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제1순위
요한복음 3:16-21
나의 삶에서 선택의 1순위가 무엇입니까? 건강이 최고야 건강해야 모든 것이 의미가 있지 하면서 건강을 꼽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야 돈이야, 돈이 있어야 좋은 약도 사 먹을 수 있고, 병원에 가서 수술도 받을 수 있지 하면서 돈을 선택의 1순위로 꼽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야 가정의 평안이야 가정이 평안이 모든 것을 좋게 하는 근본이 되는 거야 하는 분들도 있고. 어떤 분들은 보람있는 일, 좋은 직장, 출세, 성공, 혹은 자녀들이 잘 되는 것 등을 선택의 1순위로 꼽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1순위로 선택하는 것들을 보면 물론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변할 수도 있고, 그것이 도리어 나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있고 나의 삶을 병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건강도, 돈도, 가정도, 자녀도, 성공도, 일도 죽는 순간에 나와 관련이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죽음 이후에도 나에게 영원한 가치가 있는 내 인생의 진정한 1순위는 없을까요? 사람들은 죽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죽는 것이 끝이라면 왜 사는 것입니까? 결론적으로 죽기 위해서 사는 꼴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과연 우리가 죽는 것으로 다 끝나는 것일까요? 성경에는 죽는 것으로 모는 것이 끝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이 다 죽기는 합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영원한 세계입니다. 천국과 지옥입니다. 구원과 멸망입니다. 히브리서 9:27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합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씀함에도 불구하고 죽은 다음에 무엇이 있기는 있어. 죽어 봐야 알지 어떻게 알아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요즈음 크리스천이나 넌 크리스천, 즉 신자 불신자를 막론하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이 적지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한 번 죽게 마련이지만 무덤 저쪽의 세계는 오랫동안 과학적으로 탐구가 불가능한 영역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므로. 그러나 죽음 이후 세계의 문턱까지 다녀온 사람들이 되살아난 경험담을 털어놓으면서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되는데요. 미국 정신과 의사인 레이먼드 무디가 만든 이 용어는 죽음의 한발 앞까지 갔다가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죽음 너머의 세계를 엿본 신비스러운 체험을 일컫는 말입니다.
1975년 무디가 펴낸 ‘삶 이후의 삶’이라는 책은 3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저자인 무디는 이 책에서 사망선고를 받은 후 소생한 환자 100명의 사례보고서를 제시했는데, 모든 임사체험에는 비슷한 요소들이 나타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같은 시기에 정신과 여의사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역시 무디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1980년 심리학자인 케네스 링은 임사체험에서 다섯 가지 요소가 똑같은 순서로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임사체험의 다섯 단계는 평화로운 감정, 유체이탈 경험, 터널 같은 어둠으로 들어가는 기분, 빛의 발견, 빛을 향해 들어가는 단계를 가리킵니다. 임사체험자는 마지막 단계에서 아름다운 꽃이 가득하고 가끔 황홀한 음악이 들려오기도 하는 등 별천지에 온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죽은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고 빛을 발하는 전능한 존재와 함께 이 땅에서의 삶을 되돌아 봅니다. 결국 임사체험자는 가족을 돌보기 위해서 또는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삶의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육신이 살고 있는 세상으로 되돌아가도록 권유받는다. 그러나 대부분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이 지금 보고 있는 그 곳이 너무 좋고 아름답기 때문이지요. 1982년 갤럽조사를 보면 미국의 성인 800만 명, 즉 20명에 한 명꼴로 임사체험을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들은 임사체험을 죽어가는 뇌에서 산소가 결핍되어 발생하는 환각일 따름이라고 일소에 부쳤습니다. 그러나 환각 이론에 허점이 적지 않습니다. 뇌의 산소 결핍으로 발생하는 환각은 혼란스럽고 두려움이 뒤따르지만 임사체험은 생생하며 평화로운 느낌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2001년 네덜란드 의사인 핌 반 롬멜은 영국 의학전문지 ‘랜싯’(Lancet) 12월 15일자에 이러한 환각이론이 옳지 않음을 입증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심장 마비 뒤에 의식을 회복한 평균 62세의 환자 344명 중에서 18%만이 임사체험을 보고했기 때문입니다. 임사체험이 뇌의 산소 결핍에서 비롯된 환각이라면 심장마비에서 의식을 회복한 모든 환자가 반드시 임사체험을 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얼마 전 미국의 저명한 내과의사 『모리스 롤링즈』(Maurice Rawling M.D)박사가 죽었다 살아난 많은 환자들을 병상에서 인터뷰한 것을 종합한 『죽음의 문 너머』(Beyond Death's Door)라는 책의 내용이 신동아(新東亞)에 소개되었습니다. 국제 심장혈관 질환의 전문가인 롤링스 박사는 임상학적으로 죽어있는 많은 사람들을 소생시켰습니다. 철저한 무신론자인 롤링스 박사는 모든 종교는 "속임수"이고 죽음은 단지 고통 없는 소멸이라고 생각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1977년 롤링스 박사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는데요. 롤링스 박사는 그의 책에서 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옥의 불꽃 속으로 내려가면서 공포에 떨며 소리치는 한 남자를 소생시켰습니다. 심장박동과 호흡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 그 환자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나는 지옥에 있다!" 