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기로 눈에 보이는 먼지 건더기만 빨아 들이던 봉순이는 그것도 귀찮아서 물소가죽 딱딱한 소파에 몸을 뉘였다.
삐딱하니 꼬여 앉은 모습을 스스로 들여다 보니 아직은 매력이 남아 있는 듯 하다.
가슴은 늘어졌으나 배가 탱탱하고 엉덩이는 늘어졌지만 종아리는 탄탄하다.
'그럼 모해...'
홧김에 발길질을 했는데 그만 새끼 발가락이 물소가죽소파의 구석댕이 나무 장식에 걸렸다
"우~~~아~~~악.....아이고 ,,,발꾸락아.....~~~"
새끼발톱 남아있지도 않은데 그 나마 메니큐어 칠을 할 조그마한 자리까지 날아가 버렸다.
"아구 아파라"
거실에 앉아 아픈 발가락을 들여다 보는데 왠지 느낌이 이상 하다.
서서히 고개를 들어 보니...
"어머나...이를 어째..."
그제야 봉순이는 거실 커튼이 반쯤 열려 있는데 자신이 그 열린 거실 창을 정면으로 하고
잠옷을 입은채 다리를 벌러덩 재끼고 새깨 발가락 보는데 여념이 없다는걸 알았고 맞은 편
아파트에 검은 선글라스의 남자는봉순이의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얼른 자세를 고치는 봉순이의 양볼이 순간적으로 발그스름하게 홍조를 띄었다.
'혹시 저 선글라스가 공공칠이 썻다는 망원 선글라스는 아니겠지'
그러면서 왠지 그 사람이 망원선글라스를 끼고 자신을 관심있게 바라봐준 그런 이름 모를
사나이 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순간 뇌리를 스쳤다.
'털레 털레"
머리를 흔들며 정면은 안 보는 척 애꿎은 청소기만 최대 속도로 하여 집을 헐어내는 소리를
내며 먼지를 빨았다.
자신의 껄쩍지근한 요즘 심정까지 다 빨아 들였으면 하는 잠재의식이 발동 했나보다.
'그래,그래 ... 그래도 가을을 느낄 조그만 마음 한자락은 남겨 두거라'
봉순이의 마음을 홀라당 다 빨아들이기 직전에 청소기는 소리를 멈췄다.
커피 한잔의 시간.
커피를 거실 바닥에 놓고 풀써덕 앉았는데 어제 걸려온 화자의 전화가 생각이 난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중매 선 년이 있다면 빰 쌰데기를 갈기고 싶었는데 지 발로 찾아 왔네..
그래도 우아하게 받아야지.
"여보세여?...아아...화자 구나....아줌마 거기 방문 좀 닫아 주세여~~~~~"
"어머,어머,,,친구들이 네 소식 잘 모른다고 하더니,,,너 아줌마 까지 두고 살림 하는구나,,,,,,
기지배가 응큼하긴..잘 살면 누가 뭐랄까봐 고렇게 혼자만 앙큼을 떨며 산다니..."
"아니야,,그런거 아니고..사는게 다 그렇지..남에게 맡기면 손은 편해도 머리는 더 아파,,,,
그나저나 너 지화자 맞지?...."
"너 모르는구나,,,나 이름 바꿨어..'둘녀'..내가 성질이 좀 급했니?...이름 바꾸고 지금 신랑 만났잔아..신랑은 강남역 앞에서 치과 하는데..그 인간은 저 밖에 몰라..맨날 낚시에 골프에 요즘은
외국으루 다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아니,,그 못생긴 찐빵 망친거를 쭈그려 터뜨린 것 같던 화자년이 치과의사와 결혼을...게다가 어찌 이렇게 내 앞에서 당당 할수가...그 찌질이 화자년이...
"봉순아,,,너 내일 시간 있니?..점심 때 쯤,,,내가 점심 살께..."
"으응,,,글쎄 지금은 잘 모르겠는데 그래 알았어 .... 얼굴이나 보자.."
그래서 봉순이는 화자와 오늘 열두시 반에 삼성동 뒤켠에 있는 '또머거쥬' 라는 프랑스 요리 전문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다.
나갈까,,말까,,그래 나가자.
내가 승리자니까 다 포용 해야지.
지화자,,
아니 이름 바꿨다지
`둘녀,지둘녀 아버지가 찐빵 집 할때 자기네 찐빵을 정말 맛있게 먹는 대학생이 있다고 했다.
