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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조선의 실체와 비판하는 이유
우리가 이성개조선을 준열하게 비판하는 것은 이조선의 거꾸로간 역사 때문에 결국 현재 우리가 이런 사회구조와 폐습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어떤가, 한마디로 요약하면 부정부패, 비리로 점철된 재벌과 대기업과 조중동등 언론재벌이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군림하고 이들은 미제와 일제에 의지하여 모든 권력을 쥐고 절대 다수 인민들을 착취하고 있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말해주는 상징성은 이조선정권이 했던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이래 정치적으로는 미제일제에 의지하고 있고 사상적으로는 기독교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으며, 학문과 철학 등은 서구 특히 모두 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명박정권들어 청년실업률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데도 재벌등 이 나라 경제력을 거의다 쥐고 있는 세력에게는 부담을 주지 않고 법인세 인하, 재벌수퍼등 혜택을 다주고 노동법을 더욱 개악하여 절대다수 서민들에게 부담을 시키고 있다. 하루 평균 40명이 살기 어려워 자살하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이런데도 박근혜는 오늘도 서민들 위하는 것이라며 노동법 개악을 빨리하라고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구한말 현상과 완벽하게 닮아 있다. 구한말 우리 사회의 실정을 정확히 기술한 1차사료가 차고 넘친다. 그 중에서 서양인이 제3자의 입장에서 기록한 수많은 여행기, 탐사기 등을 보면 지금의 민초들의 실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상대적인 부의 차이만 있을 지언정, 공히 느끼는 삶의 무게는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망이 보이지 않고 평생 가진자 밑에서 그들의 충실한 노예노릇을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때는 신분으로 강요하였고, 지금은 극단적으로 편중된 부, 돈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역사책 잘 팔리는 이덕일이 '노론세력'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 노론 세력이 왜구난동기 친일파를 거쳐 그대로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실증하고 있다. 우리 국사책에 흐르는 사관이 노론사관이라고 한다. 이는 이조사관을 말한다. 이조선의 세계관으로 우리는 어렸을 때 부터 역사를 배우며 그 세계관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살아가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당연히 일제가 심어놓은 사관도 동전의 양면처럼 녹아 있다.
이조선은 굳이 여기서 상세하게 나열을 않더라도, 지나명나라를 상국, 어버이나라, 심지어 신으로 섬기며, 자기정신을 버리고 공자유교 성리학,주자학등으로 통치이념을 삼고, 정치, 경제,문화, 군사 등 모든 면에서 강요하며 1당전체주의 체제로 이끌며 500년이 넘게 사대노예근성을 이 땅에 심어 놓았다. 단군이 아닌, 중국인 기자를 사실상 국조로 모시고, 작은 중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조선 개창의 핵심 정도전의 삼봉집을 보라, 그리고 이조실록을 보라, 그리고 이조양반들이 남겨놓은 헤아릴 수 조차 없는 문집류 등을 보라, 또 헤아릴 수 조차 없는 이조관련 비석등 유물들을 보라, 사대노예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태종때부터 지금 평양에 있었다는 단군사당을 다 때려 부시고 대신에 존재하지도 않은 기자사당과 묘를 설치여 숭배하고 있다. 나중에 황해도 지방에 괴질돌아 끝없이 민초들이 죽어 나가자, 단군사당을 철폐했기 때문이라고 상소하자 그제사 마지 못해 기자사당 근처에 형식적으로 만들어 놓는다. 즉 기자가 중심이고 단군은 들러리로 세워 놓은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주인되어 살아 가는게 아니라, 남의 나라에 자기를 의지하여 그 그늘밑에서 그들이 하라는 데로 따라가겠다는 것이 이조선의 국시요, 역사였다. 이러한 정책은 이조5백년간 그대로 증명된다. 그래도 이조 초반기는 껍데기만 조선이었지 사실 모든 면에서 여전히 고려의 기운이 살아 있었다. 특히 무기체계나 군사력은 고려의그것이었다. 그래서 세종때 이를 바탕으로 영토를 넓혔다고 하고 대마도를 정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국 어버이나라 명나라 정책을 따라가면서 할일 없는 양반지배세력은 공허한 공자교 사상적 논쟁으로 빠져 들었고 각종 사화가 일어나고 파당을 만들어 논쟁하며 국력을 소모하였다. 더욱 처참한 것은 명나라를 따라 바다를 봉쇄해버리고 이에 따라 섬도 텅텅비워버리는 공도,해금정책을 5백년간 지킴으로써 명나라나 왜외에는 바깥세상과 담을 쌓아 버렸다.
