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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출산 천황봉. 사자봉을 돌아내리기 전에 지능선 암봉에 올라 바라본 모습이다.
月出山 높더니마는
믜온 거시 안개로다
天皇 제일봉을
일시에 가리와다
두어라 해 펴딘 희면
안개 아니 거드랴
―― 고산 윤선도, 「산중신곡」 중 ‘조무요(朝霧謠)’
▶ 산행일시 : 2023년 3월 4일(토, 무박산행), 맑음, 미세먼지 나쁨
▶ 산행코스 : 도갑사,억새밭,구정봉,마애여래좌상,삼층석탑,구정봉,바람재,천왕봉,구름다리,천황사,천황주차장
▶ 산행거리 : 이정표 거리 10.9km
▶ 산행시간 : 6시간 50분
▶ 교 통 편 : 다음매일산악회(19명) 우등버스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23 : 40 - 양재역 1번 출구 100m 전방 스타벅스 앞
24 : 00 - 죽전정류장
02 : 20 - 백양사(순천)휴게소( ~ 02 : 40)
04 : 00 - 도갑사 주차장, 산행시작
05 : 15 - 억새밭
05 : 58 - 구정봉(九井峰, 710.9m)
06 : 18 - 마애여래좌상, 삼층석탑
06 : 50 - 다시 구정봉( ~ 07 : 05)
07 : 19 - 바람재삼거리, ┣자 갈림길 안부
07 : 58 - 천황봉(天皇峰, △810.7m), 휴식( ~ 08 : 22)
08 : 29 - 통천문
08 : 33 - 통천문 삼거리
09 : 40 - 구름다리
10 : 22 - 천황사
10 : 50 - 천황주차장, 산행종료
11 : 35 - 버스 출발
14 : 26 - 천안삼거리휴게소( ~ 14 : 41)
15 : 40 - 양재역
2-1. 월출산 지형도(국토지리정보원, 영암 1/25,000)
2-2. 월출산 지도(영진지도, 1/50,000)
일출을 보려고 무박을 들여 산행하는 것은 도박이다. 며칠 전부터 일기가 좋다는 것을 확인했어도 도박임에는 변
함이 없다. 월출산 국립공원의 일출광경을 담은 광고사진에 혹하기도 했다. 사실 월출산은 간다면 당일산행으로
충분하다. 천황사에서 도갑사까지 이정표 거리 9.5km. 또는 그 반대로 진행해도 마찬가지다. 5시간 정도 걸린다.
그러나 일출을 보기 위해 무박으로 간다. 장엄한 일출을 보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를 생각
하여 봄이 얼마쯤 왔나 마중 가는 길이기도 하다.
다음매일산악회 진행대장님도 천황봉 일출이 무산될 수 있음을 염려한다. 천황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캄캄
한 밤이라 구름다리에서부터 천황봉에 이르는 주변의 절경을 죄다 놓치면서까지 천황봉을 올라 일출마저 그르친
다면 너무 억울하다. 그래서 당초 진행방향을 바꿔 도갑사에서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구정봉에서도 일출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시간여유가 있으면 구정봉 북릉 자락 0.5km 지점에 있는 국보인 마애여래좌상을 친견해도 좋고.
너른 도갑사 주차장이 썰렁하다. 우리 버스 한 대 뿐이다. 월인교 건너 도갑사로 간다. 대개 등산로는 절집을 비켜
가는 데 여기는 절집 안으로 들어간다. 절집 들어가기 전에 나란히 가는 바깥길이 있지만 방향표지판은 거기는
등산로가 아니라고 하며 절집을 안내한다. 일주문을 지난다. ‘月出山道岬寺’라 쓴 현판 글씨가 시원하다. 행초서
의 대가로 불리는 운암 조용민(雲庵 趙鏞敏, 1926~2017)의 글씨라고 한다.
일주문 양쪽 문설주에 주련을 달았다. 함허당 득통(涵虛堂 得通(1376~1433) 스님이 지은 『금강경오가해 설의
(金剛經五家解 說誼)』 서설에 나오는 시구라고 한다. 다음 시구 중 앞 두 구를 취했다.
