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려나 볕이 나려나
유월이 가고 칠월이 오고 있다. 나는 지나간 봄철엔 근교 산기슭을 오르거나 들녘을 부지런히 누볐다. 산중에서는 주로 임도를 걸었다. 그러다가 인적 드문 등산로를 벗어나 돋아나는 산나물을 뜯어 찬거리로 삼아왔다. 들녘 들길을 걷을 때도 빈 배낭을 채워온 들나물이 있었다. 이러다가 계절이 바뀌어 여름으로 들었다. 여름이 되어선 산자락이나 들녘을 자주 찾아가지 않는 편이다.
자연에서 구하던 산나물 들나물이 쇠어버리자 주말 발길은 지인 농장으로 옮겨갔다. 밀린 안부를 나누고 같이 땀 흘리며 김을 매었다. 고구마 순이나 들깨나 열무 씨앗을 손수 심어두고 물을 주어 가꾸고 있다. 봄부터 지속된 가뭄으로 작물들은 물이 부족해 생육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 고구마순은 넝쿨이 채 나가기도 전에 멧돼지가 이랑을 마구 파헤쳐 놓아 울타리를 둘렀다.
평일에는 학교까지 십 리 정도 길을 거뜬히 걸어 다닌다. 주말이면 교외 어디로든 나가 그보다 더 먼 거리를 걷는 것이 생활이 되었다. 나는 헬스장이나 수영장에서 별도 운동을 할애하지 않아도 된다. 골프야 경제 사정이나 운동 감각으로도 내 체질이 아님은 잘 안다. 배드민턴이나 탁구 같은 매체 운동도 함께 할 상대방에게 내가 오히려 짐이 되기에 처음부터 마음에 두지 않았다.
내 처지는 스스로 잘 아는지라 나는 오로지 걷기가 유일한 운동이요, 여가 활용 방법이다. 여름에 드니 날씨가 무더워진다. 장마가 다가오는지라 당분간 습도가 높고 비가 오락가락 할 것이다. 이러면 자연히 바깥 활동에는 제약이 따른다. 내가 주말이면 즐기는 산행이나 산책도 마음 내키는 대로 나설 수가 없다. 그럼에도 나는 주말을 앞두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산과 들로 달려간다.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라 산행도 만용을 부려서는 안 될 일이다. 세월 따라 근력이 줄어들고 민첩성도 떨어진다. 해발 고도가 높거나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기는 무리임을 실감한다. 이제 그런 산들은 멀리감치 떨어져 아래서 쳐다만 보고 만다. 나는 사람들이 떼 지어 오르는 명산을 찾아가지 않는다. 그저 생활권에서 가까운 이름 없는 야트막한 산자락 산등선을 타는 것으로 만족한다.
나는 한때 집에서부터 걸어 창원대학을 지나 정병산을 자주 올랐다. 사격장 뒤로 오르면 경사가 급해 숨이 차오른다. 산등선을 따라 가다보면 독수리바위 암반지대가 나타난다. 고소공포가 심하게 느껴져 철제 사다리는 타질 않고 우회 등산로로 둘러가야 한다. 그래서 근래 들어 정병산을 오른 지 오래다. 용추계곡은 지난해 가을 태풍으로 유실된 등산로 복원공사 중이라 불편하다.
마산역 광장으로도 나가봄직하다. 역 광장 모퉁이는 구산과 삼진 방면으로 운행하는 농어촌버스 출발지다. 시내를 벗어나 한 시간 남짓 버스를 타고 떠난다. 구산 해안선을 따라 걸어도 좋고 여항산과 서북산 임도를 걸어도 된다. 갯가는 운무가 자욱해 바다가 흐릿하다. 길고 긴 산간 임도는 뙤약볕이 내리쬐면 이마나 볼에 소금기가 버석버석할 정도로 땀을 흘려야해 망설여진다.
그럼 남은 곳이라곤 북면 일대다. 천주산은 경사가 급하고 사람들이 많이 오르내려 마음이 썩 내키질 않는다. 달천계곡으로 들어 함안 고개 너머 산정마을 가는 계곡으로 내려서 볼까나. 굴현고개에서 구룡산 산등선 따라 걸어 다호리로 내려가 볼까나. 아니면 동전사거리에서 화양고개로 가서 산등선 따라 가면 백월산에 이른다. 하산은 들녘 지나 마금산 온천까지 걸어도 될 것이다.
아껴둔 코스가 하나 있긴 있다. 외감마을에서 양미재로 오르리라. 오리나무와 편백나무 숲길을 지난다. 너럭바위에 앉아 숨을 고르고 땀을 식혀도 좋다. 양미재에서 작대산 방향으로는 산등선을 오르락내리락 한다. 그곳 응달엔 지금쯤 하얀 까치수염꽃이 피어날 것이다. 볕이 잘 쬐는 산등선엔 주황색 나리꽃이 제철을 맞아 한창 피고 있을 것이다. 주말엔 비가 오려나, 볕이 나려나. 17.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