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
대통령 임기와 반비례하는 집착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종전선언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지만
그것이 하나의 시작으로는 될 수 있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다.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의 평양 정상회담에서
한 발언이다.
김정일의 표현법은 14년 뒤인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반복해서 내놓고 있는 발언과 대단히 유사하다.
----김정일의 종전선언----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주장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어느새 정부 입장이 ‘입구론’으로 바뀌어
버렸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필자가 이해하는 한 종전선언은 협상의 시작
단계에서 할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비핵화가 일정한 수준, 즉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선행조치들이 이뤄졌을 때 상응하는
조치로 할 일이었다.
이와 병행하거나 앞뒤에 배치할 수 있는 일로
북·미 연락사무소 상호 개설, 대북제재 완화 등의
조치들이 있다.
그게 노무현 정부 때 비핵화 로드맵을 그린
전략가들의 구상이었고 문재인 정부 초기까지도
유지되는 듯했다.
----북한의 비핵화----
그런데 어느 순간 로드맵의 중간 단계에 있어야
할 종전선언이 대화의 ‘마중물’로 앞당겨져 버린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말한
‘시기, 조건, 순서’를 둘러싼 한ㆍ미 간 이견도
종전선언을 입구에서 행할 것이냐,
중간 이정표로 세울 것이냐,
아니면 역사상 대부분의 평화협정이 그랬던 것처럼
최종 출구에 배치할 것이냐의 차이일 것이다.
또 하나 의아스러운 점은 과도할 정도의
집착이다.
그 배경엔 2018년의 추억과 미련이 있을 것이다.
----미.북 싱가포르 회담----
그해 6월 문재인 대통령은 북ㆍ미 정상회담이
열리던 싱가포르 현지에 날아가 합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1라운드에서 합의만 하면
종전선언을 위한 남·북·미 3자 회담으로
2라운드를 이어간다는 복안이었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 정부는 내외신 기자를 위한
프레스센터까지 현지에 마련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북ㆍ미는 회담 전날까지도 공동성명
문안에 합의하지 못해 심야 협상을 벌였다.
'오후 6시 버전'의 초안에 퇴짜를 놓고 트럼프가
‘간단한 버전'의 성명문을 선택하는 과정이
당시 안보보좌관 존 볼턴의 회고록에 생생하게
나온다.
----강경파 존 볼턴----
강경파 볼턴 탓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근본 원인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북한이 완강히 거부한 데 있다.
그래서 모습을 드러낸 게 ‘종전선언’에 대한 언급이
빠진 싱가포르 공동성명이다.
문 대통령이 그리던 싱가포르 종전선언의 꿈은
그렇게 날아가 버렸다.
싱가포르 회담 한 달 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다시 평양을 방문한다.
그런데 이때 종전선언이 먼저라는 북한의 주장에
막혀 비핵화 논의는 한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폼페이오 국무장관----
폼페이오가 김정은과 만나는 것조차 북한은
거부했다.
미국은 의미 있는 비핵화 진전 없이 종전선언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흔히들 2019년 하노이 노딜로 북ㆍ미 간의 짧은
봄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지만 결렬의 싹은 이미
싱가포르에서부터 움트고 있었던 것이다.
----북 미 하노이회담----
미국의 입장은 본질적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종전선언에 매달리는 한국의
집념이다.
그 강도는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 날짜 수와 반비례
곡선을 그린다.
로드맵의 중간에 있어야 할 종전선언이 어느 새
입구로 앞당겨진 것도 그 집념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문 대통령 임기 내에 레거시(업적)를
남겨야 한다는 집착이다.
문 대통령은
“남ㆍ북ㆍ미ㆍ중 모두가 종전선언을 지지한다”
고 반복한다.
그런데도 아직 일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다.
----한 미 북 삼자회담----
그러면서
“구속력 없는 정치적ㆍ상징적 선언에 불과하다”
고 종전선언의 의미를 격하하기도 한다.
집착과 격하는 자가당착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둘러싼 주변 환경은
‘구속력 없는’ 일에 외교력을 소진해도 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예영준 논설위원
[출처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