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4월10일 [(백) 부활 제2주간 화요일]
○ 제1독서 사도 4,32-37
† 복음 요한 3,7ㄱ.8-15
◈ [인천] 생명을 가진 살리는 말이 되어야 할 것
2018년 나해 4월10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제1독서
<한마음 한뜻>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4,32-37
복음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7ㄱ.8-15
먼저 공지사항 한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제가 오늘부터 갑곶성지에
있지 않습니다. 다른 곳으로 이동 되냐고요? 그건 아니고요... 사실
오늘부터 4월 22일까지 유럽 성지순례를 갑니다. 솔직히 가기가
싫습니다. 왜냐하면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거든요. 이번에 가는
성지순례 코스도 세 번째이기 때문에 처음에 가졌던 설렘도 전혀
없고, 오랜 시간을 비행기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참으로 신기한 것은 막상 순례가 시작되면
너무나 많은 것들을 얻게 된다는 것이지요. 다시 돌아올 것을 생각하면
또 끔찍하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오늘부터 자리를 비웁니다. 새벽 묵상 글은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곳의 인터넷 사정이 많이 좋아졌으면 묵상 글을 올릴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22일까지 조금만 참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 묵상 글을 올립니다.
버섯을 성분 조사하면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물 90%, 단백질 3%, 탄수화물 5%, 지방 1%, 미네랄 1%.
문득 그러면 독버섯과 식용버섯의 구성 상 차이가 궁금해졌습니다.
아마 거의 모든 구성 성분 안에 독이 들어 있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틀렸습니다. 글쎄 1%의 미네랄
안에 독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독버섯과 식용버섯으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의외였습니다. 겨우 1%에 해당하는 부분에 의해서 사람의
생사가 결정된다는 것이 말이지요.
버섯 전체 구성 성분의 1%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들으면서,
문득 사람의 말도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말 역시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죽을 만큼의 아픔과 시련을 주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죽이는 말이 사람이 쓰고 있는 말의
전부일까요? 아닙니다. 아마도 1%? 어쩌면 0.1%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얼마 안 되는 말이 다른 사람에게 독으로 다가가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나의 말이 독이 되는
말이 아닌 생명이 되는 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서 떠올려 보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니코데모에게 하시는 말씀 역시 바로 생명이 되는 말이었습니다.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전제가 있습니다. 바로 믿는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고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 역시 생명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생명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죽이는 말을 쓰면서 결코 주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있는 말은 과연 어떤 말이었을까요?
남을 쉽게 판단하고 단죄한다면, 조금 더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서 말하지 않는다면, 부정적으로만 말한다면 결코 주님을
믿는 사람의 말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오늘 내가 하는 말이 강한 독성을 가진 죽이는 말이 아닌, 생명을 가진
살리는 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특히
주님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대화의 기술은 알맞은 곳에서 알맞은 말을 하는 것뿐 아니라,
안 맞는 곳에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불쑥 해 버리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도로시 네빌).
독버섯이 예쁘긴 합니다.
어느 부자의 대화.
아버지가 직장 없이 빈둥빈둥 집에서 놀고 있는 아들을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씀하십니다.
“에디슨은 너 나이 때 전기를 발명했다. 너는 지금껏 뭐했냐?”
아들은 이 아버지의 말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그런 소리 마세요. 링컨은 아버지 나이에 대통령 했어요.”
비교하는 말은 절대로 힘이 되는 말이 아닙니다. 용기를 줄 수 있는
말이 바로 살리는 말이 아닐까요?
니코데모와 대화하시는 예수님.
◈ [수도회]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요한 3, 9)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4월10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요한 3, 9)
새로운 일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곳에 변화또한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삶과 예수님을 만난
이후의 삶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숨어 있던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께로 드디어 나오게됩니다.
예수님과의 진정한 만남을 통해 우리자신을 똑바로 보게됩니다.
우리자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할지를 깨닫게됩니다.
빼앗기지 않을 영적인 삶을 이제 갈망하게됩니다.
하느님께 이르는 길은 다름아닌 십자가의
예수님이 보여주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영적인 길은 다름아닌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십자가의 삶입니다.
십자가의 삶은 십자가를 먼저 지고 가신
예수님의 도움이 매순간 절실히 필요한 함께하는 삶입니다.