歷千劫而不古 천겁을 지나도 옛이 아니고
亘萬歲而長今 만세에 뻗어 있으되 늘 지금이라
多經海岳相遷 바다와 산이 서로 많이 바뀌었는데
幾見風雲變態 풍운이 변하는 모습 얼마나 보았던가
해탈문을 통해 절집 안으로 들어간다. 도갑사가 대찰이다. 예전에 보았던 모습과 사뭇 다르다. 너른 마당 지나
대웅전 왼쪽 옆으로 올라간 다음 천불전 왼쪽 옆으로 간다. 이정표가 산길을 안내한다. 도갑계곡을 거슬러 오른
다. 계류는 동안거 중이다. 보물이라는 ‘도갑사도선수미비(道岬寺道詵守眉碑)’를 보존한 커다란 건물 앞을 지나
고, 도선교에 이어 수미교를 건너면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밤공기가 차다. 등로는 얼었다. 겉옷을 벗
으면 춥고, 입으면 덥다.
이따금 우러르는 하늘에는 나뭇가지 사이로 별들이 보인다. 쾌청할 조짐이다. 이르지 않도록 느릿느릿 걷는다.
앞뒤로 불빛이 보이지 않는 혼자 가는 산행이다. 돌길 나오면 헤드램프 비추는 데가 다 길로 보여도 살피고 또
살펴 그중 잘난 길로 간다. 억새밭 0.6km. 약간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데크로드를 간다. 상당히 길다. 억새밭
이다. 지도에는 ‘미왕재’라고도 한다. 고도 540m쯤 될까. 찬바람이 세게 분다. 바람벽도 없다. 그저 걷는 수밖에.
억새밭에서 그 남서릉은 도갑산 넘어 별뫼산, 가학산, 흑석산으로 가는데, 금줄 치고 막았다. 함부로 가다가는
예전과 다르게 큰 금액의 과태료를 물게 될 거라고 한다. 12년이 되었다. 오지산행에서는 천황사에서 시작하여
천황봉과 구정봉을 넘고 흑석산까지 갔었다. 중간에 별뫼산을 생략했지만 도상거리 21.9km로 소요시간 10시간
29분이 걸렸다. 그때 천황봉 일출은 볼품이 없었다.
3. 마애석불좌상
안내판 사진을 사진 찍었다. 안내문에 적힌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국보(國寶) 144호인 이 마애석불(磨崖石佛)은 구정봉(九井峰, 해발 738m)
에서 약 500m 떨어진 벼랑 아래 큰 바위에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몸 길이 8.6m, 무릎 폭 4m, 어깨 폭이 길이는
2.5m로, 그 크기가 웅장하고 정교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또한 오른쪽 무릎 옆에 86cm의
동자상이 있어 더욱 이채롭게 느껴진다. 신체에 비해 다소 큰 얼굴과 너무 작게 표현된 팔 등에서 불균형한 비례
와 경직된 표현이 엿보여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짐작된다.”
4. 구정봉에서 가장 큰 우물
5. 구정봉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일행
6. 구정봉 북릉
7. 향로봉 남동릉
8. 향로봉 남동릉, 가운데 암반에 오뚝이처럼 서 있는 바위가 중국 황산의 비래석을 닮았다.
9. 천황봉
11. 구정봉 내려 바라본 일출
▶ 구정봉(九井峰, 710.9m)
구정봉을 향한다. 아직 05시 15분이라 캄캄하다. 헤드램프 밝혀 간다. 향로봉 남릉 직등은 험한지 그 왼쪽의 굴곡
진 사면 돌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돌아 오른다. 찬바람을 피할 수 있어 다행이다마는 숲속이라 더 어둡다.
향로봉 왼쪽 사면을 길게 돌아 오르고 구정봉 직전 갈림길이다. 마애여래좌상 0.5km, 삼층석탑 0.6km. 거기에
다니러 간다. 일거다득이다. 첫째, 구정봉에서 일출 볼 시간을 벌고, 둘째, 국보인 마애여래좌상을 친견하고,
셋째, 한 자리수인 오늘 산행거리를 두 자리수로 늘린다.
구정봉 북릉을 내린다. 뚝뚝 떨어진다. 험로는 없다. 여기도 길을 잘 다듬어놓았다. 가파른 데는 데크계단을 설치
했다. 이 길을 다시 오를 일을 생각하니 괜히 촐싹거린 것은 아닌지 불경스런 생각이 든다. 능선 갈림길에서 왼쪽
으로 50m 내려가면 마애여래좌상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세 배는 가는 것 같다. 먼저 두 손 모아 읍하고 올려
다본다. 어둠 속 어슴푸레한 모습이다. 장대하다. 몸 길이 8.6m, 무릎 폭 4m, 어깨 폭 길이 2.5m. 이렇게 높은
암벽에 거대하고 정교한 좌상을 새겼다는 사실이 놀랍다.
