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나의 이야기에 저에 대한 글을 올렸다가 지운적이 있는데
애프터스쿨님의 글을 보니 저도 문득 증인2세로서 성장했던 제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절 이야기를
다시금 적어보고 싶어져서 이렇게 글 올려봅니다.
죄송하지만 미리 말씀드리자면 제 이야기는 딱히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1
말그대로 태어나서 눈떠보니 선택의 여지없이 증인 가족들 틈에 있었다.
부모님과 많은 친척들이 지금까지도 현역 증인이다. 몇몇 비증인인 친척들은 아무래도 집안에서 소외당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매우 골수 증인인 고모중 한명은 자녀들이 집회나 봉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폭력도 행사했다.
그 고모의 자녀들은 지금도 "협회 말씀"이라고 하면서 집회가서 들은 이야기를 하나님 말씀으로 착각하는 증인들인데
나이 서른이 넘었는데 딱히 직업도 없고 결혼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가족들은 그 심각성을 모르신다.
우리 부모님은 그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어쨌든 여증만이 참 조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다.
그런 증인 가족이라지만 가정불화와 친척들간의 다툼은 끊이지 않았다.
불화의 가장 큰 원인은 알고보면 결국 돈이었다.
비증인인 친척들이 종교 믿으면서 곧 낙원 간다는 사람들이 왜그렇게 돈에 혈안이 되어있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 하기도 했다.
일주일에 세번씩 가야하는 집회는 부담스러웠고, 항상 몸은 가 있었지만 머릿속엔 딴생각이 가득했다.
아버지는 믿음 좋다는 고모의 자녀들과 나를 비교하거나 회중의 다른 증인 2세들과 비교하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영성이 좋지 않다느니, 심지어 회중에서는 내가 여성스러운 성격이 아닌 것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친척집에 가면 고모가 대학가지 말고 여증해서 파이오니아 하라는 등의 말씀을 하셨다.
내게 종교 강요를 많이 하셨지만 부모님의 불화가 심해지면서 내게 점점 아무 말씀 하시지 않으셨다.
대신 가족들이 회중의 한 장로부인께 부탁해서 일주일에 한번씩 오셔서 내 연구사회를 하셨다.
연구때는 항상 사회자 자매분이 원하는 대답을 골라서 했지만 진심으로 믿어져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가장 싫었던건 여름의 지역대회였다.
며칠동안 그 더운 날씨에 오랜시간동안 앉아서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을 듣고 때마다 박수를 치는건 고역이었다.
딱 그날만 아파서 병원 응급실이라도 실려가던지 해서 대회를 빠지고 싶은 생각까지 했지만 너무 건강했다.
필기하는척 하면서 노트에다가 그림그리고 놀고 열심히 듣는척 하면서 딴생각 하고를 반복했다.
증인 이외에는 사회성 없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고등학교때까지 학교에서 거의 왕따와 같은 존재였다. 날 괴롭히는 아이들도 많았다.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친한 친구가 한두명 있기는 한데 그 친구들에게 증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2
부모님 사이엔 항상 이혼 이야기가 오갔지만 증인사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하지 않으셨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은 서류상으로만 부부일뿐 같이 살지 않으셨고
대학가서 자취를 하기 전까지 나는 아버지집과 어머니집을 오가며 살았다.
두분 다 마음 둘 곳은 딱히 없고 해오던 것이고 하니 계속 열심히 증인생활을 하시긴 하셨다.
세뇌탓에 어릴적부터 증인만이 참 조직이라 믿어왔고 백프로 진실인줄로만 알았던 경험담들을 들어왔다.
증인 안믿으면 죄다 낙원 못가고 죽는 줄 알았으며 하나님 눈밖에 나면 큰일난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다 조금씩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자주 말바꾸는 것들이 황당하기도 했고
생일 잔치를 금지하는 이유는 비성경적이다 못해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좋은분들도 많았지만 본인들이 자녀들에게 가르치는대로 살지 못하는 위선적인 기성세대 증인들에게 지쳐갔다.
중학교때부터 회관을 조금씩 가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집회에 빠지는 것을 당연히 싫어하셨고 같이 갈것을 늘 말씀하셨지만
공부 핑계를 대고 가지 않다가 고등학교때는 일주일에 한번이나 이주일에 한번 가능정도로 줄어들었다.
주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확신이 없다는 이유로 침례 받는 것을 미루었다.
그러다 역시 증인2세들이었던 사촌들중 몇몇이 증인을 그만두기 시작했다.
나보다 나이가 십년 정도 위였는데 그들은 내가 모르던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후반에 여증관련된 다음 까폐들을 알게 되었는데 진실을 알면 알수록 충격적이었다.
그 무렵 회중의 착실했던 또래 증인2세들이 가출과 탈선의 길들을 걷기 시작했고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3
그 가운데 대학에 갔다. 바램대로 집을 떠나 자취를 하게 될수 있었다.
대학가지 말라던 친척들과 증인들이 우리 어머니에게 어떻게 날 공부시켰냐고 부러워하며 묻는데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서 대학가서 혼자 살다보면 외로워서 임신을 할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에 그냥 할말을 잃었다.
