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 중심의 행성 원 운동 주장
‘대심’이라는 새 개념 도입하며
보다 정밀한 행성 궤도 설명
기원전 200년경의 천문학자였던 페르가의 아폴로니우스는 행성의 밝기 문제와 역행 운동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심(eccentric), 대원(deferent) 및 주전원(epicycle)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아폴로니우스는 먼저 행성의 겉보기 밝기가 바뀌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심과 대원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이심은 ‘지구 중심을 원 운동의 중심으로 해서 행성들이 원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지구로부터 약간 벗어난 어떤 다른 중심이 있고 그 중심 주변을 이 행성들이 원 운동을 해야 그 행성들이 지구로부터 거리가 가까운 경우에는 조금 더 밝게 보이고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좀 더 어둡게 보이게 된다’고 설명을 하기 위해서 도입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구 주변의 모든 행성들은 다 이심을 중심으로 하는 원 궤도를 도는데 이 원 궤도를 대원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에 추가해서 아폴로니우스는 행성의 역행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주전원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바로 대원 위의 한 점을 중심으로 해서 행성이 조그마한 원인 주전원을 따라 뱅글뱅글 도는 것으로 그는 설명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각각의 행성들은 꽈배기가 꼬인 것처럼 빙글빙글 돌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행성의 역행 운동이 설명됩니다. (첫 번째 그림을 보시면 금방 이해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이 이심, 대원, 주전원을 모두 고려해서 행성들의 궤도를 그려보게 되면 첫 번째 그림처럼 그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폴로니우스의 이 이론은 당시에 상당히 좋은 이론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일단 행성의 밝기 문제가 해결이 되었고 역행 운동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데다, 그 두 가지 문제를 다 등속 원 운동의 조합으로써 설명했기 때문에 기존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좀 더 정밀한 형태의 행성 궤도를 설명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사람들은 여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아폴로니우스의 이 이론이 정말로 완벽한 이론이었다면 그 이후에 다른 천문학자들이 새로운 모델을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실제 우리 주변을 도는 행성의 궤도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복잡한 행성 궤도들을 더욱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아폴로니우스의 모델보다 좀 더 복잡한 천동설 모델을 제시한 인물이 바로 프톨레마이오스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생애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대략 기원후 80년경에 태어났고 170년경에 세상을 떠난 인물로서 여겨지고 있는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라는 곳에서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는 「알마게스트」(Almagest)라고 불리는 엄청난 분량의 천문학 서적을 통해 자신의 천동설을 집대성했습니다. 그의 책은 무려 1400년간 서구 유럽과 이슬람 세계에서 대단히 각광 받았고, 가장 완벽한 천문학 모델을 정립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그러면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전 아폴로니우스의 천동설 모델보다 더 복잡하게 만든 게 과연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행성의 운동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지구로부터 가까이에 있는 행성은 빨리 움직이는 반면에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은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폴로니우스가 도입한 이심, 대원, 주전원 개념에 (두 번째 그림처럼) 대심(equant point)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운동 중심을 도입했습니다. 지구에서 가까운 행성은 빨리 움직이고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행성은 천천히 움직이는 걸 확인한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심이 아니라 지구와 이심의 거리만큼 반대 방향으로 떨어진 대심이라고 하는 새로운 어떤 점을 잡고서 그 점을 중심으로 해서 똑같은 시간 동안에 각속도(단위 시간 동안 행성이 원 운동을 할 때 움직인 각도)를 조사하니까 지구 쪽과 지구 반대쪽 행성이 동일한 각속도를 유지하는 운동을 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프톨레마이오스에 따르면 행성은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운동을 합니다. 이심으로부터 특정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원인 대원 위의 어떤 한 점을 중심으로 해서 다시 원을 하나 작은 걸 그린 것을 우리는 주전원이라고 부릅니다. 각각의 행성들은 이 주전원 위를 빙글빙글 돌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각 행성들이 꽈배기를 풀어놓은 것 같은 모양으로 지구 주변을 빙글빙글 돌게 됩니다. 그런데 각속도라는 관점에서는 대심을 중심으로 대원 위의 각 점들이 동일한 각운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이 대심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게 될 때 과연 어떤 장점이 있는 것일까요? 대심 덕분에 ‘등속 원 운동’이라고 하는 전통적인 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 중에 ‘등속 운동’이 사실상 그대로 유지가 되면서 좀 더 정밀한 천문학적인 관측 결과를 설명하는 것이 가능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폴로니우스가 도입했던 이심, 대원, 주전원을 그대로 활용함으로써 ‘원 운동’을 또 설명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기존의 천동설 모델들을 보다 실제에 가까운 정교한 이론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동시에 ‘등속 운동+원 운동=등속 원 운동’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프톨레마이오스는 새롭게 대심이라고 하는 새로운 개념 하나를 더 소개함으로써, 보다 정밀한 행성 궤도를 설명하는 데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복잡한 천동설 모델은 (아주 사소한 수정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오랫동안 절대적인 진리로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1540년대에 완전히 새로운 개념인 지동설이 등장할 때까지 말입니다.
김도현 바오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