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에 앞이 찢기는 소리 툭툭 열매 떨어지는 소리 들으며 밤새 웅크린 등줄기 위로 김을 올리고 앉은 것이 / 비는 서 있고/ 창문은 흐르는데/젖은 우산이 문 앞에 세워져 있었다/ 그동안 어디 있었어?
-- 김미령 '왼쪽 어깨 너머의 날씨' ( 시집 '제너레이션'')
마른 장마라더니 웬걸 늦은 장마였다. 가뭄을 걱정했던 마음은 어디 가고 종일 내리다 그치길 반복하는 비에 한숨만 나온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아가미가 생기겠다고 투정을 부렸다. 자영업자의 심통을 이해한다는 듯, 그는 다정히 웃었다
비가 오면 서점은 참 조용해지고 만다. 누가 이런 비를 뚫고 책을 사러 오겠어.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들이 나가느라, 궂으면 궂은 대로 집을 지키느라 서점에는 손님이 없다. 마음을 비울 수 있다면 좋으련만, 마음은 한 번도 나의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
이럴 땐 머리를 비우고 몸을 움직이자. 화분 넷을 비 아래 내어 놓는다. 멍하니 창밖만 본 지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우산꽂이에 시선이 머무른다. 비닐 우산이 몇개 꽂혀있다. 지난 비에 손님들이 깜빡 잊고 두고 간 것들이다. 우산을 되찾으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예전엔 일회용 우산이 있었다. 손잡이뿐만 아니라 살대마저 대나무로 만들어 우에는 묻어날 듯 시퍼런 비닐이 덮여 있었다.
두어 번만 사용해도 금세 너덜거리던 그 우산은 하나에 얼마였을까. 그게 아까워 쪼르르 처마 아래 늘어서 있던 사람들도 기억한다.
아까운 게 많고 기다릴 줄 알았던 시절이 시립도록 그립다.
다시 우두망할 비 내리는 창 밖을 본다. 십년 전 나는 내가 서점 계산대에 앉아 비 구경하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불현듯, 이마를 가린 젊은 연인이 서점 앞 문 닫힌 가판대 처마 아래로 뛰어드는 걸 본다.
좋은 때 구나. 부럽던 나는 우산꽂이에서 우산을 하나 뽑아 든다.
둘이서 한 우산을 쓰고 가라고 건네 줄 요량이다.
-- 유희경 시인, 서점지기
https://youtu.be/dwAg9-hxvn4?si=5JcqKotXT_CCS07S
첫댓글
출근길 음악감상 잘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