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노바티스 본사 브랜드 매니저
“일 즐기다 보니 글로벌 무대 진출했어요”
다국적 제약회사인 노바티스의 본사가 위치한 스위스 바젤. 신약 개발과 신약 홍보 마케팅으로 바쁜 이곳에, 검은머리와 눈을 가진 한국인 여성이 있다. 바로 한국인 최초의 노바티스 글로벌 브랜드 매니저 김은영 씨다.
이화여대 약학과를 졸업한 그의 첫 직장은 을지병원이었다. 약대를 졸업했으니 약사의 길로 접어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꿈을 가진 그에게, 국내 병원의 약국은 너무나 비좁은 공간이었다.
결국 외국계 제약회사의 마케팅 PM(Product Manager)으로 새로운 인생의 서막을 열었다.
더 큰 무대에서 더 많은 환자들에게 약의 효능을 알리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노바티스에 전달된 것은 그로부터 7년 후. ‘디오반’이라는 고혈압 치료제의 브랜드 매니저로 한국노바티스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팀원들과 호흡이 잘 맞아 디오반이 고혈압치료제 한국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습니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아시아 태평양 지역 디오반(싱가포르 소재) 브랜드 매니저가 될 수 있었죠.”
그가 부임할 당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디오반은 시장점유율 2위였다. 한국에서의 경험을 살려 신약을 알리는 데 힘쓴 노력의 결과였을까? 얼마 뒤 아시아 태평양 지역 1위 브랜드 자리에 디오반을 올려놓을 수 있었다. 그 역시 자연스레 본사의 주목을 받게 됐다. 마침내 올 1월, 그는 꿈에 그리던 스위스 본사 근무를 배정받게 된다. 10년 간 연구 끝에 탄생한 고혈압 치료제 ‘라실레즈(Rasilez)’의 글로벌 마케팅 책임자로 영전된 것이다.
그는 본사로부터 신약의 홍보와 마케팅 능력만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한국에 있을 때 환자들에게 복약수명도(지속적으로 약을 복용하도록 하는 것)를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한 것도 한몫 했다. 이 프로그램의 성과를 눈여겨본 본사에서, 이를 전 세계로 확대하기도 했다.
그가 제안한 복약수명도 증가 프로그램은 약을 꾸준히 복용할 때 일어나는 신체 변화를 지속적인 강의를 통해 알리는 것이다. 이는 회복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약을 먹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는 협박보다 환자의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한국에서나 싱가포르에서나 늘 팀원들의 리더역할을 해온 그이지만, 스위스 본사에서의 첫 시작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한국이나 싱가포르는 같은 동양권이어서 직원들끼리, 또 회사에서 회의를 진행할 때 문화적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했어요. 그러나 스위스로 온 후 다른 문화 때문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어요.”
한국에서는 워커홀릭으로 통했던 그는 처음에는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유럽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동료끼리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한국과 달리, 샌드위치를 먹으며 일하고 퇴근시간이 되면 야근 없이 바로 집으로 향하는 이들이 생경스럽기까지 했다.
“일보다 삶에 무게를 두는 것이 유러피안들이에요. 늘 일에 치여 사는 한국인들과는 다르죠. 이곳에 와서는 동료들처럼 여유를 갖고자 하지만 일 욕심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네요.”
업무 스타일이나 조직문화도 유럽과 한국은 다르다. 본사와 지사의 차이일수도 한국과 외국의 차이일수도 있지만, 노바티스 스위스 본사의 업무는 매우 세분화돼 있다. 각 분야 담당자들은 세분화된 업무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대신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회의를 통해 자신의 업무를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하잖아요. 그 말처럼 묵묵히 자기 일만 하면, 유럽에서는 무능한 사람이 돼 버려요.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업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회의시간마다 알려야 비로소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지요.”
글로벌 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드러낼 줄 알아야 하는 것은 물론 다른 직원과의 유기적인 관계도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하지만, 글로벌 기업에서는 다른 조직원과의 네트워킹이 우선시 된다.
그는 언어의 장벽 때문에 처음 어려움을 겪었지만, 점심시간마다 부서를 가리지 않고 직원들과 약속을 잡으며 인맥을 쌓아가고 있다.
“여기는 모든 사람들이 퍼즐의 한 조각이 되어 위대한 그림을 만들어 낸다”라는 그의 말에서도 네트워킹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2년 간 싱가포르와 스위스에서 근무하며 글로벌 인재로 거듭난 그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는다.
그는 글로벌 코리안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고, 다름을 틀림이 아닌 다양함으로 인식하는 오픈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논어의 한 대목을 인용해 미래의 글로벌 인재를 채근한다.
“知之者 不如好之子 好之者 不如樂之者(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언제나 즐기면서 일한다면, 세계 속의 한국인이 아니라 세계를 움직이는 한국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해외에서 일하며 한국을 좀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는 김 매니저는 10년이 지난 후 한국으로 유턴해 한국의 글로벌화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 김은영에게 배우는 글로벌 코리안 전략 >
1. 현재의 직업·자리에 만족하지 말고 꿈을 키워라.
2. 조직원간에 네트워크를 중시하라.
3. 즐기면서 일하는 여유를 가져라.
4. 자신의 업무성과를 알려라.
5.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