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단구함(弊簞救鹹)
구멍 난 광주리로는 소금을 담을 수 없다는 뜻이다.
弊 : 해질 폐(廾/11)
簞 : 소쿠리 단(竹/12)
救 : 구원할 구(攵/7)
鹹 : 짤 함(鹵/9)
출전 : 벽위편(闢衛編)
박태순(朴泰淳)의 시 지감(志感)에 나오는 네 구절이다.
康莊何日變巉巉,
四牡橫奔又失銜.
一木豈支大廈圮,
弊簞未救塩池鹹.
평온하다 어느 날 가파르게 변하니, 수말 네 마리가 재갈 풀고 횡으로 달리는 듯. 재목 하나로 큰 집 기움 어이해 지탱할까? 구멍 난 광주리론 염전 소금 못 구하리.
이제껏 탄탄대로를 밟아 평탄하게 지내왔다. 어느 순간 세상이 바뀌자 인심이 가파르고 각박하다. 힘 넘치는 수말 네 마리를 나란히 매어놓고 채찍질해 큰길을 내달리는데, 재갈마저 물리지 않아 제동 장치가 없는 형국이다. 미친 듯이 내닫다가 끝에 가서는 어찌 될지 모르겠다.
큰 건물이 기우뚱 기울었으니, 재목 하나로 받쳐 지탱코자 한들 될 일이겠는가? 염전에서 소금을 구워 담으려 해도 구멍 난 해진 광주리로는 방법이 없다. 시인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격랑의 회오리 앞에 뭔가 할 말이 많았던 모양인데, 이렇게만 말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홍낙안(洪樂安)이 채제공(蔡濟恭)에게 1791년 9월에 발생한 천주교 진산(珍山) 사건의 신속한 처리를 요청하는 편지를 썼다. 천주교 신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부모의 신주를 불태운 일로 시작된 이 사건은 당시 조선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다음은 홍낙안의 긴 글 중 일부다. "옛날에는 나라의 금법을 두려워해서 어두운 방에서 모이던 자들이 지금은 백주 대낮에 마음대로 다니고, 공공연히 멋대로 전파합니다. 예전 파리 대가리만 한 작은 글씨로 써서 열 번씩 싸서 숨겨두던 것을 이제는 함부로 책자로 찍어내서 여러 지방에 배포합니다. 한번 이 천주학의 가르침을 듣기만 하면 목숨을 버리고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지상의 생사를 버리고 기쁜 마음으로 만겁의 천당에 들어가듯 하니, 한번 빠져든 뒤로는 의혹을 풀 길이 없습니다. 지금 경기도와 충청도 사이에는 더더욱 널리 퍼져서 마을마다 빠져들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제는 손을 대고자 한들 해진 광주리로 소금을 퍼담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벽위편(闢衛編)'에 있다.
여기서 폐단구함(弊簞救鹹)의 용례가 한 번 더 나온다. 소금을 담으려면 광주리가 튼튼해야 한다. 닳아 구멍 난 광주리로는 고생만 많고 보람이 없다.
▶ 弊(폐단 폐/해질 폐, 닦을 별)는 형성문자로 獘(폐), 蔽(폐)와 통자(通字)이다. 犬(견; 개)과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敝(폐)로 이루어졌다. 개가 지쳐 쓰러지는 뜻에서 나중에 개의 뜻이 빠지고 음(音)을 빌어 깨어지다, 찢어지다의 뜻이 되었다. 그래서 弊(폐, 별)는 ①폐단(弊端) ②부정행위(不正行爲) ③해(害) ④폐해(弊害) ⑤자기(自己), 사물(事物)의 겸칭(謙稱) ⑥힘쓰는 모양 ⑦해지다 ⑧나쁘다 ⑨곤(困)하다(기운 없이 나른하다) ⑩끊다 ⑪넘어지다 ⑫숨다 ⑬죽다, 그리고 ⓐ닦다(별) ⓑ흔들다(별) ⓒ치다(별) ⓓ때리다(별) ⓔ휘두르다(별) ⓕ삐치다(별) ⓖ삐침(한자의 필획)(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해할 해(害), 비단 백(帛)이다. 용례로는 폐단과 해악으로 폐가 되는 나쁜 일 또는 나쁘고 해로운 일을 폐해(弊害), 괴롭고 번거로운 일로 귀찮고 해로운 일을 폐단(弊端), 폐해가 되는 습관으로 나쁜 버릇을 폐습(弊習), 폐해가 되는 어지러운 풍습을 폐풍(弊風), 자기 회사를 낮추어 일컫는 말을 폐사(弊社), 자기 집을 낮추어 이르는 말을 폐옥(弊屋), 헌신짝을 폐리(弊履), 낡은 선박을 폐선(弊船), 폐습이 많아 어지러운 고장을 폐읍(弊邑), 폐해가 많은 정치를 폐정(弊政), 못 쓰게 되게 떨어지고 이지러짐을 폐휴(弊虧), 남에게 아첨하여 귀염을 받음을 폐행(弊行), 예물을 갖추어 손님을 초빙함을 폐빙(弊聘), 생활이나 경제력 등이 어려워지거나 쇠약해져 궁하게 된 상태를 피폐(疲弊), 오래 쌓인 폐단을 적폐(積弊), 나쁜 폐단을 악폐(惡弊), 곤궁하여 피폐함을 곤폐(困弊), 곤궁하고 피곤함을 궁폐(窮弊), 민간에 끼치는 폐해를 민폐(民弊), 시들어 없어짐을 조폐(凋弊), 일의 폐단을 사폐(事弊), 거칠고 피폐함을 황폐(荒弊), 흉년이 들고 농사가 잘 되지 않아 식량이 부족함을 겸폐(歉弊), 마르고 