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지난 4월3일(현지시간) 인간을 달에 다시 보내는 ‘아르테미스 계획’의 일환으로 내년 11월 발사되는 아르테미스 2호에 탑승할 우주비행사 4명을 공개했다. 여성과 유색인종을 포함한 4명의 우주인은 2024년 달 궤도를 비행한 뒤 유턴해 지구로 돌아온다. 착륙은 2025년 발사될 아르테미스 3호다. 아르테미스 계획의 최종 목표는 2020년대 후반까지 인간이 머무는 상주기지를 달에 짓는 것이다. 달의 광물 자원을 채굴하고, 더 먼 우주로 떠나기 위한 로켓 터미널을 건설하기 위해서다.
세계 7번째 달 탐사 국가인 한국도 아르테미스 계획에 참여하는 23개 국가 중 하나이다. 아르테미스 계획과 별도로 한국은 2032년까지 무인 탐사선을 통해 달의 자원을 채굴하겠다는 계획이다. 2045년에는 화성에 우주인을 착륙시킬 계획이다. 1972년 아폴로 17호가 떠난 후 달의 땅을 밟은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 반세기 가량 뚝 끊겼던 달에 관한 관심이 이렇게 살아난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이제 와 왜 또 달에 갈까?
2019년 아마존과 블루오리진의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는 유인 달 착륙선 '블루문'을 공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인류는 이제 발자국을 찍거나 국기를 꽂기 위해 달에 가지 않는다. 달에 살기 위해 간다. 달에는 헬륨3, 희토류, 마그네슘, 실리콘, 티타늄 등 다양한 광물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달에 상주기지를 짓겠다는 계획도 지속적인 자원 채굴을 위해서다. 그만큼 달에 있는 헬륨3과 희토류의 가치가 어마어마하다. 헬륨3은 차세대 에너지 공급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달에는 헬륨3이 100만t 가량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지구 전체에 무려 1만년간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헬륨3은 현재 원자력 발전의 동력인 핵분열보다 약 4.5배 많은 에너지를 내는 핵융합의 원료다. 단 1g만으로도 석탄 40t에 맞먹는 에너지를 뿜는다. 석유 고갈을 앞두고 불안에 떠는 지구인이 탐내지 않을 수 없는 귀한 자원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의 쌀'이라 불리는 희토류도 풍부하다. 희토류는 광섬유, 스마트폰, 전기차 등 첨단 전자기기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다. 현재 희토류의 90%가 중국에서 생산되는데 그마저도 수십년 안에 고갈될 예정이다.
과거엔 오직 미국과 소련만이 달에 착륙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과 인도, 일본 등 신흥 우주강국들은 달에 갈 역량을 이미 갖추고 있다. 한국 등 후발주자들도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세기 우주경쟁이 미·소 간 순진한 기술력 대결이었다면, 21세기는 우주 확장판 골드러시 시대가 왔다.
1.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
달은 누구 땅일까? 유엔이 1967년 채택한 '우주조약'과 1979년 '달 조약'을 보면, 특정 국가가 우주 공간과 천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그런데 2015년 미국 정부가 새 우주법을 만들었다. '상업적 우주발사 경쟁력 법'(CSLCA)은 우주에서 캐거나 뽑아낸 자원은 누구든 가질 수 있도록 했다. 달을 누가 소유할 순 없지만, 달의 자원은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라는 것이다. 2019년 5월 미국과 무역 전쟁이 최고조에 달하자 중국은 '희토류 무기화'를 공식 언급했다. 그리고 두 달 뒤, 이를 의식한 듯 짐 브리덴스타인 미국 항공우주국(NASA) 국장이 "금세기 안에 달 표면에서 희토류 채굴이 가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달은 곧 돈이고, 바로 그 이유로 국가 간 알력의 장이 되었다. 특히 강대국 간 패권 싸움의 공간이 되었다. 우주는 과거처럼 냉전의 상징이 아니라 현실로 변모하고 있다. 이 냉전이 무력 다툼으로 번져 '우주 열전'으로 치닫는 상황을 우려하는 과학자들도 적지 않다.
