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게임이란? 나는 삼무곡에 입학하고부터 늘 게임을 해 오면서, 이 질문을 항상 던져왔다. 신입생 때 내게 게임은, 자유가 뭔지 느끼게 해준 존재였다.
또 어느 때엔 '이 분야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최고이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생에 처음 프로게이머라는 꿈을 꾸었다.
한번 미쳐보고 나서야 이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두 함께 하는 게임을 시작했다. 그때 나에게 게임은 사람들과의 소통 수단이자 자존감을 높여준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게임이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명쾌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나에게 가장 익숙한 것?‘
저는 삼무곡에 오고서 진정한 자유를 맛보았습니다.
그동안 부모님에 의해 제한되었던 모든 것이 이곳에서는 가능했습니다. 딱 제가 원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토록 바라던 게임을 원 없이 했습니다. 제 몸이 견딜 수 있는 만큼 항상 피시방에서 모니터를 쳐다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모임 하고 게임, 밥 먹고 게임, 간식 먹고 게임, 자기 직전까지 게임 뿐이었습니다. 나름 자유를 만끽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렇게 신입생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저는 그때쯤 나온 새로운 게임에 눈독을 들였습니다.
발로란트라는 게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즐겼습니다. 그러나 발로란트에 흥미가 떨어진 사람들은 점차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계속해서 발로란트에 목을 매었습니다. 좀 실력이 오르자, 기고만장해진 저는 발로란트 프로게이머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렇게 2020년 후반, 내 맘대로 살기라는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내 맘대로 살기란 학교 일과에 상관하지 않고, 하루 온종일 자신에게 시간을 할애하는 것입니다. 현곡께선 이것을 자발적 찐따라고 부르셨습니다.
저는 나름 그 타이틀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내 맘대로 살기를 시작하고, 눈에 띄게 하루하루 발전했습니다. 그러는 동시에 제 인간성은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일체 차단했고, 저와 온전히 대화하는 것은 게임 뿐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 않으니, 급속도로 멀어져 갔습니다. 그래도 별 상관 없다 생각했습니다.
이제 안 볼 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겨울 워크샵 한달 전에 먼저 집으로 향했습니다. 오롯이 나를 위한 공간에서 게임에 더더욱 몰두하여 프로게이머에 더 가까워 지기를 바랬습니다.
하루 빨리 꿈을 이루고 삼무곡에 돌아가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생각처럼 집이라는 선택은 저에게 그런 디딤발이 되어주지 못 하였습니다. 두 달동안의 방학이 끝난 뒤 다시 학교에 돌아와서도 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땐 가끔 사람들과 함께 하기도 했지만, 게임을 하기만 하면 제 이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게임만 하면 제가 뭐라도 된 것 마냥 행동했었습니다.
걸레를 문 듯 입에선 험한 말이 난무했고, 저만의 기준을 세워놓고는 남이 조금이라도 기준에 못 미치면 깎아내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사람들과 지내는 법을 잊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늘 외로웠지만 그땐 그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때까지도 저는 제가 하고자 하는 일 열심히 하며 사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21년 여름 워크샵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제 삼무곡 삶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이게 아니구나, 잘못되도 한참 잘못되고 있었구나 라는걸 그때 깨달았거든요.
내가 원하는 일만 하며 살아가는게 가장 중요하다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선 나에게 사랑을 주려 하는 이들을 무시해도 상관없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런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제 본모습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하며 살던 저에게, 어느 날 작은 소리 하나가 들렸습니다. "그게 아니야" 단 한 마디였지만 그 속삭임이 저에게 가져다 준 의미는
어마어마했습니다. 사실 제가 가장 듣고싶던 말은 바로 저 말 이었던 것 같습니다. 삼무곡에 오고선 터치라는걸 하는 사람이 없었고 처음 느껴보는 자유에 제 몸 가눌 줄 모르다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습니다.
빠진 경험이 없으니 스스로 나오는 법도 몰랐습니다. 그저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누구든 날 좀 구해줘, 도와주세요' 하며 고요한 외침을 할 뿐이었습니다.
그랬던 제게 들려온 그 한 마디 말에 저는 달라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2021년 여름방학이 끝난 뒤 저는 탈바꿈을 했습니다. 칙칙했던 성격을 밝아지려 노력했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되고자 하는 나' 도 생겼습니다. 제 손이 닿는 일은 다 경험해보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는 동시에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롤이라는 게임을 꾸준히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난 뒤부턴 예전에 게임을 할 때에는 느끼지 못 했던 감정들이 하나 둘 생겼습니다.
롤을 할 때면 모두와 내가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내 날것의 모습도 서슴없이 보여주고 당당하게 표현 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서툴고 소극적이던 제게 롤은 최고의 소통 수단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하다 보니 어느새 실력도 올랐고 그에 따른 자신감도 붙었습니다. 내가 팀을 이끌어서 승리를 거머쥘 때, 희열감을 느꼈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거나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을 때 제 자존감은 우주를 뚫고 나갈 기세였습니다. 게임을 할 때 만큼은 제 모습이 한없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게임을 통해 사랑을 맛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요즘까지도 저는 게임을 하며 지냈습니다. 어느 날 제게 물었습니다. '너에게 게임이란 뭐야?' 바로 답할 수 있을것만 같았는데 말문이 턱 막혀버렸습니다.
'난 뭘 하고 있던 걸까, 무얼 위해 이렇게 열심히 달리고 있었을까.' 게임을 하며 느끼고 배웠다 생각했던 모든 감정들이 지금 제겐 없었습니다.
지금 뭘 하고 있는건지, 뭘 하고 싶은건지도 모른 채 그저 내게 가장 익숙한 것만 고집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나를 위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지난 시간들이 알고 보니 내 발걸음만 늦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하게 깨달았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게임을 잠깐 멈추고 다른 활동을 찾아 보기로 했습니다. 원래라면 게임을 하던 시간에 장작을 패거나 기타와 피아노를 치기도 하며 뜨개질이라는 새로운 취미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모니터 속에만 박혀있다가 밖을 나와 돌아다녀보니 그동안 늘 곁에 있었지만 관심 없던 모든 것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게임만 하지 않았을 뿐인데, 많은 사람들이 먼저 내게 다가와 주는 것 같았습니다.
기타를 치면 마주 앉아 들어주는 사람부터, 모닥불을 피우면 따듯해하며 쉬어가는 사람들, 방에서 혼자 휴대폰만 하는 친구들 등
그 모든 이들이 나에게 사랑을 경험시켜주려는 위대한 스승들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현곡의 말씀으로 들었던 것들을 몸소 경험하고 사랑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 뒤부턴 제가 마음먹지도 않았지만 컴퓨터에는 전혀 눈길이 가지 않았습니다. 게임을 하지 않아도 저를 반기는 일은 차고 넘쳤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게임을 여기서 아예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선택을 언젠가 후회 할지도 모릅니다. 함께 게임하던 공간, 혹은 신나서 같이 소리치던 사람들이 그리워 질지도 모르지만 그런 아쉬움도 앞으로는 게임이 아닌 다른 것들로 차근차근 채워나갈 것 입니다.
그동안 게임을 통해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한가지에 미쳐보는 경험을 했고,
사람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보았습니다.
또한 게임을 통해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을 느꼈으며
사랑하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를 위한 시간을 의미있게 쓰는 법과 인간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 등 수많은 배움을 안겨준 게임이라는 위대한 스승으로부터 저는 졸업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12.05 02:32
첫댓글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