여래의 품안에 있을 때는 안온했는데, 그 품 벗어나니 찬바람과 마주한다. 삼층석탑은 사면 돌아 120m 가면 볼
수 있다고 한다. 보러간다. 사면 길게 돌아 구정봉 북릉에 올라선다. 둥그스름한 바위 위에 삼층석탑이 올려 있다.
왜소하다. 그래도 우리나라 보물이다. 마애여래좌상이나 삼층석탑도 어두워 사진이 찍히지 않는다. 눈에 꼭꼭 담
아둔다. 이 근처에 지금은 폐사된 용암(龍菴)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 문인인 창주 정상(滄洲 鄭祥, 1533~1609)는 72세 때인 1604년(선조 32)에 이 근처에서 구정봉을 올랐
다. 그의 「월출산유산록(月出山遊山錄)」이 재밌다.
“죽장에 짚신을 신고 발길 가는대로 올라갔더니 겨우 산 중턱에 이르렀는데도 이미 속세가 아니었다. 깎아지른
듯한 거대한 바위, 미친 듯 맹렬한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폭포, 이 모든 것이 보는 사람 눈이 번쩍 뜨이고 간담
이 덜덜 떨리게 했다. 달아날 듯 머문 듯, 싸울 듯 공손한 듯한 모습이 용이 날고 호랑이가 뛰어오르며, 봉황이 춤
추고 난조(鸞鳥)가 나는 것 같았으며 그 사이에 쇠를 부딪고 옥을 두드리는 소리, 축(筑:거문고 비슷한 악기)이며
금(琴:거문고)을 타는 소리가 들리니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멍멍해 혼돈 굴에 들어가 조물주의 새로운 악곡 연주
를 보는 것 같았다.”
그는 용암사에서 1박 하고 다음 날 구정봉에 올랐다. 그가 보았다는 삽허봉 등은 지금 무슨 봉우리를 말하는지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구정봉에 올라가니 북쪽으로는 천황봉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삽허봉(插虛峰)이, 남쪽으로는 불도봉(佛圖峰),
미륵봉(彌勒峰), 선번봉(仙幡峰)이 칼을 묶어 허공을 받친 듯, 갈래창(戟)이 공중에 가로 걸린 듯한 모습이 사방으
로 끝이 없어 속되지 않은 우아한 흥취가 갑자기 일어났다.”
삼층석탑을 보고 나니 주변에 물상이 흐릿하게나마 보인다. 헤드램프를 소등한다. 우리 일행 중 내가 제일 먼저
마애여래좌상을 보러 왔다. 내 뒤로 오는 일행 3명을 만나고 새삼스레 묻는 그들에게 그 위치를 자세히 알려준다.
이 고장 영암(靈巖)을 이름하게 한 영암(靈巖)이 어느 바위일까 이 바위 저 바위 둘러보며 오른다. 아직껏 아는
이가 없는 모양이다. 영암(靈巖)을 안다면 명승으로 지정하고 안내할 텐데 말이다.
귤산 이유원(橘山 李裕元, 1814~1888)은 그의 『임하필기(林下筆記)』 ‘월출산(月出山)’에서 영암(靈巖)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봉우리(구정봉) 밑에는 세 개의 큰 돌이 있는데, 이를 이름하여 동석(動石)이라 하는바 바위 위에 벌여 서 있으
며 높이는 한 길 남짓하고 둘레는 열네 아름이나 되는데 동쪽으로는 절벽에 면하여 있다. 그 우람한 모습이 보기
에는 마치 수많은 사람을 동원한다 해도 이를 움직일 수 없을 듯한데, 한 사람만 흔들어도 돌이 움직이는바 고을
이름을 영암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峯下有三大石。名曰動石。列在巖上。其高丈餘。周十四圍。東臨
絶壁。其大。雖用千百人。似不得動。而一人搖之則動。郡之名靈巖。以此。)”
ⓒ 한국고전번역원 | 홍승균 (역) | 1999
반석 오르고 통천문 지나 구정봉을 오른다. 일출 전이다.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댄다. 봄 마중 왔다가 얼어 죽게
생겼다. 바위틈에 웅크리고 앉아 일출을 기다린다. 분명 일출시간이 지났는데도 조용하다. 동쪽 하늘은 약간 불그
스름할 뿐이다. 미세먼지가 심하게 끼였다. 구정을 세어본다. 물이 마른 작은 웅덩이까지 모두 포함한다면 12개
나 된다. 어쩌면 꼭 아홉 개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홉이라는 숫자의 상징성에 기댄 것을 아닐까 한다.