이 15세기~18세기는 징기스칸의 세계제국이 세계화를 이뤄 세계경제가 활황을 타고 잠든 유럽을 깨운 뒤였다. 기독교 암흑시대속에서 유럽의 패쇄공간속에서 기독교 세계관으로 살던 유럽인들은 칭기스칸의 세계제국을 통해서 나침반, 종이, 화약기술을 습득하였다. 칭기스칸의 제국이 망하자 세계는 다시 소제국별러 분리되고 고립되었다. 특히 명나라는 중원을 고립시키는데 일등역할을 해 버렸다. 이렇게 되자 서양 유럽은 심각한 경제난에 허덕이고 결국 몽골제국을 통해서 얻은 지식을 가지고 인문과학의 부흥, 즉 이른바 문예부흥을 일으키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각지로 시장확보에 나선다. 이것이 이른바 대항해 시대이며 이를 바탕으로 서양은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제국주의시대를 연다.
그런데 이 시기에 동양에서는 명나라를 중심으로 세계에 활짝열린 원제국 시대와는 정 반대의 길을 걷는다. 이조선도 이에 따라 완전히 폐쇄된 시대를 이어간다.
만약에 명나라가 서던 말던 고려가 그대로 살아 남아 있었다면 세계는 지금 쯤 우리가 지배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이성개의 위화도회군 반란을 국사광복단 삼태극에서는 그렇게 준열하게 비판하는 것이다. 굳이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을 꺼낼 필요도 없이 고려의 대해양정책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에 따라 고려의 선박은 당대 세계최강을 자랑하였다. 고려말에는 함선에 대포를 세계최초 장착하여 함포사격까지 할 정도였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왜구 2만이 타고 왜선을 모두 전멸시켜버렸다. 지금의 군산 앞바다라고 한다. 당시 서양은 이런 배를 꿈도 못 꿨다. 려몽연합군이 왜를 정벌할때 고려의 군함은 태풍에도 끄떡 없었다. 원나라 군함만 다 박살났다. 더구나 일본 소우기라는 책에는 당시 고려 전함에서는 말 달릴만하다고 까지 했다. 당시 고려제국의 해외활동범위를 보면 지금의 사우디 아라비아 까지 갔다. 그 시대에 그렇게 원거리 해상활동을 하는 나라는 아랍의 일부외에 없었다. 유럽은 기독교암흑시대였고 지구가 네모지다고 여기던 때였다. 고려가 국제교역으로 얼마나 부를 축적했는지, 예종때는 지나,송나라에서 더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했을 정도다. 또한 고려는 당시 세계최고의 지식정보강국이었다. 목판은 물론 금속활자까지 세계최초로 개발하여 출판대국을 이루고 있었다.
고려의 해상국제무대교역로
고려는 몽골제국과 근 40년간의 전쟁을 했다. 국력이 뒤 받침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강화를 했지만 사대노예주의 사관에서는 고려가 항복한 것으로 알지만 강화조약할 때 그 항목을 보면 도저히 항복한 국가가 아니다. 당시 고려를 배신하고 원나라에 들러 붙은 홍복원 같은 매국노를 명단 작성해서 고려에 송환하라는 항목까지 나온다. 또한 고려황제가 입조하라는 원나라의 요구를 묵살하고 태자가 대신 가겠다고하고 그 시기도 고려가 임의로 정한때 가겠다고 한다. 무엇보다 먼저 고려에 들어온 몽골군대를 모조리 철수 시키라고 한다.
