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스무 살이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 대학에 떨어진 단짝 친구가 재수 대신 군대나 일찍 다녀오겠다고 선언을 했다.
전문대라도 들어가지 그러냐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연탄불로 겨우 데운 아랫목에 버티고 있는 가난을 이겨낼 자신이 없기도 했을 것이다.
친구가 군대 가기 전 인천 주안역 부근 술집에서 송별식을 했다. 10대 시절 내 서식지는 인천 십정동이었다.
서울에서 대학물 먹고 있는 친구도 몇 왔고 가리봉동 공돌이였던 나는 기름 냄새 풀풀 풍기면서 동동주를 연달아 마셨다.
친구는 아직 다 오지도 않은 청춘에게 잘 가라고 미리 인사를 했다.
최백호의 입영전야를 불렀던가? 그때는 노래방도 없었다. 있는데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다.
친구가 떠나자 철쭉과 아카시꽃이 연달아 피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세월은 더럽게 안 갔다.
야간 잔업의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쉽게 잠들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밤 늦게까지 라디오를 벗삼아 허전함을 달랬다.
이 무렵 조용필이 노래로 온 세상을 평정하고 있었다. 나는 창밖의 여자를 유독 좋아했다.
체질이 클라식보다 유행가 체질이라 날마다 조용필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유치한 사랑과 이별을 반복했던 청춘의 허무함 속으로 조용필 노래는 더욱 사무치게 스며들었다.
대체 이 남자는 무얼 먹기에 노래를 이렇게 잘 부를까.
모든 노래를 내 맘대로 편곡해서 부르는 음치인 나는 조용필의 가창력에 탄복했다. 나는 조용필의 열혈 팬이 되었다.
내가 철들기 전에 이미자, 배호, 나훈아 등이 내 누이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어도 어떤 가수도 내 마음을 흔들지는 못했다.
조용필 이후에도 이문세, 서태지, 아이유, BTS가 방송을 평정했으나 그저 가수에 머물렀다.
심수봉이 내 마음을 흔들기 전까지 덕후로 모신 가수는 조용필이 유일했다.
책이나 영화뿐 아니라 유행가도 나는 편식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의 유행가 편력사는 조용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당시 여친도 조용필을 좋아했다. 무슨 가요 프로에 방청객으로 어렵게 당첨되어 함께 여의도 방송국 공개홀에서 조용필을 보고 감격하기도 했다.
이후 여친은 노래 잘 부르는 남자가 좋다면서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
듣기에는 좋으나 부르기는 어려운 노래, 창밖의 여자는 혼자 조용히 듣기에 좋고 일편단심 민들레야는 여럿 있을 때 부르기에 좋다.
일편단심 민들레야는 오래도록 내 십팔 번이었다. 나는 계란말이를 잘 만드는 여자와 일편단심 민들레야를 들어주는 여자가 좋다.
리어카에서 해적판으로 팔던 테이프를 사서 매일 반복해서 들었던 창밖의 여자, 노래 속 여자뿐 아니라 창밖의 여자는 내 주변에도 있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일찍부터 산업 전선에 나선 누이들이었다. 공순이가 싫다면서 다른 직업을 선택한 사람도 있었다.
버스 문짝을 탕탕 두드리며 오라이를 외치던 버스 안내양도 내겐 창밖의 여자였다.
보라색 낮은 모자를 머리핀으로 단단히 고정한 그녀는 버스 요금을 받을 때마다 입술을 오므리는 습관이 있었다.
그 여자는 만원버스 문에 매달려서도 절대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나같은 공돌이는 애인으로 인기가 없었다. 그녀들은 대학생을 좋아했다.
버스에 매달리듯 나에게도 매달리는 여자가 있으면 잘해 줄 수 있는데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던가.
그렇게 속절 없이 흘러간 청춘은 노래의 추억을 남기고 떠나갔다.
사랑은 아름다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면 죽으니까 하는 것이다. 세상의 절반이 여자이듯 자기 인생을 사랑한 모든 창밖의 여자를 응원한다.
내게서 떠났지만 분홍색 매니큐어를 바른 그녀의 흰손이 그립다.
첫댓글 ㅎㅎ나 고3졸업하고 나니 돌아와요 부산항이 대희트를 치던 ㅎ
학생땐 단골 안내양이 있어서 가끔씩 회수권 한주먹을 내주머니에 넣어주었던 그녀
그당시 회수권10매가 1200원 한장에 120원 나 고삐리때
지존님한테 인심을 베푼 그런 안내양도 있었군요.
저는 학교 대신 일찍 사회생활을 해서 청소년 때도 늘 성인 요금을 내야 했지요.
또래 중고생은 그렇다쳐도 성인인 대학생도 요금 할인을 받는 반면
훨씬 어린 내가 성인 요금을 내야 해서 섭섭할 때도 있었답니다.ㅎ
여고시절이 주마등처럼스쳐갑니다
다양한 노래에 좋아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지요
가왕 조용필~~
미소를 짓게 만들어 주셨네요 ㅎ
유행가는 늘 추억을 불러오지요.
