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교회의 종은 오래된 교회 역사만큼이나 교인은 물론 지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 왔다.
1930년대 중반 농촌에 시계가 보급되지 않은 귀한시절 한낮이 되면 12시 정각에 백양교회당의 종이 1분정도 울렸다.
종소리가 들리는 시간은 들녘에서 품앗이를 하던 부녀자들이 한나절에 꼭 한번 쉬는 시간이었다. 이때를 이용해 미리 젖먹일 애를 업고 나와 있던 할머니들이나 큰 아이들은 엄마에게 아기를 건네주며 그늘진 곳에서 젖을 먹이고 돌아가기도 했다.
백양교회의 종소리는 이웃 작천면 남산 토동까지 잘 들렸고 샛바람이 부는 날이면 더 멀리 작천 면소재지까지도 들려 종소리가 들리는 곳은 어느 마을에서나 정오인줄 알고 행동을 같이 했다.
주일(일요일)이 되면 정오종은 치지 않고 교회 모임종만 울려 누구든지 주일로 인식했었다. 하지만 정오를 알리던 교회종도 1942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군수물자가 부족해지자 교회종을 국방헌납이란 미명하에 강제로 빼앗가 가버렸다.
종이 없어지자 교인들은 드럼통의 일부분을 잘라내어 두들겨 울리는 소리로 정오 종소리를 유지해오다 1945년 정완석장로가 교회종을 헌납, 다시 '백양교회 종소리'는 병영들녘에 울려퍼졌다.
현재의 백양교회의 교회종은 이후 김만흠집사가 경상도 대구에서 구입해 헌납한 이후 현재까지 울려 퍼지고 있다.
1908년에 지어진 교회당..
현재에는 개조되어
사택으로 사용되고 있다.
언젠가는 복원되어 교회사에
남겨져야 할 텐데
요원한 꿈 이야기속에
머물러있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변형이
되어 겨우 내부만<천정부분>
원형으로 남았고,
벽면은 현대식으로 바꾸어졌다.
아쉬운 마음으로...
창립 제111주년을 기점으로
40%라도 복원되어 지기를
기도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