결국 고려와 몽골제국은 혼인동맹을 맺는다. 원나라 왕의 딸을 고려 태자에게 시집보냄으로써 고려의 저항을 누그려 뜨렸다. 그러나 결국 공민왕때와서 고려는 본래의 모습을 회복한다. 지금의 만주 북간도 지역과 요동까지 기마군단을 이끌고 가서 고토를 회복한다. 이것은 고려사와 용비어천가등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아마도 고려 개국당시의 최소한의 강역으로 판단된다. 원나라에 직간접적으로 뺏긴 실제영토를 회복한 것이다. 그러나 사대노예반도사관에서는 의주와 원산선을 그어 놓고 그게 고려의 영토였다고 국사책에서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고려이기 때문에 거란의 요를 제압했고, 세계제국 몽골에게도 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자주, 주체, 주인정신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다. 특히 고려는 강함찬의 경우에서도 보이듯이 우리의 고유선도 사상으로 무장하였다. 겉으로는 불교가 주축이고 유학등 외래 사상이 지배했다고하지만 여전히 고구려의 조의선인과 같은 선도에 바탕을 둔 우리의 풍류사상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거란전쟁에서 거란군을 괴멸시킨 주력도 알고 보니 재가화상이라고 하여 조의선인의 후예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서긍의 고려도경과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등에서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조선을 보라, 임진왜란에서 어떻게 했으며, 병자호란에서 어떻게 했는가, 자주,주체, 주인정신의 자기정신을 버리고 사대노예근성이 지배하고 있는데 외침에 어떻게 자주적으로 대처를 하겠는가, 그나마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고려함선에 기초를 둔 판옥선을 전쟁직전에 준비하여 전쟁을 완전히 말아먹지는 않았다. 이것도 당시 이조정권이 반란을 의심하여 수군을 홀대하여 목재만 다 준비해 놨다가 전쟁 발발 바로 직전에 급하게 조립하여 판옥선을 건조했다고 한다. 이 전쟁은 결국 이조선정권은 빠지고 명과 왜가 주도하여 싸우게 된다. 조선군은 이들의 작전에 투입되는 들러리 수준이었다. 지휘권은 모두 명나라가 갖고 있었다.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수백년후 6.25전쟁에서 되풀이된다. 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은 미군에게 살려달라고 요청하고 곧 바로 전쟁작전권을 미제에게 넘겨 버린다. 그리고 3년여간의 기나긴 전쟁이 계속된다. 이에 따라 휴전을 할때도 휴전당사자는 미국등 유엔군이 되어 버려 지금까지도 우리는 전쟁을 종결할 권리가 없다. 미국에게 달려 있다. 그 작전권을 노무현때 2012년 회수하겠다고 한미간 약정되었는데, 이명박이 들어와서 연기하고 이제는 언제 회수할 지 알수 없게 되었다. 어디 감히 이 신의 땅에 나라를 지켜주겠다고 외국군대가 수도서울을 차지하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고려시대까지 이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조선시대는 이게 상식이었고 그 연장 선상에서 지금은 미군이 들어와 있다.
