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좋은 국어책
오늘은 국어책(?)을 한 권 소개할게.
아빠가 학창시절 어렵다고 생각한 과목 중에 하나가 국어였단다.
주제 파악을 하거나 문맥의 의미하는 바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어.
그리고 읽는 이에 따라 주관적인 생각이 다르니,
같은 글을 봐도 그 글에서 느끼는 감상이 다를 수 있는데,
한 개의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했어.
핑계일 수도 있지만 말이야.
요즘도 책을 읽고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지만,
그 느낌이라는 것이 아빠의 주관적인 느낌이라서,
다른 사람들이 읽은 느낌이나 작가가 의도와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해.
이제는 그것에 틀렸다고 채점을 받지 않는 것이 참 다행이구나.
가끔 너희들이 모르는 문제를 물어볼 때,
국어책을 들고 오면 바짝 긴장하게 되더구나.
얼마 전 인터넷서점에 눈에 띄는 국어 책이 한 권 있었어.
평점이 만점을 육박하는 그런 책이었지.
황선엽이라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님이 쓴
<단어가 품은 세계>라는 책이야.
부제로 “삶의 품격을 올리고 어휘력을 높이는 국어수업”이라고 적혀 있었어.
음.. 어휘력을 높일 수 있다고?
이 책을 읽으면 너희들이 물어보는 국어 문제에 좀 긴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 책은 아빠뿐만 아니라 너희들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장바구니에 넣었단다.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은 참 재미있고 유익하고 하겠다.
이 책을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첫 문장으로 대신할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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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단어의 뿌리를 탐구하는 일이 참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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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늘 쓰던 말, 무심코 쓰던 말….
그 말이 어떤 유래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그냥 쓰는 말…
그런 말들의 유래를 이야기해주는 그런 책이란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우리가 날마다 하는 ‘양치질’이라는 말의 유래 같은 거..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양치질이라는 말…
누군가 그 말이 어떻게 생겨났을 것 같냐고 물어보면,
좋을 양(良)에 이 치(齒)라고 이야기할 것 같구나.
그런데 아니었어.
단어라는 것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쓰다가 정착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양치질도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더구나..
옛날에 칫솔이 없던 시절 이에 낀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해 버드나무 가지를 이용했는데,
버드나무 가지를 한자어로 양지(楊枝)라고 한대.
그래서 예전에는 양지질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지’가 이와 관련이 있는 ‘치(齒)’로 바뀌었다는 거야.
음. 참으로 신기한 일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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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0)
즉, 음식물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해 버드나무 가지를 이용하였는데 그 도구를 재료의 명칭인 양지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 도구를 사용하는 행위를 양지질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양지질이라고 말이 이를 닦거나 헹구는 행위 전반을 지칭하는 말로 바뀌었고, 시간이 더 많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이 양지나 양지질이라는 말이 기원적으로 버드나무 가지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지요.
우리나라는 한자 문화권이었으므로, 한자어 가운데 ‘이’를 뜻하는 이 치(齒)라는 한자가 있으니 세월이 흘러 양지라는 단어가 사람들 사이에 쓰이면서 ‘지’와 ‘치’를 혼동하여 쓰게 되었고, 양지나 양지질이 양치 내지 양치질이라는 말로 바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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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이렇듯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의 유래도 이야기해주고,
새로운 단어가 생성되는 과정도 이야기해주고,
시간이 흐르면서 뜻이 달라지는 단어들도 이야기를 해주고 있단다.
아주 유익해…
1. 어디서 왔나
정지용 시인의 유명한 <향수>라는 시가 있단다.
이것은 노래로도 만들어져서 더욱 유명한 시란다.
그 노래 가사 중에 ‘얼룩백이 황소’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소가 당연히 젖소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얼룩백이면서 어떻게 누런 소(황소)가 될 수가 있지?
황소란 누런 소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큰 수소’를 의미한단다.
아빠도 아직 기억하는데 우리 말 중에 ‘한’이 접두어로 붙어 ‘크다’라는 뜻을 가진 말들이 있어.
큰 소를 뜻하는 말로 ‘한소’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 말이 세월이 흐르면서 ‘황소’로 바뀌었대.
그리고 <향수>라는 시에서 나온 얼룩백이는 젖소가 아니라고 하는구나.
우리나라에 젖소가 들어온 것은 1960년대 이후이고,
<향수>라는 시는 1927년에 쓴 시이니 젖소를 모르던 시절이라는구나.
그렇다면 얼룩백이는 어떤 소일까?
호랑이 무늬를 가진 칡소가 바로 얼룩백이라고 하는구나.
이 책에 얼룩백이 칡소의 사진도 실려 있는데 정말 호랑이 무늬를 가지고 있는 것이
멋지게 생겼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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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요즘 사람들은 얼룩백이 소라고 하면 흰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점박이 무늬의 홀스타인 젖소를 떠올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홀스타인 품종의 소가 널리 보급된 것은 1960년대 이후라고 합니다. 이 시가 발표된 때는 1927년이니 당시에 홀스타인 젖소가 우리나라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홀스타인 젖소도 아니라면, 얼룩백이 소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여기서 얼룩백이란 칡소를 말합니다. 오늘날 한우의 대표는 누런 소가 되었지만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소는 누런 소 외에도 흰 소, 검은 소, 몸에 호랑이처럼 줄무늬를 가진 칡소 등 다양한 종류의 소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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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궁금한 것 중에 하나가
개의 새끼는 강아지, 소의 새끼는 송아지, 말의 새끼는 망아지라는 말이 있는데,
왜 고양이의 새끼를 나타내는 말이 따로 없을까? 궁금했어.
