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준비하고 있던 선구자
1917년 4월, 그동안 중립(中立)을 지키던 미국은 전격적(電擊的)으로 제1차 대전 참전(參戰)을 결정(決定)했습니다.
즉시 동원령(動員令)이 하달(下達)되었고 그해 10월이 되었을 때 무려 150만의 원정군(遠征軍)이 대서양(大西洋)을 건너가 프랑스에 배치(排置)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장 독일과 싸우기에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비록 제1차 대전 참전은 이후 미국이 초강대국(超强大國)으로 부상(付上)하는 신호탄(信號彈)이 되었어도 정작 당시에 미군이 보유(保有)한 무기(武器)는 변변치 않았습니다.
↑제1차 대전 당시 전선으로 향하는 미군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18년 무렵 전장에 서 있는 무명의 독일 병사. 독일 언론인 볼프 슈나이더(Wolf Dietrich Schneider 1925년 5월 7일~2022년 11월 11일)는 저서 <군인>에서 ’이 병사가 죽었는지 또 적을 얼마나 죽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런 군인들이 수백만 명 이상 아무 의미 없이 비참하게 죽어간 사실만큼은 분명히 안다“고 적었다.
[사진 열린책들 제공]
20세기 초까지 미국은 그냥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고립주의(孤立主義)를 고수(固守)하며 외부 문제에 말려드는 것을 회피(回避)했습니다.
더구나 거대한 대서양(大西洋)과 태평양(太平洋)은 만약에 있을 수도 있는 외부(外部)의 침략(侵掠)으로부터 미국을 보호(保護)해 주는 최고의 방패(防牌)였고 당연히 해군(海軍)의 위상(位相)이 컸습니다.
반면 육군(陸軍)은 군비(軍備)의 질(質)이나 규모(規模)가 당시 세계 질서(世界秩序)를 주도(主導)하던 유럽의 열강(列强)들에 비해 상당히 부족(不足)했고 경험(經驗)도 일천(一天)했습니다.
↑프랑스 현지에서 쇼샤로 적응 훈련 중인 미 원정군의 모습, 쇼샤로 무장한 미 제308연대 소속 병사
따라서 미군은 처음 접한 참호전(塹壕戰)에서 상당히 고전(苦戰)했습니다.
연사(連射)가 가능(可能)한 휴대용 총기(携帶用銃器)가 없어 프랑스로부터 Mle1915 쇼샤(Chauchat) 같은 경기관총(輕機關銃)을 공급(供給) 받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서부개척사(西部開拓史)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전통적(傳統的) 총기 강국이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뛰어난 자동화기(自動化器)를 전선(戰線)에 등장(登場)시켰습니다.
바로 M1918 브라우닝 자동소총(M1918 BAR: Browning Automatic Rifle)입니다.
↑흔히 BAR로 불리는 M1918 브라우닝 자동소총
흔히 약자(略字)인 BAR로 더 많이 알려지는데, 이를 ‘바’라고 발음(發音)하기도 하나 보통 ‘비에이알’이라 부릅니다.
제식부호(制式符號)에서 알 수 있듯이 1918년에 제식화(制式化)되었으므로 당연히 개발(開發)은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습니다.
전설적(傳說的)인 총기 제작자(銃器製作者)인 존 브라우닝(John M. Browning, 1855년 1월 23일~1926년 11월 26일)이 미국의 참전(參戰)이 결정(決定)되기 전인 1917년에 제작(製作)을 완료(完了)했고,
미군 당국의 시험(試驗)에서 호평(好評)을 받아 이미 생산(生産)이 결정되었던 상태였습니다.
↑BAR를 들고 있는 제작자 존 브라우닝
브라우닝은 1903년 채택된 M1903 스프링필드(Springfield, 우물이 솟는 땅) 소총이 30년 넘게 사용해 온 크레그(Krag-Jorgensen) 소총을 급속(急速)히 대체(代替)했을 만큼 좋지만, 볼트액션(Bolt Action) 방식의 근본적 한계(根本的限界)인 연사력(連射力) 부족은 반드시 문제를 야기(惹起)할 것으로 판단(判斷)했습니다.
이에 기존 7.62×63mm 스프링필드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연사력이 뛰어난 자동소총(自動小銃)을 개발하면 상당히 효과적(效果的)일 것이라 보고 오래 전부터 제작(製作)에 나섰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