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나는 이렇게 약국을 운영한다 서울 관악구 부부약국
약국들이 진화하고 있다. 의약분업 7년차, 급격한 제도변화 속에서 약국가도 변화의 물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쳐왔다. 아니 변화의 물결에 편승하기 위한 약사들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에 데일리팜은 지난해 보도한 10곳의 약국에 이어 그 범위를 넓혀 전국 100곳의 약국을 선정, 진화·발전하고 있는 약국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 줄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열독을 기대한다[편집자 주] | 이승용 약사 : "재민이 왔네. 어디가 아퍼서 왔을까. 가루약으로 줘야하지요?" 재민이엄마 : "쓴약이면 도통 안먹으려고 해요" 이승용 약사 : "(아이를 바라보며) 약 안써요. 주스야, 딸기주스"
서울 관악구에서 부부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이승용(36) 약사는 동네 아이들 이름을 술술 외우고 있다.
인근에 소아과의원이 있어서 아이들 처방이 많아서 그렇다고 치부할 수 있지만, 꼭 그런 것 때문은 아니다. 약국이 동네 사랑방 구실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동네 주민들의 집안사정, 아이들 이름까지 파악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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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약국의 이승용 약사는 동네주민들과의 정서적 소통을 중시한다. 이것이 동네약국의 경쟁력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 부부약국은 지난 2000년 의약분업과 동시에 이곳 신림동에 자리잡았다. 다들 문전약국을 외칠 때 스스로 상권이 없는 순수 동네약국으로 터를 잡은 것이다.
약국이 위치한 곳은 과거 신림동 판자촌으로 유명한 삼성산 자락으로 아파트 밀집지역이다. 비록 아파트촌으로 변모했지만 과거 이 곳만의 정과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이 약사는 "대형병원 앞 문전약국과 클리닉 인근 약국도 필요하지만 우리 같은 동네약국도 제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급격히 경사진 2차선 도로변에 소아과의원 말고는 의료기관은 없다. 그렇다보니 처방전 수용도 많지 않고 매약 규모도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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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아이들에 약국에 들러 물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부부약국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 이 약사는 "비록 부자약국이 될 수 없지만 문전약국에는 없는 약사 자긍심만은 크다"며 "지역에서 갖는 약사의 위상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는 보람이 있다"고 솔직한 심경을 말했다.
그렇다고 부부약국이 마냥 평범한 동네약국만은 아니다. 다른 동네약국이 문전약국만 쳐다보며 한숨 지을 때 나름대로 동네약국으로서 살아갈 방법을 찾았다.
부부약국은 여느 동네약국과 다른 몇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약국에 오는 동네 아이들 이름을 거의다 외운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어린이 환자와 부모가 들어오면 아이 이름부터 불러준다. 아이들에게 약사와 약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부모에게도 호감가는 약국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나이 드신 어르신에게는 '아버지', '어머니'라는 호칭을 쓴다. 아이와 함께 온 부모에게는 '누구 누구 어머니'식으로 부른다. 말 한마디에 정감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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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책 500권은 부부약국의 독특한 아이템으로 동네 사람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 마케팅 차원에서 이렇게 이름을 부르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아이 셋을 둔 부모라서 그렇게 부른다고 이 약사는 설명했다. 이 약사는 "이름을 불러주니까 아이와 부모 모두 좋아하고 그렇다보니 단골약국처럼 찾아주니 일석이조로 좋다"고 말했다.
약국을 시작할 때부터 이름을 불러주던 아이들이 어느새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되다보니 이 약사는 '동네 약사 아저씨'로 아이들로부터 인사를 많이 받는다.
아이들이 스스럼 없이 약국에 들러 물을 마시고 갔다. 더러는 비타민제를 달라고 졸라대는 아이들로 있다고 한다.
이 약국의 또 다른 특징은 작은 도서관이 있다는 점이다. 소설책 등 500여권이 넘는 책이 약국 한켠에 마련돼 있다.
마을버스 정류소가 약국 바로 앞에 있다보니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약국 안에서 잠깐이라도 책을 읽으라는 배려였다.
이 약사는 "인근 책 대여점에서 항의가 들어와 책장을 없앨까도 고민도 했지만 빌려가는 사람도 더러 있어 그냥 두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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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약사는 "아버지처럼 존경받는 동네약사로 남고 싶다"고 솔직한 바람을 밝혔다. | 지역 활동도 부부약국이 다른 약국과의 차별성이다. 거창하게 무슨 이름 있는 단체에 가입해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
인근 산자락에 놀리는 텃밭을 동네 주민들과 함께 가꾸고 있다. 부인인 노 란 약사가 먼저 시작해서 한 일이 이제는 자기 일이 되어 버렸다. 가을에는 12평 텃밭에서 자란 야채를 약국에 온 환자들에게 나눠준다.
나무잎 퇴비를 만드는 법 등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며 지역주민들과 함께 땀 흘리면서 끈끈한 공동체 의식을 가꿔가고 있다.
이 약사는 "주위에서 약국을 옮겨보라고 권하기도 하지만 그럴 생각이 없다"며 "평범하지만 존경받는 약사로 살다 가신 아버지 같은 동네약사로 남고 싶다"고 속내를 밝혔다.
이 약사는 동네주민들과의 정서적 소통을 중시한다. 이것이 동네약국의 경쟁력이라는 그는 말이 새삼 주목받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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