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매번 얻어가기도 민망하여, 이렇게 수줍게 글을 남깁니다. 참고로, 이 글은
어디보자... 한창 짝사랑에 가슴아파하던, 그 시절...
그러니까 군대도 가기전에 21살, 즉 5년전에 어느 참혹하고도 찬란한 현장에서 얻은 느낌을 생생히 적었습니다.
아마도 그 때의 느낌을 잊지 않고자 애썼던 것 같습니다.
'진실과 거짓, 나와 너, 사랑과 아픔 혹은...똥과 된장'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그 때는 언제나 도서관에서 그 풍성한 지식에 묻혀, 막연한 이상을 찾아 헤맸더랬죠.
마지막으로, 여기에 적합한 성격의 글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가진게 없어서, 제 영혼과 같았던 이 글을 정성껏 고이접어
올립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시 너무 흥분을 해서, 문체나 구조 맞춤법 어느하나 정확한 것이 없지만, 그 당시의 느낌을 살려 그대로 올립니다.
물론 댓글로 여러분의 견해를 달아주셔도 더욱 감사하죠.
(동아리 게시판에 남겼던 글인듯 짐작됨...)
너무 길면 중간만 읽으셔도 됩니다.
<실제 글은 여기서부터~>
아 우선 개인적인 글임을 밝히며, 그에 따라 선배님들께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저는 24기 테너 김인승입니다.
그럼 꼭 왜 여기에 쓰느냐 하는 이유는 방금 전 토할것 같은 배를 움켜쥐고 여의도 한복판을 헤메고 있을 때 23기 혜은이 누나가 무척 고마운 전화를 주었고, 제가 겪은 끔직한 일을 누나한테 여기에 적기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존대어미를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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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저녁 저번 주부터 벼르던 불꽃 놀이를 가려고 준비했다. 준비라고 해봤자 다른 호실에 꽂힌 신문한부 가지고 나오는 것 말고는 없었다.
실은 들어온지 얼마안된 룸메녀석이 오늘이 생일이어서 뭐 해줄 것도 없고,
짜식 편하게 친구놈들이랑 술먹으라고 자릴 피해줬다.
그래도 '형님. 형님' 하는 놈인데 해준것도 없이 미안했다. 아무튼 그런저런 여러일로 머리가 많이 복잡한 이때 불꽃보고 얕은 감상에나 젖어보려고 6시반경 저녁을 급히 먹고 출발했다.
대방역에서 여의도 한강 시민공원은 꽤나 가까웠다. 가까워봤자 그래도 한 30분은 족히 넘어 걸어가야하는 거리. 금전적 이유보다도 왠지 '길'을 걷고 싶다는 바람에 그냥 죽 걸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대방역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무슨일일까.. 축제는 9시로 알고 있는데.. 알고 보니 모두 축제 관람객이었다. 그 행렬은 대방역에서부터 공원까지 죽 연결돼어 있었다.
'터벅터벅' 엄청난 행렬을 따라 이동했다. 가족단위의 사람들. 그리고 숱한 커플들. 그리고 젊은 모임의 사람들.. 그 가운데 혼자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뭐라고 대꾸를 필요로하는 어떤 말도 필요없었기 때문이었다.
<<<핵심 에피소드는 여기서부터인듯..^^; 글이 너무 길어서..>>>
걷는 중간 중학교 때 알았던 한 여자아이를 닮은 사람도 보았고 그로인해 가는 길은 추억을 떠올리며 심심치 않았다. 무수한 사람의 줄을 따라 63빌딩 앞에 도착할 무렵.
난 놀랬다.
서울에 인구가 많은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일줄이
이야...
정말 태어나서 그토록 사람이 많이 모인것은 처음 보았다. 물론 지난 월드컵때 모인 사람들이 더 많았을 수도 있는데 ,
나는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오늘 모인사람이 많았으면 많았지 적진 않으리라..
이미 도로는 사람으로 꽉 차있고, 저기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곳에 라디오 공개방송을 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곳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말 길이 모두 막혀있었다.
순간 바퀴벌레나 개미가 엄청난 개체수를 자랑하지만 내가 느끼기로는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그들의 개체수보다 많게 느껴졌을 정도이다.
엄청난 인파에 이미 주눅이 든 나는 아직도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올해 마지막 불꽃 쇼를 기대했다.
