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만능론(또는 한글의 표음능력에 대한 과신)에 빠진 사람들은 문자의 확장과 변용에 대한 개념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문자와 그 문자가 나타내는 발음의 관계는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합의된 약속일 뿐으로,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다른 언어를 표기하기 위해서는 한글 자모에 다른 음을 할당해서 쓰면 그만이다. 왜냐하면 문자와 음소는 떨어뜨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문자에 어떤 음소를 결부시켜 조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개념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따지면 세계의 수많은 문자 체계로도 모든 음을 표현할 수 있다.
역사상의 사례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대만어를 가타카나로 표기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했던 바 있다. 기존의 일본어 가나 표기법으로는 대만어를 가타카나로 표기하기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확장과 변용을 했는데, 대만어에는 없는 유성 치경/치경구개 마찰음 z 대신 유성 치경/치경구개 파찰음 j를 표기하기 위하여 탁점 붙인 サ행을 이용했고 지역에 따라 다른 o 발음을 구별하기 위하여 オ와 ヲ를 함께 이용했으며 n, m, ng 받침은 각각 ヌ, ム, ン으로 구분해서 표기하는 등의 변용 표기를 했다. 한글이라고 해서 이런 원리를 적용하지 못할 것도 없는 게 예를 들어 한글을 표기 문자로 수입한 아무개 언어 X가 있다고 하자. 이 언어에는 한국어에 없는 순치 마찰음(/f/)과 구개수 파열음(/q/)이 매우 자주 쓰이고, 반대로 한국어에 있는 자음의 거센소리/된소리 구분(예: ㅋ/ㄲ)은 없으며, 모음에서 ㅓ 소리는 없고, ㅔ 소리는 한국어보다 훨씬 많이 쓰인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이 언어에서는 쓸모없는 된소리 글자 ㄲ과 ㅃ을 각각 /q/ 소리와 /f/ 소리를 나타내는 글자로 변용하고, ㅔ 소리를 나타내는데 획수가 많은 ㅔ보다 ㅓ를 쓰는 등의 변용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반드시 한 글자가 한 소리에 고정되어 있을 까닭은 없는 것이다. 또한, 기존 자모로 나타낼 수 없는 음이 있다면 새 자모를 추가하면 그만이다.
실제로 무수히 많은 언어 표기에 쓰이는 라틴 문자는 나라마다 다양한 확장과 변용 표기를 볼 수 있다. 역시 이 문자도 문자 자체로 따지면 전 세계 대부분 언어를 표기하기엔 어려움이 따르므로 라틴어나 몇몇 음소 적은 언어를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언어가 확장이나 변용 표기를 하고 있다. 만약에 처음부터 한글이 없어서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베트남처럼 라틴 문자를 수입해서 쓰게 됐다고 가정을 하자. 라틴 문자의 모음 문자는 a(ㅏ), e(ㅔ), i(ㅣ), o(ㅗ), u(ㅜ)인데, 그렇다면 모음은 어떻게 변용을 하는 게 자연스러울까? ㅔ 소리가 ㅓ 소리가 많이 쓰이기 때문에 e를 ㅓ 소리를 나타내는 데 쓰고 ㅔ 소리는 ei로 표기함으로써 글자 수를 줄이는 게 자연스럽다. 그리고 자음의 경우는 c와 k의 구분이 없으므로 ㅊ 소리를 쓸 때 ch를 쓰는 것보다 그냥 c를 써서 글자 수를 줄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면, ㅜ 소리와 ㅡ 소리의 구분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ㅜ 소리를 나타내는 u에다가 별도의 기호를 붙여서 ŭ 정도로 ㅡ 소리를 표기하는 식으로 확장을 하면 된다. 이 점에 착안하여 한글은 다른 언어 표기에 부적합하다는 반론이 나오면 확장 및 변용 표기를 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 말은 맞다. 그러나 문제점은 적절한 확장, 변용, 개정 과정을 거치면 지구상의 다른 모든 문자들도 똑같은 표음 능력이 생긴다는 점이다. 맘 먹고 하면 다들 가능하다(그 가운데 라틴 문자는 한글의 본고장인 한국을 포함해서 5대륙의 거의 모든 언어에 대한 어지간한 용례가 다 있다). 다만 그럴 필요가 없으니 안 할 뿐이다. 당장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봐도 바로 앞에 예로 든 한국어 라틴 문자 확장/변용법까지 가진 않았다. (실제 한국어 로마자 표기법에선 ㅔ를 e로, ㅊ을 ch로 표기하고 있다.) 일반 언어의 문자는 그 음성 언어를 시각적으로 효율적으로 전달하면 훌륭한 것이다. 모든 언어의 발음 표기라는 부분에 방점 찍히신 분들은 이미 IPA라는 음성학 전용 결전 병기가 있으니 그걸 익혀서 음성학을 공부하면 된다. 물론 IPA도 언어끼리 구별 가능할 정도의 기호만이 있지 모든 발음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