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리운 강 섬진강....남도의 땅에서 그들의 삶과 유유히 흘러 온 반도의 실핏줄...
우리집 앞에도 섬진강이 흐른답니다..섬진강 상류지만 제번 큰 개천이랍니다.장수 팔공산에서 발원한 섬진강의 한 지류가 김용택시인의 '섬진강'의 고장 덕치로도 흐르고 그 한가닥은 우리마을 앞으로도 흐른답니다.김용택시인이 묘사한 섬진강의 풍경은 곧 내가 어릴때 보아왔던 우리마을의 풍경이기도 하지요.
악양이 '토지'의 최참판댁의 외동딸 최서희를 중심으로 한 섬진강 사람들의 삶의 고장이라면 우리 마을 역시 전주이씨 종가의 청암부인의 삶을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섬진강 사람들의 삶을 묘사한 '혼불'의 고장이지요..(재밌는 얘기 하나..토지에 보면 김개주라는 동학지도자가 나오는데 그 인물은 실제 동학 3대 지도자 중의 하나인 김개남을 차용한 인물인데 그 김개남은 남원사람이고 남원에서 싸웠습니다.그는 지도자중에도
너무 급진적이고 과격해서 가령 전봉준은 서울로 압송해 처형했지만, 김개남은 압송하지도 않고 바로 처형했답니다. 누구는 그래서 전봉준이 지도했던 김제 정읍 민중들은 비교적 쌀이 풍부하기때문에 덜 과격하지만, 이곳 남원사람들은 산나물밖에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과격했다고들 말합니다.일리있지요?)
'토지'가 진주 오광대놀이 등 섬진강의 영남민중들의 일상적 삶과 제의, 세시풍속 그리고 시대적 아픔들을 보여줬다면 '혼불'은 섬진강에 사는 호남민중들의 세시풍속,노래,음식문화 그리고 정신세계등을 보여줬지요..
모든 것을 끌어앉는 지리산과 은은한 물소리로 피곤한 심신을 다독이던 섬진강...님의 사진을 보니 그 산빛과 물빛이 그리워 미칠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옛날 하릴없이 쏘다닐 때 그 아름다운 도로인 구례-하동간 도로를 몇번이나 다녔는지 모르겠군요..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 깨끗하고 넓은 백사장을 연출한 곡성 압록의 풍경,피아골입구의 계단형 논들..강에 놓여진 빈배를 타고 강의 兩岸을 연결한 밧줄을 당기며 건너보던 (지금도 그런 배들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섬진강 하류,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드리워진 벗꽃길, 쌍계사 밑에서 먹던 은어회와 매운탕, 그리고 하동의 시원한 재첩국..
알수 없는 내맘때문에 화엄사에서 눈물짓던 일, 저녁놀이 지는 쌍계사에서의 거룩한 범종소리
그리고 가장 잊지 못할 기억,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을 읽고 늦가을,초겨울이면 가장 깨끗한 지리산 쌍계사 뒤편 대나무숲에만 몰려온다는 되새떼를 보러 가던 일, 하늘을 가득 메우고 마치 자석위에 놓인 종이의 철가루처럼 다양한 무늬를 보이며 비상하던 되새떼의 환상적 풍경에 이것은 지상의 풍경이 아니다고 느끼던 일,
이게 모두 섬진강의 풍경이었습니다.
섬진강변의 고장들은 다 아름답습니다. 그 섬진강의 물을 마시고 자랐던 것이 행복합니다. 그리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산, 지리산..
아 지금이라도 전라선 열차를 타고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군요..
그 섬진강변의 건강하면서도 순박한 민중들을 생각하면서 옛날에 애송하던 시를 다시 적어 봅니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구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 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