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두 아들의 후일
창49:1-12
2026년4월1일(수)
기동찬
1.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2.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3.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4.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5.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6.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8.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야곱이 열 두 아들들을 불러 후일에 당할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1.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하나님, 야곱은 자신이 호흡하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 적으로 알았던 것 같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죽기 전에 자녀들을 불러 모아 “후일에 당할 일을”(1절) 예언하고 축복하길 원했습니다.
“후일에 당할 일”(1절)은 야곱의 아들들이 가나안에 정착해서 겪게 될 미래입니다. 또한 “후일”은 메시아의 탄생을 가리킵니다. “실로(평화를 주는 자)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10절). 여기서 “실로”는 메시아를 상징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감동에 의해서 자신의 아들 유다의 후손을 통해 세상을 구원할 왕이 오실 것을 내다 본 것입니다.
야곱은 열 두 아들의 후일을 내다보며 그들을 불러 후일에 되어 질 일들에 대하여 축복하며 예언할 수 있도록 야곱에게 기름 부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열 두 아들을 향한 야곱의 예언은 단순히 덕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들이 살아온 과거 삶의 모습에 따른 영적인 보응과, 아들들이 각자 각자가 살아온 과거의 삶을 기반으로 한 미래의 위상이 냉철하게 예언되고 있음을 선포합니다.
야곱의 첫 번째 아들 르우벤이 경우,
야곱은 르우벤을 향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4.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4절) 서모 빌하와 동침한 죄 때문에, 르우벤은 장자의 명분을 잃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회개하면 죄의 형벌은 용서 받지만 이 땅에 살면서 죄의 결과는 그대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수가 못을 잘 못 박아 뽑으면 못은 사라지지만(용서), 나무에 남은 구멍(결과)은 그대로 남는 것과 같습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아들로서 언약의 지위는 유지했지만(용서), 그러나 장자로서 가졌어야 할 영적·육적 리더십과 탁월함은 본인의 부도덕한 행동으로 인해 상실되었습니다(보응).
여기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대상5:1)고 기록합니다.
이로 인해서 르우벤 지파에는 리더십을 상실하여 후대에 사사, 왕, 혹은 뛰어난 선지자가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축복할 때에도, “르우벤은 죽지 아니하고 살기를 원하며 그 사람 수가 적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신33:6)라고 간구할 정도로 지파의 세력이 약해졌습니다.
이러한 원리를 가장 잘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이 다윗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회개했을 때, 나난 선지자는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용서), 하지만 이어서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라고 선언했고, 실제로 다윗의 집에는 자녀들 간의 살인과 반역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보응).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죄인이 회개하면 그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동시에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는 용서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심으로 영원한 멸망에는 이르지 않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육체로 심은 것은 육체로 거두게 하심으로써(갈6:7), 죄의 무게를 깨닫게 하십니다. 고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마4:4), “말씀과 기도로”(딤전4:5)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르우벤을 통해서 회개함으로 죄를 용서 받았으니 괜찮다는 안일한 생각을 갖는 것 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됨’과 ‘거룩함’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깨닫게 해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야곱의 열 두 아들의 후일 중 둘째 아들 시므온과 셋째 아들 레위는 묶어서 예언했습니다.
5.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야곱은 둘째와 셋째의 성품을 ‘분노’와 ‘혈기’로 규정했습니다. 과거에 세겜 성 사람들이 동생 디나를 욕보였을 때, 이 둘은 할례를 이용해서 세겜 성 안의 모든 남자를 잔인하게 학살했기 때문입니다(창34장).
야곱은 그 사건으로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6.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시므온과 레위를 향한 예언의 핵심은 “흩으리로다.”(7절)입니다. 축복은 모이고 번성하는 것인데, 이들은 흩어질 것이라는 예언을 듣습니다. 하지만 두 지파(시므온과 레위)의 결과는 극명하게 갈라집니다.
시므온 지파는 가나안 땅 분배 때 독립적인 영토를 제대로 갖지 못하고 유다 지파의 땅 안에서 일부를 나누어 받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누어지고 흩어진 실제적인 예’입니다. 레위 지파 또한 가나안 땅에서 영토를 받지 못하고 전국 48개 성읍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흩어짐은 ‘저주’가 아닌 ‘사명’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출애굽 당시 금송아지 사건 때 레위 지파가 여호와의 편에 서서 ‘헌신함’으로써, 하나님은 그들을 제사장 지파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영토 대신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아,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기 위해 ‘전국적으로 흩어진’ 것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같은 보응을 받았지만, 레위 지파는 회개와 헌신을 통해서 저주가 축복으로 바뀐 놀라운 사례입니다.
헌신이 축복입니다. 레위 지파의 사례는 ‘인간의 실수와 저주조차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헌신을 통해 어떻게 축복으로 바뀔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성경의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 중 하나입니다.
레위 지파가 받은 저주가 축복으로 바뀐 이유는, 금송아지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오라”(출32:26)고 했습니다. 이 때 레위 지파의 자손들은 무조건 모세 편으로 향하여 달려갔기 때문입니다(출32:26). 그 결과 하나님은 이들의 열정적인 태도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이전의 ‘폭력적인 칼’을 ‘거룩한 제사장의 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레위지파의 헌신으로 말미암아 이들은 하나님이 직접 자신들의 기업(재산)이 되어 주시는 최고의 축복을 받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헌신은 축복입니다. 헌신은 인간의 노력을 넘어 하나님께 나를 드리는 거룩한 태도입니다. 과거의 상처나 잘못된 결과(보응)이 있을지라도, 오늘 나의 당대에서 내가 하나님의 비전에 어떻게 반응하며 헌신하느냐에 따라 그 ‘흩어짐’은 누군가를 살리는 ‘거룩한 파송’이 될 수 있음을 선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레위 지파의 헌신을 통해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는 반전의 은혜를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헌신은 저주도 갈무리 할 수 있는 축복이 됨을 깨닫게 해 주신 주님을 송축합니다.
후일에 후대들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 제가 헌신 된 삶을 살아내길 원합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내게 해 주시기 위하여 제게 말씀을 통하여 제 심령에 거룩한 소원(빌2:13)을 주신 주님을 경배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하루도 주님의 손에 올려 드리며
제 삶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Declaration
헌신은 축복입니다.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음을 선포합니다.
Devotion is a blessing. I declare that it has the power to turn curses into blessings.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