8시에 시작함을 알고 나는
'아직도 2시간은 기다려야하겠다'
하고 생각한뒤 그 동안 그곳에서 진행되는 공개방송이나 볼까 하고 다가가려고 애썼지만 허사였다,
엄청난 인파에 아직도 꾸준히 사람들은 저마다의 혈연 혹은 애정으로 뭉쳐진 서로를 붙잡고 속속들이 입장하고 있었다.
이미 행인과 관객의 분리가 없어진지 오래.. 나는 공개방송을 멀리서 지켜보며 그 시간을 달래고 있었다. 왁스, 조장혁, DJ DOC 등이 나와서 마지막 공개방송을 장식하고 축제의 열을 올리는데 여념이 없었다. DOC의 등장으로 흥에겨운 사람들과 점점 불어나는 사람들..
흐물거리는 거대한 무엇. 대중이 모였을 때 발산되는 보이지 않는 두려움... 집단에 짓눌린 나는 왠지 두려워졌다.
이제 곧 공개방송이 끝나고 축제가 시작한다는 멘트가 방송으로 계속 중계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심한 복통을 느꼈다.
아까 룸메녀석한테 해준것도 없고, 그래서 밥을 같이 먹는도중 도망치듯이 빠져나오느라 저녁을 3분만에 배 안에 쏟아 넣었기 때문이었다.
계속되는 헛 트림. 열광하는 관중. 점점 축제의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의 광기가 어렴풋이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나도 물론 무척 기대가 되었다.
비록 혼자지만 적어도 같은 것은, 소원하는 그 짧은 시간만큼은 관객이 하나가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배가 계속 아파왔고 구토증세를 조금 느낄 무렵. 서서히 '외곽에서' 축제를 관람하기 위해 도로쪽으로 걸어 나오던 중..
** 앵앵앵~
어디선가 들리는 사이렌 소리.
이곳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으리라...
엄청나게 들어오는 관중들. 유독 혼자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나.
이미 관중들이 길을 모두 잠식해버리고 그 가운데 외로히 응급차 한대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 순간 정말 멋진 타이밍의 장외 아나운서.
자 이제 시작합니다.
5
4
3
2..
모두들 하나가 된 마음으로 숫자를 거꾸로 세어가고 있었다.
악마들...
응급차 안에는 누가 탔을까. 응급차 안의 운전사 아저씨는
목이 터져라 확성기를 대고 소리쳤다.
"길좀 비켜주세요 제발."
그 바로 옆의 배를 움켜쥐고, 위액이 가득찬 입을 손으로 막고.
역행하는 '나. '
그랬다. 카운트가 '완전수'에 다가올 즈음. 사람들은 미쳐갔다. 모두들 어느 하늘 한 지점을 향해 무서운 눈을 하고 노려보고 있었다.
"펑펑... 슈욱~ 펑펑~"
고요한 검은 하늘위에 오색찬란한 불꽃이 터졌.....을 것이다.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역행하고 있었으므로.....
녹색 싸이렌의 응급차. 정말 촌스런 녹색이었다. 미어터지는 관중들은 자기 자리에서, 혹은 지금도 입장을 하면서 길을 가로막고 ,
사랑하는 자기 가족들과 자기 애인과 자기 할머니. 자기 어머니, 자기 아들, 딸, 자기 여자친구, 자기 남편, 아내. 등의 손을 꼭 잡고 그 멋진 하늘을 보고있었다.
그 하늘은 충분히 서로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으리라. 그 밤은 아주 낭만적인 밤이었으리라..
숨가쁘게 역행하는 나와 앰블런스.
아저씨의 목 찢어지는 소리. 그리고 놀래서 입을 못 다무는 '나.'
잠시 앰블런스 옆에서 뒷자석의 애타는 한 아저씨의 얼굴을 보고 한방울 눈물이 잠시 흘렀다.
동시에 입에서는 울컥. 쓴물이 올라왔다.
"구역질이 날것 같다."
인파를 뚫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착한 손자와 혹은 사랑해 마지 않는 애인과 부부와 그 관계들을 내 몸으로 뚫으며 외쳤다.
"비켜주세요. 비켜주세요. "
낭만어린 표정의 그 10만의 두 눈. 꼭 잡은 두손.
개자식들. 외쳤다. 비키라고!
갑자기 소리를 질러버렸다.옆으로 비켜. 아! 죄송할 일이다. 연세 높은 혹은 나보다 나이가 한살이라고 많을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험한말을 해버리다니.
"개새끼들..비켜라.. 사람이 죽어간다. "
내 등뒤로 스치는 소리 하나.
"이야.. 저거 용같네.."