2. 달의 신 냉전 시대
미국이 주도하는 아르테미스 계획에는 현재까지 한국을 포함해 일본, 영국 등 23개국이 이름을 올렸다. 미국이 주도하는 우방국 간 국제연대가 우주로 확장된 것이다. 회원국이 다른 경쟁국이나 기업에 방해받지 않고 활동할 안전지대를 설치하겠다는 것이 바로 아르테미스 계획의 핵심이다. 중국과 러시아처럼 미국의 대척점에 선 국가는 아르테미스의 안전지대에 들어갈 수 없도록 근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신흥 우주강국으로 떠오른 중국은 2013년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 3번째 달 착륙에 성공했고, 2019년 무인 탐사선인 창어4호를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시켰으며, 2027년에는 달에 연구기지를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2021년 중국과 러시아는 달 궤도의 우주정거장을 공동으로 건설해 운영하겠다며 손을 잡았다. 아르테미스 계획이 만들고 있는 '루나 게이트웨이'와 별도 노선을 걷겠다는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 달 상공에는 신냉전의 양 진영을 대표하는 두 개의 우주정거장이 나란히 떠 있게 되는 셈이다.
3. 한국은 어디에
한국은 경쟁의 후발주자지만 우주 개발의 기술력 제고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달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무척 복잡하다. 기술력만 갈고 닦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달에서 자원이나 활동 구역을 두고 분쟁이 정말 벌어진다면 한국은 미국 등 전통적인 우방의 편에 전적으로 설지, 아니면 북한 문제와 경제협력에서 밀접한 연관성을 띠는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을 고려해야할지 선택해야 한다. 복잡한 국제정치 환경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상황이다.
4. 제국주의의 부활
"이제 우리는 다음 개척지, 우주에서 미국의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2020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 아르테미스 계획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요청하며 한 말이다. 주목해야 할 건 '명백한 운명'이란 표현이다. 북아메리카 대륙 전체로 영토를 확장하고 개발하는 것이 '미국의 운명'이라는 주장이 담긴 표현으로, 19세기 미국의 백인들에게 서부 개척의 명분을 주는 정복의 언어였다.
달을 둘러싼 각국의 치열한 쟁탈전이 예고된 지금, 떠오르는 건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제국주의 시대이다. 식민지와 자원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겠다는 열강들의 싸움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번졌다. 실제로 달 탐사는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개척에 자주 비유된다. 지난 3월 영국 가디언은 우주 탐사를 자원 개발과 동일시하는 식민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달에는 사람이 살지 않으니 괜찮은 걸까? 과학자들은 "우주에 누가, 무엇이 있든 간에 탐사와 개발을 동일시하는 태도"가 문제라고 말한다. 식민주의 역사를 미화하고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군사적 팽창주의가 다시금 득세하고 강화하는 데 우주 개척이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9년 트럼프 정부는 우주군을 창설했다. 인도와 프랑스 역시 같은 해에 우주군을 창설했고, 일본과 스페인 등도 우주 전담 기구나 부대를 만들었다. 꿈의 공간인 줄 알았던 우주가 끔찍한 과거로 회귀하는 전쟁터가 될지도 모른다.
"돈을 자라게 하는 성장의 경제는 무한히 팽창하는 공간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자연에선 가능하지 않은 그런 공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자본주의 시장이다."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의 말이다. 그는 "지상의 모든 곳을 시장으로 집어삼키고, 지하와 우주까지 개발 경쟁에 나섰다"며 '성장의 끝'에 선 인간 사회의 풍경을 그려냈다.
인간이 다시 달로 향한 이유는 돈 때문이다. 돈이 되는 헬륨3과 희토류가 있어서다. 헬륨3과 희토류가 돈이 된 까닭은 지구상의 자원이 동날 때까지 싹싹 긁어다 팔아치운 시장의 성장 때문이다. "우리가 경제에 대해 '성장'이라고 부르는 것을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팽창'이다. '선진국'들의 경제성장은 식민지의 팽창, 군사적 팽창 없이 불가능했다." 채효정의 글을 다시 읽어본다. 달로 가열하게 돌아가려는 인류의 여정 역시 '팽창'으로 부를 수 있다. 약하고 만만한 것을 망가뜨리고 황폐화하며 우주 끝까지 나아가려는 이 성장의 끝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