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은 인간이 아닌 악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과감한 압수수색과 거침없는 피의자 소환으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가 이재용 부회장의 영장청구 기각으로 박대통령 수사에 차질을 빗고 있지만 구속만 피했지 기소는 확실해 수사에 별다른 영향은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검수사가 거듭될수록 최순실씨가 나라 곳곳에 대통령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 뿐이다. 특검은 이재용 구속청구 기각과 상관없이 늦어도 다음 달 초까진 박근혜 대통령을 대면조사해야 한다며 압박에 나서고 있다. 특검은 대통령이 조사에 응하지 않은 상태에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나오면, 즉시 박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할 계획이다. 박 대통령 측은 “특검 요청이 오면 일정을 조율해 조사받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재용의 구속영장청구 기각으로 특검 조사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대통령은 검찰 수사 단계에서도 협조에서 조사 불응으로 입장을 바꾼 적이 있다. 체포영장 카드로 대통령 대면조사를 압박하는 강수를 둔 셈이다. 특검의 칼날에 박 대통령 측은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미 채택된 증거에 대해 취소해달라고 요청하는가 하면, 다시 한 번 여론전을 펼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분위기상 이른 탄핵과 동시에 대통령에 대한 체포는 정해진 수순으로 보인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현재 분위기상 빠른 탄핵과 동시에 박근혜 체포는 정해진 수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모두 4개의 수사팀으로 구성됐다. 1팀은 청와대가 최순실씨에게 각종 내부 문서를 유출한 경위와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 등 최씨 일가와 관련한 의혹을 수사한다. 2팀은 문화·체육계의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 중이다. 3팀은 ‘세월호 7시간’ 의혹과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의료 정황 등을 수사 중이며, 4팀은 박 대통령의 뇌물죄 입증을 위해 대기업들에 칼을 겨누고 있다. 70일의 전체 수사 기간 중 3분의 1가량이 지난 상황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2팀의 문화·체육계 수사와 4팀의 박 대통령 뇌물 혐의 수사다.
박근혜는 뇌물죄 피의자
특검이 일단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뇌물공여ㆍ위증 등 혐의로 청구한 구속영장 기각과는 별개로 박근혜 대통령은 ‘뇌물을 받은 사람’으로 정식 수사 선상에 오르게 됐다.
특검이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 등에게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개입된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할 지 직접적인 뇌물죄를 적용할 지는 기소 단계에서 가려지겠지만 특검의 이번 수사가 ‘국정농단 수사’에서 박 대통령의 뇌물죄 수사로 상당부분 전환하게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검이 수사를 시작하기 전, 즉 검찰이 최씨를 기소하는 단계까지는 ‘박 대통령과 최씨 측의 강요로 돈을 가져다 댄 피해자’라는 게 삼성 등 일부 기업에 적용된 프레임이었다. 검찰이 최씨 등을 박 대통령과 공모해 직권을 남용한 혐의 등으로 기소한 것이 이를 의미한다.
그러나 특검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삼성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지지를 얻는 대가로 박 대통령 측에 대한 각종 금전지원을 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삼성은 2015년 7월 25일 이 부회장과 박근혜 대통령이 독대한 직후 고위 임원회의를 소집해 승마협회 지원을 결정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같은해 8월 최 씨의 독일 개인회사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 전신)와 220억원대 승마훈련 컨설팅 계약을 맺고 9~10월 모두 78억여원을 최 씨 회사에 직접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삼성은 최 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운영하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도 16억2800만원 상당을 특혜 지원했다. 미르ㆍK스포츠재단에는 200억여원을 댔다.
국민연금은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정상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생략한 채 ‘삼성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것이 박 대통령 측과 삼성의 ‘뒷거래’에 해당하고, 이 부회장이 여기에 총체적으로 개입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관련, 특검은 최근 직권을 남용해 국민연금에 ‘삼성합병 찬성’을 압박한 혐의 등으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구속했는데, 문 전 장관은 구속 이후 특검 조사에서 ‘청와대의 지시였다’는 취지의 진술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이 부회장에 앞서 소환조사한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의 진술과 이 부회장의 진술이 불일치하는 점을 다수 확인해 증거인멸의 우려, 즉 구속의 사유 발생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됐지만 특검은 추가 보안을 통해 영장을 재청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검이 지난 5일 장씨에게서 임의제출 받은 최순실씨의 ‘제2의 태블릿PC’에 담긴 최씨 측과 삼성의 금전거래 관련 이메일 등 자료 또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데 중요한 증거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특검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건 향후 박 대통령에 대한 특검이나 검찰의 수사가 어떤 형태로 이뤄질 지를 가늠하게 한다. 뇌물을 건넨 사람에 대해서는 구속영장 청구 또는 구속을 했는데 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는 건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특검이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를 ‘경제공동체’로 간주한다는 추측도 가능해 보인다.