결국 이조선정권은 왕족과 양반지배세력의 영달과 탐욕을 위해 남의나라에 국가의 운명을 맡겨 버리는 사대노예근성으로 국가를 세웠고 그런 이념에 따라 이조 5백년간 피폐된 체제를 이어갔다. 구한말 서양인들이 기록한 1차사료에는 거의 하나같이 아지까지 저런 왕국이 존재해왔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 근원을 중국의 속국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며, 국왕과 양반지배세력의 호위호식을 위해 전제 백성을 착취학대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얼마 안되는 노비들이 왕과 양반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비꼰다. 구한말 토호들이 얼마나 민초들을 뜯어 먹었는지 그 토호를 방문하여 대접을 받은 이사벨라 비숍이 쓴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일단 비숍여사는 양반관리지배계급을 기생충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주인마님은 남아프리카의 반지를 끼고 있었고, 남편은 스코틀랜드 위스키와 프랑스의 샴페인과 꼬냑을 두루갖춘채 스코틀랜드 시거를 물고 있었으며,집안은 수단제 카페트를 깔고 벽에는 프랑스제 시계와 독일제 거울이 걸려 있었고 탁자는 미국에서 수입한 것이었다."
위 기사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러한 역사를 이어온 이조선정권이기에 이조선의 실체를 바로 알리고 다시는 이러한 비참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자고 이조선을 비판하는 것이다.
참고사항: 세계적인 해양사상가이며 미국의 해군제독이면서 역사학자인 A. T. Mahan(1841-1914)는 그가 집대성한 해양이론인 The Influence of Sea Power upon History(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영국이 세계제국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다름아니라 해양에 대한 지배라고 결론지었다. 이후 이 교재는 미국의 대해양정책에 그대로 반영되어 미국이 바다를 지배하게 되고 결국 오늘날과 같이 세계제국이 되게 하였다.
2. 이조선은 대륙을 지배한 적이 없는 반도 이조선이다.
대륙을 이조선이 지배했고 제국으로 이어갔다고 하는 대륙이조선의 원조로 보이는 김종윤은 이조실록등 각종사서나 서양선교사 특히 임진왜란 때 왜군과 함께 온 세스페데스등의 기록을 들며 이조선이 대륙에 있었다고 한다.
김종윤이 주장하는 대륙이조선 증거라고 드는 것 중에 반도이조선에서는 볼 수 없다는 동물과 식물이 있다. 김종윤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태종에게 항복하고 조공 물품으로 보내는 것 중에서 '물소뿔,담지가죽,사슴가죽,수달피,蘇木소목' 등이 나오는데 이는 대륙에서나 나올 법한 것이지 이 반도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병자호란은 대륙에서 일어났다는 식으로 주장한다(김종윤/한국인에게 역사는 있는가,/책이있는 마을/2001/246~247쪽). 그래서 지금 송파동에 있는 삼전도비 즉 대청황제공덕비도 나중에 조작한 가짜라고 한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김은 '여기서만 보더라도 물소나 수달, 사슴은 한반에서 보신 살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양자강, 절강성등 중국 남부지방의 특산품이라고 까지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가. 위 동물과 식물은 과연 대륙에서 만 나는 것일까,
물소는 열대지방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수색해 본결과 물소와 소목은 수입해서 쓴 것으로 나오며, 물소 같은 경우는 이미 고려시대부터 수입해서 쓰고 있었고 이조선시대에는 명나라가 수출을 꺼리는 바람에 물소를 수입하여 길러서 쓰려고 한적도 있다. 그러나 추위에 견디기 못해 죽어 버린것으로 나온다. 다음은 그 기록이다.
(고려사절요 辛卯十八年 宋 紹定四年,金 正大八年,蒙古 太宗三年)
송 나라 상인이 물소[水牛] 네 마리를 바쳤으므로, 최우가 인삼 50근과 광포(廣布) 300 필을 주었다. 최우가 인삼 50근과 광포(廣布) 300 필을 주었다.
