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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 여행] 봉황산 기슭의 고고한 入松亭[팔송정]..........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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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 여행] 봉황산 기슭의 고고한 入松亭[팔송정]..........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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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랑자는 지난번 ‘濯斯亭[탁사정]’ 방문기에서 거론 되었던 인물인 제주목사 任應龍[임응룡]에 대한 발자취
를 따라 가게 되었다, 하여 찾아간 곳이 봉황산 기슭에 자리 잡은 ‘松石亭[송석정]’이란 정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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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곳은 유랑자도 잘 몰랐었던 곳을 제천의 문화 해설사 중 한분인 유 해설 사님께 청풍명월의 고장 제천에
‘관란정’과 ‘탁사정’ 말고 다른 정자를 가 볼만한 곳이 없느냐는 질문에 ‘송석정’이란 정자가 있다기에 솔깃하여 찾
은 정자이기도 하다. 대충 검색을 해 보았더니만 제주목사 ‘임응룡‘이란 인물이 관여 되어 있어 그렇다면 한번 찾
아보리라 마음먹고 시간을 내어 재차 제천을 방문하게 되었던 케이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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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효능: 간과 신장을 튼튼히 하고 원기와 혈을 보하며, 혈압을 내리고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능이 있다 산
수유의 열매는 신선이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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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먼저 ‘松石亭[송석정]’에 도착을 해 보니 주차장은 없었지만 마침 도로 한편에 주차를 할 만한 장소가 있
어 주차를 하고 멀리 보이는 산기슭에 있는 정자를 발견하고 정자를 향해 발길을 옮겨본다. 堤川川[제천천]과 八
松川[팔송천]이 합쳐지는 곳에 자리 잡은 정자는 아치형 다리를 건너야만 들어가 볼 수 있는 정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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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가 멀리서 바라보았지만 제법 운치 있는 곳에 자리 잡은 정자는 새 단장을 하고서 泰然[태연]한척 孤高[고
고]한척 세월을 잊은 채 그렇게 서 있었다. 먼저 유랑자는 아치형 다리를 건너기전 ‘송석정‘을 안내하는 유래비가
세워져 있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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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설화:옛날에 효심이 지극한 소녀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늙은 아버지가 불치의 병에
걸리고 말았다. 소녀는 정성껏 아버지를 간호했지만 병은 낫지 않고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뒷산에 올
라가 정성껏 기도를 했더니 신령님은 그 효심에 감복하여 산수유 열매를 주셨다. 소녀는 신령님이 주신 산수유
열매를 정성껏 달여 아버지께 드렸더니 신기하게도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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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시작되는 봉황산 산행은 정상을 거쳐 학산리 로 내려오기 까지 대략 4시간 정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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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石亭 由來[송석정 유래]비 내용
鳳凰山봉황산 기슭아래 堤川[제천[과 原州[원주[간 國道[국도]가 隣接[인접]하고 提川川[제천천]과 八松川[팔송천]
이 合水[합수]되는 沼[소]위에 해질 무렵 고기 잡는 모습을(頕漁.담어) 볼 수 있는 蒼霞釣臺[창하조대]가 넓게 자리
잡고 있으며 깍아지른 듯 서있는 石壁[석벽]위에 솔숲으로 둘러싸인 松石亭[송석정]이 있었다는 것을 이곳에 살던
이석조[李錫兆]씨 에 의하여 石壁[석벽]에 새겨진 글자를 보고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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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 八松川[팔송천] 언덕에는 朝鮮朝 明宗 19年[조선조 명종19년:1564년]에 제주목사 任應龍[임응룡]이 歸鄕
[귀향[시 海松八[해송 팔]그루를 가지고 와 심게 한 연유로 이름을 八松[팔송]이라 이르고 山水景觀[산수경관]이 [秀
麗]수려하고 소나무가 어우러진 돌 위에 亭子[정자]를 지어 주변 學者[학자]들이 모여 淸談[청담]을 나누고 선비들
이 國事[국사]를 論議[논의]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임목사가 제주에서 해송 8그루라고 했는데 송석정기에 보면
10그루를 가져 왔다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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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石亭 由來[송석정 유래]비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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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기려 그의 後孫[후손]과 뜻있는 人士[인사]들이 傳說[전설]과 歷史[역사]가 깃들어있는 松石亭[송석정]을 復
