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원? 1500원?” 고무줄 아이스크림값… 가격 불신 커져
아이스크림 유통 구조의 이면
《점심 식사 후 매일 빙그레의 ‘메로나’를 사 먹는 직장인 백모 씨(28)는 가격표를 볼 때마다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편의점에서는 1개에 1500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는데, 바로 옆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는 600원에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옆 동네 대형마트에서는 1200원이지만, 5개 이상 샀을 때는 50% 할인해 준다. 근처 슈퍼마켓에서는 개당 850원을 책정해 놨고, 다이소에서는 메로나 같은 아이스바가 1000원이다.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대량 구매 시 개당 600∼700원 선에 살 수 있지만 배송비가 붙는다. 백 씨는 “저마다 아이스크림을 할인 판매한다고 하지만, 대체 뭐가 정상적인 가격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파는 곳마다 천차만별인 아이스크림 가격에 소비자는 혼란스럽다. 심지어 아이스크림을 제값 주고 사 먹는 건 바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나마 아이스크림 가격 자체가 저렴했을 때는 가격 차이에 대한 저항이 작았지만, 최근 아이스크림 가격이 오르며 고공행진을 하자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주부 이모 씨(58)는 “아이스크림 할인을 받으려 대량 구매를 하는데, 가격이 많이 올라서인지 할인을 받아도 부담이 작지 않다”고 했다.
● 유통기한 없어, 할인해서라도 ‘일단 팔아라’
전문가들은 유독 아이스크림 가격이 판매처별로 크게 차이나는 원인을 아이스크림의 독특한 유통 구조에서 찾는다. 여기엔 제조사와 소비자 사이에 대리점, 제조사의 지사나 영업소 등이 끼어 있다. 일반적으로 대형마트, 편의점, 기업형 슈퍼마켓은 제조사를 통해, 슈퍼마켓이나 소규모 가게들은 대리점을 통해 제품을 공급받는다.
아이스크림엔 권장소비자가격이 아예 없다. 제조사의 공급 가격은 있지만, 소비자가 지불할 아이스크림 가격은 최종 판매자가 정한다. 아이스크림은 잘 녹기 때문에 바로 소비해야 하는 특성상 제조사보다는 유통사가 가격 주도권을 더 많이 갖고 있다. 최근 편의점 4사가 롯데웰푸드(옛 롯데제과)의 아이스크림 공급 가격 인상에도 판매 가격을 동결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판매처에 따라 편차가 큰 아이스크림 가격 탓에 정찰제를 도입하려는 시도도 한때 있었다. 하지만 가격 정찰제가 도입되면 상시 할인하던 아이스크림 가격이 오히려 올라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현재 이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다.
결국 제조사, 대리점, 영업소 등이 얼마의 마진을 챙겨가려고 하느냐에 따라 아이스크림 가격이 들쭉날쭉해지는 구조가 수년째 유지되고 있다. 판매 채널을 늘리기 위해 공급 가격을 낮춰 이익률을 줄이거나 판매 촉진 비용을 지원했을 때 소비자 판매 가격도 낮아질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아이스크림은 유통기한이 사실상 무기한이라는 점도 독특한 요소다. 빙과류는 영하 18도 이하로 제조, 보관되기 때문에 미생물 증식이 어렵다고 보고 유통기한을 별도로 표시하지 않는다. 이론적으로는 소매점은 제품이 팔릴 때까지 무한정 냉동고에 진열해 놔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결국 대리점이나 영업소, 제조사 입장에서는 매출 감소를 피하고 공장 가동률을 유지하기 위해 이익을 다소 줄이더라도 매출을 늘리는 게 유리하다.
배송 과정에서 녹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채널 판매가 더 활발하다는 특징도 있다.
● 원가 30% 수준… 무인 빙과 점포는 급증
아이스크림의 원가는 할인이 적용되지 않은 가격의 3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원가율은 각 기업의 영업비밀이기는 하다. 하지만 시장에서 워낙 높은 할인율이 적용되는 상품이다 보니 여러 소비자들의 관심 속에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령 통상 할인 없이 1500원인 아이스크림이라면 원가가 450원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제품을 납품받은 소매점들은 저마다의 여건에 맞춰 가격을 책정한다. 인건비가 거의 없고 초기 투자비가 적은 무인 아이스크림 점포는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이익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쓴다. 일반적으로 아이스크림 무인 점포는 33㎡(약 10평) 기준 3000만∼4000만 원의 초기 비용이 들고, 월 70만∼80만 원 수준의 전기요금 정도가 유지비의 전부다. 낮은 유지비용 덕분에 전국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 수 추산치는 2020년 말 약 2000개에서 올해 5월 말 기준 7000여 개로 급증했다. 무인 점포 운영자들은 “아이스크림 값이 저렴해 보이긴 하지만 손해보며 판매하진 않고 있다”고 했다.
편의점이나 대형마트는 개당 가격을 비교적 높게 책정하는 대신 대량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1+1’(1개 구입 시 1개를 더 줌)과 같은 묶음 판매를 늘리는 전략을 쓴다. 편의점은 인건비 등이 반영돼야 하기 때문에 무작정 가격을 낮출 수 없기 때문이다.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아이스크림을 쉽게 살 수 있게 제휴 할인, 묶음 판매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식자재 마트 등은 할인율이 높은 아이스크림을 미끼 상품으로 내세워 소비자들의 방문을 유도하고, 다른 품목 판매를 통해 마진을 만회하기도 한다.
● “가격 경쟁은 긍정적” “합리적 수준에서 차이 나야”
아이스크림은 ‘늘 할인가로 저렴하게 판매되는 상품’이라는 인식 때문에 소비자들은 가격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최근 아이스크림 가격은 과거보다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6월 아이스크림 가격은 1년 전보다 9.4% 올랐다. 특히 3월에는 13.7% 오르며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5월(14.3%) 이후 14년 만에 가장 큰 상승률을 보였다. 빙그레와 해태아이스크림이 올해 3월 제품 가격을 올렸고, 롯데웰푸드도 7월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빙과업계는 아이스크림 원료가 되는 우유 가격이 5년 전인 2018년보다 14.7% 올랐다고 강조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5월 설탕 가격지수가 157.2로 네 달 사이 34.9% 올랐다는 점도 가격 인상의 이유로 꼽는다. 원재료 외에 인건비, 전기요금, 물류비, 가스비, 포장재 비용 등도 모두 올랐다고 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이 롯데와 빙그레의 양강 구도로 재편되면서 가격 경쟁이 덜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격 인상으로 아이스크림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은 아동 인구 감소, 커피 등 다른 대체 디저트류의 확산으로 쪼그라들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무인 매장 증가 덕분에 반등에 성공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과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2021년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 규모는 1조8150억 원으로, 2020년(1조7270억 원) 대비 5.1% 늘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는 감소세였다. 하지만 가격이 크게 오르게 되면 아이스크림이 필수재는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관련 소비를 줄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판매처마다 가격 차이가 나는 현상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들은 같은 제품이라면 저렴한 곳으로 몰리게 되고, 이는 건전한 경쟁을 촉진한다”고 했다. 하지만 소비자 권익을 위해서는 과도한 가격 편차는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는 저렴할수록 좋지만, 소비자별로 정보 격차가 있고 지역별 접근성도 다른 점을 고려하면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가격 차이가 나는 게 합리적”이라고 했다.
정서영 기자, 송진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