나 또한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升, 1527~1572)이 그랬던 것처럼 사방을 바라본다. 그의 「구정봉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다(登九井峯四望)」라는 시이다. 실감 나는 산행기 한 편을 보는 것 같다. 그때도 바람이 세게 불었다. 북극
성이 만질만하고 부상이 지척이라니 그도 새벽에 올랐음이 틀림없다.
蒼蒼月出山 푸르고 푸른 월출산은
海岸寔高峙 바닷가에 높이 솟았네
塵蹤阻探歷 진세에 묻혀 탐승을 못하니
歲暮心不已 늦도록 마음에 잊지 못하였네
今來亦何慊 지금 왔으니 또한 무엇이 부족하랴
一盪胸中滓 가슴속의 찌꺼기 모두 씻어 버렸네
矯首試俯瞰 머리를 들어 멀리 바라보니
開豁無依倚 확 트여 걸림이 없구나
茫茫附地山 망망한 땅에 붙은 산이요
渺渺接天水 아득한 하늘에 닿은 물이로다
北極庶可攀 북극성도 거의 만질 만하고
扶桑想如咫 부상도 지척처럼 생각되네
巖溜滴成坎 바위에 떨어지는 물웅덩이 파이고
龍跡亦奇詭 용의 발자국 또한 기괴하구나
逈立遡長風 높이 서서 긴 바람 거스르며
貳觀元始氣 다시 원시의 기운도 관람하노라
ⓒ 한국고전번역원 | 성백효 (역) | 2007
12. 구정봉 동벽, ‘큰바위얼굴’이라고 한다.
13. 천황봉 가는 길 오른쪽의 지능선들
14. 향로봉
15. 향로봉 남동릉
16. 천황봉 가는 길 오른쪽의 지능선들
17. 천황봉 남동릉
18. 왼쪽이 사자봉
19. 왼쪽이 사자봉, 오른쪽은 천황봉 남동릉
▶ 천황봉(天皇峰, △810.7m)
월출산의 하이라이트는 구정봉에서 천황봉을 오가는 주릉이다. 걸음걸음 또는 계단마다 전후좌우 경점이다.
기암괴석의 전시장에 들어선 느낌이다. 혹은 날카롭고 혹은 무딘 암봉들을 사열한다. 향로봉 남동릉의 바위들도
월출산 일원으로서 당당히 한 몫 한다. 그중 암반에 오뚝이마냥 서 있는 바위는 중국 황산의 비래석과 판박이이
다. 바람재삼거리에서 뒤돌아보는 구정봉의 동벽을 ‘큰바위얼굴’이라며 영락없는 그 사진을 안내판에 붙였다.
지금 그 얼굴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마 눈썹 아래 저녁 햇살 그늘이 없어서다.
구정치에서 바닥 치고 긴 오르막이 이어진다. 한 발 한 발 오를 때마다 뒤돌아보는 경치가 달라진다. 산행 순로는
천황봉에서 구정봉 쪽으로 가는 것인가 보다. 남근바위만 해도 그렇다. 좁은 바윗길에 별다른 느낌이 없이 그저
두툼한 문설주를 지났는가 했는데 그게 남근바위라는 안내판이 보고 알았다.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돼지바위
는 등로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 바라보니 그럴 듯하다. 데크계단과 돌길을 번갈아 올라 천왕봉이다.
일단 사방 둘러 경치 먼저 카메라에 담고, 바람 피하고 햇볕 따스한 바위벽 골라 자리 편다. 음주를 금지한다고 곳
곳에 플래카드 걸어놓았지만 몰래 탁주 독작한다. 더 맛있다. 안주는 눈에 가득한 주변의 가경이다. 한 병만 가져
온 게 큰 잘못이다. 정관재 이단상(靜觀齋 李端相, 1628~1669)은 21세인 1648년(인조 26) 가을에 월출산을 올랐
다. “천지 간에 술잔을 머금자 시름이 사라지네(含杯天地罷窮愁)”라 하였으니, 그도 천왕봉에 올라 술을 마셨다.