시대에 따라서 유행하는 노래도 가지가지,,
그래서 히트한 유행가로 당시의 문화를 들여다볼 수도 있다지요.
홍실님을 미소 짓게 했다니 저도 좋습니다.ㅎ
현덕님의 글엔 진솔함이 있어서 좋습니다 우리하고 같은 추억을 공유해서 더 좋은거겠지요 재미난 글 많이 올려 주시와요
그런가요.
오늘은 가슴에 담긴 노래 사연 때문인지 저절로 글이 써지네요.
각자 살아온 배경은 다르지만 좋아하는 노래를 공유하는 마음이 있어 다행입니다.
종종 사연 올리도록 할게요.ㅎ
유현덕님과 제가 나이차가
별로 나지 않는데..
왠쥐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왜지 ㅎ
오늘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기분좋은 하루 마무리 하시고
내일이라는 또다른 선물을
기대하면서~~~^^
충분히 그럴 만합니다.
일찍 사회생활을 해서 또래들보다 몇 살 선배들과 많이 어울렸습니다.
그들에게 애늙은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네요.
철은 지금도 들지 않았지만 머리에 피만 일찍 마른 셈이지요.^^
어쩌면 앞으로도 제 글 읽으면 정서적 나이 차는 더 벌어질지도,,ㅎ
일편단심 민들레야
저의 애창곡이기도 합니다ㅋㅋ
저도 조용필 세대라
공연장도 가기도 한 창밖의 여자? ㅎ
교복입고 학교다닐적
차장되었던 친구가 탄버스를 타기도 했는데
그때 넘 어른이 된것 같았던 친구
그때는 몰랐어요
그 친구가 교복입은 내가 어떻게 보였을지ㅠ.ㅠ
조용필 세대의 창밖의 여인을 환영합니다.^^
정아님이 일편단심 민들레를 좋아하신다니 묘한 동질감이 느껴지네요.
생각보다 이 노래 부르는 사람이 많지 않더라구요.
제가 가사를 외우고 있는 유일한 곡이기도 합니다.
저는 화면에 나오는 가사를 보지 않으면 노랫말이 생각나지 않아
끝까지 못 부르는 노래가 대부분이랍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ㅎ
기부왕 주셔서 조용필 좋아해요.
추억의 노래들 감사합니다
정묵 선배님 오랜 만에 보네요.ㅎ
말씀처럼 조용필은 기부를 많이 했지요.
가왕이지 한국 가요사에 널리 이름을 남긴 그의 인생에서 여자 복이 없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합니다.ㅎ
버스 안내양 하면 생각나는건 그많은 사람들을 어캐해서든지 다 태우고 멋지게 올라타고 오라이~~~ㅎ 하는 모습 이였지요
아주 까마득한 옛 일들 인데 군더더기 없이 모두 가져오셨네요
현덕 님표 글에 끄덕끄덕 ㅡㅡ🤭
그땐 그랬지ㅎㅎ
와우~~
범방 방장님이 여기까지 다녀가셨군요.
무지 반갑네요.ㅎㅎ
자가용이 많지 않던 그 시절엔 버스가 참 유용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미어터지도록 빼곡한 만원버스를 타고 학생은 학교로 직장인은 회사로
그런 시절을 잘 이겨냈기에 오늘날 남부럽지 않은 선진 한국이 되었습니다.
남은 휴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ㅎ
조용필의 목소리엔
느끼는 사람만 알 수있는
한이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유혹적입니다
남과 여를 가리지 않는 매력의 목소리
현덕님의 조용필사랑은 나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팝송을 좋아했던 나는
중학교 때부터 제니스 죠플린 같은
여가수의 목소리에 빠져 있었고
엘비스 보다 잉글버트 험퍼딩크의
노래를 즐겨 들었지요
남진 나훈아노래들은 아예 듣지도
않았지요 지금도 안듣습니다 ㅎ
조용필 . 잠 안오는 밤이면
지금도 듣습니다
키리만자로의 표범.
보챙님이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뭔가 통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 노래 또한 부르기는 힘들어도 혼자 듣기에 좋은 곡이죠.
엥겔베르트 험퍼딩크는 들어본 적 있으나 재니스 조플린은 처음 듣습니다.
이제라도 조플린 노래를 들어보겠습니다.
그 시절 주옥 같은 곡을 소개하며 늦은 밤까지 뒤척이던 청춘을 다독여준 이종환 황인용 김기덕 전영혁 등이 생각나네요.
그나저나 어쩌죠? 보쳉 누이와 정서적으로 이렇게 닮은 곳이 많아서,,ㅎ
@유현덕
제니스 죠플린 20대에 목숨을 버린
안타까운 가수 입니다
한번 검색해서 들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