고양이를 집에서 키운 것이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추측했었어.
그런데 이 책에서 그 이유를 알려주었단다.
고양이뿐만 아니라 또 대표적인 가축 돼지의 새끼를 나타내는 말이 없는데
그 이유도 함께 알려주었단다.
그 이유는 다소 충격적이었단다.
바로 고양이와 돼지가 각각 새끼를 나타내는 말이었다는 것…
어른 고양이와 어른 돼지를 나타내는 말이 도태되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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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예전에는 돼지와 고양이의 새끼를 뜻하는 단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단어는 무엇일까요? 바로 돼지와 고양이입니다. 무슨 말장난이냐고 할지 모르나 돼지와 고양이는 원래 새끼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에 와서 성체를 뜻하는 말로 변한 것이지요.
옛날에는 돼지와 고양이가 새끼를 뜻하는 말이었다면 성체를 뜻하는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전 사람들은 돼지를 돝이라 하였고 고양이는 괴라고 하였습니다. 돝이라는 말은 현대에는 사라져 쓰이지 않게 되었지만 우리가 지금도 자주 사용하는 단어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윷놀이에서 도, 개, 걸, 윷, 모 할 때 ‘도’의 형태로, 또 마산 앞바다에 있는 돝섬이란 지명에, 또 물고기 이름 돗돔에 남아 있습니다. 돗돔은 원래 돝돔에서 유래한 것인데 돝이란 말이 사람들 사이에 쓰이지 않게 되면서 표기까지도 ㅅ으로 바뀌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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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밖에 갈매기살, 김치 등 여러 단어들의 유래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단다.
2. 같은 말 다른 뜻
또 같은 단어인데 다른 것을 나타내는 단어들도 이야기해주었어.
김유정 님의 대표적인 소설 <동백꽃>도 그런 단어 중에 하나란다.
동백꽃라고 하면 남부 지방에서
겨울에도 피어나는 빨간 꽃을 떠오르게 된단다.
우리가 지난주에 놀러 갔던 통영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잖니.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은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제목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 보지 않았구나.
심지어 소설 속에서 동백꽃이 노랗다고 한 문장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의심을 해볼 만했는데 말이야.
그렇다면 김유정의 소설 속의 동백꽃은 우리가 지난주에 통영에서 본 그 동백꽃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단다. 그 꽃은 그 꽃이 아니야.
엄마한테 이야기했더니,
얼마 전에 Jiny의 교과서에서 봤다고 하더구나.
작년에 JIny의 국어 교과서에 <동백꽃>이 실려 있었잖니.
김유정의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은 바로 생강나무 꽃이라고 하는구나.
그렇다면 왜 생강나무 꽃을 동배꽃이라고 불렀을까?
그것은 두 나무의 용도가 비슷해서 그랬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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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강원도에서는 왜 생강나무를 동백이라 불렀을까요? 이유는 두 식물의 용도가 공통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백나무 씨앗에서 짜는 동백기름은 식용으로도 쓸 수 있지만 부녀자들의 머리에 바르는 기름으로도 많이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백이 자라지 않는 강원도에서는 동백기름 대신 생강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사용하였어요. 동백기름 대신 사용하기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그 이름까지도 동백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초기에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동백나무를 뜻하는 <Camelia>라고 제목을 붙였다가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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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 중에 해당화도 있다는구나.
우리나라에서 이야기하는 해당화와 중국에서 이야기하는 해당화가 다른 꽃이래.
해당화(海棠花)의 한자어도 동일한데 말이야.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해당화의 뜻은 ‘바다 근처 사는 꽃’이라는 뜻이고,
중국의 해당화는 ‘바다 건너 넘어온 꽃’이라는 뜻이라고 하는구나.
그래서 중국의 해당화는 우리나라에서 산사나무라도 하는 나무의 꽃이라고 하는구나.
….
엄마와 아빠라는 말에도 비밀이 있을 줄이야….
‘엄마’와 ‘아빠’라는 말에는 이미 호칭이 포함되어 있는 말이래.
엄마는 ‘엄’+’아!’, 아빠는 ‘압’+ ‘아!’ 이렇게 말이야.
이름으로 부를 때는 ‘아’나 ‘야’의 호격조사를 붙이는데,
엄마와 아빠를 부를 때는 그냥 ‘엄마’와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이유가 호격조사가 포함되었던 말이라서 그렇구나.
그런데 오늘날 엄마와 아빠는 명사로 굳어져서,
엄마야, 아빠야 하는 말도 사용하게 된 것이라고 하는구나.
그런데 ‘엄마야’도 많이 쓰이면서 또 명사화가 될 조짐이 보인다고…
‘엄마야가 해 줘~” 이런 말을 쓰잖니…
참 재미있는 단어의 진화로구나…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책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어
참 재미있게 읽었단다.
이 책에 나온 것들을 오래 기억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기대는 안할련다.
그리고 이 책의 후속작이 꼭 나왔으면 좋겠구나.
아름다운 우리말들이 얼마나 많니..
….
이 책은 너희들도 꼭 읽으면 좋겠지만
너무나 바쁘신 몸들이니…^^
아빠가 이 책에서 나온 것들을 부지런히 이야기해주어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저는 단어의 뿌리를 탐구하는 일이 참 재미있습니다.
책의 끝 문장: 이를 인지하고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책제목 : 단어가 품은 세계
지은이 : 황선엽
펴낸곳 : 빛의서가
페이지 : 296 page
책무게 : 385 g
펴낸날 : 2024년 11월 22일
책정가 : 18,000원
읽은날 : 2025.01.06~2025.01.07
글쓴날 : 2025.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