그는 공포에 떨며 자기를 도와 달라고 나에게 간청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그의 얼굴에서 진짜로 두려움에 찬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죽음보다도 더 끔찍한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 환자는 극심한 공포를 나타내는 괴상한 얼굴 표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동공은 점점 커졌고 그는 식은 땀을 흘리며 떨고 있었습니다. 그의 머리카락은 쭈뼛하게 선 듯이 보였습니다. 참 놀랍지요? 심장마비 환자가 의식을 회복해서 깨어난 정도가 아니라 병이나 사고으로 인해 의학적으로 죽은 사람들조차 다시 깨어나 죽음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죽음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에 의해서 죽음이후이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보다 더 확실한 것은 성경에서 죽음이후의 세계를 말하고 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은 50년이 될 수도 있고 길면 100년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죽음 이후의 삶은 영원한 삶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즉음으로 존재 가치가 끝나는 그러한 것을 1순위로 선택하지 말고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을 1순위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죽음 이후의 세계의 두 가지 외에는 없는 천국과 지옥입니다. 우리가 죽음 이후에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 요한복음 3:16-17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은, 우리가 죄로 인해서 지옥에 가야하는 것 즉 멸망을 당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구훤하여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을 믿는 것외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18절에도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에수님을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변에 내 가족들, 내 형제 자매, 내 친척들, 내 친구들, 내 동료들, 내 이웃에 사시는 분들 가운데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이 분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것, 구원을 믿는 것, 영생을 얻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의 1순위임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본문 19절에서 21까지에는 석 절 속에 '빛'이라는 말이 다섯 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빛이 강조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빛은 누구를 말합니까? 빛은 '예수님'을 말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행여라도 빛 보다 어두움을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악을 행해서도 안됩니다. 빛을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즉 예수님을 미워해서는 안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미워해서도 안되고 예수님을 믿는 것 자체를 미워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의 결과는 멸망이요,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폭우가 와서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이 1순위로 선택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지금 떠내려 가고 있다면 가정해 봅시다. 배고프니 밥을 달라고 하는 것이겠습니까? 옷이 물에 젖어 추우니 담요를 던져 달라고 하는 것이겠습니까? 내 집에 돈이 있으니 그 돈을 잘 지켜달라고 요청하는 것이겠습니까? 내 자녀들이 잘 있는가 묻는 것이겠습니까? 내가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자랑하는 것이겠습니까? 이런 것들이 선택의 1순위가 될 수가 없습니다. 오직 1순위는 '사람 살려'입니다.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것입니다. 떠내려가는 사람을 발견한 사람들이 1순위로 선택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어야 할까요? 먹을 것을 던져 주는 것입니까? 옷을 던져 주는 것입니까? 담요을 던져 주는 것입니까? 아니지요. 무엇입니까? 밧줄을 던져 주는 것입니다. 튜브를 던져 주는 것입니다. 떠내려오는 사람이나 그 사람을 발견한 사람들 모두에게 1순위로 선택하는 것은 '생명'입니다.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전 동기 목사님이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사모님이 보니 꼼짝을 하지않는 것입니다. 경대병원응급실에 갔습니다. 뇌경색으로 혈관이 막혀버렸습니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몇시간만에 뚫었습니다. 겨우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있어서 1순위가 무엇이겠습니까? 건강이겠습니까? 가족이겠습니까? 돈이겠습니까? 남자 친구와 테이트 이겠습니까? 직장이겠습니까? 명예이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 가족에게 1순위는 사는 것입니다. 생명입니다. 우리가 지금 가장 1순위로 선택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생명입니다.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훨씬 더 크고 중요한 1순위가 있습니다. 바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는 50년 60년 100년의 인생을 살고 끝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영생을 누려야 할 사람들입니다. 오늘 나에게 있어서 1순위가 무엇인지를 살펴 봅시다. 내가 지금 까지 1순위라고 생각해 왔던 것들을 점검해 봅시다. 과연 그것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의 1순위가 맞는지 냉정하게 검토해 봅시다. 그런 다음 다시 우리의 선택의 순위를 조정하여 보람있고 의미있는 멋진 삶을 주안에서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