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이 영지주의다 / 스티븐 휠러/
이재길 옮김, 샨티 2006
영지주의와 폴 틸리히(Paul Tillich)
영지주의자들은 구약의 하나님을 당혹스럽게 여겼다. 플라톤, 필로, 플로티누스등의 가르침에 정통한 이들로서 하느님이 복수심과 분노, 질투, 타민족에 대한 혐오, 독재자의 허세 등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데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예수의 자상하고 숭고한 성품과 그의 가르침에는 품위 있는 영지주의 철학이 얼마나 잘 조화를 이루었는가! 영지주의자들은 이런 분열로부터 구약 성서의 하나님이 우주의 열등한 존재, 곧 데미우르고스라는 논리적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구약 성서를 상징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영지주의자들에 가깝게 창세기를 해석할 때가 종종 있는 폴 틸리히같은 현대 신학자들은 영지주의자들에게 꽤 친근감을 느꼈을 법하다 틸리히는 타락 이야기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서술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 상태에 대한 상징이라고 말한다.
타락은 "꿈속의 천진무구한 상태로부터의 떨어짐
fall.", 곧 잠재의 영역으로부터 현실의 영역으로의 깨어남을 나타낸다- 이 장의 앞부분에서 살펴본 바 영지
주의적인 해석과 다르지 않은 해석-고 틸리히는 적고
있다. 틸리히는 또 자신의 '하느님 너머의 하느님the
God above God'이라는 개념이 영지주의에서 말하
는 '두 하느님two Gods' 개념과 상당히 가깝다고 시
인한다.
https://naver.me/F88obMu5
고대 영지 사상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기독론에 끼친 영향- 신약성서의 영지주의적 본문을 중심으로
초록expand_more
이 논문은 기독교 이전부터 존재했던 영지주의의 핵심 사상인 모나드의 신학과 영혼의 여행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기독론에 영향을 주었음을 신약성서의 영지주의적 본문들(요 1:1-18; 빌 2:6-11; 골 1:15-20, 눅 7:35 등)을 중심으로 연구한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예수의 선재 사상은 유대교의 지혜개념보다는 고대 영지 사상의 모나드의 신학과 ‘영혼의 여행’을 통해서 더 잘 드러난다. 요한복음서의 서론(1:1-18)은 예수의 선재성과 그 선재했던 로고스가 성육신 되었다는 것을 모나드의 신학으로 창의적으로 기술한다. 바울서신의 영지주의적 본문들에서도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존재했던 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세상을 창조하지만, 그는 사람의 형체로 이 땅에 왔다. 이것은 모나드로부터 예수가 나왔지만 그 모나드의 영향력은 약화되지 않고 그대로 육체가 된 예수에게 남아 있다는 것도 신약성서 기자들의 독특성이다. 또한 예수는 고대 영지 사상에서 강조하는 영적인 구원자의 모습을 가지고 이 땅에 와서 다시 영적인 세계인 하늘로 올라간다는 ‘영혼의 여행’의 도식을 따르지만, 요한의 예수는 그 여행을 두 번 한다. 그리고 그 여행이 고대 영지 사상에서는 ‘영혼’에 한정된 여행이라면, 요한은 영혼과 육체의 혼합된 여행을 예수를 통해서 보여준다. 공관복음에는 명시적인 선재 기독론과 모나드가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예수의 가르침 속에서 영육 이원론에 근거한 고대 영지 사상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신약성서의 기독론은 고대 영지 사상의 모나드와 영혼의 여행을 사용하지만, 모나드가 육체를 지닌 예수에게 유일회적으로 발현되었다는 사상은 신약성서 기자들이 2-4세기의 영지주의 공동체와의 만남과 대립 속에서 확립한 독특한 체계이다.
