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마네킹/ 황영숙

[은하수]

마네킹/ 황영숙

저 여자의 몸은 왜 저렇게 날씬할까

사는 게 심심해진 여자 하나가

마음대로 놀아난 자기의 몸집을 내려다보며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사지를 발겨버릴까, 팔을 잘라버릴까,

모가지를 뺄까

그래도 말없이 웃고 있는 여자

불같은 질투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상처입은 짐승처럼 주위를 맴도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우아하게 차려입은 원피스를 벗기고

사지를 틀고, 팔을 비틀고

거만하게 눈부시던 그녀의 목을

사정없이 뽑아서 치워 버린다

이제 그년은 죽었다!

오오, 통쾌라! 오오, 통쾌라!

오늘의 질투는 이것으로 끝내야지

죽어야만 끝나는

오늘, 내일 그리고, 그리고......

- 시집 『은사시나무 숲으로』(한국문연,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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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가수 백지영의 한 앨범 재킷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백지영이 화보 콘셉트를 ‘마네킹’으로 잡으면서 그녀의 인형같이 완벽한 각선미가 주목받았던 것이다. 사실 사람이 마네킹처럼 너무 말라 있으면 사람같이 보이질 않는데 여성들은 어째서 마네킹 같은 다리에 뜨거운 관심을 갖는 걸까. 과연 그 마네킹의 다리가 여성들이 열망하고 남성들이 이상형으로 꼽는 완벽한 각선미이기는 할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연구한 가장 안정적이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주는 조화로운 황금비율 같은 것이 있긴 했지만 미인에 대한 기준은 시대와 나라 그리고 사람마다 관점과 느낌에 따라 다르고 또 그 기준은 천차만별이 아니겠는가.

또한 여성들의 작은 얼굴에 대한 동경은 무시무시할 정도다. 언제부터인지 남성들마저 이 조막 얼굴 선호증후군에 합류되었다. 어쩌다 여럿이서 사진이라도 찍을라치면 조금이라도 얼굴이 작게 나오려고 남녀 가릴 것 없이 죄다 뒤로 발을 빼는 바람에 가뜩이나 머리 큰 나 같은 사람은 영문 모르고 있다가 대문짝만하게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일이 종종 있다. 심지어는 '사진빨'을 위해 쇄골이 부각되도록 일부러 어깨에 힘을 주는 여성도 보았다. 한의학적 속설로는 여성은 얼굴이 작을수록 여성스럽게 보일뿐 아니라 음기가 발달되어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남성은 머리가 클수록 양기가 촉진된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근거 없는 소리인 것 같다.

과거엔 머리가 크면 머리에 든 것이 많다거나 장군감이란 소리를 듣기도 했으나 이젠 남녀 공히 얼굴의 부피와 면적을 줄이는 일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특히 여성들에겐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얼굴 크다'란 말이라고 한다. 조그만 얼굴에 마른 체형의 마네킹 같은 외모가 선망이고 질투의 대상이 된 건 왜일까. 날씬해지고 싶은 것은 모든 여성들의 공통된 소망이다. 누구나 보다 젊은 몸매, 동안의 얼굴을 갈망한다. 외모가 실생활에서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대기업의 채용 시 지원자의 외모가 면접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조사한 결과, 63%가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여성의 경우 당연히 그 비율이 더 높아진다.

그러니 잘 생긴 사람이 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쉽게 출세한다는 ‘외모지상주의’가 판을 칠 수밖에 없다. 사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은 능력으로 인정받기보다 남성적 시선을 만족시키는 신체적 존재로 규정된다. 때문에 여성이 미적 주체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말로는 외모지상주의를 타파하자, 사회 인식이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에게 유독 외모지상주의가 가혹한 이유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가부장적 남성들이 현실에서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남성 중심 사회 속에서 획일화된 여성상을 추구하는 것, 이것이 진정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욕망인지 아닌지는 고민해볼 일이다..

황영숙 시인은 나와 같은 또래로 누가 봐도 젊은 시절엔 한 미모 했음직한 추측을 가능케 하는 외모를 지녔다. ‘죽어야만 끝나는’ 아름다움에 대한 여성 본래의 끝없는 환상 탓이기도 했겠지만 옛날 ‘잘 나가던’ 시절의 향수가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아름다워지고 아름다운 사람을 원하는 욕망은 아무리 세월 가고 세상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영원불변의 소망이다. 그러나 ‘오늘, 내일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신체적 매력이 떨어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세월에는 용서가 없다. 하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마음의 정원을 잘 가꿀 수만 있다면 노화를 늦추고 외적으로도 보다 융숭 깊은 아름다움을 획득하리라.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