이 부활시기가 다시금 살아계신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 영적인 시간이 되길 기도드립니다.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처럼 자신의 뜻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우리의 십자가 안에서
가장 아름답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모든 변화가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질 것임을
예수님께서 먼저 보여주십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서울] 부활 제2주간 화요일
2018년 나해 4월10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요한 3,7ㄱ.8-15
저는 오늘부터 17일까지 피정을 합니다. 교구는 사제들이 피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핸드폰은 매일 충전을 해야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제들에게 피정은 핸드폰을 충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8일 동안 충전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영적인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강의를 듣고,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기쁨입니다. 마치 신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로 했으면 약속 시간 전부터
기분이 좋아지듯이, 아직 피정을 시작하지 않았지만 벌써 기분이
좋아집니다.
며칠 전에 암 치료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암의 치료는 크게 3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는 외부에서 암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와 같은 것입니다. 이런 외부의 치료는 효과는
있지만 부작용이 있습니다. 식욕부진, 구토, 탈모와 같은 것입니다.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세포가 손상을 입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몸의 면역체계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진화하였습니다.
면역체계는 건강한 식생활, 긍정적인 생각, 규칙적인 운동, 적당한
휴식을 통해서 강화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이용하는 치료방법을 찾고 있으며 곧 실용화될 것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는 나노로봇을 이용해서 치료하는 것입니다. 아직은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나노로봇을 이용한 치료는 암뿐만 아니라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새로운 치료법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미세먼지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듯이 나노로봇은 어쩌면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새로운 도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앙생활을 건강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靈’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아주 아름답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재물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신앙생활을 건강하게 할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악의 유혹으로부터 이겨낼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지체라는 생각입니다. 오늘의 제1독서에서 사도들과 초대 교회의
공동체는 바로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하고,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도들과
공동체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우리가 이런 생각의 지평을 넓힌다면 종교가 달라도, 세대가 달라도,
이념이 달라도, 언어가 달라도 지구별에서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은 관념이 아닙니다. 신앙은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은총입니다.
(강론은 피정 다녀와서 18일부터 올리겠습니다. 좋은 피정이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기타]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오늘의 능력말씀
2018년 나해 4월10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
오늘은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유럽에서 북한선교를 하기 위해 신용철 선교사님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독일 하노버로 떠나게 됩니다.
신목사님은 모든 것을 준비해주실 줄 믿고 정말 아무 것도 준비도
못하고 그냥 떠나게 되었습니다. 독일은 법과 증거와 서류가 있어야
움직이는 곳인데 믿음만 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식당에서 만난
독일 사람이 선뜻 ‘집을 내주겠노라’해서 집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도 관광비자만으로는 세울 수 없는 상황인데,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겠다.’며 먼저 선포를 시작했더니 그게 가능할까? 염려까지
했는데 정말 그게 그대로 이루어져서, 지금 현재는 성도 7명이 자기
재산을 걸고 이사로 등록을 하여 교회 법인을 세우고 정식
목회비자까지 나와서 한인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기도하고 순종했던 신선교사님의
간증! 여러분 그냥 쉽게 넘기지 마십시오.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믿음으로 맡겨 순종하는
성도가 될 때 하나님의 살아계신 모습을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언제나 그 현장 믿음대로 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 부평 사랑 밭 교회 권태일 목사 -
◈ [청주] 행동하는 믿음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나해 4월10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요한 3,7.8-15)
행동하는 믿음
개나리 진달래, 라일락, 벚꽃이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미선나무도 하얀 꽃을 피웠습니다. 긴 겨울의 추위를 견뎌 낸 나무들이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자태를 뽐내기 시작했습니다. 영양을
충분히 지닌 나무와 그렇지 못한 나무들이 드러납니다. 밑거름이
중요한데 웃거름으로 겉만 다스렸던 나무들은 힘이 없습니다. 밑거름이
충분하면 필요할 때마다 알맞은 영양분을 흡수하지만 밑거름이
충분하지 못하면 일시적인 효과를 내는 웃거름에 매달리게 됩니다.
결국은 튼실하지 못하여 쉽게 명을 다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밑거름이
소중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읽고 미사참례를 하며 기도에 충실한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가 됩니다. 그는 꾸준합니다.
