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시티의 역사에는 전설적인 골키퍼가 한 명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베르트 트라우트만(Bert Trautmann).. 이름에서 알다시피 그는 잉글랜드 출신이 아닙니다.
당시 축구 선수들이 자국이 아닌 타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것이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닌 당시인지라 그의 이력은 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국적은 독일..
그로 인해서 그는 많은 핸디캡을 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장 큰 핸디캡이라면 그로 인해 당시 독일의 전설적인 감독 제프 헤르베르거의 눈 밖에 났다는 사실입니다.
헤르베르거는 독일 국내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만으로 대표팀을 구성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트라우트만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자신보다 한 수 아래였던 토니 투렉이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는 것을 라디오로 들을 수 밖에 없었으며 단 한번도 만샤프트(독일 국가대표팀의 애칭)에 선발되지 못한채 커리어를 종료하고 맙니다.
그의 기량 못지 않게 유명했던 것은 그의 승부욕이었는데 1956년 FA컵 결승전에서 그는 17분을 남기고 상대팀 버밍엄 시티의 선수 피터 머피와 충돌하여 부상을 입게 됩니다. 그 부상은 바로 목 골절이었습니다.
괜찮은거야? 병원에 가야지..
그의 기량을 나타내는 말은 이 말 한 마디면 충분할 것입니다.
월드 클래스 골키퍼는 세계에 단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은 나고, 다른 한명은 독일 출신으로서 맨체스터시티에서 뛴 트라우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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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한 주인공은 저 유명한 역대 최고의 골키퍼 '레프 야신'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실력으로 따진다면 독일 골키퍼 계보에서 제대로 이름이 알려진 첫번째 선수라고 할 수 있죠.
30년대 골키퍼라면 사모라, 플라니카, 콤비 이 3명을 일반적으로 탑으로 놓고 추가로 오스트리아의 하이덴과 프랑스의 데포 정도를 추가하죠.
여담입니다만.. 사모라가 기량은 좋았지만 애연가에 애주가인데다 게을러터져서 유망주들이 보고 배울만한 멘탈의 소유자는 아니었다고 하네요.
스페인 내전때 감옥에 들어갔는데 이 때 편하게 살 수 있던 비결이 축구 이야기로 간수는 물론 교도소장까지 포섭을 해서..
플라니카도 30년대에 A매치 73경기를 뛴 베테랑이고 콤비도 1934년 월드컵 우승 캡틴이고.. 이력은 사모라에 둘 다 그닥 딸리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