그의 시 「월출산에 오르다(登月出山)」이다.
月出橫臨六十州 월출산이라 가로로 예순 고을에 임하였으니
崢嶸靑壓漢挐浮 우뚝하니 짙푸르게 한라산을 누르고 있도다
層雲不辨中原色 층층 구름은 들판의 색과 분간하기 힘들고
落日遙懸大海流 지는 해는 대해의 파도에 아스라이 걸렸도다
拂袖煙霞生睥睨 연하 속에 소매를 떨치자 거드름이 생기고
含杯天地罷窮愁 천지 간에 술잔을 머금자 시름이 사라지네
堂堂落雁峯頭語 당당해라 낙안봉에 올라 탄식한 말이여
媿殺千秋謝脁休 천추에 빛나는 사조의 시에 몹시 부끄럽도다
시구 중 ‘낙안봉(落雁峯)’은 중국 화산(華山)에 있는 봉우리 이름이라고 한다. 이백(李白)이 일찍이 화산 낙안봉에
올라 “이 산이 가장 높으니, 호흡하는 기운이 천제의 자리와 통할 정도인데, 사조의 사람을 놀라게 하는 시구를 끌
어와 머리를 긁적이며 청천에 묻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도다.(此山最高, 呼吸之氣想通天帝座矣. 恨不攜謝眺驚人
詩來, 搔首問靑天耳.)”라고 하며 사조(謝脁, 464~499)처럼 훌륭한 산수시(山水詩)를 짓지 못하는 것을 탄식한 일
이 있다고 한다.
이백이 탄식한 사조의 산수시는 「저물녘에 삼산에 올라 경읍을 돌아보다(晩登三山, 還望京邑)」라는 시라고 한다.
이 시는 사조 산수시의 대표작으로, 천고의 절창으로 일컬어진다고 한다. “서글퍼라 언제나 고향으로 돌아갈꼬/
눈물이 떨어져 싸락눈처럼 흐르는구나(佳期悵何許 淚下如流霰)”라는 구절이 절창이어서 일까? 그 전문을 들어본다.
灞涘望長安 파수 가에서 장안을 바라보고
河陽視京縣 하양 땅에서 경성을 돌아보니
白日麗飛甍 햇살이 높은 용마루에 곱게 비춰
參差皆可見 들쑥날쑥 모두가 볼 만하도다
餘霞散成綺 남은 노을은 흩어져서 깁을 이루고
澄江靜如練 맑은 강은 고요하기 명주 같아라
喧鳥覆春洲 시끄러운 새는 봄 모래섬을 뒤덮었고
雜英滿芳甸 온갖 꽃은 향기로운 들판에 가득하네
去矣方滯滛 떠나가 장차 오래 머물 터이니
懐哉罷歡宴 끝나버린 즐거운 연회가 그립도다
佳期悵何許 서글퍼라 언제나 고향으로 돌아갈꼬
淚下如流霰 눈물이 떨어져 싸락눈처럼 흐르는구나
有情知望鄕 인정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는 법
誰能鬒不變 뉘라서 머리가 세지 않으리오
ⓒ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 | 최병준 (역) | 2018
20. 바람골 주변
22. 천황봉 남동릉
23. 향로봉과 구정봉
24. 뒤는 노적봉
25. 천황봉과 구정봉 사이 주릉 왼쪽 사면
26. 바람골 주변
27. 천황봉 남동릉
29. 앞 오른쪽은 사자봉
▶ 천황사(天皇寺)
오늘 주어진 산행시간이 9시간이지만 단축하자는 데 모두 동의했다. 13시 산행마감을 11시 30분으로 앞당겼다.
그래도 넉넉하다. 어디 들를 데 없을까 고민한다. 통천문 지나고 ┣자 경포대 갈림길 지나고 오른쪽 사면을 돌 때
능선을 오른 인적이 보이기에 금줄 넘어 따라간다. 되게 가팔라서 사족보행 한다. 그리고 암봉 중턱에 올라 뒤돌
아 침봉들 감상한다. 지능선 넘을 때도 잡목 숲속 인적을 쫓아 암봉을 오르고 천황봉의 수려한 모습을 보고 즐긴다.
예전에는 사자봉을 돌아내리고 그 안부를 올라 구름다리로 내리는 길이 대단한 험로였다. 요즘은 전혀 아니다.