元[복원]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999년 건너편 八松[팔송]마을 상징인 소나무심기 復元事業[복원
사업]을 지원하신 이 고장 出身[출신]이며 서울市長[시장]을 歷任[역임]한 바 있는 이원종[李元鐘] 忠淸北道知事
[충북도지사]의 特別[특별]한 支援[지원]과 권희필[權熙弼] 堤川市長[제천시장]의 誠意[성의]를 모아 後援[후원]하
게 되어 마침내 任氏後孫[임씨 후손]들의 所願[소원]이며 先祖[선조]들의 脈[맥]을 잇는 松石亭[송석정]을 復元[복
원]하게 되어 그 由來[유래]를 알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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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地域[지역]은 義兵[의병]의 發源地[발원지]이며 天主敎[천주교]의 聖地[성지]인 우리 고장에 傳說[전설]속에 묻
혀있던 松石亭[송석정]이 復元[복원]되어 故鄕[고향]을 찾는 出鄕人士[출향인사]와 장차 이 나라의 棟樑之材[동량
지재: 마룻대와 대들보]가 될 靑少年[청소년]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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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沼[소] 위에서 해질 무렵 고기 잡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蒼霞釣臺[청하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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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石亭[송석정], 蒼霞釣臺[청하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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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조선에서 누정의 역할은 주변의 자연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고, 그들만의 풍류와 친교의 공간이었으며
그리고 學問[학문]과 敎育[교육]의 공간이었다. 따라서 선비들의 樓亭[누정] 문화는 그 사회를 이끌어 가는 담론이
형성되었던 곳이고 강학의 공간이요 사적인 공간으로서 우리 조선 사회와 문학에 끼친 영향은 대단히 컷던 것으
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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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유명 인사나 유림들이 경영하던 누정에서는 누정시단이 형성되었고 거기에서 많은 시회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 즉 樓亭[누정]은 구심력과 원심력을 갖춘 人文[인문]의 精髓[정수]라 할 수 있겠다. 반면에 자신들만의
정치 문화를 형성하고 패거리 정치와, 파벌 싸움의 원조가 되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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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아래의 석벽에는 지금도 희미하게 남아있는 [松石亭 :송석정], [蒼霞釣臺 : 창하조대] 라는 글씨가 남아있으
며 이를 근거로 하여 송석정 의 복원이 이루어 졌으며 팔송천 과 제천천이 합류하는 곳에는 물이 맑고 깊은 소가
있었다. 전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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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정(松石亭)은 조선 명종 때, 이 고장 출신인 제주목사 임음룡(任應龍)이 그 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 해송(海松) 10 그루를 가지고 와 그중 여덟 그루를 지금의 봉양읍 팔송(八松) 마을에 심어, 그로 인해 마을 이
름 지었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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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는 조선의 亡兆[망쪼], 즉 선비들과 조선의 몰락이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얍삽[ [ずるがしこい, 즈루가
시코이]한 친일 선비 놈들은 이승만 정권에 기생 하면서 오늘날 까지도 자손대대를 이어 好衣好食[호의호식]하며
살고들 있으니 참으로 우리 한민족들은 두고두고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良識[양식]있는 국민들이 친
일
청산[친일, 반민족 해위자들]을 부르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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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먼저 아치형 다리를 건너면서 다리 중간에서 좌측으로 보면 밑에는 沼[소]가 보이고 그 위로 널따란 바위
위에 큰 벽돌을 4단으로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이는 석벽이 하나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석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희미하게나마 430여 년 전에 쓴 松石亭[송석정] 이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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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면 팔송리 의 넓은 들과 냇물이 굽이쳐 흐르는 산자락에 위치한 송석정 은 8개의 기둥을