https://naver.me/FtTbuT6E
이 논문은 나그함마디 문서가 영지주의 사상과 신약성서 연구에 주는 의미와 도전을 영지주의에 대한 학자들의 정의에 대한 논의를 기반으로 신약성서와 나그함마디 문서에 있는 고대 영지사상을 사상사비평법을 이용해서 추적한다. 나그함마디 문서는 영지주의적 관점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영지주의 연구의 중요한 원천 자료가 된다. 또한 이것은 역사적 예수와 초기 기독교 운동에 대한 귀중한 자료가 된다. 나그함마디 문서에 대한 연구는 고대 지중해 지역의 다른 종교 자료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새로운 분야이지만 『도마복음』 등을 포함한 몇몇 문서들은 역사적 예수의 연구와 맞물리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나그함마디 문서는 영지주의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불러 일으켰다. 루돌프 쿠르트, 카렌 킹, 크리스토프 마크시스, 송혜경 등은 영지주의의 다양한 특성들을 나열했지만, 필자는 그레고리 라일리가 주장한 ‘모나드의 신학’과 ‘영혼의 여행’을 영지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제시한다. 이 두 개념을 가지고 신약성서와 나그함마디 문서를 살펴보면 이들이 고대 영지사상과 많은 교류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나그함마디 문서는 신약성서 신학뿐만 아니라 2–4세기의 영지주의 운동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준다. 또한 신약성서 연구 방법론과 콥트어 연구와 신약외경과 큐(Q) 문서 연구에 도전을 준다.
.https://naver.me/FbOvzoKb
영지주의와 신약성서 해석(1) 및 시리아어 시문학(時文學)
Ⅰ. 영지주의와 신약성서해석(1)
1. 공관복음과 영지주의적 해석
영지주의자들은 성경을 우의적으로 해석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첫째로 형상과 신비로 가르치시고, 그 다음에 비유와 수수께끼로 가르치시고, 셋째로 사도들과 홀로 계실 때 숨기지 않고 드러나게 가르치셨다.”는 비의적학술로 이해한다. 마태20,1-16‘포도밭에서 일하는 일꾼들’ 루카3,23‘예수님께서 30세 공생활에 들어간 사실과 에페소3,21, 세세대대로(에온의 에온)’는 30이라는 에온’을 뜻한다.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그들의 어머니로, 곧 충만을 잃은 것으로 해석한다. 한 부인이 은전을 찾은 비유에서 잃어버린 은전을 지혜로 해석하며 다시 찾은 은전은 구세주가 오시는 종말로 해석한다. 누룩의 비유에서 밀가루 서 말은 영지주의자들에게 인간의 세 계급을 설명하는데 가장 중요한 명제이다. 곧 물질적 인간, 혼적인간과 영적인간이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로 끝난다. 이는 영적인간은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다. 슬기로운 처녀들과 어리석은 처녀들에 대해서 발렌티누스파들은 물론 슬기로운 처녀는 영지주의자들이다. 영지주의자들은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과 함께 선택된 영적 씨앗으로 설명한다. 구세주가 영혼 속에 심은 영적 씨앗으로 이해한다.
2. 공관복음과 토마복음
토마복음1-2에서도 누가 이 말들의 해석을 찾으면, 그는 죽음을 맛보지 않으리라. 와 로기온107-100가운데 하나가(마태18.12이하); 루카15,3-6과 길 잃은 죄인이 아니라, ‘가장 큰 가치’를 한 양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끝까지 찾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로기온76의 진주나 로기온 8의 큰 물고기도 같은 뜻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원초의 충만을 다시 찾는 것이다. 로기온20의 겨자씨의 비유 로기온96의 밀가루의 비유, 로기온109의 밭 가운데 있는 보물 등의 비유에서 씨는 신적 불꽃이며, 이것이 열매를 보장한다. 그러므로 영지주의자의 신적 기원은 보장이기보다 의무로 남는다. 찾아야하고, 보물을 찾을 때까지 노력하여 밭을 갈아야 한다. 곧 그리스도인들의 보물이나 진주는 ‘영혼’이다. 로기온9의 많은 종류의 씨앗의 비유, 로기온57의 밀 가운데 있는 잡초의 비유에서 씨는 영지주의자들 속에 있는 신적 자신이다. 이로서 토마복음에 나타나는 영지주의적 비유해석은 각자의 행위와 그의 책임에 호소하며 현실화함을 볼 수 있다. 곧 하늘나라의 잠재력이 각자 안에 있음을 현실화하는 것으로 하늘나라는 선포된 실제가 아니라 각자 안에 있는 내적 용무라는 것이다.(불성, 신성)