그 대학생이 자기를 좋아해서 찐빵을 그리 퍼 먹는다기에 그게 아니란걸 증명 하려다가
일이 꼬여서 찐빵만 퍼 먹던 대학생과 내가 살게 됐으니...징글 징글한 지금 신랑을 만나게
해준 지화자를 만나면 빰을 몇대 갈기고 싶지만 그러자니 자신의 모습이 홀라당 들어 날것
같아서 그럴수도 없고 이따가 만나면 네 덕에 지금 남편 만나서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을 할수
밖에 없는 자신을 생각하니 안에서나 밖에서나 내가 왜 이러구 살까...'
하는 생각에 커피를 냉커피 마시듯 벌커덕 먹어 버렸다.
"우~~~아~~~헉"
목구멍이 뜨거운데 눈물이 찔끔 났다.
열두시 이십분.
좀 전에 탓던 버스 기사는 카 레이서 출신 인가보다.
보통 40분 걸리는 버스 시간을 이십분이나 단축 시켜 주었다.
그 터프함이 주는 짜릿한 레이스가 마냥 싫지만은 않았지만 덕분에 십분이나 먼저 나와
기다리게 되었으니 쫌 찜찜하긴 하지만 그래도 뭐,,,그 정도는....
그러는 동안 봉순이는 저 쪽 창가에서 얼굴이 하얗고 마음이 투명할것 같은 어떤 청년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을 느끼고 있었다.
그 청년의 옆 모습이 고상한 커튼의 색감과 어울려 그 앞으로 들어오는 가을 햇살에
뽀앟게 빛났다.
"봉순아~~~~~와.....반갑다..."
조용한 식당이 떠나갈듯 평생을 따라 다니는 촌스런 이름을 일부러 그러는듯 마구 떠들어 대며
화자가 오고 있었다.
짝 붙는 반 골반 스판 청바지..총알자욱 몇개 있고 아래는 약간 퍼진 나팔 스타일 이다.
악세사리는 요즘 유행하는 은으로 간결하고 웃도리는 안에 나시를 받쳐입은 가벼운 겉옷 스타일.
겉옷은 효리의 옷처럼 짧았지만 안에 받친 나시가 아랫배를 카바를 해준다.
카바하는 틈새로 둘녀의 가무스름한 배가 보일락 말락....
길을 가다 보면 몰라 보았을것 같다.
찐빵 터뜨린걸 옥상에서 집어 던진것 같던 계집애가 이렇게 달라 지다니....
봉순이는 정장에 귀,목걸이 주렁 거리며 앉아있는 자신이 촌스러운 것 같아 겉으론 웃음을 지었지만 속이 편치는 못했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화자는 계속 입을 쉬지 않았고 봉순이는 주로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었다.
이십년전 학창시절에 찌질이 화자는 항상 봉순의 밥이었는데....
벌써 나이가 낼모레면 사십이네.
이십년의 세월이 모습을 이렇게 바꿔 놓았다.
치과의사를 남편으로 두고 펄펄 날아 다니는 빵빵한 사모님과 결국은 대학까지 나오고
찐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남편을 둔 빵빵한 빵집 아주머니로 각자의 세월을 녹이며
차 한잔 나누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도 봉순은 아직도 자신에게 계속 눈길을 주는 그 청년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있었고
그 청년도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듯 느긋하게 기다리는 그런 형국 이었다.
"얘,,,봉순아...너 남자 하나 소개 시켜줄까?"
"뭐???...남자?...!!!@@@???"
"그래,,요즘 애인 없는 여자가 어딘니..우리 남편도 외국 자주 나가는거 보니까 뭐가 있긴 있나봐"
"그런데 넌 가만 있는거니?"
"가만있는게 낫지..지발 저리니까 집에서는 더 봉사하려구 하는데..난 모른척 하면 그만이지...뭔 일 있으면 알고 있는거 들이대면 되구..."
"웅....그으래에...."
"어떄,,내가 자리 만들어 볼까?...괜찬은 남자 있는데...내 애인 친군데 참 좋은 사람이거든.."
"으으응..."
이상하다.
혼자서 집안일 다 떠 안고 일 할때는 별놈에 생각이 다 들더니만 막상 친구가 이리 말하니 참 묘한 기분이 들었고 어찌 생각하면 앞에 있는 친구의 사는 모습에 조금은 마음이 쓰였다.