。宋商,獻水牛四頭,崔瑀,給人參五十斤,廣布三百匹
세종 10년 무신(1428,선덕 3)11월19일 (정묘)
활 만드는데 필요한 수우각을 명나라에 청해 받을 것에 대해서 논의하다
한편 蘇木에 관하여 김종윤은 아래서 보는 바와 같이 그의 책에서 중국 남부지방에서 나는 희귀식물이라고 하며, 문헌을 빌려 한반도에서는 나지 않은 식물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말은 맞다. 그러나 '하멜표류기'를 보면 인조 다음 왕인 효종 때 왜와의 교류 품목에서 이 소목이 발견된다. 1653년 하멜일행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으로 일본으로 가다 배가 난파되어 제주도에 표착한다. 그 후 1666년에 탈출하여 일본 나가사키로 갈때 까지 13년간 머문다. 이 때 보고 들은 정치,경제, 군사, 지리등 많은 정보를 싣고 있는데 여기에 일본과 교역하는 품목이 실려 있다. 거기에 소목도 등장한다. 즉 이조선은 얼마든지 수입하여 쓰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된다. 이 때 하멜일행이 그리고 있는 이조선은 한반도의 이조선 그대로이다. 하멜의 기록과 효종실록의 해당 시기 사항을 비교하면 거의 그대로 맞아 떨어진다(다시읽은 하멜표류기/강준식역주/웅진/2004/24~26,146~147쪽).
참고로, 위 지도나 다른 김종윤의 명,이조선 강역도를 보면 명나라는 서쪽에 동남으로 빈약하게 그려져 있고 대륙 대부분 이조선땅으로 표시하고 있다. 역사는 청나라가 명나라를 먹고 이조선은 항복만 받고 놔 뒀다고 한다. 그러나 위 지도를 보면 기름지고 넓은 이조선을 취하는 게 상식이지 사천성등 산악으로 되어있는 명나라를 차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논리도 성립하지 않는 것이 대륙이조선설이다.
위에서 김종윤은 '사슴, 수달, 담비' 등도 한반도 땅에서 서식하지 않는 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대륙이조선을 상정하고 쓴 기록이라고 한다. 그러나 확인해 본 결과 사슴 수달 담비 등 모두 구한말 때까지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흔한 동물로 나타난다. 서양인들이 19세기 말 20세기 초 한반도를 여행,탐사하면서 쓴 책들에 무수히 등장한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동물군은 다양했다. 한반도에 서식하는 포유류는 곰,늑대,여우,너구리, 흑담비,담비, 살쾡이,다람쥐,멧돼지, 양생염소,사슴 등이 있었다. 이 동물들은 특히 북쪽 지방에 많이 서식하고 있으며 그 모피들은 중요한 수출 품목 가운데 하나였다."(키르네프외 4인지음/내가 본 조선 조선인/이인화 등 역/가야넷/2003/160쪽)
"표범과 노루 및 몇종류의 사슴들이 한강을 끼고 있는 산들에서 발견...." 이사벨라 비숍/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인화역/도서출판살림/1994/95쪽)
사실이 이럼함에도 김종윤은 이러한 정보를 확인해 보지도 않고 성급하게 단정을 지어버리고 있다. 이러한 정보는 마음만 먹으면 금방 구할 수 있는 아주 쉬운 것이다. 아직 더 확인이 안되어서 그렇지 찾아 보면 더욱 풍부하게 위 동식물들이 이 땅에서 서식해 왔음을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은 한반도에서 당시 서양인들의 눈에는 너무나 다양한 식물군과 동물들이 자생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고 있다. 이조선의 폐쇄정책으로 이 땅은 당시 까지만 하더라도개발이 전무한 원시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병자호란은 이 한반도에서 일어났으며 이와 관련된 역사를 기록한 삼전도비도 진짜이며 삼전도 즉 한강나루에 세웠던 것이다. 삼전도비는 왜구난동기 사진을 보면 반쯤 땅에 쳐박혀 있는 장면이다. 방치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종윤의 삼전도 비가 가짜라는 것은 근거없는 억측이며 사기극이다. 이를 통해서도 대륙을 이조선이 지배했다는 것은 역사날조 행위임이 드러난다.
