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벚꽃길을 걸어 다음 목적지로 향합니다.
이제부터는 폐사지터를 향해 갑니다.
재미난 일화를 소개해주셨는데, 죄송하지만 기억이 잘 안납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신라 눌지왕 때의 충신 박제상(朴堤上)이 고구려에서 왕의 아우 복호(卜好)를 구출한 뒤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또다른 아우 미사흔(未斯欣)을 구하기 위해 왜국으로 떠나자 이 소식을 들은 박제상의 부인이
남편의 뒤를 쫓다가 드러누워 울부짖던 곳이라고 한다.
그녀가 길게 드러누웠던 모래를 장사(長沙)라고 하며, 당시 친척들이 그녀를 데려가려고 부축하니 다리
를 뻗치고 앉아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그 자리를 '벌지지(伐知旨)'라고 하였다. 현재 이곳에는 1989년
10월 석굴암연구회에서 세운 비석이 놓여 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
다음은 사천왕사의 존재를 가리기 위해 지었다는 망덕사지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비온 뒤라 미끄러운 곳은 도와주는 분이 계셔야 오르기 편합니다.
산들바람님과 추산님이 도와주셨습니다. ^^
망덕사지 당간지주
당간지주보다는 개인적으로 목탑에 관심이 많아 심초석에 더 끌리더라구요.
나중에 보게 되는 사천왕사 목탑 초석들에 특히나 더...
석재 유물에 핀 이끼들입니다. 이런 이끼가 유물 훼손을 가중시키는데요.
어느 학예사에게 듣기로는 일부러 치우기 보다는 그대로 두어서 그로 세월의 흔적을 남기게 하기도 한다고 하네요.
또 한번 난관을 극복해봅니다.
여러가지 재미가 쏠쏠합니다.
점심 먹으로 왔어요. 농가 맛집으로 상당히 유명한 집이랍니다.
기본 상차림이에요.
화장실 가면서 보니 가마가 있더군요.
요즘 제가 도자기에 관심이 쏠리는데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도자기를 보면서 갑자기 녹차를 마시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식사를 맛나게 하고 또 길을 나서봅니다.
이곳은 신라 능묘 중에 가장 완비된 형식을 갖춘 왕릉인 원성왕릉입니다.
김 선생님이 튐틀 운동하러 가셔서 해설 정순옥 해설사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간결하게 설명을 잘 해주셨습니다.
몇컷 찍은 사진은 개인 이메일로 보내드렸어요. ^^
제대로 보정을 하지 않고 보내드려 죄송합니다. ^^
아무튼 원성왕릉은 봉분을 보호하는 호석이 아주 잘 드러난 능묘라고 합니다.
특히 서역인의 얼굴을 한 무인석과 문인석, 사방을 바라보는 돌사자 등이 볼거리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좋아하는 소나무들이 많아어요. 음... ^^
아.. 소.나.무.
소나무들이 편안하게 보필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문인석과 무인석도 소나무의 보호 아래 편안해 보입니다.
말.괄,량.이. ^^
문인석 같아 보이지만 칼집이 옷 안에 숨겨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해설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 시대에는 문인과 무인의 구분이 없었다고 합니다.
익살스럽기까지 한 돌사자들의 모습.
호석에는 12지신을 새겼는데요. 돼지 같아 보여요. 제 띠거든요. ^^
각자 자기 때 찾아보는 재미마저 있답니다.
추산님은 자신의 띠인 말띠를 찾으셨습니다.
신라왕릉의 십이지신상 중에 보통 말이 정면을 지키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나무 참 좋아요... ^^
다시 올 때까지 잘 지키고 있어주세요.... ^^
오는 날 활짝 핀 벚꽃, 어느새 져 가고 있습니다.
첫댓글 저를 아는 치교정 전문의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김수로왕의 후예인
제게 괘릉 앞에 수호장처럼
서있는 근육질서역인의
피가 흐른다고들
하시더군요
분명
"서라벌에서 생긴 일"
같은
로망스가 제 선대어르신 누구에겐가
있었을거라고요ㅜㅜ
그래서
괘릉은 제게
남다른?? 곳입니다ㅋㅋ
하루나님의 어머님이
강릉김씨셔서
괘릉이 원수???의 그곳처럼
의미심장하듯 말입니다ㅋㅋ
무슨 뚱딴지같은 얘기냐고요???
대놓고 깨알자랑질인거지요 ㅋ
저도 그 선생님 의견에 한표 보탭니다^^
나는 같은 김수로왕의 후예인데..
고대 그 흔한 로멘스질조차 해보지 못 한
음전한 조상님을 만나서
종자 개량한번 제대로 몬하고...
부조같은 얼굴을 유지하고 있다니~~..
에효!!..ㅋㅋ
그래두 발견이님께 --말.괄,량.이. --
소리라도 들었으니
성격개조에는 성공했네~~ㅎㅎ
조상님~~..
감사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