그러나 기도생활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일시적인 효과를 찾아
헤맵니다. 세상에 떠도는 유명한 곳을 찾아 돌아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삶의 변화는 없습니다. 신심단체활동 등 생색내는 일에는 열심히
하면서도 미사에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큰
믿음을 지니려면 먼저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합니다. 기도생활로
밑거름을 줘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믿음의 생활은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3,14-15).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십자가로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사람들이
모세의 손에 들린 구리뱀을 쳐다보았을 때 살았고, 보지 않은 사람은
죽었듯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해하는 것에 멈춰서는 안 됩니다. 행함으로써 증거 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행함으로써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은 단순히 미래에 주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17,3).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영생이란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믿는 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분과 일치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관계는
이미 여기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믿음의 삶이 중요합니다. 알프레드 디 수사 신부는
말합니다. “천국이 이 땅에 있는 것처럼 살아라.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천국이 이 땅에 있는 것처럼
살아라.”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사람이 믿음만으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생활 안에서
행동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합당히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되고, 우리 안에 있는 거룩함의 힘을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수원] 피, 새로 태어나게 하는 힘|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4월10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복음: 요한 3,7ㄱ.8-15
피, 새로 태어나게 하는 힘
독일의 화가이며 조각가인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uerrer, 1471-1528)는 독일 뉘른베르크 출신의 르네상스
시대 화가로서 독일이 유럽연합(EU)에 가입하기 이전 독일 화폐에
그려져 있던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가 남긴 작품은 수도 없이 많지만
특히 뉴른베르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기도하는 손’이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기도하는 손’에는 위대한 사랑과 우정이 깃든 감동적인 사연이
함께 전해져 내려옵니다. 뒤러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이
뛰어났지만 워낙 가난하여 자신의 재능을 불태울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침울한 소년기를 보낸 뒤러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이 둘은 더 큰 도시로 나가 정식적으로 그림을
배워볼 결심을 하고 낯선 지방으로 가게 되었지만 도시는 그들에게
먹을 것도 잠을 잘 자리도 제공해주지 않았습니다.
둘이 가져온 돈도 다 떨어지자 둘은 더 이상 도시에서 버틸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합의를 보았습니다. 이렇게 하다가는
둘 다 공부를 못할 것이니 한 사람이 공부하는 동안 한 사람은
일자리를 구하여 뒷바라지를 하고, 학업이 끝나면 서로 교대하여
공부하자고 제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뒤러의 친구는 삼류식당에 뛰어들어 먼저 취업을 했고 그
친구가 힘들게 번 돈으로 공부를 마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뒤러의
첫 그림이 팔리던 순간 친구의 얼굴이 생각나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 그림은 친구의 피로 탄생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돈을 들고 친구가 근무하는 식당으로 뛰어갔습니다.
캄캄한 친구의 주방을 들어서려는 순간 뒤러는 문틈으로 친구가
방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뼈마디가 굵어지고
거칠어진 두 손을 함께 모으고 뒤러를 위해 진실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성공의 길로 이끌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뒤러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기에는 부적절하게 변해버린 친구의 두
모은 손을 기억에 담아 그렇게 ‘기도하는 손’을 그리게 된 것입니다.
알브레이트 뒤러는 문학에서의 괴테와 함께 독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그의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뒤러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누군가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또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 세상의 진리입니다. 누군가의 노력 없이 건물이 지어지거나
예술품이 생겨날 수 없습니다. 새로 무엇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피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일본에서 천민이었지만 사무라이가 된 이야기를 여러 번 한 것
같습니다. 이 아이는 훈련을 받다가 그리고 귀족 훈련생들 때문에 몇
번이고 뛰쳐나가고 싶을 때마다 성 기둥 안에 있는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죽었지만 그 기둥 속에서 아들에게 끊임없이 힘을 주고
계셨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소년은 그 기둥 안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받고 끝까지 버티어 훌륭한 사무라이가 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죽는 것은 에너지를 배출합니다. 가장 큰 에너지는 누군가를
사랑하여 자신을 희생할 때입니다. 이 사랑을 위한 희생만이 누군가를
새롭게 탄생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니코데모는 새로 태어나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스승이라고 하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느냐고 하십니다. 세상에서도 무언가 새로 태어나게 하려면 피를
흘려야 하는데 어찌 하늘의 이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당신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결국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피의 대가로 우리가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란 예언인 것입니다. 니코데모는 실제로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며 흘리신 피로써 새로 태어나 이젠 자신의 가진 권력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리마테아의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안장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도 누군가 새로 태어나려면 또 다른 누군가의 피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위로부터 새로 나는 것도 누군가의 사랑을
통해서입니다. 피를 흘리지 않고 태어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무라이가 되고 싶었던 아이가 기둥 안에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기 위해 죽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믿기만 한다면 그분의 피를 통해서 우리가 새로 태어나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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