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수의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천원돌파 그렌라간, 톱을 노려라!2,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7년은 과장 조금 보태서 그렌라간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뭔가 왕도적인 정통파 스토리로 쉽고 재밌게 그리고 가슴이 뜨거워지도록 잘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열혈물이라는 틀 안에서 이 작품 이후에 나온 작품 중, 이 작품을 넘는 평가를 받은 작품은 아직까지 없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합니다.(물론 어디까지나 JAP 애니 중에서만) 하지만 왕도적인 전개 안에 -이 지점부터 제 개인적 견해입니다. 나름의 근거는 제시하고 있습니다만 하나의 견해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떤 작품에 대한 오마쥬와 어떤 사상을 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키워드로 적어보자면, 프리드리히 니체, 아서 C 클라크, 스탠리 큐브릭 등이 되겠네요.
글을 끄적이는 사람이 이야기를 빙빙 돌려 하는 경향이 있는 관계로 이번에도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어차피 저 세가지 키워드는 한 두줄로 설명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시대를 풍미한 거장 중에 스탠리 큐브릭이라는 감독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영화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겨버렸는데 그 작품이 바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입니다. 이 작품의 평가는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걸작이랄까요?' 이 영화는 무려 인류가 달 탐사를 하기 전에 우주 공간의 모습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해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후 SF 계통 작품들에게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된 작품이지요. 대표적으로 현 시대의 거장 중 하나인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도 이 작품의 오마쥬적인 작품입니다.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원래 SF 소설의 거장인 아서 C 클라크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며 작품의 해석은 여러가지지만 이 영화는 일반론적으론 니체의 사상을 영상화했다는 평이 있습니다.(그래서 기독교신자 입장에선 영화의 완성도와 작품성을 인정하지만 마음은 한 없이 불편한 그런 작품입니다.) 그 증거랄까, 이 영화의 메인 테마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Also sprach Zarathustra'(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며 이 곡의 제목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서적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물론 전공자도 아닌 제가 그렌라간을 니체 사상과 직접 결부시켜 설명하는건 미친짓이고 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에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그렌라간 사이의 오마쥬적인 요소들 위주로 풀어 가 볼 생각입니다.
그렌라간의 출발점은 지하 마을입니다. 해도, 달도, 별도, 하늘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인 스페이 오디세이의 출발점은 원시인, 아니 유인원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일상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두 작품은 어떤 계기를 마주하게 됩니다.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먼저 보지요.(영상을 보시면 더 빠릅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모노리스와 접촉한 인류는 모노리스를 통해 지혜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도구를 사용하게 되지요.(도구를 폭력을 위해 사용한다는 부분이 임팩트) 그리고 뼈다귀를 집어 던지는 SF 영화사에 영원히 족적을 남길 명장면이 나오는데 이 뼈다귀는 장면이 전환되어 우주선으로 바뀝니다.(폭력의 도구가 이 지점까지 진화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렌라간은 모노리스는 아니지만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집니다. 간멘이지요.(마침 손에 든게 폭력의 도구) 이 접촉은 카미나에겐 지상이 존재한다는 확신을, 시몬에겐 인생의 변환점을 가져옵니다. 그렌라간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지하->지상->우주로 규모가 점점 확장 됩니다. 처음엔 지하에 있는 벽과 천장이라는 틀을 허문 주인공들은 점점 그 허물어야 하는 벽이 커집니다. 그러나 인류의 발전에 가속도가 있듯이 벽을 허무는 속도 또한 가속화 됩니다. 결국 1화의 도입부를 보지 않았다면 작품 중반부까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던 우주 영역와 우주 공간을 넘어 허수 우주의 영역까지 다다릅니다.