주석:
삼전도(三田渡) 광주(廣州) 땅에 있는데 도성에서 30리요, 도승(渡丞) 1명이 있다.
마포(麻浦 삼개) 도성 서쪽에 있는데 곧 용산강의 하류이다.
http://db.itkc.or.kr/index.jsp?bizName=MK
옛지도에 삼전도 위치가 나오고 11시방향에 한강이라고 써 있다.
▲ 1909년 가을에 동경제국대학의 세키노 타다시 교수가 보았던 삼전도비의 모습이 <한홍엽>에 수록되어 있다. 이 비석은 그저 넘어져 있었을 뿐 흔히 잘못 알려진 것처럼 매몰된 상태는 아니었다.
▲ 조선총독부는 1917년 9월에 청일전쟁 이후 조선정부가 일부러 넘어트린 삼전도비를 구태여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이러한 보호정책은 이 비석을 조선의 보물로 지정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그러던 것이 삼전도 비석을 결국 다시 세운 것은 조선총독부였다. 이에 관해서도 분명한 기록 하나가 남아 있다. 야츠이 세이이치(谷井濟一) 등이 정리한 <대정6년도 고적조사보고>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외교사상 중대한 일등 사료이며, 조선에 다시없는 만몽문(滿蒙文)을 새긴 비석인데, 나아가 조선시대 중기에 있어서 석비의 대표적 작품으로서 영원히 보존의 가치가 있는 유물이다. (중략) 명치 27,8년 전역(즉 청일전쟁) 후에 넘어졌고, 1909년 세키노 박사가 조사할 제에는 더욱이 민가의 담장 안에 드러누워 뒤집어져 있었으나 근년에 본부(本府)에서 수립보존의 의논이 점차 무르익어 대정 6년 즉 1917년 9월, 때마침 본관들이 송파리(松坡里)에 머물던 중 영선과원(營繕課員)의 손으로 수립(竪立)이 완료되었다."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4ZJt&articleno=15711576
현재 석촌호수근처로 옮겨놓은 대청황제공덕비=삼전도비
명,청사신을 맞이하는 영은문 명나라가 임진왜란에서 구해준 은혜를 잊지않고 맞이하는 문이라고 한다.
영은문옆에 있던 모화관, 중화를 사모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사신을 맞이한다.
1884~ 5년 사이에 주한 미국공사관 무관이던 폴크가 찍은 영은문. 사진 설명에 서대문에 찍었다고 밝혀졌다.
http://qlstnfp11.tistory.com/9427
이조시대 영은문 모화관 지도
다시한번 상시시키면 이조선은 제국 고려와는 정반대의 이념과 국시를 가지고 개창된 왕조다. 명나라의 번국으로써 사대노예근성에 입각하여 역사를 5백년간 이어온 왕조였다. 이러한 나라가 어떻게 대륙을 경영할 수 있으며 황제국으로 군림할 수 있겠는가, 모두 망상과 종이위의 대륙 이조선임을 깨닫기 바란다. 한번 꽃힌 잘못된 신념을 깨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대륙이조선론자들의 심리구조를 파악해 보면 일단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당위'와 무조건 믿는다는 '종교신앙'에 꽃혀 있다. 그러나 역사는 종교신앙이 아니다. 피해망상증 환자들의 전형을 보는 듯 하다. http://cafe.daum.net/mookto
첫댓글 글같지 않은 글 읽지도 안했지만
이성개 조선은 뭔가?
꼭 뉴라이트, 임기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조조가 한반도까지
들어 왔다는 그
동북아역사재단의
그 지도...
읽을 가치도 없는 글은 나중에
답변 할테니
간도 협약이나 야그 해봐봐...
읽지 않은 게 아니라...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니까 안읽은 거겠지요?^^
@金子 ㅓ내가 널 기억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지...
