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이 있으니 행복합니다!
참고말씀: 레23:10; 신33:29; 마28:6; 눅24:2,3; 요20:6,7; 행2:14; 9:4,5; 고전15:6-8,12-20
읽을말씀: 고전15:19-20
주제말씀: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첫째,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제일 불쌍한 사람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
흔히 기독교를 무엇의 종교라고 부릅니까? 부활(復活)의 종교입니다. 어째서입니까? 기독교 복음의 핵심 중에 핵심이 곧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빼놓고선 도무지 기독교를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불신자들의 주장처럼,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시지 못하셨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
어째서입니까? 사도 바울이 고전15:12 이하에서 논증(論證)한 것처럼,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이 헛되고,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고전15:14 중) 우리의 믿음도 헛되며,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15:14 하) /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고전15:17 중) 우리가 있지도 않은 부활을 증언하는 거짓증인이 되는 셈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고전15:15 상) 죄 사함을 도무지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15:17 하)
그러니깐 부활이 없으면 세상에서 누가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까? 믿는 우리입니다. 또한 누구는 아주 망한 것입니까? 믿다가 죽은 이들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고전15:18)
둘째, 그러나 부활이 있으니 우리가 가장 행복한 사람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하지만 부활은 명백한 진리(眞理)입니다. 왜냐하면 빈 무덤과 원래대로 놓여 있었던 세마포와 수건, 5백 명이 넘는 증인들, 천사들의 증언, 사도들의 달라진 모습들 등 증거가 차고 넘치기 때문입니다.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눅24:2,3) /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쌓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요20:6,7) /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마28:6) /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15:6-8) /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행2:14) /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9:4,5)
그러니 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바로 우리 모두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일찍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으며,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신33:29 상) 부활의 참 소망에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이 같은 참여를 확신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히 그분만의 부활로 끝나지 않고,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한 첫 열매가 되셨다는 말씀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왜 첫 열매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까? 본격적인 추수의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한 것의 첫 곡식단이나 열매를 하나님께 먼저 바친 후에 곡물을 수확하였던 것처럼,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가라 것이요.”(레23:10)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께 바쳐진 부활의 첫 열매로서 모든 성도들의 부활에 대한 약속의 증표이자 예표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무엇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까? 우리가 전파하는 것이나 증언이 참되고, 우리의 믿음도 진실 되며, 우리의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었다는 점 등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부활의 소망에 참여하는 우리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임을 확신하면서, 우리의 가진 바 부활 신앙을 더욱 굳게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