길고 가파르게 떨어졌다가 그렇게 오르고 또 가파르고 길게 내린다. 그렇지만 너덜 돌길을 계단처럼 다듬었고,
구름다리로 내리는 암릉 길은 교행이 가능한 데크계단을 설치했다. 도리어 심심하다. 한편, 마음 놓고 현란한
바람골 주변과 장군봉을 비롯한 암봉들을 들여다본다. 여기를 캄캄한 밤에 보지 못하고 지나친다는 것은 참극이
아닐 수 없다.
구름다리는 2006년 5월에 옛 다리를 철거하고 다시 놓았다. 연장 54m, 통과폭 1m, 지상고 120m, 해발고 510m,
동시 통과 200여명. 바닥재는 유리섬유 복합재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아쉬운 점은 다리를 지날 때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없도록 바닥재를 불투명재를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아니면 약간의 요동이 있던가. 구름다리 지나고 ┣자
갈림길 오른쪽 바람골 바람폭포가 0.5km에 불과하다. 폭포를 보러 갈까 말까 망설이다 그쪽에서 올라오는 분이
있어 폭포 사정을 물었다. 물도 없고 낙차폭도 얼마 되지 않아 그걸 보려고 일부러 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발품 덜었다. 천황사로 내리는 길이 너덜길이다. 천황봉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모두 땀을 뻘뻘 흘린다. 능선에
오르면 춥도록 찬바람이 불더라고 알려준다. 등로 주변에는 사스레피나무와 동백나무 등 상록수가 흔하다. 동백
나무는 이미 꽃이 졌는지 꽃봉오리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고 봄은 보이지 않는다. 가파름이 푹 수그러들고 시누
대 숲을 지나 천황사다. 아담한 절이다. 2001.4.15. 화재로 소실된 절을 2007년부터 대적광전 등을 복원하여 사용
하고 있다.
대로를 내린다. 캠핑 야영장 지나고 천황주차장이다. 간신히 봄이 움트는 것을 찾았다. 주차장 산수유나무에서다.
시간이 일러 점심 먹을 생각이 없다. 11시 30분이 되자 일행들 모두 모여든다. 곧바로 서울로 향한다. 서울 가는
차창 밖 풍경도 여전히 뿌옇다.
30. 바람골 주변
31. 장군봉
32. 바람골 주변
33. 멀리 가운데는 천황봉이다
34. 멀리 왼쪽이 천황봉이다
35. 바람골 주변
36. 구름다리. 다리 바닥을 투명하게 하여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었으면 했다.
37. 천황사에서 바라본 사자봉
38. 천황주차장에서 찾아낸 산수유 꽃봉오리
첫댓글 멋드러진 일출은 아니지만 기암괴석을 알차게 구경하셨네요...역시나 그날도 저녁은 아니지만 점심은 굶었네요? ^^
이제 저도 빵 한 조각으로 하루 산행합니다.
덕순이가 그립습니다.ㅠㅠ
참 부지런도 하십니다!
다리가 성할 때 부지런히 다녀야죠.^^
봄꽃이 사알짝 올라오는군요. 멋진 남도 산행입니다.
무박 거리가 안 되는데 일출 때문에 갔습니다. 옆구리봉 갈 일행은 없고, 일찍 귀경했습니다.^^
작지만 옹골찬 월출산입니다 저기에는 케이블카가 언제 생길지...
전과는 다르게 바윗길, 너덜 길, 가파른 데는 온통 데크계단으로 덮어버렸습니다.
걷기 심심합니다.^^
성자동 언덕의 눈
♣김지하
지금도 너는 반짝이느냐
성자동 언덕의 눈
아득한 뱃길 푸른 물구비 구비 위에
하얗게 날카롭게
너는 타느냐
산 채로
산 채로 묻힌 붉은 흙을 헤치고
등에 칼을 꽂은 채 바다로 열린 푸른 눈
썩은 보리와 갈라진 논바닥이 거기서 외치고
거기서 나의 비탄은 새파란
불꽃으로 변한다 너는 타느냐
마주한 저 월출산 아래 내리는
저 용당리 들녘에 내리는 은빛
비행기의 은빛 비늘의 눈부심, 독한 눈부심 위에 아아 푸른 눈
침묵한 아우성의 번뜩임이 거기서 타느냐
지금도 너는 반짝이느냐
성자동 언덕의 눈
하얗게 날카롭게 너는 타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