시들어 쇠약해짐을 조폐(彫弊), 폐해를 없앰을 거폐(去弊), 큰 폐해를 대폐(大弊), 아무 폐단이 없음을 무폐(無弊), 폐해나 폐단을 막음을 방폐(防弊), 뒤에까지 미치는 폐단을 여폐(餘弊), 닳아 빠진 비라는 뜻으로 분수에 넘게 자만심이 강한 사람을 이르는 말을 폐추(弊帚), 몽당비를 천금인 양 생각한다는 뜻으로 제 분수를 모르는 과실이나 제가 가진 것은 다 좋다고 생각함을 이르는 말을 폐추천금(弊帚千金), 폐습이 끊어지고 풍습이 맑아진다는 뜻으로 바른 정치가 행해짐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폐절풍청(弊絶風淸), 옷은 헤어지고, 신발은 구멍이 났다는 뜻으로 빈천한 차림을 이르는 말을 의리폐천(衣履弊穿), 자기가 정한 법을 자기가 범하여 벌을 당함을 위법자폐(爲法自弊), 먼저 폐단을 말하고 그 폐단을 바로 잡음을 설폐구폐(說弊救弊) 등에 쓰인다.
▶ 簞(소쿠리 단)은 형성문자로 箪(단)은 통자(通字), 箪(단)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대 죽(竹; 대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單(단)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簞(단)은 참대 그릇의 하나로, 참대를 결어 밥을 담도록 만든 작은 그릇의 뜻으로 ①소쿠리(대나 싸리로 엮어 테가 있게 만든 그릇) ②대로 만든 둥근 밥그릇 ③상자(箱子) ④호리병박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도시락밥으로 도시락에 담은 밥을 단사(簞食), 도시락과 표주박을 단표(簞瓢), 표주박으로 조롱박이나 둥근 박을 반으로 쪼개어 만든 작은 바가지를 표단(瓢簞), 표주박과 같은 모양을 표단형(瓢簞形), 대그릇의 밥과 표주박의 물이라는 뜻으로 좋지 못한 적은 음식을 단사표음(簞食瓢飮), 도시락과 표주박과 누추한 거리라는 뜻으로 소박한 시골 생활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단표누항(簞瓢陋巷), 대나무 그릇에 담긴 밥과 제기에 담긴 국이라는 뜻으로 얼마 안되는 음식이나 변변치 못한 음식을 단사두갱(簞食豆羹), 도시락 밥과 병에 담은 음료수라는 뜻으로 간소한 음식을 마련하여 군대를 환영함을 이르는 말을 단사호장(簞食壺漿), 누항에서 사는 사람의 한 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이라는 뜻으로 아주 가난한 사람의 생활 형편을 이르는 말을 누항단표(陋巷簞瓢) 등에 쓰인다.
▶️ 救(구원할 구)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등글월문(攵=攴;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求(구; 정리하다, 모으는 일)로 이루어졌다. '손으로 말리다', '구원하다'는 뜻이 있다. 나쁜 길로 빠지려는 사람은 때려서라도 구해 주어야 한다는 뜻도 있다. ❷회의문자로 救자는 '건지다'나 '구원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救자는 求(구할 구)자와 攵(칠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求자는 털가죽으로 만든 옷을 그린 것으로 '구하다'나 '탐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救자는 이렇게 '구하다'라는 뜻을 가진 求자에 攵자를 결합한 것으로 누군가를 구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救자에 쓰인 攵자는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나뭇가지를 내민다는 뜻으로 응용된 것이다. 그래서 救(구원할 구)는 ①구원하다, 건지다, 돕다 ②고치다, 치료하다 ③막다, 못 하게 하다, 금지하다 ④도움, 구원(救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건널 제(濟)이다. 용례로는 어려운 지경에 빠진 사람을 구하여 냄을 구제(救濟), 위험한 상태에서 구하여 냄을 구출(救出), 빈민이나 이재민 등에게 금품을 주어 구조함을 구휼(救恤), 구원하고 도와 줌을 구조(救助), 도와서 보호함이나 부상자나 병자를 간호함을 구호(救護), 사람의 목숨을 구함을 구명(救命), 위급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을 구하는 일을 구급(救急), 어려움에 처하여 있는 사람을 도와서 건져줌을 구원(救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함을 구국(救國), 어려운 고비를 도와주는 사람을 구인(救人), 어려움을 도와 구해 줌을 구난(救難), 병을 고치는 약을 구약(救藥), 사람들의 