그러면서도 나에게 자연스럽게 그런 인연이 찾아와 준다면 모를까,,,
일부러 그런 자리를 만들면서까지,,
게다가 친구가 소개시켜 주는 그런 인연이라면 굳이 만들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 이었다.
"우웅,,,담에,,,난 시간 내기도 힘들고...또 남편 사업도 내가 좀 도와주어야 하는 부분도 있고,,
나중에.."
"아,,맞다,,,애들이 그러더라,,네 남편 식품회사 한다구,,뭐라더라,,아,,'달떳다식품' ,,맞니?"
달떳다식품이 아니라 달떳다찐빵 이지
완곡한 거절에 화자도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았고 둘의 만남은 여기에서 종지부를 찍었다.
"봉순아 넌 어떻할래...지금 갈거면 내가 태워다 줄께....넌 차 가져왔니"
"으응,,난,,,나 좀 있다가 근처에 볼일이 있거든...여기서 혼자 조금 더 있다가 갈께..."
"그래,,그럼 심심하면 전화하고...계산은 내가 할테니까...담에 또 보자...그래..."
자리에 다시 앉은 봉순은 예전 성격이 나왔는지 계산대로 걸어나가는 둘녀에게 소리를 쳤다.
"야아~~~~...화자야.....지화자~아~아....담에 전화해라~~~~~"
예전 이름이 훨 낫다.
둘녀..지둘녀.
화자..지화자.
그녀ㄴ 이 그녀ㄴ 이군,,,,,
자리에 다시 앉은 봉순이의 볼이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저절로 생겨지는 영화속 그림 같은 만남이 나에게도 찾아 오려나.
그런게 찾아오면 그냥 모른척 받아야 하나..거절해야 하나...이를 어쩌나...
오후의 햇살은 저쪽의 창가에서 서서히 자리를 옮겨 봉순이 쪽으로 오고 있었고 아직도
그 청년은 봉순이의 모습을 계속 주시하며 아주 부드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웃음이 봉순이에게는 사춘기 소년의 수줍은 미소로 느껴졌다.
"커피 리필 해 드릴까요?"
"아,,예...고마워요....."
다시 한 모금 커피를 마시며 봉순이는 생각을 했다.
이 커피를 다 마시기전 까지 나에게 다가 올까?
아니면 그냥 쳐다 보기만 하는 걸까?
혹,,내가 거절 할까봐 부담 스러워 하나?
"주여,,저 청년에게 용기를 주소서.."
순간 그 청년이 주변의 정적을 깨뜨리며 벌떡 일어 났다.
'어머나,,,이를 어째 진짠가 봐..나 어떻해...아 몰라 몰라...'
뚜벅 뚜벅 걸어온 그 청년은 이제 나이는 서른 정도.
훤칠한 키에
투명한 피부
길게 내려오는 구렛나룻을 깍은 파란 턱밑의 피부
숫사자 같이 정열적 인 머리카락
단단해 보이는 몸.
손 등위의 불끈 나온 핏줄...아...건강의 상징이다.
편안하고 세련된 옷...택견을 하나보다.
"괜찬으시다면 제가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
봉순이는 숨이 '헉' 하고 막히는걸 느끼며 "안돼요" 라고 말했는데 '안'은 안나오고
'돼요' 만 나왔다.
"아까 부터 저쪽에서 뵙고 있었습니다."
"예에..무슨 일,......"
"남자와 여자의 사는 이야기에 꼭 무슨 이유가 있어야만 만나고 싶은 것은 아니지요,,,,,
그냥 끌려서..얼굴의 옆선이 너무 고우십니다...그래서 나도 모르게 계속 바라 보았나 봅니다.
사실은 저도 다음 스케쥴이 있었는데 아까 뵙는 순간 스케쥴 취소 했습니다.
아름다우신 분을 뵙는게 더 우선 일것 같아서요"
봉순이는 아,,이게 운명같은 사랑의 시작 이구나.
이를 어쩌나.
남편에겐 뭐라고 하지.
아이들은 어쩌지.
이 사실을 남편이 알면.
아이들이 알면.
시부모님.
친정부모님.
아,,이를 어쩌나...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콩닥 콩닥...이마엔 식은땀이 나고
볼은 빨그레지고
숨도 가빠지고
눈도 몽롱하고
아,,,이제 어쩔수 없는,,사람의 힘으로 어쩔수 없는 사랑을 해야 하나보다.
그래 조금만 만나보고 안 만나면 되지.
이런 생각을 하는 봉순이의 얼굴을 뚤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그 청년이 말했다.