사람마다. 연신 환호성을 터뜨리며 '꽃이네, 환상이네. 진짜 멋있다'를 외칠무렵, 그렇게 응급차 뒷자석에서는 연신 죽음의 단말마를 외쳤으리라.
아주 잠깐 뒤를 한번 보았다.
'그래. 불꽃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하나로 묶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래도 난 너무 속이 메스꺼웠다. 토할것 같았다.
당장 그곳을 나가지 않으면 앞사람 뒷통수에 토해버릴것 같았다.
앰뷸런스 앞에서 배를 틀어잡고 이상하게 뛰는 한 젊은 남자.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그렇게 길을 만들어 갔다.
물론 장판, 돗자리를 깔고 앉아있떤 화목한 가정들은 모두
나를 '개' 처다보듯했지만.. 운전사 아저씨, 그리고 나. 비켜주세요를 연신 외치며 길을 만들어 갈무렵, 그렇게 불꽃놀이는 정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어느 한 사람의 또 볼멘 소리.
"아씨.. 뭐야. 왜 이리로 지나가.. "
운전사아저씨 소리.
"왜 사람들 길에 있냔말이야. 일어나세요들..제발."
'지랄 같은' 상황이었다.
결국은 정말 환상적이었을 듯한 그 불꽃을 뒤로하고 응급차는 큰 도로로 나갈 수 있었다. 그제서야 배속에서 신호가 왔다.
'뱉어라.'
심한 구토. 입을 손으로 간신히 막고 비틀거리며 엄청난 관중을 역행하였다.
정말 모두들 행복한 표정.
"야 얼른 가자.. 멋있다. 등등.. "
그렇게 나는 계속 세걸음 마다 쓴 위액과 아밀라아제 등의 복합물에 저민 액체를 길바닥에 토해내고 있었다.
누가 그랬던가.
'군중은 멍청하다.'
그때 나는 뭐라 답했던가.
'그렇지 않다.'
지금은 어떤가.
'군중은 멍청하다. 하지만 난 군중은 아니다. '
<<<여기까지 그날 애피소드는 끝인것 같군요. 아래부터는 당시 정황과 그냥 제 생각을 적어놓았나 봅니다. 저도 읽으면서 피식 웃음이 나네요.>>>
오늘 이라크 반전집회가 있었다. 아침부터 내 문제 등 여러문제들로 머리가 복잡해서 나가지 않았다. 못했다고는 안하겠다.
난 안나갔다.
원래 '전태일'도 아니고 '체게바라'도 아니고 그냥 나는 솔직히 사회적 무게감이라고는 '머리카락 한 올의 무게'라고 느낄 정도니까.
그런데 갑자기 그렇게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내 목표에 그 머리카락은 일격을 가했다. 그렇게 계속 배와 머리는 아파왔다.
여의도에서 배를 움켜쥐고 한참을 헤맸다.
어질한 머리. 토할것같은 배.
그렇게 갑자기 혜은이 누나한테 그나마 나한테 안정을 주었다.
오늘 분명 사람들은 엄청난 기대감과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한때 우리나라의 군부독재시절.
우리는 엄청난 국민의 욕망의 대상인 경제발전이란 구호에 열광했다.
그것이 우리의 꿈이었고, 우선 한국을 먹고 살리기 위해 혹은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가운데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역사는 꾸준히 발전되어왔다고들 한다. 그 수레바퀴 아래 밟혔을 또 하나의 소우주들.. 도덕시간에 읽은 내용이 생각난다.
정약용선생님이 인간은 소우주라고.. 개개인이 모두 소우주라고..
다수의 군중은 분명 멍청했다. 아니 잔인했다.
오늘 본것은 분명히 '악마들'이었다. 배가 아파서 토하고 어쩌는 바람에 쓰고싶은 문맥이나 문장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덕분에 오늘 불꽃축제는 한장면도 보질 못했다. 하지만 평소에는 볼수 없었떤 악마를 봤다.
집에 오는길...
한 아주머니가 물었다.
"120번 어디서 타요?"
나는 대답했다.
"저도 서울 사람이 아니거든요."
@휴~ 글이 너무너무 길었네요. 읽은 분들 모두 수고하셨어요. 아마 '나치즘, 파시즘'은 저기 유럽의 먼 나라들에게만 있는 건 아니었나 보네요.
정말 읽느라 고생하셨어요. ^^
첫댓글 잘 봤습니다.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비슷한 체험이 있었습니다. 확~ 다기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