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 적마다 궁핍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감회에 젖곤 하던 친구 A.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고, 형과 누나들에게 밀려 새 옷을 입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도 늘 자신은 남들에 비해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며 우울해했다.
몇 년 전 모임에서 지인 B를 알게 되었다. 국민학교 졸업 후 중학교 진학도 못 할 정도로 어릴적 집안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수군댔다. 그러나 사업 수완이 있었던지 어느 순간 부터 돈을 모으기 시작하여 지금은 '알부자' 소리를 들으며 멋지게 살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 속에 그는 오만해 졌고,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 며 비아냥거리는 말이 도는 모양이었다.
언젠가 친구A는 단골 식당의 주방보조로 일하는 해외 동포 여성과 몇마디 말을 나눈 적이 있었다. 받는 월급을 한 푼 안 쓰고 모두 집으로 송금한다는 그녀. 한국처럼 잘사는 나라는 없을 거라고 부러워했다. 웬만하면 자가용을 몰고 심심치 않게 해외여행을 즐기며, 원하기만 하면 외식을 할 수 있는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친구A 는 그 여성의 말을 곱썹으며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는 자가용도 있고, 맘만 먹으면 여행도 할 수 있으며, 그럴듯한 식당에서 친구들에게 밥을 살 수도 있었다. 계절에 맞는 옷으로 바꿔 입을 수도 있었고, 영화나 공연을 관람할 수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느끼는 현재의 빈곤을 합리화하기 위해 어려웠던 과거를 끌어 오는 것일까. 그래서 그는 늘 우울했던 것일까.
A는 궁하던 올챙이 적 생각에 매몰되어 있고, B는 그 올챙이 시절을 애써 잊으려 한다는 점에서 대조적이었다. 어려웠거나 부유했거나 옛날 올챙이들 모두 '현재는 개구리들이다. 불행했던 과거에 지배당해 행복한 현재를 잊고 있는 존재가 A인 반면, B는 어려웠던 과거를 애써 지워버린 채 현재에 취해 있었다.
개구리로서 삶을 열심히 살아가되 올챙이 적 삶을 잊지 않는 것. 그 '올챙이 시절'의 지혜로운 소환이야말로 A와B의 접합점이자 인생을 아름답게 꾸려가는 원동력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