"제가 앞으로 조금 다가 앉아도 되겠습니까"
어머나 매너가 좋기도 하지
왜 앞에 앉니..
차라리 옆으로 오지.
"귀를 좀...."
봉순이는 발그스름한 귓볼을 그 남자의 입 가까이 가져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제 봉순이의 귀바퀴와 남자의 입술이 거의 닿았다
숨이 가빠지는 봉순이의 마음을 흔드는 한마디가 들렸다
.
.
.
.
.
.
.
"도를 아십니까...."
갑자기 하늘이 노래진 봉순이는 한 가을 낮의 헛된 꿈을 느끼며 후들거리는 다리로 몸을
지탱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오줌 누고 속 차리자"
오늘 찐빵은 손 안닦고 만들어서 화자년 처 먹으라구 줘야겠다.
갑자기 찐빵을 만드는 남편의 두툼한 손이 보고 싶다.
봉순이를 데려가는 버스기사는 아까 보다 더한 레이싱 선수다.
달리는 버스의 창문을 열고 봉순이는 여름내 쌓인 허접한 마음들을 길에 버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들어오는 가을 바람에 비었던 마음을 든든히 채웠다.
앙꼬를 가득 넣은 찐빵 같은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린 봉순이는 오랜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장난기가 발동하여 떠나는 버스 기사에게 한마디 하고 돌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첫댓글 흐미~ 한편의 소설이 아닌가 생각하게 만드시네요. 그 사랑스런 봉순이가 왠지 아주 가깝게 느껴 집니다...
ㅋㅋㅋㅋ...글게요..가을은 독서의 계절인디 울 님들이 책을 멀리 하시니 탄님께서 책을 옮겨 놓으셨나벼요.....ㅎㅎㅎㅎㅎㅎㅎ..무지 잼나게 보구 갑니다...복 받는 하루 되시어용~~~~
쓰잘데기 없는 웬 욕심.. 시궁창에 빠지는 과오를 범하지 말고 분수에 맞게 살아야지요. 플라타너스에 쿵~!!! 푸하하하하!!!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오랜만에 뵙는것 같습니다 사실 얼마되지 않았는데도 시간이 많이 흐른것같네요 순진한 봉순이 화려한 외출하고 돌아온날이군요 좋은 흔적 자주 주시길 좋은날 되시길
아휴,,지겹고 긴글 보아 주시니 고맙습니다..이제 먹구 사는 일 하러 나가 봐야지요..좋은 하루 되세요..
ㅎㅎㅎㅎㅎㅎ... 무쟈 잼난 소설이군요. 주부들 심리전공이시용? ㅋㅋㅋ 2탄 지둘려두 되아용? ^^*
봉순이..정겨운 이름에다,,재미있게 보구 갑니다,,ㅎㅎㅎㅎ..좋은하루되세요~~^^*
그 쓰신다고 수고 하셨습니다.내용이 아주좋네요 좋은하루되세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구공탄님, 오늘 하루 행복하시길... 저도 2탄 기다릴게요.
제미있는글 잘보구갑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잼나는글이네요~~~좋은하루되세요,,,구공탄님의 닉이 참 정겹습니다,,,,
마짱에 쓰모에 지화자 봉되는디..가을에 낙엽 날아가는 소리 들리지요... 님이 다시 오심에 활기를 되찾아 보기 억수로 좋심니더...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잘 읽고 갑니다..이런것은 단편소설방 같은 곳에 있으면 더 좋겠네요...감사합니다..늘 행복한 날되세요...
재밌게 보고갑니다 ...좋은하루되세요
봉순의 외출에서 얻은것이 무언지....?가로수 프라타너스가 없었으면 가을인지 깜빡 할뻔 했네요....즐건 오후 되세요...*^*
ㅎㅎㅎ...재미있네요...지둘려 그리고 벼랑빡에 지대지마~~~^^*
모두 고맙습니다..긴 글 읽어 주시니 더욱 고맙구요..그냥 감사 드립니다..
너무 길어서 잘 뜻은 모르겠지만 무척 정감이 가는글인거 같습니다,자주 올려주세요
후..긴글 정말 재미있게 읽엇네요.친근감가는 봉순이가 거짓말까지 햇으니 낙엽이 우수수...ㅎㅎㅎ ..여자들의 묘한 심리전 잘보고 갑니다..근데 저는 고짓말하는 친구들이 젤 싫어여...^^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