세워 8각정으로 지어진 겹처마 정자각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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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蒼霞釣臺[창하조대]라는 글씨도 음각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끼등 때문에 글씨를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
리고 그 석벽 아래 沼[소]에서는 버들치들이 떼 지어 여유롭게 유영하고 있는 평화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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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비문을 잠시 인용해 보면 두 천이 합치는 沼[소] 위에서 해질 무렵 고기 잡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지어진 이
름 蒼霞釣臺[청하조대], 깎아지른 듯 서있는 석벽위에 솔숲으로 둘러싸인 ‘송석정’이 있었다는 것을 어느 시대에
새겨 놓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마을에 살던 ’이 석조‘라는 사람에 의해 석벽에 새겨진 글자를 발견하게 되어 이
정자를 복원하게 된 내력을 새긴 비문이 이를 立證[입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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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정 은 오랫동안 없어져 있던 정자각으로 이 고장 사람들조차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곳으로 근래에 와서
건물을 복원한 뒤부터 점차 송석정 을 찾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또한 제천의 명산으로 알려진 봉황산을 찾는 사람
들이 늘어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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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石亭[송석정] 있는 鳳凰山[봉황산]은 제천시 봉양읍 팔 송리와 명암리 사이에 솟은 산이다. 전체적인 산세는 능
선이 남북으로 뻗어있으며, 북쪽으로 원주 감악산과 이어져 있다. 서쪽기슭에는 기암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과 백
사장, 노송이 어우러진 제천9경 탁사정이 있고, 남쪽기슭 끝자락에는 松石亭[송석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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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산은 조망도 우수하여 북쪽으로 감악산, 동쪽으로 백곡산, 남쪽으로 제천 봉양읍의 들판, 서쪽으로 구학산,
주론산이 보인다. 봉황산의 뜻은 "봉황새 봉(鳳), 봉황새 황(凰)"자로서, 산세가 봉황이 날아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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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팔송(八松)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 8송정 소나무를 심어 복원해 놓으
면서 松石亭[송석정]도 복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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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봉황산 끝머리는 제천의 용두산 에서 명암계곡을 흘러내린 提川川[제천천]이 흐르고 강원도 치악산 계곡에서
시작하여 옥전 리를 거쳐 흘러내려온 八松川[팔송천:동막천]이 합수되는 팔송 리에서 그 맥을 다한다. 보편적으
로 봉황산을 등산 하려면 이 松石亭[송석정]이 있는 들머리에서 시작하여 봉황산을 지나 북쪽으로 내려가면 끝자
락에 탁사정 유원지와 탁사정 정자가 있는 구학 리로 하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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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임응룡(任應龍)이란 인물은 조선조의 무신. 선조 때의 제주목사. 자는 希雲[희운], 본관은 장흥이며 현재의
충청북도 제원군 송학면 무도리 에서 태어났다. 1556년(명종 11)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 때 공은 세워 原從功
臣[원종공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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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산(鳳凰山)기슭 아래 제천천(堤川川)과 팔송천(八松川)이 합수되는 소(沼) 위에 세워져, 해 질 무렵에는 고
기 잡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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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옹진 현령과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1585년(선조 18) 4월, 목사 金應南[김응남]의 후임으로 도임하고 1586
년 8월, 현직에 재임 중 사망하였다. 목사 임응룡(任應龍)은 이에 앞서 조선 명종 때인 1564년에 제주목사를 지낸
후 돌아오면서 10그루의 해송을 가져와 주거지에 8그루를 심어 본인의 귀향을 기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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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임응룡이 팔송리 에서 동쪽으로 마주보이는 山水景觀[산수경관]이 [秀麗]수려하고 소나무가 무성한 봉황
산 풍광에 반해 지금 정자가 있는 자리에다 해송 壹[一한] 그루를 심고 정자를 지으니, 인근의 학자들과 선비들이
이곳으로 왕래하며 交遊[교유]하며 청담을 나누고 국사를 논했다 전해진다. 그렇담 이쯤해서 숙제 하나~ 나머지
