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특집
청량정사의 퇴계와 홍길동
윤동재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에 나오는 홍길동이
오늘 아침 율도국에서 급히
봉화 청량정사로 퇴계를 찾아왔지요
홍길동은 전국의 서자 얼자 대표들과 함께 찾아왔지요
퇴계는 마침 문도들과 가노들을 다 내려보내고
혼자 청량정사에 있다가
홍길동 일행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바람에
잔뜩 겁을 집어먹었지요
홍길동과 전국의 서자 얼자 대표들은
퇴계가 얼마 전 조정에다
적서의 구분과 귀천의 질서는 예법의 기본인데
이를 절대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상소 올린 것을 항의했지요
홍길동은 퇴계에게 글을 좀 안다고 하여
글을 그렇게 써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지요
서자와 얼자 대표들이 퇴계에게 주먹을 쑥쑥 내밀자
홍길동이 막아 나서며 퇴계에게 차근차근 얘기했지요
평생토록 공부도 웬만큼 했고 벼슬도 어지간히 높았으면
적자 서자 얼자의 차등을 부르짖을 게 아니라
적자 서자 얼자의 대등을 외쳐야 하는 게 아니냐고
홍길동이 퇴계에게 점잖게 따졌지요
청량산 육육봉이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며
가슴 조이며 지켜보고 있었지요
청량사 유리보전의 약사여래부처님도 바깥으로 나와
청량정사 쪽으로 눈을 계속 주고 있었지요
마음은 무게가 없다
안동에서 서울로 오는 버스를 타고
동서울 버스터미널에 내리니
할머니 한 분이
자기 키보다 더 큰
배낭을 짊어지고
거기다가 두 손에는
또 보따리까지 들고 내린다
배낭에는 마늘이 들어 있고
보따리에는 애호박 몇 개
고추와 참깨가 들어 있다
아들네 집인지
딸네 집인지 가는가 보다
지하철 강변역 쪽으로
함께 걸어가면서
“할머니 이 무거운 것을
어떻게 들고 가시려고 가져 오셨어요!”
하며 보따리를 모두
건네받아 들어드리자,
“마음을 담아왔지 별거 아니야!” 한다
그러면서 마음은 무게가 없다 한다
마음은 아무리 담아와도
무겁지 않다고 한다
마음은 아무리 가져와도
힘들지 않다 한다
좋은 시
시를 쓰는 사람은 누구나 좋은 시를 쓰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단 한 편이라도 좋은 시를 쓰고 싶다. 그런데 습작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잘되지 않을 때는 책을 읽거나, 자연을 찾아가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일을 한다. 그러면 어떤 깨침이 오고 그걸로 습작할 수 있게 된다.
최근에도 상당한 기간 습작이 통 안 되어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 이규보의 묘소를 찾아가서 이규보와 시 이야기를 실컷 나누고 왔다. 나는 이규보에게 우리 시대의 시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이규보도 웃으며 자기도 자기 시대의 시가 맘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이규보는 자기 시대의 시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나무랐다고 했다. 나는 우리 시대의 시가 맘에 들진 않지만 마구 나무랄 형편은 아니라고 했다. 우리 시대의 시와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대부분 내 탓이라고 믿고 있다고 했다. 우리 시대의 시를 이해하려는 나의 노력이 크게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규보는 옳다 그르다 말하지 않고 그저 듣기만 했다.
나는 상당히 오랜 기간 시를 써 왔는데 어떤 시가 좋은 시인지는 아직도 꼭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이규보에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어떤 시가 좋은 시인지 물어보았다. 이규보는 알맹이는 없고 겉보기를 꾸미는 데만 힘쓴 시는 좋은 시가 아니라고 했다. 형식이나 표현을 잘 갖춘 시는 처음에는 좋아 보이지만 거듭 읽으면 얻을 게 없다고 했다. 깊은 뜻을 지니지 않은 시는 도무지 읽을 맛이 없고 씹을 맛이 없으니 좋은 시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좋은 시라면 스스로 깨친 깊은 뜻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규보의 말에 공감하면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 이야기해 줄 것이 없느냐고 했더니, 시를 읽고 이해하고 쓰는 것은 실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남이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길 없는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시성이라고 부르는 두보와 시선이라고 부르는 이백이 아무리 훌륭하고 두 사람의 시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무조건 숭앙하고 따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두보는 두보 시, 이백은 이백 시, 이규보는 이규보 시가 있다고 했다. 시인은 누구라도 그가 참 시인이라면 자기 시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규보는 더 물어보아도 대답하지 않고 먼 산 바라기만 했다. 나는 더 묻지 않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내내 시의 길은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여는 것이지, 남이 만들어 주고 남이 열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시대와 불화하더라도 나는 내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제 습작이 안 될 때도 더 이상 누구를 찾아다니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래오래 깊이 생각하고 일하는 가운데 문득 깨달음이 오면 그걸 시로 써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나도 좋은 시를 쓸 수 있으리라. 단 한 편이라도 좋은 시를 쓰는 그날까지 나는 내 길을 묵묵히 걷겠다. 내 길을 흔들림 없이 소걸음으로 뚜벅뚜벅 가겠다.