3. 요한복음과 초대기독교 영지주의
요한복음은 영지주의자들과 같이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 진리와 거짓 등의 이분법을 사용하며, 서론은 에온들의 유출론을 따른다.(요한1,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요한10,7의 ‘나는 양들의 문이다.’의 문은 한계를 말하며, 이는 지상세계의 빈 공간과 천상세계의 충만의 경계를 뜻한다. 천상세계의 충만에 들어간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영지주의적 구원론이다. 예수님은 영적인 동시에 심적인 존재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예수님의 세례는 분열된 우리를 플레로마로 이끌기 위해서이다.(제자들도 우리들과 하나가 되게 믿는 이들이 모두가 하나가 되게라는 일치사상) 영지주의에 세례정신은 ‘우리는 이제 하나가 되어 부활하였습니다. 만물의 아버지이름과 만물의 어머니인 진리와 이 세상에 내려오신 예수님을 통해...일치와 구원을 위해서’라고 한다. 헤라클레온은 170년경에 나타난 영지주의 신학자로서 역사상 처음으로 요한복음주해서를 쓴 인물로 알려졌다. 헤라클레온의 단편23과 37에서 일어버린 양과 마르 에프렘의 동정의 찬가 23,1에서는 다시 찾은 유일한 양이 사마리아여인으로 나타난다. 더욱 놀라운 점은 마르 에프렘의 ‘살아계신 분께서 그녀를 배필로 받아들였다’는 표현과 헤라클레온의 ‘구세주께서 사마리아여인의 남편이라 부른 이는 그의 충만이다.’라고 해석한다는 점이다. 요4,17의 ‘나는 아무 남편도 없습니다.’에 대해서도 ‘사마리아여인의 남편은 이 세상에 없고 에온 속에 있다.’라고 해석한다. 구세주를 만남은 그녀의 영혼이 천상의 쌍을 만남이며 이 만남으로 그의 영혼은 그의 영적사명을 실현하게 된다. 그리고 헤라클레온은 사마리아여인을 은유적 의미로 구세주가 속량한 영적교회라고 해석한다.
4. 요한복음과 나그함마디
진리의 복음, 부활에 관한 논고, 필립보복음 등은 예수 그리스도는 감추어진 신비로서 예수의 부활과 충만을 말한다. 요한비밀서의 프로노이야찬가와 세 형체의 원사색은 요한복음의 성은과 연결된 본문과 연결된다.
Ⅱ. 시리아어 시문학
시리아의 시문학은 의식 없이 가장 영광스런 시리아어문학의 한 분야에 속한다. 가장 오래된 시편은 토마행전에 삽입된 진주의 찬가이다.
1. 솔로몬의 송가
42편의 솔로몬의 송가도 무명의 작가가 쓴 작품이고, 짧고 아름답기도 한 시들은 확실히 솔로몬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시집의 제목과 함께 많은 점들이 신비로우며, 그들의 저작연대와 원천언어는 확실하지 않지만, 2세기 후반에 씌여졌을 가능성이 있다. 문학적 특성은 초대그리스도교의 문학과는 다르다. 상상이 풍부하고 표면에 나타나는 언어는 단순하지만 여러 편의 해석은 모호한 채로 남아있다. 많은 송가를 관통하는 주제는 기쁨이며, 이 기쁨은 세례 때에 성령으로부터 받는 선물로 거듭남을 찬양한다.
2. 신앙의 찬가
마르 에프렘은 시인으로서 뛰어난 재질과 재능을 가진 신학자로서 깊은 영적 시각의 소유자이다. 그가 표현하는 신비와 상징을 통해 이 세상과 천상 세계의 현실을 섬세한 거미줄처럼 연결한다. 진주의 찬가와 연결된 신앙의 찬가81-85편을 진주에 헌사 한다. 신앙의 찬가를 끝맺는 5편의 진주의 찬가는 수천편의 찬가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찬가로 알려져 있다. 신앙의 찬가 81편1절; 어느날, 나의 형제들이여, 나는 한 진주를 손에 넣고 그를 통해 하늘나라의 모든 상징을 보았네. 이는 위대하신 주님의 모상과 예형이라네. 그는 샘이 되었으니 나는 그 샘에서 아드님의 신비를 마셨네. 지존하신 왕국을 진주에 비유하신 분 찬미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