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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1장 29절 ~ 34절
그 날들에 그들은 "아비들이 신 포도를 먹어 그 자녀들의 이가 시큰거린다."고 다시 말하지 아니하리라. 29)
In those days they shall say no more, The fathers have eaten a sour grape, and the children's teeth are set on edge. 29)
위 29절의 In those day(그 날들)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날들이며, 마지막 때라고 보여집니다. 아비들이 신 포도를 먹어 자녀들의 이가 시린다는 말씀은 죄의 고난이 상속됨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지 아니하리라라는 표현은 유추하면 부모들의 죄로 그 자손들이 불행을 겪음을 말로 한적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백성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하더라.
마태복음 27장 25절
위의 성경구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빌라도를 협박하여 예수님을 사형하도록 하면서 스스로 선언했던 말입니다. 이 말이 바로 아비들이 신포도를 먹어 자손들의 이가 시큰거린다는 말이 성립된 것입니다. 실제로 유대민족의 자손들은 이일 이후로 지금까지 사명을 위하여 끊어지지 않으면서 고통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날들은 예수님의 초림당시입니다.
즉 사람의 씨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려지는 날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예레미야 31장 29절의 날들은 앞으로 겪게될 짐승의 씨가 뿌려지는 날들이며, 그 날들은 마지막 때로 징계와 고난이 아닌 심판이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마지막때는 사명을 위한 징계와 고난의 과정 아니라 마지막의 종결이 이뤄지는 심판이 됩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에 의한 각자에 대한 최종판결이기 때문에 부모나 자식이나 배우자와 아무런 관련없이 각자의 죄에 대한 판결을 하나님의 공의로 받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자신의 죄에 대해 심판앞에 설것이며, 그중에서 예수의 핏값에 합당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합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기준은 사람이 알 수 없고 가늠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각자가 자기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죽으리니 신 포도를 먹은 자마다 그의 이가 시큰거리리라. 30)
But every ons shall die for his own iniquity: every man that eateth the sour grape, his teeth shall be set on edge. 30)
살리기 위한 징계나 고난은 집단적, 민족적으로 주어집니다. 백신사기극이 이런 것으로 과정은 고통이지만 그 과정을 통하여 우리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징계와 고난인 것입니다. 각자의 믿음과 상관없이 백신 사기극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에는 연좌제가 있지만 심판에는 연좌제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앞에 혼자 있게 될 것입니다.
O 주가 말하노라. 보라 그 날들이 오면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니 31)
Behold, the days come. saith the LORD, that I will make a new covenant with the house of Israel, and with the house of Judah: 31)
여기서의 그날들은 예수님의 초림당시로 여겨집니다. 즉 사람의 씨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려진 날들인 것입니다.
1. 이스라엘이 바빌론으로부터 회복되는 날들
2. 사람의 씨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려져 예수님께서 초림하시어 새 언약을 맺는 날들
3. 짐승의 씨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려지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날들
이 각각 모두 다른 시기입니다.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맺는 것입니다.
만일 그 첫 번째 언약이 흠이 없었더라면 두 번째 것이 요구될 여지가 없었으리라.
그들에게서 허물을 발견하고 그가 말씀하시기를 "보라, 그 날들이 오리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히브리서 8장 7절 8절
그런데 그 새 언약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 즉 모든 민족이 그 언약에 포함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사명입니다.
O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장 16절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은 믿는 모든자를 위한 새 언약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보존된 것입니다.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주의 공의인 구원을 위하여 그들의 죄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다른 민족과 달리 소멸되지 않고 남은 것입니다.
주가 말하노라. 내가 이집트 땅에서 손으로 그들을 인도하였던 날에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따른 것이 아니니, 비록 내가 그들에게 남편이었지만 그들이 나의 언약을 파기하였도다. 32)
Not according to the covenant that I made with their fathers in the day that I took them by the hand to bring them out of the land of Egypt; which my covenant the brake, although I was an husband unto them, saith the LORD: 32)
이집트 땅에서 하나님의 손으로 그들을 인도하였던 날에 이스라엘과 맺었던 언약은 십계명입니다. 언약이란 곧 우리에게 조건을 주시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주시고 지키며 살면 생명의 언약이 실행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가 그 십계명을 받아서 산에서 내려오기도 전에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전에 맺었던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도 새 언약이 아닌 것입니다.
이전에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은 이미 파기되었고, 새로운 언약이 맺어진 것이며, 그것은 누구든지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 새 언약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주가 말하노라. 그러나 이것이 내가 이스라엘 집과 더불어 맺을 언약이 되리니 그 날들 이후로 나는 내 법을 그들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속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33)
But this shall be the covenant that I will make with the house of Israel; After those days, saith the LORD, I will put my law in their inward parts, and write it in their hearts; and will be their God, and they shall be my people. 33)
우리들의 마음속에 기록되는 주의 법은 본질의 율법을 의미합니다. 이것과 대비되는 것이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받은 십계명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기록된 형식의 율법이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본질의 율법의 적용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본질의 율법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각기 자기 이웃과 각기 자기 형제에게 말하기를 "주를 알라." 고 더 이상 가르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 모두가, 즉 그들 가운데 작은 자로부터 큰 자에 이르기까지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요, 내가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아니할 것임이라. 주가 말하노라. 34)
And they shall teach no more every man his neighbour, and every man his brother, saying, Know the LORD: for they shall all know me, from the least of them unto the greatest of them, saith the LORD: for I will forgive their iniquity, and I will remember their sin no more. 34)
이 왕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런 후에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 24장 14절
끝이 오기 위하여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는 일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지금도 진행이 되고 있으며,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하나님을 믿어라 너의 구원이 오직 그에게 있다라고 한다면 또 그소리냐?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라는 소리 지겹다고 답이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명료한 진실이며, 그 명료한 진실을 지하철 아저씨가 오염시킨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은 이미 세상의 끝에 이를 준비를 마친 것입니다.