허수 우주에서 마주한건, 안티스파이럴이라는 존재입니다. 오독하기 쉽지만 안티스파이럴을 단순히 악역으로 보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여하튼 큰 틀에서 보면 인간을 제약하고 통제하는 초월적 존재라고 일단 해두지요.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우주선에서 HAL9000이라는 컴퓨터가 반란을 일으킵니다.(이후 수많은 컴퓨터 반란의 모티프) 그런데 HAL9000은 기실 우주선 디스커버리호의 통제를 맡고 있습니다. 즉, 일단은 우주 공간에서의 인간의 행동을 제약하고 통제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요. 그리고 이 HAL9000은 반란을 일으켜 주인공을 제외한 디스커버리 호의 승무원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둘은 닮아있지요. 제가 그렌라간을 설명하면서 스페이스 오디세이만 말하지 않고 잘 모르는 니체 철학까지 언급한 이유는 이 부분 탓인데 이 사건을 니체 철학식으로 설명하면 '신은 죽었다'가 되기 때문입니다.
신은 죽었다라는 말은 물론 반기독교주의자이자 무신론자의 발언이긴 하지만 문자 그대로의 의미보다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절대적 가치의 부재'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니체의 초인론이나 힘에의 의지 등, 뭐 여러가지 말이 있지만 좀 비약해서 축약하자면 '옛 절대적 가치를 타파하고 새 지평으로 나아가는 초월자' 정도를 말하면 되겠네요. 그래서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주인공이 HAL9000의 프로그램을 정지시키고 '하얀 방'으로 간 뒤(인터스텔라에서 오마쥬됨) 그곳에서 초월적 신인류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렌라간은 안티스파이럴을 쓰러트리고 그 의지를 이은 자들이 새로운 우주로 출발합니다. 이 부분에서 안티스파이럴은 진화의 끝에 멸망이 올 수 있음을 경고(이전 세계의 도덕적 가치)하지만 패함으로써 인류가 새롭게 나아갈 것을 응원하며 소멸합니다. 즉, 이전의 초월적 존재 그 자체인 안티스파이럴이 소멸하며 인류가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간다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사실, 제작진이 비슷한 톱을 노려라!2에서도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오마쥬와 메시지 차용이 이루어집니다. 노노는 블랙홀 째로 소멸시킨 대가로 시공검열관의 방이라는 곳으로 이동해 라르크와 작별한 뒤, 평행우주 어딘가로 떠납니다. 버스터 머신 7호인 노노는 그 시대 인류의 기술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초월적 기술의 집약체였고 인류를 위해 희생함으로써 기존 초월적 존재의 소멸이 이루어지고, 그동안 변경중력원이 만들어 낸 블랙홀로 인해 은하계로 정체되었던 인류는 다시 외우주를 향할 수 있게 되지요. (표면적으로 노력과 근성으로 모든걸 커버한다는 작품의 기조지만 이런 오마쥬도 담겨있습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할까요. 역시 유신론자 입장에선 쓰면서도 씁쓸한 글입니다만, 어느 시점부터 서브컬쳐는 철저하게 무신론적 메시지를 담고 있고 종교적 메시지는 거의 보기 힘들어졌습니다.(지금 얼추 기억나는건 기독교의 핵심인 대속과 구원을 오마쥬한 나우시카 정도네요) 르네상스 이후의 문화예술 기조가 현재에 다다른 탓인지 아니면 뭐 다른 이유에서인지.(일본이라는 나라의 종교적 특성도 한몫한것 같지만)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하자면, 이런거 신경 안쓰고 그냥 작품은 작품으로 즐기는게 가장 좋은 것이긴 합니다.
첫댓글 저도 그렌라간은 정말 재밌게 봤네요. 긍정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 어려운 상황이 오면 "할 수 있다 뛰어넘겠다"를 드릴로 관철시킨 작품이죠^^
아직 그렌라간을 애니로 못봤지만 저 같은 경우 건담시드 애니를 먼저 정주행하고 슈로대를 하니 시드 캐릭터들의 스펙과 역할이 단번에 이해가 되더라구요,
조만간 그렌라간 애니도 시청해보고 슈로대에서 적용하려합니돠~!
(개인적으로) 그렌라간은 뒤로 갈수록 조금 버거웠다고 할까요 ㅎㅎㅎ 뒷내용이 직관적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의 내면은 역시 보수적인 세계구나를 요즘은 조금 더 잘 고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