그 말을 듣고 그 사람들 보란듯이 증인 안해도 도덕적으로 똑바로 살아야한다고 다짐했다.
원하던대로 혼자 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집회에 가지 않게 되며 증인조직을 벗어났다.
침례를 받지 않았으니 딱히 골치아프게 될 일 문제도 없었지만 증인생활의 여파로부터 온전히 벗어날수는 없었다.
우울증을 겪었고 여전히 사람들과 섞이는 것이 어려웠다.
그 무렵 중립 가기를 강요받던 사촌동생이 고민이 많다며 나를 찾아왔다.
부모님 믿음보다도 네 소신대로 하라고 설득했더니 녀석이 내게 고맙다고 말하며 입대했다.
가족들과 친척들이 모두 어이없어 하는 눈치였지만 그 동생은 얼마전 제대해서 누구보다 성실히 남은 대학생활과 일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생활을 하던중
좋은 기독교인 선후배들을 만나게 되었고, 군대 다녀온 사촌이 만나는 사람도 기독교인이라 자연스럽게 교회로 옮겨갔다.
여증에 있을때의 습관 탓인지 일요일 뿐 아니라 평일 예배까지 나가고 증인땐 상상도 하지 못할 열심으로 교회생활에 임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여증때와의 배운 것들의 차이와 내면의 갈등으로 한동안 많이 힘들어했다.
그럴수록 성경읽기에 더욱 주력했고 성경공부 등에 참여하면서 증인때 너무 특정 성구만 인용해서 배워서
몰랐던 부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깊이 연구하고 여러가지 해석 등에 대해서도 찾아보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연애를 한번도 한적이 없다.
이제는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 내가 많이 닫혀있는듯하다.
가족으로 인한 상처와 여증으로 인한 상처를 혼자 갖고 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다른 누군가가 같이 지고 가게 된다면 너무 큰 민폐가 될까봐서 일찍 물러서는 것도 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혼자 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더 하나님 사랑을 아는 것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4
나도 이제 대학을 졸업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인 20대중반이고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성숙해지려면 아직 멀었다고 느끼고 있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워야 할 때이다.
취업준비를 할 무렵 아는 사람이 일자리 이야기를 하며 다단계 회사에 끌고 간적이 있다.
다단계임을 알아차리고 안한다고 단호히 말하고 나왔지만
두어시간동안 나오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그곳에서 본 풍경은 마치 예전 여증 대회에서 보고 느꼈던 모습과 웬지 비슷했다.
헛된 희망을 심어주며 사람들에게 좋은 면만을 보여주며 진리가 아닌 길로 현혹하는,
그러면서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지금도 한 조직에 속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가 들때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여증에서보다는 지금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더 바로 알아가고 차차 믿게 되어가고 있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에는 오류와 허물이 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 혹은 천주교도 문제가 있다.
특히 사람들이 자칫하면 맹신으로 빠지는 한국 종교적인 문화상 특히 더 그런면도 있는것 같다.
그러나 여증처럼 자신들만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말도 안되는 실수를 여러번 반복하고
비성경적인 행동을 하면서 지상 유일의 참 하나님의 조직이라고 하는 것인 큰 교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기만하는 행위를 하는 조직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하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라도 진정 하나님을 찾고 바라본다면 꼭 만나주실 것이라 믿는다.
현재의 가장 큰 목표는 어떠한 조직이든간에 그 틀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구원이 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지금보다 더 마음에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생각보다 참 어려운 일이지만 이 땅에서 내게 생명이 허락된 그 시간동안 그 목표를 날마다 조금씩 이뤄가고 싶다.
첫댓글 경험담은 언제나 읽어봐도 잼있습니다..한 가지 놀란점은 증인2세들은 다른 종교를 가진다는게 쉽지 않은데 어떤면에서 대단하십니다
저도 어려서 교회에 나간적이 있었는데,,맨날 울고 불고,, 노래 연습 춤연습,악기 연습,,이벤트 준비 한것 밖에 기억이 없어요, 그러다 증인이 되고,,성구 줄줄 대면서 설명하는데 완전 혹 했지요,,요세는 달라진것 같네요, 교회도, 여튼, 님도 어려운 시절 겪으셨네요, 앞으로는 행복한 일들만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제 종교는 자신이 알아서 선택하는 문제인것을 부모님이 자식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모습은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닐텐데요.인간은 마음가는대로 순리대로 살아야 하는 법인데요.
재미없지 않습니다. 솔직히 예전부터 님의 글을 읽으면 웬지 슬프고 우울한 분위기를 느끼곤 했습니다. 아직 젊고 기회가 많은 분이니 희망을 갖고 멋지게 인생을 설계하시길 바랍니다. 지금부터라도 님을 사랑해 주는 분을 만나서 연애도 하시고요 멋진 직장도 구하시고요...실력도 키우시고요 보란듯이 아주 멋지게 사시길 바랍니다
경험담, 잘 읽었습니다. 증인2세가 겪는 어려움들이 많이 들어있네요. 사회부적응자가 되는 증인2세의 비극,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곳 카페에서 좋은 친구를 사귀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