그러나 전세계로 본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남아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북한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이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들수록 통일은 더 다가온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어느날 갑자기 일어날 것이며, 북한에 복음이 증거하는 사명은 말이 통하는 우리에게 있다고 느껴집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상태로 볼때 그일을 감당할 믿음이 있는 지는 궁금합니다. 그러나 어짜피 믿음은 각자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때 필요한 사람들을 예비해 두셨으리라고 봅니다.
다음달인 6월이 되면 코로나가 2020년 1월에 시작된 이후로 정확하게 삼년 반, 1260일이 채워집니다. 아마도 6월에 전세계적인 코로나 종식선언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백신이 짐승의 표의 모형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기간에 맞춰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지를 살펴보는 것은 앞으로 나타날 짐승의 표의 모습을 미리 보는 것이 될 것입니다.
종식선언의 이유는 확진자수가 줄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런 것입니다. 한국은 지난 주에 하루확진자가 2만4천명을 찍었습니다. 600명일때 난리친 것을 생각해보면 참 뻔뻔한 정부의 모습입니다.
정말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터널같았던 코로나가 이제 끝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가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통일도 마지막을 위하여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또 짐승의 표의 절망도 어느날 갑자기 우리를 감싸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우리가 코로나에서 목격한 것처럼 허무하게 느껴질 만한 끝이 있을 것입니다.
짐승의 표도 백신의 가장 가혹했던 기간 약 3개월정도만 힘들었습니다. 코로나 삼년 반의 기간중에 식당을 출입못하고, 백화점 마트를 제한 받던 시절은 고작 3개월입니다. 그러나 그 3개월의 중간에서는 그것이 영원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짐승의 표의 기간에서도 그 3개월을 영원으로 보고 절망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깊은 터널의 끝에 조그만 빛처럼 여기저기 힌트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를 아는 것 곧 주께서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는 것이 됩니다.
주를 아는 것은 그냥 주를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뜻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순종의 전제조건은 주의 뜻을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아무리 뜨거운 믿음을 가졌다고 해도 주의 뜻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처럼 주인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입니다. 기도보다 먼저 해야할 것은 말씀을 읽는 것이며, 혼자서 성경을 읽는 시간은 곧 주와 각자의 대화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각자가 성경을 읽는 습관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매일 조금씩 읽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성경을 읽는 습관과 진도를 가지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믿음의 힘이 갖춰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그 믿음 조차도 주께 간청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O 나는 에프라임이 이렇게 스스로 탄식함을 분명히 들었나니 "주께서 나를 징책하셨으니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책을 받았나이다. 주께서 나를 돌이켜 주소서. 그리하면 내가 돌아가겠나이다. 이는 주께서 주 나의 하나님이심이니이다.
예레미야 31절 18절
저와 당신의 기도의 시작은 에프라임처럼 죄에서부터 돌이키게 해달라고 간청부터 해야 하는 것입니다.
https://cafe.naver.com/markofbeast/10
2021년도 6월에 코로나사태의 종료에 대한 위의 글을 백신반대카페에 썼었습니다. 백신반대카페 운영자가 이 글을 삭제를 했습니다. 이유는 헛된 희망으로 더 큰 좌절을 사람들에게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짐승의 표에서도 헛된 희망을 품지 말아야할까요? 그들이 말하는 헛된 희망이라는 말에는 인내를 멈추고 절망하라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내의 방식은 우리의 생각보다 늦어지는 소망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회개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후서 3장 9절
코로나와 백신의 기간이 우리의 생각보다는 길었습니다. 길게 느껴진 기간의 열매는 많은 사람들의 백신접종이었습니다. 위 베드로후서의 말씀을 적용하면 백신기간으로 많은 사람들이 멸망하지 않고 회개에 이르게 하심인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백신을 피하여 건강한 것이 멸망하지 않음이지만 하나님의 뜻은 육신의 건강보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회개하여 영원히 멸망하지 않음에 있는 것입니다. 즉 스스로를 믿고 세상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백신을 맞고 회개함이 더 나은 선택인 것입니다.
신랑이 늦어지므로 모두 졸려서 잠이 들었는데
마태복음 25장 5절
우리에게 나타난 현실로 보면 우리의 생각보다 늦어지므로 기다리다 절망하고 포기하는 것이 잠이 드는 것입니다. 가끔 TV예능을 보면 모든 것을 다 잊고 편안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잠이 들면 고통은 잊혀지지만 참혹한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잠이 깨었을 때에는 혼인식의 문이 닫혀서 영원한 좌절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아서 좋은 것도 있으니 이 땅에서는 좌절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내하지 말고 절망하라고 하면서 동시에 잊으라고 권유합니다. 제 글을 삭제했던 운영자는 기독교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헛된 희망처럼 보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유일한 희망인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우리의 생각보다 늦어진다고 해도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며 기다립시다. 지금 우리의 현실인식은 포기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더 오래 인내하기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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