 존재를 함부로 재단하며 부정하는 이들 앞에 퀴어가족으로서 당당히 맞섰습니다. 참여자가 몇 명이든 혐오선동세력의 목소리가 얼마나 컸든 우리는 용기를 내었고 이 시간 동안 많은 감정을 마주하였습니다. 두려움과 즐거움, 슬픔과 해방감. 오늘의 이 축제가 세상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축제에 참여하며 오늘 하루를 바꾸었고, 해방과 평등으로 가는 지난한 길의 한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계속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드러낸 힘과 용기로 다시 각자의 일상을 살아갑시다. 그리고 오늘을 함께 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따뜻한 힘을 전달합시다. 앞으로도 우리의 평안한 일상을 꿈꾸며, 절대 지워질 수 없는 우리의 존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해서 드러냅시다.
마지막으로 외쳐봅시다. “퀴어가 힘이 넘치네!”
이상으로 제3회 춘천퀴어문화축제 소양강퀴어운동회의 폐회를 선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