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은 왜 이렇게 조용하나? 李知映(조갑제닷컴)
2019년 1월31일 6·25전쟁 영웅 백선엽 예비역 대장과 전직 국방부 장관들을 포함, 예비역 장성 450여 명이 참여한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약칭 대수장)이 출범했다. 문재인 정부의 잇따른 안보 무력화에 들끓고 있던 예비역 장성들이 2018년 ‘9·19 군사분야 남북합의서’ 체결로 폭발, 예비역 장성 단체가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대수장에는 시작부터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메이저 언론사들이 앞다퉈 대수장의 결성을 보도했고 이후 발표하는 성명마다 뉴스가 됐다.
“9·19 군사합의 폐기해야”(2019.1.30.) “훈련 없는 연합 방위태세는 ‘허수아비 동맹’”(2019.3.6.) “천안함 폭침을 ‘불미스러운 충돌’로 왜곡한 정경두 장관 사퇴하라”(2019.3.22) “정부, 핵폭탄 터져야 北도발 인정할 건가”(2019.5.6.) “공산주의자 김원봉을 칭송하는 것은 옳지 않다”(2019.6.20.) “러시아 군용기 독도 영공 침범 당시 공군의 대응 동영상 공개하라”(2019.6.29.) “韓美 핵 공유협정 체결해야”(2019.8.6.) “지소미아 파기는 이적행위…즉각 연장해야”(2019.11.13.) “도종환 의원 北미사일 옹호 발언, 與 안보실패 감추려는 궤변”(2020.4.9.) “軍 전투력 와해시킨 정경두 국방 사퇴하라”(2020.4.28.) “故백선엽 장군, 서울현충원에 안장하라”(2020.7.12.)
대수장은 안보 사안에 지속적으로 성명서를 내며 목소리를 내는 한편, 안보 정책 세미나·학술포럼 개최, 송영무·정경두 국방장관 이적(利敵) 혐의 고발, 백선엽 장군 시민 장례위 참여 등의 활동도 이어나갔다. 국가의 안보를 염려하는 예비역 장성들로 구성된 단체로는 더할 나위 없는 행적이다.
문제는 2020년 4·15총선 이후 대수장이 부정선거론에 잠식됐다는 점이다. 총선이 끝나고 보름 후, 대수장은 “여야는 4·15 총선 결과의 국민적 의혹에 대해 즉각 진상을 규명하라”는 성명서를 낸다. 문재인 정부와 당시 여당(민주당)을 향해 선거 결과와 관련 제기된 모든 의혹을 최단시간 내에, 철저히, 주도적으로, 전국민이 보는 가운데, 과학적으로 검증하라는 요구였다. 야당(미래통합당, 현 국민의힘)에는 필요한 법적 조치를 하라고 촉구했다.
시작은 ‘의혹 진상규명 요구’ 정도에 그쳤던 대수장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면서 단체의 정체성을 잃어간다. 국가 안보는 어디 가고 부정선거에 몰두, 조선일보에 “대법원은 사전투표 조작 의혹을 철저히 밝히라!”고 광고를 게재하는 한편 대수장의 공식 유튜브 채널 ‘장군의 소리’에 ‘부정선거 시리즈’ 영상을 제작해 올린다. QR코드 음모론, 사전투표 조작설, 투표지 음모론, 개표 전산 조작설 등 여타 음모론 유튜버들과 대동소이한 논조였다. “4·15부정선거를 알린다”면서 PPT파일을 제작에 배포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타 음모론 유튜버들과 마찬가지로 ‘4·15 부정선거 음모론’에 그치지 않고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부정선거론’에까지 뛰어든다.
보다 못한 재향군인회가 나서 “대수장, 美 대선 부정선거 음모론 즉각 중단하라!”(2021.1.11.)고 쓴소리를 했다. 향군은 성명서에서 “과거 국가안보를 책임졌던 예비역장성단체로서 있을 수 없는 反국가적 행동에 나서고 있는 데 대해 실망과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고 규탄했다. “미국 대선은 미국의 주권문제로 미국 국민이 결정할 사항이지 우리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며, 미국 대선 음모론 주장은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反국가 행위이고, 국가 안보의 중요한 시기에 국론분열 획책 행위는 중단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향군은 특히 “민간단체 및 유튜버들의 무분별한 주장은 정치적, 상업적 목적을 가지고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일부 예비역장성들의 무책임한 행동은 국민들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대한민국 최고·최대의 안보단체인 1천만 향군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국가안보를 저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정선거론에 몰두한 이후 유튜브 채널 ‘장군의 소리’ 운영에만 치중했던 대수장은 미국 대선이 마무리되고 장문의 공지를 유튜브에 게재한다.
<「장군의소리」가 새로운 운영체계를 갖추기 위해 잠시 휴지기를 갖기로 결정하였는바, 그동안 큰 성원을 보내주신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장군의 소리」 방송을 통해서 미국 대선 이후의 상황에 대한 영상을 올려서 시청자 여러분께 많은 불편을 드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출연진 중 일부는 바이든의 당선을 기정사실화하여 방송을 진행했고, 일부는 부정선거에 관한 내용을 방송함으로써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장군의 소리」가 출연자의 전문성을 최대한 존중했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운영체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국내에는 “21세기에 부정선거가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밝혀지고 있는 부정선거의 증거 앞에서 우리나라에 부정선거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말은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나라도 4·15 부정선거 의혹을 밝히기 위해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소리쳐야 합니다. 부정선거로 정권을 도둑질할 수 있다면 그 체제는 이미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부정선거가 있었다면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밝혀내야 합니다. 그리고 부정선거를 가능케 한 잘못된 제도는 바꿔야 합니다. 이제 애국심으로 무장한 민주 시민들이 4·15 부정선거 의혹을 밝히기 위해 나설 때입니다. 진실과 믿음의 전신갑주를 입고 정의의 날쌘 검을 들겠습니다.>
2021년 3월부터 새로운 운영진으로 ‘장군의 소리’가 운영된다는 공지가 있었지만, 이전처럼 활발한 행보는 보이지 못했다. 본체인 대수장 역시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 대수장이 나서야 했던 굵직한 이슈가 여럿 발생했으나 대수장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대수장 나름대로 신문에 의견광고를 게재하고 이따금 성명서도 발표했지만 언론은 외면했다.
지면 기사(문화일보)로 보도된 대수장의 활동은 2020년 4월28일의 정경두 국방장관 사퇴 성명이 마지막이다. 대수장이 4·15 부정선거 진상규명 관련 성명서를 발표한 게 같은 해 4월30일이니, 사실상 부정선거론에 뛰어든 이후 언론이 이들을 비중 있게 다뤄주지 않기 시작한 셈이다. 단체 결성 초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게 무색할 만큼 외면을 받고 있는 이유는 누구보다도 정보 판단에 전문성을 가진 장성들이 음모론에 현혹되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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