괴로움을 구해 줌을 구고(救苦), 극히 가난한 사람을 구제함을 구빈(救貧), 세상 사람을 죄악으로 부터 구원함을 구세(救世), 호응하여 구원함을 구응(救應), 위태롭거나 곤란한 지경에 처한 사람을 구원하여 살려 줌을 구활(救活), 스스로를 구함을 자구(自救), 도와 구해줌을 원구(援救), 서로 구해줌을 상구(相救), 힘써서 구원함을 역구(力救), 완전히 구제함을 완구(完救), 중생을 불쌍히 여겨 구제함을 자구(慈救), 구원하러 감을 부구(赴救), 잘못된 풍습이나 폐단을 바로잡아 구제함을 교구(矯救), 나라를 구하는 방패와 성이란 뜻으로 나라를 구하여 지키는 믿음직한 군인이나 인물을 의미하는 말을 구국간성(救國干城), 불을 끈답시고 땔나무를 던진다는 뜻으로 폐해를 없애려고 한 행위가 폐해를 조장하게 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구화투신(救火投薪), 곤란이 몹시 심하여 다른 일을 돌아볼 겨를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구사불첨(救死不瞻), 세상을 구하고 민생을 구제함을 일컫는 말을 구세제민(救世濟民), 같은 배에 탄 사람이 배가 전복될 때 서로 힘을 모아 구조한다는 뜻으로 이해 관계가 같은 사람은 알거나 모르거나 간에 서로 돕게 됨을 이르는 말을 동주상구(同舟相救), 옹기를 깨뜨려서 친구를 구한다는 말을 파옹구우(破甕救友), 한 잔의 물로 수레에 가득 실린 땔나무에 붙은 불을 끄려 한다는 뜻으로 능력이 도저히 미치지 않아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짓을 한다는 말을 배수구거(杯水救車), 땔나무를 지고 불을 끈다는 뜻으로 재해를 방지하려다가 자기도 말려들어가 자멸하거나 도리어 크게 손해를 입음을 이르는 말을 부신구화(負薪救火), 땔나무를 안고 불을 끄러 간다는 뜻으로 재해를 방지하려다가 자기도 말려들어가 자멸하거나 도리어 크게 손해를 입음을 이르는 말을 포신구화(抱薪救火), 치료약을 구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일이 만회할 수 없을 처지에 이른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구약(不可救藥), 급히 서둘러 구한다는 말로 포복은 손과 발이 함께 간다는 뜻으로 남의 상사에 힘을 다하여 도움을 이르는 말을 포복구지(匍匐救之), 병이 나면 돕고 죽으면 장례를 치러 줌을 일컫는 말을 병구사장(病救死葬), 먼저 폐단을 말하고 그 폐단을 바로잡음을 일컫는 말을 설폐구폐(說弊救弊), 물로써 물을 구한다는 뜻으로 잘못을 바르게 하려다가 그것을 더 번지게 만드는 일을 일컫는 말을 이수구수(以水救水), 우물에 들어가 남을 구한다는 뜻으로 해 놓은 일에 아무런 이득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종정구인(從井救人), 불로써 불을 구한다는 뜻으로 폐해를 구해 준다는 것이 도리어 폐해를 조장함을 이르는 말을 이화구화(以火救火) 등에 쓰인다.
▶️ 鹹(짤 함/다 함)은 형성문자로 咸(함)은 간자(簡字), 醎(함)은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짠땅로(鹵; 소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咸(함)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鹹(함)은 ①짜다 ②소금기가 있다 ③두루 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④널리 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⑤같다 ⑥부드러워지다 ⑦물다 ⑧씹다 ⑨차다 ⑩충만(充滿)하다 ⑪덜다 ⑫줄이다 ⑬다(남거나 빠진 것이 없이 모두) ⑭모두 ⑮함괘,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맑을 담(淡)이다. 용례로는 짠물로 바닷물을 함수(鹹水), 염분이 많은 물속에 사는 물고기를 함수어(鹹水魚), 소금기가 들어 있는 흙을 함니(鹹泥), 짬과 싱거움을 함빈(鹹濱), 소금에 절인 죽순을 함순(鹹笋), 소금에 절인 어물을 함어(鹹魚), 소금에 절인 채소를 함채(鹹菜), 바닷물 1천 g 속에 들어 있는 소금의 양을 g으로 나타낸 정도를 함도(鹹度), 짠 맛을 함미(鹹味), 짠물이 나오는 샘을 함천(鹹泉), 음식 맛의 짜고 싱겁고 한 간을 함담(鹹淡), 무짠지를 청함지(靑鹹漬), 오이짠지를 과함저(瓜鹹菹), 오이지를 과함지(瓜鹹漬), 바다 물은 짜고 민물은 맛이 담백함을 해함하담(海鹹河淡), 땅이 습하고 물이 짬을 토습수함(土濕水鹹), 땅의 염분을 빼어 내고 논을 만듦을 퇴함작답(退鹹作畓), 바닷물을 졸이어 소금을 만드는 데 쓰는 가마를 석함뢰분(石鹹牢盆)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