壹[一한] 그루는 어디로 갔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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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연유로 마을 이름이 팔송정 이 되었고 다시 팔송리 가 되었으며 스스로 그 암벽 위에 정자를 세워 松石亭[송
석정]이라 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松石亭[송석정]은 세월의 한계를 너머서지 못했던 모양이다. 언제 인가는
모르겠지만 없어져 버린 정자는 우여곡절 끝에 2000년 11월에 새로 복원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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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과거 팔송리 의 지명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현재는 松石亭[송석정:봉양리 724-45]에. 濯斯亭[탁사정:구학
리 224-1]에 팔송리 가 아닌 다른 마을에 각각 위치 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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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경관(山水景觀)이 수려(秀麗) 한 이곳에서 선비들이 모여, 청담(淸談)을 나누고 국사(國事)를 논의하였으
며, 이를 기려 그의 후손과 뜻있는 인사들이 2001년 4월 27일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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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石亭[송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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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松石亭[송석정]위에 올라섰다. 비록 5번 국도가 지나는 절벽위에 있어 약간의 자동차 소음이 들리긴 하
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는 여느 정자에 못지않다. 뒤편 소나무 때문에 팔송리 는 보이지 않지만
대신 정면으로 봉양리 국화실 마을과 제천 바이오밸리 산업 단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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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과거 이곳 정자에서 얼마나 많은 선비들이 드나들며 淸談[청담]을 나누고 또한 무엇들을 의논 하였을까
설마 오늘의 어지러운 대한민국의 국정을 논하지는 않았겠지? 라는 생각을 해 보면서 유랑자는 씁쓸한 미소를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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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石亭[송석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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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정 편액 해석글[제천 해설사 협회 자문을 받음]
백두대간 뻗어내려 금수강산 조성되니 곳곳에 영산에 산봉우리 고을마다 큰 하천이라 태백산 높은 산맥에 봉우
리 아래 봉황산이 이곳이로구나. 봉황산에 날든 봉황이 오산(지명)에 날아가서 비수리(지명)에 감돌다가 무봉암
(지명)에 춤을 추니 송석정 졸든 학이 팔송에 다투어 날았더라 옛님이 놀던 정자에 비바람에 넘어져 무너지고 창
하조대(자연지명)늙은 어부들은 전설 속에 살아있어 함정소(자연지명) 깊었든 곳은 흔적만이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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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지사 이원종님 제천 시장 권 희필님 주민 염원 청원을 하락하여 정자를 복원하니 그 공적과 송석정 이 하늘
과 같이 무궁하소서 꽃피고 잎이 지고 단풍 들고 눈 내리는 춘하추동 사계절에 정자에 올라가는 한량들아 자연보
호 잘 지켜서 오랜 세월 만대 전하자,
경진년 2000년 중앙절(음력 9월 9일) 팔송리 송암 박 기복 글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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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하조대는 지금의 송석정 에서 하천방면 바위에 암각 자가 쓰여 있습니다.
오산은 앞산이구요.
무봉암 과 함정소 는 제천 천에 지명입니다.
지명중에 비수리[마을]-> 옛날 솔개미가 날아가다가 일을 낳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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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잔나비 걸상버섯(오늘의 수확):소나무 잔나비 걸상버섯(잔나비 불로초 버섯)의 효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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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면역력 강화: 소나무 잔나비걸상버섯(잔나비불로초버섯)에 포함된 β-葡聚糖은 면역 체계를 활성화하여 감기와
독감 같은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2.항암 효과: 면역 세포를 강화하고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3.혈당 조절: 당뇨병 예방 및 개선에 도움이 됩니다.
4.항염증 효과: 염증을 완화하고 관절염, 아토피 피부염 등 염증 관련 질환을 개선합니다.
5.간 건강 개선: 간 기능을 회복시키고 해독을 촉진합니다.
6.피로 해소: 에너지 대사를 촉진하여 피로감을 줄여줍니다.
7.콜레스테롤 감소: 혈중 나쁜 콜레스테롤(LDL)을 감소시켜 심혈관 질환을 예방합니다.
8.골밀도 증가: 뼈 건강을 개선하여 골다공증을 예방합니다.
9.인지 기능 향상: 기억력과 집중력을 향상시키며 치매를 예방합니다.
