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오후 2시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2006년 아들 학위수여식으로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탄 후 11년만이다.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비행기는 싫지만 배와 비행기뿐이니 어쩌랴. 잦은 신분증 제시 요구와 공항 검색대에서는 신발까지 벗으라고 했다. 그 많은 탑승객과 짐들을 품고도 사뿐하게 이륙한 비행기가 구름 위를 나를 때 나도 일상을 벗어나 1주일간의 여행 기대에 부푼 뭉게구름이 되었다.
1시간 남짓 후 착륙했고, 부산에서 날아온 막냇동생 부부와 합류해 렌터카를 빌려 서귀포 혁신도시의 여동생 아파트에 도착했다. 화창한 날씨에 가로수로 늘어선 키다리 종려나무의 이국적인 풍광과 맑은 공기로 제주의 매력에 풍덩 빠졌다. 미리 와있던 독일여동생과 주인의 환대를 받으며 새집에 짐을 풀었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새 아파트는 넓고 구조가 좋은데다 살림살이 일체를 새로 들여놓아 반짝반짝 눈부셨다. 저녁은 맏이인 우리가 샀다. 근처 돼지고기로 유명한 맛집에서 푸짐하게 먹었다.
2일, 아침 일찍 대구여동생 부부와 남편은 골프장으로, 남은 다섯 명은 본격적인 관광에 나섰다. 7-1 올레길 입구에서 만난 외돌개는 외롭게 우뚝 선 바위다. 푸른 바닷물과 파란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답답한 가슴이 뻥 뚫렸다. 천제연 폭포, 정방 폭포, 쇠소깍, 제주민속촌까지 둘러보는 내내 운전 경력 30년인 베스트 드라이버 부산 제부가 핸들 잡은 차에 동승해 편안했다. 21년 전 제주가 아니었다. 달콤한 맑은 공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여유 있게 달리는 저 차들이 전기 차와 가스 차라고 한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루의 클라이맥스는 저녁식사와 함께한 소맥 파티였다. 조제 상궁을 자처한 집주인 제부가 연방 소맥을 만들어 돌렸다. 술이 오르면서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어 무르익어 가는데도 우리 부부는 술을 못해 물 위에 뜬 기름이었다. 나이는 가장 많아도 술은 못하고 재미도 없는 우리 부부가 분위기 깰까 봐 평소보다 더 크게 웃을 수밖에. 애교와 유머가 넘치는 부산여동생의 재치에 모두가 폭소를 터뜨렸다. 대구 제부의 호탕한 웃음소리는 분위기를 압도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한 여동생 부부는 사람 좋아하고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주인의 배려에 감사하며 하루의 피로가 달콤한 잠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3일 토요일, 쾌청한 날씨에 마음도 가볍게 우도에 가기 위해 성산항으로 향했다. 우리 부부는 경로 우대로 렌터카가 아닌 대구 제부가 운전하는 좋은 차에 탔다. 아침인데도 넓은 주차장엔 빈자리가 없이 빼곡히 차가 들어찼다. 배를 타기 위해서는 개인 신상정보를 적고 신분증이 필요했다. 길게 늘어선 차례를 기다려 왕복 승선표를 사고 배에 올랐다. 하얗게 부서지는 물거품을 남기며 배는 우도를 향해 나아갔다. 바닷가에서 나는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아닌 상큼한 갯내라 역시 청정 제주다웠다.
우도를 일주하는 버스는 마음대로 정류장에 내려 구경하고 다시 다음 버스를 타면 되는 특이한 시스템이다. 버스기사의 설명을 들으며 관광을 시작했다. 우도는 땅콩이 유명하다는데 토종이라선지 알갱이가 작다. 특별한 맛이 없는 그저 그런 아이스크림에 땅콩 몇 알을 얹은 땅콩 아이스크림도 맛보았다.
아름다운 경치보다 내 관심은 단연 야생화 쪽이다. 우도 등대에 오르는 가파른 길목엔 드센 해풍 탓인지 키 작은 방풍나물과 보라색 엉겅퀴와 노란색 서양금혼초뿐이다. 서양금혼초는 귀화식물로 반갑잖은 존재인데 우도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으로 그 흔한 민들레도 보이지 않았다. 우도를 떠나기 전 어디를 봐도 푸른 바다가 배경인 우도 등대를 올라보았다. 정해진 배 시간이 너무 촉박해 아쉬웠다.
이마트에서 장을 봐와 저녁 준비를 했다. 평소 둘이서 말없이 밥을 먹던 정경과는 다르게 왁자지껄하고 웃음이 팡팡 터지는 즐거운 식사시간, 여기에 소맥이 빠질 수 있겠나. 애주가 아버지를 닮은 딸들이 주는 대로 잘도 마신다. 사람 사는 재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즐거워서 맛있어서 분위기에 휩싸여 나도 모르게 더 많이 먹게 되었다. 많이 먹어도 많이 움직였으니 플러스마이너스로 제로가 되겠지 위로하면서...