특검은 당초 지난 주말과 휴일 사이에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으나 사안의 복잡성과 중대성을 감안해 이날까지 고심을 거듭했다. 특검이 장고 끝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건 혐의 입증에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법원이 특검의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 기각함으로서 거센 후폭풍 또한 배제할 수는 없다.
비판하는 언론에 재갈
2팀의 문화·체육계 수사는 ‘블랙리스트’로 대표된다. 박근혜 정부가 1만 명에 가까운 문화계 인사들을 지정해 각종 지원을 중단했다는 언론 보도가 시작점이었다. 이 의혹을 수사로 이어간 특검은 청와대 차원에서 블랙리스트를 관리한 증거를 찾기 위해, 2016년 12월26일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집 등을 압수수색했다.
특검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 정무수석실 주도로 블랙리스트가 작성됐고 문체부와 그 산하기관 업무에 적용된 것으로 본다. 조 장관은 당시 대통령실 정무수석으로 일했다. 이 밖에도 특검은 블랙리스트의 실물과 문체부 직원의 진술 등 여러 증거를 확보해 1월12일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 이들이 구속되는 날에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 청와대 행정관의 집 등 7곳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특검 수사는 블랙리스트에만 머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이런 ‘리스트’를 활용한 관리가 문화계뿐 아니라 다른 여러 분야에 적용된 정황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특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는 1월10일 “(문화계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약간 정황이 있다”고 말했다. 이미 교육계에선 박근혜 정부 들어 석연치 않은 국공립대 총장 인선이 잇따라 일어난 배경에 ‘블루리스트’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특검은 정유라의 부정 입학 및 학점 특혜 의혹과 관련해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류철균(필명 이인화) 이화여대 교수 등을 구속했다. 또한 최순실씨의 조카인 장시호씨에게서 최씨가 2015년 7월부터 11월까지 사용한 태블릿PC를 확보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태블릿PC 사용자 연락처 명의는 최씨의 개명 뒤 이름인 최서원이며, 정유라씨 지원 등을 위해 삼성 쪽과 주고받은 전자우편과 각종 자료가 저장돼 있다. 태블릿PC에 담긴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수사는 더 확대될 수 있다.
김기춘-우병우-조윤선도 구속 가능성
특검은 이처럼 광범위한 수사를 하면서 ‘위증 고발 요청’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한 증인들의 진술을 분석해 수사 내용과 다를 경우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에 위증 혐의로 고발을 요청하는 것이다.
특검이 국조특위에 청문회 위증 혐의로 고발을 요청한 사람은 조윤선 문체부 장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등이다. 김기춘 전 실장, 우병우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 등은 국조특위가 나서서 특검에 위증 혐의 등으로 수사 의뢰했다.
국회 청문회에서 위증한 죄는 법정에서 위증한 것보다 형량이 무겁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을 보면 “이 법에 의하여 선서한 증인 또는 감정인이 허위의 진술(서면 답변을 포함한다)이나 감정을 한 때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벌금형 없이 징역형뿐이다. 형법 제152조에는 법원 등에서 위증한 이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보다 형량이 더 높은 것이다.
특히 위증은 증거인멸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받는 데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법원은 구속영장 발부의 주요 요건 중 하나를 증거인멸 우려로 보고 있다. 수사 대상으로 삼은 영역이 워낙 광범위하기 때문에 특검은 비교적 입증이 쉬운 위증 혐의를 적용해 피의자들의 신병을 확보한 뒤 추가로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특검은 다양한 돌파구를 마련하며 수사를 순조롭게 이끌고 있다. 하지만 난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70일로 정해진 짧은 수사 기간에 비해 밝혀야 할 의혹이 너무 많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관련한 각종 의혹과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 등에 대해서는 수사 진도가 좀처럼 나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씨 일가가 수천억원대 재산을 형성한 과정을 밝히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검찰 수사부터 법원 인사 및 징계, 각종 보수단체 관리를 한 의혹까지 밝혀내기에는 수사 기간이 너무 짧다. 여기에 아직까지 수면 아래에 있는 최경환 의원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아직 특검이 수사를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유병언 회장의 500억 대환대출 의혹이 대표적이다.
바꿔 말하면,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불법과 비리가 그만큼 거대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검 수사 기간은 30일 연장이 가능하지만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고 있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갈 길은 먼데 해가 짧다.
SundayJournalUSA 리차드 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