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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비가 뚝…뚝…,옛사랑이 바스락 | |
천년의 숲 함양 상림의 늦가을 | |
요즘 지리산 자락의 함양군 상림에는 낙엽비가 한창이다. 상림 옆의 홍련지와 백련지의 연잎들이 시들고 붉은 꽃무릇이 질 무렵이면 천년숲은 비로소 가을을 맞는다. 숲길로 들어서자 하늘을 가리는 갈참나무와 졸참나무, 떡갈나무, 단풍나무 등이 감싸고 있는 고즈넉한 숲길에는 온통 낙엽천지다. 이곳에는 아름드리 낙엽수와 활엽수만 120여종 2만여그루가 자라고 있다. 올해는 이상기온과 오랜 가뭄 탓에 비록 단풍 빛깔이 곱지 않아도 수북이 쌓여있는 낙엽길을 걸으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오히려 계절의 정취를 더 느끼게 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비는 비발디의 사계의 선율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렇게 가을이 익어가는 숲길은 연인과 함께 걸어도 좋고, 혼자만의 외로움에 빠져보거나 잠시 나무의자에 앉아 시집을 들춰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안도현의 ‘가을 엽서’) 서늘한 숲길에는 손잡고 산책하는 노부부, 헤드폰으로 음악을 나눠 들으며 마냥 즐거운 젊은 연인, 나무의자에 기대어 골똘히 사색에 빠져있는 한 남자의 모습 등이 익숙한 풍경처럼 다가온다. 붉은 꽃무릇 질 무렵 숲을 거닐면서 최치원의 후손인 경주 최씨문중이 세운 문창후 최치원 신도비와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 사운정, 함양읍성의 남문으로 쓰였던 누각 함하루, 심원정, 일제시대 독립운동에 참가한 애국지사들의 기념비와 이은리 석불 등 옛 유물들을 만난다. 간혹 잘 여문 도토리가 툭 툭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그럴 때마다 다람쥐들이 재빠르게 뛰어간다. 숲속 개울을 따라 길이 1.6㎞ 폭 100~200m의 아름드리 숲이 펼쳐진 천연기념물 제154호 상림은 9세기 말 진선여왕 때 고을부사로 부임한 최치원이 조성했다. 그는 당시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위천이 홍수 때마다 넘쳐 큰 피해를 입자 마을 중앙에 둑을 막고 호안림을 심었다. 지리산과 백운산에서 나무를 가져와 금으로 만든 호미로 하루만에 3㎞ 길이의 대관림을 일궜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일제시대 마을이 생기면서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었으나 지금은 상림만 남아있다.
함양읍에서 마천면의 벽송사와 서암(서암정사)로 넘어가는 길목에 지리산 능선을 타고넘는 구절양장의 고갯길 지안재와 오도재가 있다. 예부터 하늘과 맞닿은 고개라는 뜻의 ‘천령’의 땅 함양의 옛 사람들이 장터목으로 가기 위해 괴나리봇짐을 지고 넘었던 험한 길이었다. 지안재를 넘어 마천면 방향으로 가면 변강쇠와 옹녀가 지리산으로 들어갈 때 올랐다는 전설의 고갯길인 오도재가 나온다. 오도재 부근에 세워진 지리산전망공원에 오르면 지리산의 하봉, 중봉, 천왕봉, 백소령, 형제봉, 반야봉 등이 한눈에 잡힌다. 마천면에는 신라 말에 창건되었으나 화재를 입어 조선 중종 15년(1520)에 벽송 지엄대사가 중창한 벽송사와 제2의 석굴암으로 불리는 서암이 나즈막한 야산을 끼고 마주보고 자리잡고 있다. 벽송사 들머리에는 사천왕상 대신 잡귀의 출입을 막고 사원의 풍수를 지켜주는 신장상인 한쌍의 목장승 금호장군과 호법대장군이 이채롭다. 왕눈과 주먹코의 4m 높이 목장승은 왼쪽의 금호장군이 머리 부분이 산불에 타서 없어졌다. 서암은 벽송사에 따른 암자로 근대에 지어진 사찰이지만 바위굴에 모셔놓은 석불과 오밀조밀한 기암괴석, 아름다운 정원 등으로 벽송사보다 더 유명세를 타면서 함양군의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만약 여유가 있으면 상림에서 머지 않은 수동 개평마을 정여창 고택과 하동 정씨 생가 등도 들러 세월의 손때가 묻은 고택에서 만추의 풍광을 맛보는 것도 알찬 여행길이다. 함양/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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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의고향....잘보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