4일 일요일, 내가 가장 가보고 싶었던 여미지 식물원 구경에 나섰다. 여미지 식물원은 한국 기네스협회에서 인정한 34,000평 규모의 동양 최대 온실이다. 입구에서부터 사계절 언제나 꽃이 피는 정원으로 조성한 일본정원, 한국정원, 제주자생식물원, 이태리정원, 프랑스정원, 잔디광장, 허브정원, 습지원, 호스타원... 구경할 곳이 너무 많은데 일행을 놓칠세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카메라 초점도 못 맞추고 허둥대기만 했다.
꽃에 관심이 없는 멋없는 사람과 함께 하면 나같은 꽃 멋쟁이는 항상 촉박하고 쫓기게 마련이다. 그들은 '꽃이 예쁘네' 또는 '신기하네' 정도로 주마간산으로 보는 사람들이고 나는 자세히 관찰해야 하고 사진도 여러 장 찍어야 하니 정신없이 바쁘다. 그러고도 아쉬움만 남는다. 남편은 대충 둘러보고는 뒤처지는 마누라가 어리바리하게 길을 잃을까 염려되는지 '빨리빨리'를 주문 외듯 했다.
3800여 평 유리온실식물원 중앙에는 38m 높이의 전망타워가 있다. 860평의 중앙 홀을 중심으로 부채꼴로 5등분 해 꽃의 정원, 물의 정원, 선인장 정원, 열대 정원, 열대 과수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역만리 먼 곳에서 와 낯선 토양과 기후 속에서 적응하느라 고생했을 식물들이 애잔했고 이 많은 식물을 관리하며 가꾸는 사람들의 노고도 생각했다. 처음 보는 신기한 식물이 너무 많아 여기서 하루 종일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으련만 아쉬움을 안고 다음 행선지 이중섭 미술관으로 이동해야했다.
꼬불꼬불한 골목을 지나니 이중섭의 초가집과 아담한 미술관이 나왔다. 일본에 두고 온 두 아들과 아내를 그리워하며 그려 보낸 그림엽서와 은지화(담뱃갑 속의 은지에다 송곳으로 눌러 그린 일종의 선각화) 여러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내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와 더불어 이남덕여사(일본인 아내에게 이중섭 화가가 지어준 이름)의 근황은 92세 우아한 노부인으로 아직도 건장한 모습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중섭화가는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자유를 찾아 원산에서 탈출해 제주도를 거쳐 부산으로 왔다고 전해진다. 이중섭 화가는 가난으로 인한 영양실조로 41세 되던 1956년 적십자병원에서 별세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천재 화가는 요절해 작품은 많지 않았다. 화가인 부산 제부의 해설을 기대했으나 관람객이 많아 여의치 않아 아쉬웠다.
5일 월요일 세 명은 골프장으로, 남은 우리는 국토 최남단 마라도 관광에 나섰다. 배를 타고 30분, 길이 1.4km 폭이 500m인 작은 섬 마라도에는 초등학교, 교회, 성당, 사찰도 있었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국토최남단 표지석이 서있었다. 섬을 한 바퀴 돌고 유명한 마라도 짜장면을 먹었다. 모 방송국 인기 프로그램에 방영된 후 마라도의 짜장면은 유명세에 날개를 달아 작은 섬에 짜장면 식당이 9개나 된다니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다.
6일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용사들의 눈물인양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자동차로 올레길 7을 구경하다 왔다. 내일 떠나기 위해 짐을 싸고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치킨을 안주로 소맥파티를 열었다. 공기 맑고 경치 수려한 데서 친자매들과 함께 보낸 1주일이 꿈결인양 흘러가버렸다. 이런 행복한 시간은 좀 천천히 지나가면 좋으련만. 청정 제주에서 많이 먹고, 많이 걷고, 많이 웃고, 많이 보고, 사진 많이 찍고, 너무너무 많이 많이 행복했다.
여동생부부는 앞으로 10년쯤 제주와 대구를 오가며 골프를 즐기는 생활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우리에게 언제든지 와서 묵으라고 했다. 자매들을 위한 숙소로 개방한다는 얘기였다. 푸르고 깨끗한 제주 바다만큼 신선한 제의에 감동으로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노후 설계를 확실하게 하고 실행에 들어간 동생부부가 부러웠다. 그러나 따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별장을 사지 말고 별장 가진 친구를 사귀라’는 말이 있다.
세컨 하우스를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의 비용과 신경 써야할 일이 많다는 뜻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맞고 편한 생활 방식이 있다. 그저 부러움으로 끝내는 일도 내 생활방식이다.
2017.6.7
첫댓글 멋지고 행복한 추억의 일기장이네요.
사진보다 선배님의 말솜씨가 더 좋은 제주여행기입니다.
자매분들 모두 여유있고 행복하시니 참 다복하십니다.
말솜씨 없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입니다. ㅎ
그래서 글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매들간 우애는 좋은 편이라 1주일이 금방 가버렸습니다.
부모님 병환으로 자주 모이게 된 것이 계기가 된 셈입니다.
결국은 부모님 덕분입니다.
좋은 여행을 하셨네요.
부모, 형제만큼 좋은 끈이 어디 있을까요?
13일 여행 다녀오느라, 이제야 카페에 들어가 봤습니다. 형제분들과의 우애와 화합된 모습이 참 부럽고 샘이 나네요. 좋은글 감사히 잘 봤습니다.
여행 다녀오셨군요.
여행기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