10.피부 미용: 항산화 효과로 피부 노화를 방지하고 미백 효과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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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잔나비 걸상버섯(송석정에서 얻은 오늘의 수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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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정 주변에는 굴곡진 세상을 견디어 낸 푸른 소나무들이 마치 단원의 疏林明月圖[소림명월도]처럼 아주 무성
하다. ‘임‘목사가 소나무가 무성한 봉황산 풍광에 반해 지금 자리에다 정자를 지었다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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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공자가,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
드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였듯이 소나무는 사시사철 푸름을 잃지 않는 데서 변함없는 조선 선비의 節介[절개]를
상징하였다. 유랑자도 온통 송림으로 감싼 자연속의 정자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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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자연의 이치는 마음으로 체득할 수 있을 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담담하면 외적 조
건은 자연히 超越[초월]된다. 삶은 부질없다는 말.......그러고 보니까 유랑자도 그동안 左顧右眄[좌고우면]하지 않
고 나름 지혜로운 삶을 추구하며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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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지혜로운 삶이란 바로 執着[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그래야 부질없는 갈등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얻
는다. 유랑자는 오늘 松石亭[송석정]에 올라 한 가지 느끼는 바를 가슴에 담고 발길을 돌린다. 앞으로의 유랑자의
삶의 지혜란 끝까지 欲心[욕심]과 執着[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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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우나기)의 효능: 민물장어는 단백질, 비타민 A, 비타민 B군, 칼슘 등 다양한 영양소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습니다. 특히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여 혈액순환을 개선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데 도움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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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정 찾아가기
충북 제천시 봉양읍 봉양리 72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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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우나기)의 효능
1.피로 회복: 비타민 B군이 풍부하여 피로 회복에 효과적입니다.
2.면역력 강화: 면역력을 높여 질병 예방에 도움을 줍니다.
3.혈액순환 개선: 불포화지방산이 혈액순환을 개선하여 혈관 건강에 좋습니다.
4.시력 개선: 비타민 A가 풍부하여 시력 개선에 도움을 줍니다.
5.뼈 건강: 칼슘 함량이 높아 뼈 건강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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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나들이 홈클릭👍
▶https://tour.jecheon.go.kr/base/main/vi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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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나들이 홈페이지 클릭 ✌
▶ https://tour.chungbuk.go.kr/www/index.do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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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b2345/9toB/22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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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메모(유랑자 지역별 여행지도 참고)
▶1:당일 여행 코스= 의림지(제천1경)→박달재(제천2경)→ 청풍 문화재 단지(제천4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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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박 2일 여행 코스=의림지→ 역사박물관 → 솔밭공원 →비룡담 저수지 → 한방생태 숲길
→ 교동 민화마을→(숙박)→정방사→능강솟대문화공간→청풍 문화재 단지 → 청풍호관광 케이블카
(모노레일.비봉산)→청풍호 드라이브 →송계계곡 → 덕주사 마애불 →충주IC-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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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박 3일 여행 코스
★.해설사가 직접 동행하는 가스트로 투어.[제천미식이와 떠나는 셀프맛여행]★
►체험안내: 가스트로 A, B코스 (각 코스별 식당 5곳)~사전예약 필수
-A코스 : 관계의 미학 -덩실분식 찹쌀떡 -마당갈비 영양밥 -빨간오뎅 -샌드타임
-B코스 : 대장금 식당 -상동 막국수 -이연순 사랑식당 -제천 솔티맥주 -빨간오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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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가면 꼭 먹어 보아야 할 음식
1.약초 소/되지 갈비, 2.약채락 정식, 3.통밥, 4.한방 떡갈비, 5.한우 떡갈비 정식, 6.한방 삼/오겹살 구이,
7.약채락 육회 비빔밥, 8.유기농 쌈밥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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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여행 2박 3일 코스
-1일차:삼한의 초록길→의림지→역사박물관 →솔밭공원→비룡담 저수지 → 한방 생태숲산책→ (숙박)
-2일차:가스트로 A.B →중앙시장→달빛정원 → 교동 민화마을 →입석선돌 → 관란정 →영월 한반도 지형 (숙박)
-3일차:한방엑스포공원 → 송석정→ 탁사정 →배론성지 →박달재 →목굴암(박달과 금봉이사당)
→ 포레스트리 솜(스파. 식당. 카페. 숲 산책로. 콘도. 리조트)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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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찾아 가는길
▷*버스=서울-제천,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30분 간격(06:30~21:00) 운행, 약 2시간 소요.
▷*열차[Itx.]무궁화=청량이-제천역 청량리 역에서 2시간 견격, [KTX 는 1시간 간격 운행]
약 1시간 53분 소요.[KTX는 1시간 소요]
►철도고객센터는 1544-7788,1588-7788이다.
▷*자가정보= 경부(중부)고속도로→영동(중부내륙)고속도로→평택제천고속도로→중
앙고속도로 → 남(북)제천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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