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게바라와 걷던 날 / 신현림
내일의 천국은 기대할 수도 없이
위정자들은 믿을 수 없이
쌀이며 라면이며
숨막히게 오른 마트를 지나며
미세먼지 가득한 길거리에서
마스크도 쓰지 않은
체게바라 선생 곁에서 걸으며 속삭였다
"선생의 이야기는 힘들고 외로운 이를 위로합니다
목숨 건 게릴라 전투 중에도 배낭 속에
괴테, 보들레르, 랭보, 네루다, 시집이 들었다죠"
말없이 미소 짓는 체게바라 선생이
짙은 눈썹에 걸린 광화문하늘을 볼 때
누군가 노을이란 그물에 걸려 눈물지을 때
나는 체 게바라의 그물에 사로잡혀 걸었다
나는 촛불을 왜 들었나?
촛불 집회 10회나 왜 나갔나?
묻게 되던 나날
나날의 바퀴는 잘 구르지 않아
우울한 가슴을 안으며 생각하네
의협심은 붉어진 가슴 땅에 묻고,
힘없는 모녀가장은 책 가득 트링크나 끌고
저 환한 태양을 보며 걸어야지
기다리던 흰 눈 대신 흰 봄꽃이 곧 날리겠지
이땅의 슬프고, 놀란 일들이 체게바라 가슴에 쌓이고
정직한 시민들 주저앉아 울 때조차
정의, 를 외치던 이들 입에서 돈이 쏟아져도
죄와 벌의 흔적들 곳곳에 스며 있음을 느끼네
체 게바라의 책을 안고
환한 태양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아보네
진정 끝내 가질 것은 얼마를 가졌나보다
사랑하는 이들을 깊이 깊이
사랑했다는 먼지거울임을
깊이깊이 생각하는
생의 여행을 위한 시간
부끄럼이 없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