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우집 소금구이
- 김선우
이상하지? 신촌 고바우집 연탄 불판 위에서 생고깃덩어리 익어갈 때, 두
꺼운 비곗살로 불판을 쓱쓱 닦아가며 남루한 얼굴 몇이 맛나게 소금구이
먹고 있을 때
엉치뼈나 갈비뼈 안짝 어디쯤서 내밀하게 움직이던 살들과 육체의 건너편
에 밀접했던 비곗살, 살아서는 절대로 서로의 살을 만져줄 수 없던 것들이,
참 이상하지?
새끼의 등짝을 핥아주고 암내도 풍기곤 했을 처형된 욕망의 덩어리들이
자기 살로 자기 살을 닦아주면서, 그리웠어 어쩌구 하는 것처럼 다정스레
냄새를 풍기더라니깐
환한 알전구 주방의 큰 도마에선 붉게 상기된 아줌마들이 뭉청 뭉청 돼
지 한 마리 썰고 있었는데 내 살이 내 살을 닦아줄 그때처럼 신명나게
생고기를 썰고 있었는데
축제의 무희처럼 상추를 활짝 펼쳐들고 방울, 단검, 고기 몇 점 맛나게
싸서 삼키는 중에 이상하지? 산다는 게 갑자기 단순하게 경쾌해지고
화르륵 밝아지는, 안 보이던 나의 얼굴이 그때 갑자기 보이는 것이었거든.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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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이 그 집인지는 잘 몰라도 내가 아는 마포 고바우집 역시 커다란 연탄화독 위에
무쇠철판을 올려놓고 구워먹는 소금구이 맛이 일품이다.
‘살아서는 절대로 서로의 살을 만져줄 수 없던’ 부위의 고기들을
철판 위에 무차별로 올려놓고 굽히는 족족 씹으면
고기의 담백한 육즙이 입안에 가득해진다.
왁자지껄한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옷에 배인 냄새로 귀가할 때
따라붙으며 흔드는 똥개의 꼬랑지가 기억에 새롭다.
철판 위에서 반지레 노릇하게 구워지는 살점들이
강하게 식욕을 당긴다는 사실에 미안했던지
시인은 그 살점들끼리 ‘그리웠어 어쩌구 하는 것처럼
다정스레 냄새를’ 풍기는 것 인양 설레발을 친다.
예쁘고 얌전한 얼굴의 시인이 참 낭창도 하지. 생명 있던 것들이
‘뭉청 뭉청’ 아무렇지도 않게 썰려나가는 판을 이리도 따뜻하고 정갈하게
축제처럼 주물 수 있다니.
시인 특유의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시선이 만들어낸
편안하면서도 강렬한 생명력을 지닌 시라 아니할 수 없다.
구체적인 이미지의 육화로 물기 가득한 긍정도 본다.
지금도 그 곳에 가면 ‘갑자기 단순하고 경쾌해지고 화르륵 밝아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서 욕망의 노예로 사는 데 급급하다가
‘안보이던 나의 얼굴이 그때 갑자기’ 보일런지도 의문이지만
신명나게 고기를 썰고 있는 현장을 보면서 소주 한 잔 마시고 싶다.
기분 좋은 사람들과 기분 좋게 도란도란 소주잔 기울이며 먹는 고바우집의 소금구이가
문득 그리워지는 빙점 언저리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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