이 새리 아주 대륙개장개좃선 가짜 뽀록 나니깐,
경끼하고 자바졌네...ㅋㅋㅋ
불쌍한 시키!ㅉㅉ
너 얼마전에 머라고 했어,
신사임당 물소그림 갖다 쳐놓고
대륙조선이니까 그린거 아니냐고 좋다구나 했지?
저기 위에 나온 기록들은 뭔데?
개닽은 늠아,
글고 간도협약이 니 좃걸리는데로 맞다고 해도,
그게 어째서 개이좃선이 대륙을 다 차지한거냐,
아휴, 불쌍한 환자들...
@가축산 야이 머저리 ㅂ ㅅ아
지도를 봐봐
이 새리 아주 대륙개장개좃선 가짜 뽀록 나니깐,
경끼하고 자바졌네...ㅋㅋㅋ
지금의 한반도자나
이 머 ㅈ 리 야
니 눈깔은 장식으로 달고 다니냐
금자가 그러드냐 안
눈구녕에 칫솔질하고 보라고...
금자한테 욕 많이 배워좋다..
불쌍한 시키.ㅋㅋㅋ
개닽은 늠ㅂ아,
아휴ㅡ, 불쌍한 환자들...
@波奈留之國 미틴늠....ㅉㅉ ...
혼자 열심히 쑤레기 수집하여,
또 토달아 봐라...
@가축산 미틴늠....ㅉㅉ ...
혼자 열심히 쑤레기 수집하여,
또 토달아 봐라...
ㅂ ㅅ 육갑하네...
글 같지도 않은 글인데
한 번 읽어 봤다 지금
고려 까지는 인정을 하는데
이성계의 쿠테타로 조선은
고려의 강역을 다 빼앗끼고
소중화로 살았고 양반계급의
수탈과 무능으로 인해
조선이라는 나라는
결국 무능력하고 나약한
바람앞에 촛불같은 나라가 되었다
이런 논리구만
그래서 이성개가 밉다.
근데 우낀건 이성개의 쿠테타는
미워하면서 전두환의 쿠테타에 대해선
오히려 미화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수우각에 대해서 전에도 얘기 했듯이
내 의견은 변함이 없다.
고구려의 활같은 경우는
예를 들면 당의 활이 200보이면
고구려는 350의 거리를 날아갔다(?)
고 한다.
조선의 활이라고 해서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날의 선진국을 봐라.
한 가지 물건만 잘 만든다고
선진국이라 불리는가?
모든 분야가 발달해야
최첨단 무기를 만들 수 있는것처럼
그리 쉽게 최첨단 무기를 만들 수 없는것이다.
왜 물소가 서식하는 나라에서는
물소뿔을 수입하는 나라보다 활을
더 못 만들었겠는가!
의구심을 품어야 되지 않는가?
코뿔소가 없는데 어찌알고 우황청심원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어찌 그 성분을 알고 만들 수 있단 말인가?
@波奈留之國 이처럼 지금의 한반도를 중국에 대입하면
이렇게 충돌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글의 서두에는 대기업과 부정부패 이명박 좆중동을 욕하며
그럴듯한 글로 우린 약자편이다 라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렇지만
삼청교육대를 두둔하고
세월호라던가
월남전의 사실을
은폐하려는 많은 글들을 보면
전부 거짓이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김종윤씨가 쓴 글처럼
주요수출품은 흔해야 하는 것이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살 수 있겠는가?
사자 같은 경우도 자기 영역이 반경 15Km정도라고 한다.
호랑이는 50Km~300Km 까지란다...
곰. 늑대,여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波奈留之國 그리 흔하게 살았다는 호랑이가 과연
한반도 인왕산 같은데서 몇 마리나 과연 살았을 것 같은가?
이 한반도에선 그러한 동물들이
주요 수출품이 될수 없다.
분명히 말한다.
글 같지도 않은 거짓말을 어디서
주서 와서 또 거짓말로
많은 회원들에게 이깝을 던져
낚시질을 하려는지
그만 수작 부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