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자료[1924]王維(왕유)5절-紅牡丹(홍모란)
紅牡丹(홍모란)
王維(왕유)
綠艷閑且靜(녹염한차정),
紅衣淺復深(홍의천부심)。
花心愁欲斷(화심수욕단),
春色豈知心(춘색기지심)。
초록빛 고운 잎은 우아하고도 깨끗하고
붉은 꽃잎은 연분홍에서 다시 진홍색으로 짙어지네.
모란의 마음은 시름에 겨워 애간장이 끊어지는데,
저물어 가는 봄빛이 어찌 모란의 마음을 알리요?
<원문출처> 《紅牡丹》王維/全唐詩 卷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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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牡丹(모란) : 작약과(芍藥科)에 속하는 낙엽활엽관목(落葉闊葉灌木).
중국이 원산지이며 관상용(觀賞用)으로 재배하는데,
잎은 크며 늦은 봄에 여러 겹의 붉고 큰 꽃이 핀다.
○ 綠艷(녹염) : 짙푸르고 선명한 잎사귀.
○ 閑(한) : 娴(한)과 통용된다. 우아한 모습.
○ 紅衣(홍의) : 붉은 색 모란의 꽃잎.
○ 淺復深(천부심) : 옅은 색에서 짙은 색이 되다.
<모란사(牡丹史)>에는 “모란꽃의 색은 세 번 변하는데
처음에는 자주색이고, 활짝 피면 연분홍색이 되었다가
점차 홍매화 색으로 바뀌며 꽃이 질 때는 다시 진홍색으로 변한다
(初绽紫色,及开桃红,经日渐至梅红,至落乃更深红.)”라고 기록하고 있다.
○ 愁欲断(수욕단) : 시들어져 감을 상심하여 애간장이 끊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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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전당시(全唐詩)에 실려 있으며,
당 현종(唐 玄宗) 천보(天寶) 말년(752~755년) 경에
왕유가 지은 홍모란에 대한 시이다.
이때 왕유는 만년(晩年 )시절로 당시 당나라는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이어서 사회가 혼란스러웠다.
봄날이 저물어가니 모란꽃이 시드는 것을 봄은 알지 못할 것이라며
모란꽃에 비유하여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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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全唐詩(전당시)] 惜牡丹花二首(석모란화2수) - 白居易(백거이)
<애석해라 모란꽃>
https://blog.naver.com/swings81/221246684904
○ 王維(왕유) : 699?~759?. 당(唐)나라의 시인이자 화가로서
자(字)는 마힐(摩詰)이다.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시에 뛰어나 ‘시불(詩佛)’이라고 불리며,
수묵(水墨) 산수화에도 뛰어나 남종문인화의 창시자로 평가를 받는다.
상서우승(尙書右丞)의 벼슬을 역임하여 왕우승(王右丞)이라고도 불린다.
755년 안사의 난이 일어나고, 756년 장안(長安)이 점령되자 왕유(王維)는
반란군에 사로잡혀 낙영으로 끌려갔다. 이 곳에서 그는 벼슬을 받았지만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남전(藍田)의 종남산(終南山) 기슭에 세운
망천장(輞川莊)에 머물며 시(詩)로서 자신의 마음을 나타냈다.
그후 숙종(肅宗) 때 태자중윤(太子中允)으로 등용된 뒤,
태자중서자(太子中庶子), 중서사인(中書舎人), 급사중(給事中)을 거쳐
상서우승(尙書右丞)이 되었다. 이백(李白), 두보(杜甫)와 함께
중국의 서정시 형식을 완성한 3대 시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 모란의 한자 글자를 보면 모(牡,중국발음 mŭ)는 목(木,mū)와 음이 가깝고
단(丹)은 당나라 황제가 즐겨 복용한 선약의 의미이다.
여기에서 작약의 약을 단(丹)으로 바꾸고 목을 대신한 모(牡)를 합해서
모란(牡丹)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더구나 모(牡)는 남성을 의미하고
단(丹)에는 단심(丹心)·단성(丹誠)의 뜻이 있으므로
술어로서의 모란이 함유하고 있는 의미는 천하의 남자가
그녀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모란의 자의(字義)를 직접 해석한 당대(唐代)의 사료가 없는 이상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 모란 - 들어가는 말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3, 2004. 3. 10., 이상희)
[출처] [全唐詩(전당시)] 紅牡丹(홍모란) - 王維(왕유)|작성자 swings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