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列國誌] 138
■ 1부 황하의 영웅 (138)
제2권 내일을 향해 달려라
제 19장 춤추는 천하 (8)
천신만고 끝에 죽음의 땅 한해(旱海)를 빠져나온 제환공(齊桓公)은 전열을 재정비한 후
무체성을 향해 진군했다.10리쯤 갔을 때였다. 한떼의 군마가 저편에서 나타났다.
싸울 준비를 하려는데 한 장수가 제환공 앞으로 말을 몰아 달려왔다.
한해에서 헤어졌던 공손습붕이었다.제환공(齊桓公)은 모두 무사한 것을 알고는 군사를 합쳐
다시 무체성으로 향했다. 그들이 성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였다.
이길 저길에서 짐을 머리에 인 백성들이 줄지어 무체성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관중(管仲)이 말을 세우고 물었다."너희들은 무슨 일로 어디를 가느냐?"
"우리나라 임금이 연나라 군사를 몰아내고 무체성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산 속에 피난해 있다가 이제 성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그 말을 들은 관중(管仲)은 머릿속에 한 계책을 떠올렸다."신에게 좋은 계책이 하나 있습니다.
반드시 답리가(答里呵)를 사로잡겠습니다.“그러고는 호아반을 불러 지시했다.
"너는 군사 몇 명을 뽑아 피난갔던 백성들로 가장하여 먼저 무체성 안으로 들어가라.
그러다가 우리가 당도하거든 성안에 불을 질러 호응하라."
호아반(虎兒班)은 명령을 받고 떠나갔다.관중(管仲)이 다시 장수들을 불러 명을 내린다.
"수초는 남문을 공격하고, 연지름은 서문을 쳐라.
개방은 동문을 치되, 북문만 남겨두어 달아날 길을 만들어 주어라."
수초와 연지름과 개방이 떠나가자 관중은 또 성보와 공손습붕을 불렀다.
"그대들은 두 길로 나누어 북문 밖에 매복하고 있다가 답리가(答里呵)가 성을 버리고 도망치거든
앞을 끊고 사로잡아 죽여라."일일이 지시하고는 관중과 제환공은 무체성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웠다.
한편,
답리가(答里呵)는 성안의 불을 끄고 군마를 정돈시켰다.
그 날 밤은 유난히 별들이 반짝였다. 밤중에 문득 함성이 일어났다. 한 군사가 뛰어 들어와 보고한다.
"제나라 군사들이 성을 에워싸고 있습니다."황화(黃花)는 제나라 군사들이 한해에서 죽을 줄 알았다가
뜻밖에 그들이 왔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그는 급히 군사들을 재촉하여 성 위로 올라갔다.
그때 또 뜻하지 않은 사태가 발생했다.무체성 안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었다.
황화(黃花)는 사람을 시켜 불을 지른 자를 잡아오도록 했다.물론 불을 지른 사람은 낮에 백성으로
가장하고 성안으로 들어온 호아반(虎兒班)과 제나라 군사들이었다. 그들은 불을 지른 후
곧장 남문으로 달려가 성문을 지키던 고죽국(孤竹國) 군사들을 죽이고 성문을 열었다.
밖에서 기다리던 수초가 군마를 이끌고 파도처럼 성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황하(黃花)는 사태가 위급해지자 답리가를 말에 태운 후 함께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답리가와 황화가 2리쯤 갔을 때였다. 별안간 앞쪽에서 무수한 횃불들이 솟아나듯 나타났다.
동시에 북소리가 땅을 뒤흔들듯 사방에서 울려퍼졌다. 관중(管仲)의 지시에 따라 미리 그곳에
매복해 있던 성보와 공손습붕의 군사들이었다.답리가(答里呵)와 황화는 정신이 어찔했다.
뒤에서는 수초와 호아반이 이미 성을 점령하고 뒤쫓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앞뒤로 적을 맞은 황화(黃花)는 도망가기를 포기하고 칼을 뽑아 들었다.
그러나 칼을 채 휘두르기도 전에 벌 떼처럼 몰려든 제나라 군사들의 창에 찔려 죽어 넘어졌다.
고죽국 임금 답리가(答里呵)는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성보에게 잡혔다.
재상 올률고(兀律古)는 난전 중에 짓밟혀 죽었다.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사방은 언제 싸웠냐는 듯 고요했다.
날이 완전히 밝자 제환공(齊桓公)은 제나라 군사들의 영접을 받으며 무체성 안으로 들어갔다.
제환공은 답리가를 꿇어 앉히고 죄목을 일일이 들려준 뒤 목을 베었다.
관중(管仲)은 답리가의 목을 성문 높은 곳에 걸었다.뒤늦게 연장공(燕莊公)이 단자산에서 달려와
제환공에게 승리를 축하했다. 그런 연장공을 향해 제환공이 의연히 말한다.
"과인이 연나라의 위급함을 구하고자 천 리 먼 길을 달려와 다행히 영지, 고죽 두 나라를 무찌르고
5백리 넓은 땅을 새로이 열었소이다. 그러나 과인은 영지, 고죽 두 나라의 땅을 차지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이번에 얻은 두 나라의 영토는 모두 연(燕)나라가 다스리시오."
뜻밖의 말에 연장공은 두 손을 내저으며 사양했다.
"저는 방백의 은혜를 입어 사직을 보존한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어찌 감히 땅까지 얻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방백께서 이 땅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나 제환공은 이미 마음을 정한 듯 고개를 저었다." 이 북방은 우리 제(齊)나라와 거리가 너무 멉니다.
연장공께서 이 땅을 다스려 북쪽의 방패가 되어주시면 과인 또한 마음을 놓을 수가 있습니다“
연장공(燕莊公)은 더 이상 사양하지 못하고 영지, 고죽 두 나라 땅을 받았다.
제환공(齊桓公)은 장수와 군사들에게도 각기 상을 내렸다.이번 정벌에 많은 도움을 준 무종국에게도
소천산(小泉山)일대의 땅을 떼어주었다. 호아반(虎兒班)은 크게 감격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제환공은 5일간 군사들을 쉬게 한 후 무체성을 떠나 마침내 제나라로 돌아왔다.
중원의 모든 제후국들은 제환공(齊桓公)이 연나라를 구하고 산융을 정벌하였으면서도
한치의 땅도 탐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감복하였다.
139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